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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장(8)
 
이재록 목사 | 2007-08-26 | 고전 13:4 
 
이 시간은 사랑장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랑의 개념 중'오래 참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영적인 사랑의 개념 중'온유함'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녀를 얼마나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며 온유한 자녀에게 얼마나 축복을 주시기 원하시는지 잘 아는 분들이라면 온유함을 이루고자 힘쓸 것입니다. 특히 많은 영혼들을 품어 더 좋은 천국으로 이끌고자 원하는 일꾼들이라면 온유함을 더욱 사모하실 것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은 온유하시기에 온유를 이루는 만큼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더 좋은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온유함을 이룰 수 있는지 깨달으셔서 많은 영혼들이 여러분의 품안에서 쉼을 얻고 구원에 이르며, 더 아름다운 천국에 이르므로 천국에서 더 아름다운 처소와 상급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온유함의 의미
   
   오늘 본문 말씀에"사랑은 온유하다"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온유한 사람에게는 그만큼 영적인 사랑이 많다는 것이지요. 온유한 마음이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전에 보면 온유를'성격이 부드럽고 유순함, 온화함,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듦'이라 정의합니다. 솜은 아무리 단단한 물체가 부딪혀 와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이런 솜처럼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또한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나무 그늘과 같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줄 수 있겠습니까? 이런 나무 그늘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깃들여 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로 온유한 마음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보통 순하고 유해서 누가 찔러도 화를 내는 일이 없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을 온유하다 합니다. 진리 안에서는 아무리 순하고 착해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착함이 아니라면 진정 온유하다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순하고 착하다는 사람들 중에는 본래 성품이 소극적이거나 유약해서 남들에게 잘 순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을 찌를 때 마음에선 부글부글하는데 억지로 눌러 참는 경우도 있지요. 지능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 중에도 보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욕을 해도 늘 웃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온유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이런 경우는, 마음에 악이 없고 사랑이 가득해서 악한 자를 참아 주고 품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영적인 온유함
  
   영적인 온유함은 성품이 유약해서 또는 부족해서 온유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악이 없고 영적인 사랑이 맺혀 있음으로 인해 어떤 악한 자라도 대적하지 않고 참아주는 것이지요. 또한 지혜롭기 때문에 참는 것이지요. 그리고 온유함이란 무조건 이해하고 용서하며 부드럽기만 한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온유함은 육적으로 사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품는 것이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을 반듯하게 다스리고 이끌 수 있는 위엄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진정 온유한 사람은 선할 뿐 아니라 지혜롭고 똑똑하여 본이 됩니다. 이처럼 영적인 온유함은 단순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만을 뜻하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온유함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영적인 온유함은 내면의 온유함과 함께 외적으로도 덕을 갖춘 상태를 말합니다. 악이 없고 선해서 마음이 온유하더라도 내면의 온유함만 있으면 그 온유함이 남을 품고 다스리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이 내면의 온유함과 함께 외면의 덕을 겸비해야 만이 그 온유함이 더 온전해지며 더 큰 능력을 발휘합니다. 온유한 마음에 이 덕을 함께 갖춘 사람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으므로 큰 일들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덕이란'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마음이 올바르고 사람의 도리에 합당한 일, 인격이 갖추어져서 남을 정복시키는 일'등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의미의'덕'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이처럼 마음이 올바르고 공정하며 도리에 합당히 행합니다.
   즉, 잘 갖추어진 인격으로 남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 정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갖추어진 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부족함을 이해해 주고 포용해 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거침돌이 되지 않으며 상대에게 신뢰를 주며 사랑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영적인 온유함을 말할 때 이 덕은 우리가 입는 옷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라도 벌거벗고 있으면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아무리 마음이 온유해도 외면적인 덕이 함께 갖춰져 있지 않으면 내면의 온유함이 그 가치를 발휘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온유함의 빛을 흐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온유하여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도 없는 온화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야기만 시작했다 하면 꼭 필요하지 않은 말까지 합니다. 어떤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아무래도 점잖아 보이거나 교양이 있어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덕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사람이 아무리 온유하다고 해도 그 온유함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에게 신뢰를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지요.
   또 어떤 사람은 온유하고 선해서 다른 사람에게 악한 감정을 품는다거나 남의 말을 하는 일도 없고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거나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행함이 부족합니다. 이런 경우 역시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 품에 안겨오기는 어렵겠지요. 이처럼 덕이란 내면이 온유할 뿐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실 하나하나가 바르게 갖추어져 있음으로써 사람을 품고 다스릴 수도 있는 것을 말합니다.
  
   3. 예수님의 온유
  
   온유함이 가장 승하신 우리 예수님을 예로 들면 예수님은 참으로 온화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20에 보면"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하심 같이 영혼들을 향한 자비와 긍휼, 사랑과 용서가 풍성하셨지요. 그러시면서 마태복음 12:19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하신대로 말씀하시는 것이나 행동하시는 것, 외모 등에 위엄이 있으셨습니다.
   누가복음 4:31-32에 보니"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들을 그대로 이루셔서 악은 모양도 없으셨고 외면적으로도 어떤 흠이나 점도 없이 거룩하고 온전하신 모습으로 말씀을 증거하셨기에 말씀에 권세가 따르고 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매우 위엄 있게 죄에 대해 깨우쳐주기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4-15에 보면"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한대로 엄히 책망하신 일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매매하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자"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하는 베드로를 향해"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하시며 엄히 책망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비진리나 불의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함이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우쳐 주시기 위해 이처럼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미움이나 감정 등의 악은 모양도 없으신 온전하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로마서 5:8에"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하신 대로 생명을 버리신 행함을 통해 확실히 그 사랑을 믿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내면에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시면서도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행하시므로 영혼들을 품고 다스리시는 외면의 덕을 함께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이시고 천국복음을 전하시므로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4. 사랑과 공의를 통해 본 온유의 양면성
  
