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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영·혼·육(1) 성공적인 신앙생활에 중요하고도 필요한 「영·혼·육」 말씀

2009.06.24 14:15 | 영혼육 |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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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영·혼·육(1) 성공적인 신앙생활에 중요하고도 필요한 「영·혼·육」 말씀
 
이재록 목사 | 2003-09-14 | 살전 5:23 
 
오늘은 1차 영혼육 첫 번째 시간으로 영혼육 말씀의 중요성과 육의 분야 중 창조와 생명의 씨에 관하여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성공적인 신앙생활에 중요하고도 필요한 「영·혼·육」 말씀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는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필요한 프로그램만 익혀서 사용할 뿐 컴퓨터의 구조나 기능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반면에, 컴퓨터를 만든 사람은 그 구조나 원리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뿐 아니라 이상이 생겼을 때도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부터 말씀드릴 영혼육의 말씀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낱낱이 알려 주시는 영의 지식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사람의 지혜와 능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인간의 본질을 꿰뚫으시며 그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영혼육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점이 유익할까요? 첫째는 우리 자신을 낱낱이 분해하고 발견케 하므로 성결을 더욱 신속히 이룰 수 있게 합니다.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자신을 철저히 부인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며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둘째로, 자기 자신을 바로 알게 됨으로 원수 마귀의 궤계에 빠지지 않고 더 나아가 어둠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능력까지도 갖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자기를 발견케 하는 영혼육의 말씀은 여러분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참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말씀입니다. 더구나 영의 급속한 흐름을 타고 가는 이때에 영혼육 말씀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은 2004년이 오기 전에 아직 벗어 버리지 못한 육이 있다면 발견하여 신속히 버림으로 모두가 쓰임받을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철저히 부인해 나가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의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지만 진리를 영적으로 깨우치지 못하니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해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는 '죄인 중에 괴수요,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라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런 자기 발견이 있었기에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죽어짐으로 결국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받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2. 우리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세 가지 요소인 '영과 혼과 육'
  
   영혼육의 말씀은 크게 육에 속한 영혼육, 혼에 속한 영혼육, 그리고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나눠집니다.
   오늘부터 몇 시간에 걸쳐 증거해 드릴 말씀은 1차 영혼육으로, 육에 속한 영혼육에 관한 내용이지요. 여기에서는 영혼육의 간단한 소개와 우리 눈에 보이는 살 즉 육이 어떻게 잉태되며, 어떻게 태어나 성장하게 되는가에 대하여 배우게 될 것입니다. 2차 영혼육은 혼에 속한 영혼육으로 혼의 작용을 비롯하여 우리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가에 대해, 그리고 3차 영혼육은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영적인 의미에서의 육과 영, 영의 지식 등에 관해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영과 혼과 육이라는 것은 우리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세 가지 요소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워 주셨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과 짐승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지요. 바로 사람에게만 영이 있고 짐승은 오직 육과 혼으로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영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오랜 시간 생물체가 진화하여 생긴 결과로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26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했습니다. 또 창세기 2:7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했지요. 바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살아 있는 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사람과 짐승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육의 생명이 끊어진 후에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맞게 됩니다. 짐승의 혼은 죽은 후에 소멸되지만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죽은 후 그 영혼이 천국과 지옥 중 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전 3:21). 사람으로서 마땅한 본분을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지요.
  
   3. 육의 정의
  
   이제부터 1차 영혼육 말씀 중, 먼저 육에 관해 살펴볼텐데 과연 육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전에는 "짐승의 고기 또는 몸"이라 정의하고 있지만 성경상에 언급된 육은 썩어지고 없어지는 모든 것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본래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생령으로 지음받았으나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영이 죽고 육의 사람으로 타락하게 되지요. 즉, 산 영이 죽은 영이 됨으로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썩어질 육체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이 세상 만물들도 함께 저주를 받고 같이 썩어질 것으로 되었는데 이처럼 썩어지고 없어지는 모든 것을 총칭하여 바로 '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 육의 분야 중 '창조와 생명의 씨'에 관하여
  
   이제 '육'의 분야에 대해서 몇 가지로 나눠 증거해 드릴 텐데 첫째는 "창조와 생명의 씨"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간혹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중에도 '흙으로 사람을 빚어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어떻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는데 우리 사람은 재료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 내는 유에서 유의 창조만을 배웠기에 믿음이 생기지를 않는 것입