   영적인 온유함의 이해를 돕기 위해'사랑과 공의'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사랑'을 생각할 때 오직 용서하고 이해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은 고린도전서 13:6 전반절에 말씀대로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한없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 때가 있는가 하면 죄악을 엄히 심판하실 때가 있지요. 민수기 14:18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한대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중한 죄를 거듭 거듭 지어가는 영혼들도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용납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육의 부모도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가 그른 길로 갈 때는 매를 들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우리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때때로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생명으로 이끄시기 위한 너무나도 지극한 사랑인 것이지요.
   또한 만약 하나님께서 열심히 말씀 안에 살고자 노력하는 영혼들이나,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거듭 거듭 중한 죄를 범해 나가는 영혼들이나 똑같이 구원을 받게 하신다면 어찌 좋으신 하나님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임의대로 영계의 법들을 어기신다면 진정한 인간 경작이 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도 이를 송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지만 정해진 법칙을 따라 모든 일들을 이루어 나가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공의는 사랑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므로 사랑과 공의는 상호 보완의 관계인 것입니다. 사랑의 한 개념인 온유함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음이 선하고 온유하여 사랑과 긍휼이 많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덕이 함께 갖추어질 때 그 온유함이 온전한 것이 되고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많은 사람을 옳은 길, 곧 구원의 길로 이끌며 영혼의 쉼을 얻게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온유하다 인정하시려면 먼저는 반드시 마음의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덕을 이루어야 하지요. 진정 온유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가 되는 인물들과 함께 다음시간에 이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솝우화 '해와 바람 이야기'에 보면 길을 가는 어떤 사람의 외투를 누가 먼저 벗길 수 있는가 내기를 합니다. 먼저 바람이"저런 외투쯤이야." 하고 자신만만해서 나무도 뽑힐 만큼 강한 바람을 내뿜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오히려 외투를 더 단단히 여밀 뿐이었지요. 다음으로 해가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따스한 햇볕을 내뿜자 그 사람은 곧 외투를 벗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바람은 자신의 힘으로 외투를 벗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해는 그 사람 스스로가 외투를 벗게 했지요. 온유함은 바로 이 해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힘으로 위협하지 않고도, 오직 선과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상대의 마음을 얻는 힘, 이것이 바로 온유함이지요. 이 온유함을 소유하게 되면 이 세상의 부나 명예, 권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는 무수한 영혼을 구하는 영적인 능력이 되지요. 영적인 온유함은 솜과 같은 마음, 나무그늘과 같이 깃들어 쉬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온유함은 내면의 온유와 함께 외면의 덕을 겸비한 것을 의미한다 했지요.
   말씀을 잘 양식 삼으셔서 이 온유함을 꼭 이루심으로 이 온유함의 힘, 곧 사랑의 힘을 체험해 나가시며 아버지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장(9)
 
이재록 목사 | 2007-09-02 | 고전 13:4 
 
이 시간은 사랑장 아홉 번째 시간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영적인 온유함에 대해 증거해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넓고 온유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바다 같다 말합니다. 산골짜기의 계곡물, 시냇물, 강물 등 이 지구상의 흐르는 물들은 대부분 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따라서 바다는 흐르는 물과 함께 떠내려 온 폐수나 홍수로 인해 생긴 폐기물 등 온갖 더러운 것들도 받아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갖가지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정화시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여 깨끗하게 하는 바다의 작용이 지구의 생명을 유지해 주듯이 바다같이 넓고 온유한 마음을 이룬다면 어떤 어둠, 죄에 물든 영혼들이라 할지라도 품어 안고 정결함을 이루도록 이끌어주므로 우리 주님께서 오실 때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고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다와 같이 넓고 큰 마음, 곧 온유한 마음을 이루셔서 마태복음 5:5에"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말씀하신 대로 천국에서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내면의 온유와 외면의 덕 중 먼저 내면의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온유함의 기본 조건인 성결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악을 벗고 성결되어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은 솜털과 같은 마음이어서 누가 부딪혀 온다 해도 소리가 나지 않고 많은 사람을 감싸서 품어 안습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처럼 뾰족한 마음이나 자기 의, 틀과 같은 단단한 마음이 있으면 솜과 같이 상대를 품어 줄 수가 없습니다. 딱딱한 돌이나 쇠 위에 돌이 떨어지면 소리를 내며 튕겨나가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살아 있으면 상대가 나를 조금만 불편하게 해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이해해 주고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판단, 정죄하고 더 나아가 수군수군하며 남들에게 전하기도 합니다. 온유한 마음이 되려면 이런 소인배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어떤 영혼이든지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결되어 마음에 악이 없는 것이 온유함의 기본 조건이 됩니다. 그 이유는 마음에 악이 없어야만 상대를 오직 선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상대를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마음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고 사랑이 적은 만큼 상대를 판단과 정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악을 악으로 갚고자 합니다.
  
   2. 그 누구보다도 온유하신 하나님의 마음
  
   그 누구보다 온유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십니까? 예레미야 29:11에 보면"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죄악 가운데 거한다 할지라도 어찌하든 생명과 평안, 소망을 주려 하는 사랑의 마음이십니다.
   또한 시편 103:8-14을 보면"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11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4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사랑하시되 우리가 흙으로 지어진 육을 입고 있음을 이해하시고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 인생들도 마음의 악을 모두 벗고 성결되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대로 닮게 되므로 이런 아버지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상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고 어찌하든 선과 사랑으로 이해하고 상대에게 맞춰주려 합니다. 그러면 악으로 나오는 사람이라도 솜과 같은 따스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됨으로 차디찬 마음이라도 녹아지지요.
  
   많은 영혼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머리라면 더더구나 성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의와 틀과 같은 악의 모양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므로 영혼들의 상황을 정확히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선한 목자이신 주님과 같이 영혼들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수가 없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므로 자신이 보기에 선한 길로 영혼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성결되어 마음에 악이 없어야 성령의 주관을 정확히 받을 수 있고 영혼들의 상황을 백퍼센트 정확히 분별하여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온유한 마음을 이루는 데 있어 반드시 마음의 악을 벗고 성결 되어야 하는 이유는 마음에 악이 없을 때라야 아버지 하나님께서'참으로 온유하다'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유함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3. 마음에 악이 없는 모세의 온유함
  
    민수기 12:2에 보면"그들이(곧 아론과 미리암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과 누이인 미리암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것을 비방하였는데 모세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며 모세를 비방하는 것을 합당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을까요? 8절에 보면"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하시며 오히려 아론과 미리암에게 진노하심으로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발하였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의 대언자로 세우신 인물이었고 미리암도 선지자로 일컬음을 받았기에 자신이 옳다 하는 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성결되지 않으므로 마음에 악이 있으니 자신의 의가 발동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판단하는 큰 죄를 범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모세가 잘못한 것으로 보였다 해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세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한 일에 대해 아론과 미리암이 임의로 정죄하고 비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민수기 12:3에"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말씀한 대로 모세는 당시 온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또한 온 집에 충성됨으로 여호와의 형상을 보며 대면하여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과 신뢰를 받았지요. 모세는 그만큼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자비와 긍휼, 곧 영적인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왜 이처럼 친히 모세를 옹호하셨는지 모세 온유함을 잘 느껴 볼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후로 백성들은 거듭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범죄하였습니다. 조금의 어려움을 만나기만 해도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했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고통 속에 부르짖던 자신들을 건져 주었는데도,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자"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러다가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홍해가 갈라져서 자신들은 건너편까지 무사히 건너고 추격해오던 애굽의 군대는 홍해에 수몰되는 것을 본 후에야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지요.
   그러나 이런 감사도 잠시 잠깐일 뿐 먹을 양식이 없다 하여, 마실 물이 없다 해서, 번번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심지어는 모세를 돌로 치려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크고 놀라운 이적과 기사들을 보여주어도 이처럼 걸핏하면 그 마음이 변개하여 모세를 대적해 오는 백성들이었지만 백성들에 대한 모세의 마음은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지요. 매 번 자비와 긍휼로 이들을 용납하며 어찌하든 모든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인도해 나갔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더디 내려오자, 모세가 없는 사이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백성들을 멸하겠다 말씀하시자 모세는 출애굽기 32:32에"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하고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올립니다. 주의 기록하신 책이란 바로 구원받은 자녀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름을 지워달라는 것은 곧 이 백성의 죄를 사하지 않으시면 대신 지옥에라도 가겠다는 고백입니다. 모세는 이처럼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서라도 백성들을 구원하기 원하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 곧 이스라엘 자손이었지만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자라났기 때문에 육적으로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왕자라는 고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식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등 육적을 조건을 볼 때 부족함 없이 살았지요. 따라서 그만큼 자존심, 자기 의 등'자기'가 살아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런 자기 의 가운데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쳐죽였는데, 이 일로 인해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고 양을 치는 목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세가 애굽의 왕자가 아닌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겸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지도자로서'애굽의 왕자'모세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겸비한'목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만큼 모세는 마음에 자기라는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해도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었습니다.
   이러한 겸비한 마음이었기에 장정만도 6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연단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낮출수록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게 와 닿으므로 아버지 하나님을 점점 닮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겸비하느냐에 따라 온유함이 승한 정도도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론이나 미리암처럼'나는 이 정도 마음을 진리로 일구었다'하거나'이만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이 되었다'하고 안주하는 모습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모세와 같이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버림으로 온전히 성결되어,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유함을 이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영적인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처럼 악은 모양도 버림으로 성결되어야 할 뿐 아니라 덕을 갖추어야 한다 했습니다. 사람이 좋은 옷을 단정하게 잘 갖춰 입을수록 다른 모습이 되듯이 이 덕을 얼마나 갖춰나가느냐에 따라 온유함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 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시간에 이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주의 종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이런 모세 선지자의 마음을 충분히 느껴볼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대신 지옥에 가더라도 어찌하든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영혼들을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오직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 나갔을 때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으로, 억지로가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들을 위해 생명이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매 순간 순간 저 자신보다는 영혼들을 위해 살아온 결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많은 분들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귀한 영혼들로 나오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악은 모양도 없고 선과 사랑이 가득하여 모든 영혼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장차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거하는 참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장(10)
 
이재록 목사 | 2007-09-23 | 고전 13:4 
 
오늘 이 시간에는 외면의 덕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으셔서 온유와 덕을 두루 갖춘, 사랑스런 하나님의 자녀들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37:11에"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말씀하신 대로 장차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옷을 잘 갖춰 입지 않으면 아무래도 격이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옷이 그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처럼 덕은 내면의 온유함이 겉으로 드러나게 하고 그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비유를 들어,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의 도움으로 번식하는 꽃들은 대개가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이는 바로곤충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꽃의 고운 빛깔이 잘 드러나지도 않고 향기도 나지 않는다면, 꽃에 아무리 꿀이 많아도 벌이나 나비 등 곤충들을 불러 모으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악이 없으므로 온유해서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댈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말과 행실에 덕이 없으면 그 온유함이 온전히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화려한 옷을 잘 갖춰 입었다 해도 그 사람의 내면이 훌륭하지 못하면 화려한 외모도 별로 가치가 없는 것과 같지요. 따라서 내면의 온유함과 외면의 덕은 함께 갖출 때 진정 온유하다 할 수 있고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온유함에 덕을 겸비했던 애굽의 총리 요셉
  
   이스라엘 자손으로서 이방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을 치리하였던 요셉은 바로 이런 덕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요셉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했으며 말과 행실에 흠이 없고 위정자로서의 지혜와 위엄도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했을지라도 상대에게는 너그럽고 부드러웠으며, 설령 상대가 자신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요셉은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용서하고 포용해 나갔습니다. 이처럼 덕은 자신이 반듯한 언행을 갖추었다 해도 그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 정죄하지 않는 넓고 큰 마음이지요.
   요셉이 자신을 애굽에 종으로 판 형들이 기근으로 인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그 동안 당한 고난을 생각함으로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 아니라 형들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허물 수 있도록 회개할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또한 요셉을 알아보고 두려워하는 형들에게"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하고 오히려 안심시킵니다(창 45:5). 요셉은 형들을 마음에서 온전히 용서했을 뿐 아니라 형들의 마음을 헤아려 감동적인 말로 위로하는 적극적인 선을 행하였지요. 성결되어 마음에 악이 없으므로 원수라도 용서하는 온유한 마음일 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감동시킬 수 있는 마음 씀씀이와 행함 곧 외면의 덕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했는지 창세기 47:12에 보면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한 대로 요셉은 형들과 그 처자까지도 공궤하고 돌보았지요. 요셉의 덕을 겸비한 온유는 기근에 처한 애굽과 그 지경의 많은 생명을 건져내는 힘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섭리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덕은 마음에 있는 온유함이 외면으로 적극적인 행함으로 나오는 것으로서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2. 덕을 겸비하려면
  
    그렇다면 이 덕을 갖추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악을 벗고 성결되어야 합니다
   내면의 온유함은 마음의 성결을 통해 이뤄집니다. 덕 또한 악을 벗고 성결 될 때라야 갖출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결되지 않았다 해도 잘 훈련된 교양 가운데, 혹은 타고난 마음 그릇이 크므로 덕스런 행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덕은 악이 없고 선한 마음, 진리를 좇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일 때라야 참되다 할 수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덕스런 행함에 대해 자신만의 틀을 만들게 되기도 하며,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덕을 갖추려면 반드시 성결되어야 하는데 성결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어서 진정 덕스런 행함이 무엇인지 각 상황 속에서 주관을 받아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덕이 있는 말과 행실을 온전히 이루려면 단순히 마음의 크고 굵직한 악의 뿌리들을 뽑아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2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말씀했고, 마태복음 5:48에"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내면에 악이 없을 뿐 아니라 말과 행실, 몸가짐 등 외적인 모습도 흠이 없어질 때 많은 사람이 깃들일 수 있는 온유함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미움, 시기, 질투, 교만, 혈기 등 악을 벗어버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불같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주관을 받아, 세세한 몸의 행실들까지도 온전히 벗고 진리의 행실들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몸의 행실이란 무엇입니까? 로마서 8:13에 보면"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몸은 단순히 사람의 신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 혼 육 교육 말씀을 통해 증거한 바 있는데 여기서 몸은 영적인 의미의 몸으로서, 영, 곧 진리가 빠져 나가 버린 상태의 사람의 형체를 뜻하지요. 비진리로 물들어 썩어질 육적인 몸을 말합니다. 그리고 몸의 행실이란 사람이 육으로 변질된 후에 몸 안에 가득 담겨 있는 비진리를 좇아 나오는 행실을 의미하지요.
   평소에 말을 하는 습관을 볼 때도 농담 같은 가벼운 말을 자주하고 상대에게 쉽게 반말을 하는 사람과 늘 말을 주의하고 존대 말로 항상 상대를 높여주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이런 언행은 마음이 성결되어 악이 없을수록 상대를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을 이루는 만큼 나옵니다. 곧 성결되어 악이 없을수록 이런 말과 행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몸의 행실에는 명백한 죄를 범한 것뿐만 아니라 온전하지 않은 행실들도 모두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어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닌데 말투가 딱딱하고 퉁명스런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세상 풍조에 물든 것 같은 옷이나 단정하지 못한 옷, 혹은 때와 장소에 부적절한 차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모와 옷차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거나 육에 있을 때의 옷 입는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똑같이 온유한 사람이라도 이처럼 세세한 분야까지 잘 갖추어진 사람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참 단정하다. 기품이 있다."등등 칭송을 받게 되고 신뢰를 받게 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온전치 못한 분야에 대하여 "저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기질을 타고 났습니다.""자라나면서 그런 행동이 이미 몸에 배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덕을 갖추어 나간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우리 주님의 교양을 이뤄나가는 것이지요. 주님의 교양을 이룬 사람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겠습니까? 말 한 마디를 해도 상대에게 감동이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6:4에"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말씀한 대로 설령 책망을 한다 해도 상대를 낮게 보거나 무시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선한 지혜로 깨우쳐 줍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작은 분야들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기를 원하고 안겨오는 것입니다.
  
   2) 마음 됨됨이를 좋게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덕은 마음이 크고 넓으며 긍휼과 자비가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마음 됨됨이라는 것은 마음 그릇의 크기를 의미합니다. 마음 됨됨이가 좋을수록 그릇의 크기가 큰 것이며, 이 마음 됨됨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것 이상을 해내게 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해야 할 일만을 잘 해내거나 자신이 해야 할 만큼도 못 해내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똑같은'마음 그릇을 가졌다 할지라도 각 상황 속에서 얼마나 마음을 넓혀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마음 됨됨이는 달라지게 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크고 넓게 쓰기 때문에 자신이 당연히 해내야 할 것 그 이상을 해내는 마음 됨됨이입니다.
   빌립보서 2:4에 보면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하신 말씀처럼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일도 돌아봐주고 살펴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 됨됨이는 자신이 모든 상황 속에서 얼마나 마음을 넓혀 쓰는가에 따라 달라지므로 꾸준한 노력을 통해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만 돌아보기에도 급급한 좁은 마음을,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다른 사람들의 일과 형편까지 고려해 주는 넓은 마음으로 바꾸어 나가면 되지요.
   예를 들어 선교회 안에는 많은 기관장님들이 있고 한 지역 안에는 조장님들과 구역장님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기관이나 조, 구역의 일만을 잘 감당해 나갑니다. 물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내 기관이나 조, 내 구역의 일을 잘 살필 뿐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선교회 전체, 지역 전체를 염두에 두고 살펴 나갑니다. 때로는 전체를 위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양보하고 희생하기도 하지요. 기관원들이 마음을 모아 선교회 전체를 섬겼을 때 후에 오히려 더 큰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하는 경우들도 있는 것을 봅니다.
   요셉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기 이전에는 온실의 화초처럼 곱게 자라났기에 집안 전체를 돌아본다거나 형들의 처지나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종으로 팔린 이후 연단을 통해 변화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으로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감옥을 관리하는 사명을 맡았을 때나 철저히 낮아져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마음이 되었지요. 그러면서 조직 전체의 곳곳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살필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잘 아셨기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을 대비하여 이런 기반을 이루게 하셨던 것이지요.
   이처럼 악이 없는 온유한 마음에 이런 마음 됨됨이를 이룬다면 다양한 사람이 속해 있는 큰 조직도 능히 살피고 다스려 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까지도 두루 살피며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 나감으로써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온유한 사람이 될 때 받는 축복
  
   그러면 이처럼 내면의 온유함과 외면의 덕을 겸비하여 온전한 온유함을 이루면 어떤 축복을 받게 될까요? 마태복음 5:5에"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말씀하시고, 시편 37:11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하신 대로 땅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땅을 받게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땅을 얻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땅은 영적인 의미의 땅으로 천국의 처소를 뜻하며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된다는 것은 장차 천국에서 큰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이지요. 이 세상에서도 권세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온유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고 따르게 되지요. 온유한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에게 힘을 주고 은혜를 끼치며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함이 승할수록 더 많은 영혼들이 깃들게 되고 더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온유한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큰 권세를 누리게 되며 그만큼 넓고 큰 땅, 곧 천국의 처소를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큰 부와 명예,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권세가 따르고 많은 사람이 따르기도 하지만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면 대부분 권세도 잃게 되고 따르던 많은 무리가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에게 따르는 권세는 이런 세상의 권세와는 달리 사라지거나 변하는 일이 없지요.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송을 받으며,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토록 아버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으며 무수한 영혼들에게 존경과 칭송을 받게 되고 사모함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20:25-28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큰 사람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지요. 이처럼 하늘나라의 권세는 이 땅과 달리 우리 주님과 같이 내 형제 자매를, 영혼들을 오직 섬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진정 겸손하고 낮아져서 지극히 작은 소자라도 품어주고 섬기는 온유한 마음을 소유하시어 하나님의 참 아들, 딸들로 장차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장(11)
 
이재록 목사 | 2007-11-11 | 고전 13:4 
 
우리 학생들이 공부할 때 보면 시험을 본 후 틀린 문제들만 노트에 따로 모아 다시 정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왜 틀렸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정답과 해설을 잘 익혀두면 다음번에 그 문제를 다시 틀릴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취약한 분야를 단기간 내에 효과적으로 공부하는데 좋지요.
   공부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해 나감에 있어서도 말씀을 듣는 그때 그때 자신을 세세하게 점검해서 말씀에 위배되는 마음과 행실들을 조목조목 발견하여 마음에 새긴다면 마음과 행실들을 집중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장 말씀을 잘 들으시면 이렇게 행해 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장 말씀은 사랑과 반대되는 것들을 몇 가지로 분류하여 조목조목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하신 말씀을 통해 오래참지 못하는 것, 온유하지 못한 것은 사랑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밖에도 투기하는 것, 자랑하는 것, 교만한 것 등도 영적인 사랑과 반대되는 것들임을 알 수가 있지요.따라서 이런 것들에 해당되는 마음과 행실을 세세하게 점검하여 하나하나 집중적으로 버려나간다면 짧은 시간 안에도 능히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1. 투기란 무엇인가?
  
   투기는 시기, 질투보다 더 강한 것으로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하게 발전해서 다른 사람에게 심히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 안에 시기, 질투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거나 사랑을 받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가 미워지며 상대가 가진 것을 빼앗고 싶고 그 행복을 짓밟고 싶어지기도 하며, 또한'저 사람은 저렇게 인정받고 사랑받는데 나는 뭔가?'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낙심하는 것은 상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므로 시기, 질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아(自我)가 살아있기 때문에 남이 더 사랑받으면 낙심이 되는 것이며, 이런 시기, 질투의 마음이 정도가 더 심해져서 악한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이처럼 투기하는 사람의 결말은 어떠할까요? 성경은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시기나 질투는 마음 안에 일어나는 감정이므로 육신의 일에 해당하지만, 투기는 눈에 보이도록 현저하게 드러나는 죄, 곧 육체의 일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9-21에"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말씀한 대로입니다.
  
   2. 투기의 여러 유형들
  
   1) 이성간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투기
   즉 이성에게 더 사랑받으려고 투기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투기하였습니다. 레아는 야곱의 뜻과 상관없이 외삼촌 라반으로 인해 맞아들인 아내였고, 레아의 동생 라헬은 야곱이 연애하여 무려 14년이나 외삼촌에게 봉사하고 얻은 아내였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언니 레아보다 야곱의 사랑을 더 받았지만 레아가 네 아들을 낳는 동안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30:1에"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합니다. 마음의 시기 질투라는 악을 입으로 쏟아냄으로 남편 야곱의 마음까지 괴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레아의 마음도 힘들고 괴롭게 하였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자신들의 몸종을 야곱에게 첩으로 주면서까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다툽니다. 이 둘은 자매입니다. 만약 이 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사랑이 있었다면 상대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더 받는 것을 기뻐했겠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왕의 부인들이 서로 더 왕의 사랑을 받으려고 투기하는 것도 이런 애정과 관련된 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상대가 나보다 더 나음으로 인해 투기하는 경우
   상대가 부유하거나 지식이 많고 능력 면에서 앞서는 등 나보다 더 나음으로 사랑과 인정을 받아 나갈 때 상대를 투기하게 되며, 이 외에도 어떤 사람은 남이 나보다 외모가 더 출중하면 투기하기도 합니다. 사람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부러움을 살 만한 분야가 다를 수 있지요.
   이처럼 상대가 나보다 나음으로 인해 투기하는 모습은 가정, 일터, 학교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앞서 나가고 더 잘되는 상대가 있으면 미워하고 나아가 상대를 훼방하며, 내가 더 잘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회사에서 먼저 승진을 하기 위해 경쟁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 알리기도 하고 누명을 씌워 상사의 눈 밖에 나게 하기도 합니다. 또한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를 따돌리며 훼방하는 일들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가정에서는 자신이 다른 형제들보다 부모님의 인정과 사랑을 더 받기 위해, 또는 더 많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서로 다투며 부모님 앞에서 서로를 헐뜯기도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라도 언니나 형보다, 또는 동생보다 더 사랑받기 위해 시기 질투하기도 하지요.
   첫사람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이런 투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 모두 제사를 드렸지만 아벨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습니다. 결국 시기 질투를 이기지 못해 아벨을 쳐 죽이고 맙니다.
  
   3) 신앙 안에서 믿음의 형제들 간의 투기
   이러한 투기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질서나 직분, 또는 영적인 분야에서 더 앞서있거나 더 열심히 충성하는 형제, 자매를 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잘못을 하거나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 사람만 보면 괜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는 보통 자신과 나이나 직분, 연배 등이 비슷한 상대, 자신이 잘 아는 사람에 대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에 대해 잘 알다보니 나보다 별로 나은 것도 없는 것 같고 이런 저런 부족함도 많은데 자신보다 앞선 것이 불만스럽고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만약 그 상대가 자신이 섬겨야 하는 머리인 경우 순종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허물을 전하기도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19:30에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나보다 나이나 연륜이나 직분 등이 낮은 사람이 더 잘되고 앞서나가는 것을 보게 되면 이런 시기 질투를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투기하였던 것이 바로 이런 예에 해당됩니다. 다윗이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물리친 후 사울은 다윗이 맡기는 일마다 지혜롭게 해결하므로 다윗을 군대장관으로 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엘상 18:7에"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자 이어지는 8-9절에"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했습니다. 양을 치던 소년으로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모든 것을 볼 때 나중 된 다윗이 이제 백성들에게 자신보다 더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자 다윗을 심히 투기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었기에 추호도 해할 마음이 없었고 사울도 그런 다윗의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의 투기를 억제하지 못하므로 끝까지 다윗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이처럼 다윗을 투기하여 다윗을 해하려했지만 결국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이 사랑을 받으면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윗을 자신의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사울의 마음과 참으로 대조적인 마음입니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볼 때 그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만큼 시기, 질투가 없고 사랑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의 투기는 교회의 성도와 성도들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주의 종과 성도 사이에, 혹은 교회들 사이에, 교단 사이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무리를 짓거나 당을 지어 교회의 목자를 대적하는 일도 있으며, 어떤 교회들은 이웃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크게 이루어가면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 아니라 헐뜯고 비방하며 이단이라 정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나갈 때 머리로서 투기의 대상이 되었던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모세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을 시기, 질투합니다. 민수기 16:3에"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하지요.
   모세는 이들을 깨우쳐주고 하나님께서 판단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결국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모든 물건과 함께 산 채로 음부에 빠지고 말았고 그 당에 속했던 250인은 여호와께로서 나온 불에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민수기 16:15 후반절에 모세가"나는 그들의 한 나귀도 취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한 대로 모세는 백성들을 해롭게 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만큼 머리로서 한 영혼도 실족하지 않도록 진액을 다해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모세가 스스로를 높인다'비방하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종을 대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를 투기한 이들을 무섭게 응징하심으로 이런 죄가 얼마나 중한가를 모든 백성들에게도 깨우쳐 주셨습니다. 육의 부모들도 한 배를 타고 난 자녀들끼리 다투고 미워하면 심히 애통해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대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형제, 자매들끼리 싸우고 다툰다면, 혹은 주님의 몸된 교회들끼리 투기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탄식하시겠습니까?
   이처럼 우리 모두는 아버지 하나님 안에 한 형제요 한 자매이기 때문에 투기는 그만큼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투기든지 모양도 없이 벗어버리시되 특히 신앙 안에서 믿음의 형제나 주의 종, 교회를 투기하는 일이 결코 없으시기 바랍니다.
  
   3. 투기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투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은 믿음이 적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주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된 이웃들이 이 세상의 육의 형제, 자매 이상의 존재가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두었고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갈 형제요, 자매임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확고한 믿음 위에 참 사랑이 임한 만큼 형제, 자매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므로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내가 잘 된 것처럼 기뻐하고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믿음이 적고 사랑이 적으면 세상 부와 명예, 권세 등 어찌하든 이 세상의 것들을 더 취하기 위해 상대를 투기합니다. 진정 믿음이 있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취하려고 투기하지 않으며, 어찌하든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고 주의 일에 열심을 냅니다.
   이런 영적인 욕심과 시기는 분명히 다릅니다. 주 안에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영으로 변화되며 뜨겁게 충성해 나가려고 욕심내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욕심이 과하므로 진리를 벗어나 영혼을 실족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됨을 명심해야 하며, 열심을 내더라도 항상 주변을 살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화평을 좇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4:30에 보면"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말씀하신 대로 투기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백해무익할 뿐입니다. 따라서 남보다 앞서 나가고자 한다면 상대를 투기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구할 때라야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시기 질투가 있으면 마음이 힘들고 괴롭지만 사랑을 하면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느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사랑을 택하셔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랑을 온전히 이루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 사랑을 이루게 되면 모든 것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소유하게 됩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함으로 부와 명예와 권세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함께 받아 누렸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이 사랑을 소유하심으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영육간에 부유하고 지혜롭고 뛰어난 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장(12)
 
이재록 목사 | 2007-12-02 | 고전 13:4 
 
오늘은 사랑의 속성 중"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하신 말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보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며 행복해 하듯이, 갓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면'내가 죄인이었구나''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구나'하고 깨달으면서 마음이 겸손해지며 범사에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고 늘 겸손하지요.
   반면에 자신을 자랑하려 하거나 교만한 사람이 있다면 이는 그만큼 영적인 사랑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처럼 한결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셔서 시편 44:8 전반절에"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한 고백처럼 겸손히 하나님만을 자랑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전을 찾아보면 자랑이란,'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 일 따위가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자랑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자기를 드러내는 것,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남보다 더 나은 분야가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드러나 인정받으며 칭찬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집, 좋은 차 등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학벌이나 지위, 외모 등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랑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잘한 것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데에는 몹시 인색한 것을 봅니다. 남이 드러나는 만큼 자신이 가려지기 때문에 어찌하든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하지요.
   그러다 보면 자랑이 다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랑하는 마음은 진정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이렇게 자랑하면 높아지고 인정받을 것 같지만 진심어린 존경이나 사랑을 받기는 어렵우며, '저 사람은 저렇게 자기 자랑만 한다'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얕보며 시기 질투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의 자랑은 해도 마땅한 자랑입니다. 고린도후서 10:17에"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하신 대로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얼마든지 해도 좋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랑입니다.
   '간증'은 대표적인 주 안에서의 자랑입니다. 갈라디아서 6:14 전반절에 사도 바울이"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고백한 것처럼 구원해 주시고 천국을 주신 주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러 주신 주님으로 인해 영생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또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일을 간증합니다. 잠언 8:17에 하나님께서는"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말씀하십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함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행함을 보였을 때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물질의 축복을 주시며 화평한 가정을 이뤄주신 하나님을 간증하십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자랑을 하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게 되고, 형제 자매들에게는 은혜를 끼쳐서 믿음과 생명을 심어 주게 될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 상급이 쌓이게 되고 마음의 소원도 더 신속히 응답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 안에서의 자랑도 잘 분별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같은데 사실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어떤 큰 축복이나 응답을 받았다며 겉으로는"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고 말하지만 은연중에'내가 선하고 똑똑해서 이렇게 행했기 때문에 응답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다'고 으쓱해합니다. 어떤 일꾼들은 하나님의 일을 이룬 후에 말로는"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룬 일입니다."하고 고백하지만 은근히'나는 이처럼 성령의 음성, 주관을 밝히 듣는다.'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겉으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듯 보여도 성령의 역사는 속일 수가 없기 때문에 때가 되면 그 열매가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사단이 송사하기 때문에 자신을 자랑한 결과가 열매로 드러납니다. 충성되고 성령의 음성을 잘 듣는다고 하던 일꾼이 이런 저런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으면 주님을 떠나기도 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면 결국 부끄러움만 남는다고 해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이생의 자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이생의 자랑'이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는 속성입니다. 요한일서 2:15-16에"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말씀하십니다. 곧 이생의 자랑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자랑하는 마음에는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참 사랑을 이루려면 마음에서 이생의 자랑을 뽑아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길어야 몇 십 년인 삶이 다 지난 후에는 천국 또는 지옥에 가게 되지요. 예를 들어 아무리 이 땅에서 많은 재물을 가졌다 해도 천국에 가면 발로 밟고 다니는 길조차 금이니 천국에서 누릴 풍요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천국에 못 가고 지옥에 간다면 이 땅에서 아무리 큰 부와 지식과 명예와 권세를 누렸다 한들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는지요?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6:26에"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말씀하십니다.이처럼 세상의 자랑거리는 결코 영원한 생명도 영원한 만족도 줄 수 없고, 오히려 헛된 욕심을 불러일으킴으로 멸망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절절히 깨닫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마음 가득히 채워나가면 이생의 자랑을 뽑아버릴 수 있는 힘이 옵니다. 이는 바로 이생의 자랑을 다 벗어버리면 오직 우리 주님만을 자랑하게 되며, 이 세상의 것들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이 더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천국을 주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면서 날마다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전에는 몰랐던 기쁨이 날마다 흘러넘치지요.
  
   2.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교만이란'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남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위에는 사람을 두지 않습니다. 곧 자기 자신을 제일로 여기므로 매사에 상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며 가르치려 합니다. 보통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상대에게 이렇게 교만한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요. 그런데 교만이 심한 경우에는 자신을 가르쳐주고 이끌어 준 사람이나 질서상 자신보다 높은 사람까지 무시합니다. 윗사람이 어떤 권면이나 지적을 해주어도 잘 들으려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권면하는 상대를 가르치려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대와 대화를 하게 되면 곧잘 변론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변론에 대해 디모데후서 2:23에는"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말씀합니다. 이처럼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고 선하지 않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양심이 다르고 지식도 다릅니다. 각자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가르침 받은 것이 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입력되는 지식들 중에는 잘못된 것도 많고 스스로가 엉뚱하게 입력해버린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단단하게 굳어지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자신만의'의'와'틀'이 만들어집니다.
   사람의 생각은 대개 이'의'와'틀'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각 사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 중에는 옳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도 마음이 교만하면 자신이 틀려도 그것을 선뜻 인정하지 못하고 변론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맞고 상대가 틀리다 해도 변론하지 않으며 굳이 상대를 누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마음에는 그만큼 상대를 높이기 원하는 영적인 사랑이 임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진정 사랑하면 어찌하든 상대를 높이려하고 아껴 주려고 하지 결코 남을 무시하거나 이기려들지 않습니다. 가난하든 배움이 적든, 자신 보다 힘이 약하든 진심으로 상대를 자신 보다 낫게 여기며, 상대가 어린 아이라 해도 그 마음을 배려해 줍니다. 모든 영혼은 주님이 피값으로 사신 존귀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마음 중심으로 깨달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만큼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그대로 닮게 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낮아짐과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주님의 모습을 마음 깊이 새기셔서 빌립보서 2:3에"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하신 말씀대로 모든 일에 누구를 대하든지 겸손히 행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눈에 띄게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고, 남을 무시하는 등 비진리의 행함들이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교만은 쉽게 발견됩니다. 이런 교만을 육적인 교만이라고 하는데, 이 육적인 교만은 주님을 영접하고 진리를 알게 되면 대부분 빨리 벗어버립니다. 그러나 교만이라는 죄성을 마음에서 온전히 뽑아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다시 교만이 틈타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많은 말씀을 들어 압니다. 직분이나 사명을 받기도 하고 머리가 되다 보면 말씀을 많이 들어서 아는 것을 마치 말씀을 마음에 다 이룬 것처럼 착각함으로'나는 이만큼 이루었다. 나는 옳다'생각합니다. 그래서 들어 아는 말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판단, 정죄하면서도 자신은 진리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일꾼들은 마음이 높아져서 자신의 유익을 좇아, 꼭 지켜야 할 교회 규범이나 반드시 밟아야 하는 절차 등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이는 명백히 교회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인데도'나는 이만한 위치에 있으니 괜찮다. 나는 예외다'생각하지요. 이처럼 높아진 마음을 영적인 교만이라 합니다. 이런 교만은 비교적 발견하기가 쉽지 않지요. 이처럼 높아져서 하나님의 법과 질서들을 무시하면서'하나님을 사랑한다'하면 이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마음 또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라 할 수 없으며, 진리는 상대에 대해 오직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4:11에"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하고 상대를 비방하지 말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상대의 부족한 모습을 보았을 때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앞서는지 아니면 상대가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는지 점검해 보면 얼마나 겸손과 사랑을 이루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만큼 이루었다 안주하지 말고 항상 어린아이처럼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시며, 모든 영혼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고, 생명 다해 섬기는 최고의 사랑을 이루기까지 변함없이 달려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중에는"나 자신을 믿고 삽니다."말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태풍이나 지진 등 큰 자연 재해나 갑작스런 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으며 또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으로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 자신의 생각, 경험, 지식 등 세상 방법을 의지하다 일이 불통하고 갖가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던 사람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교만함 때문인데 이로 인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오해하기도 하며,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자신과 세상을 더 의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자녀들이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 편에서 교만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려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억지로 그 사람에게 간섭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로부터 지킴 받을 수가 없고 형통함을 입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잠언 18:12에"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말씀한 대로 실패나 멸망을 자초하는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사람의 교만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잠언 22:4에"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말씀하셨으니 늘 겸손히 사랑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차라리 '어리석은 자'라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보좌삼고 땅을 발등상으로 두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에서 인생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ㅇ르 다라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높고 낮음이 없는 동등한 존재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다 해도 이 땅의 삶은 잠시잠깐일 뿐입니다. 이 짧은 삶이 다 지난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결국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한 만큼 천국에서 높은 사람이 됩니다. 야고보서 4:10에 보면"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하신 대로 주님께서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도 날이 갈수록 더 낮아짐으로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고 모두를 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 아버지 보좌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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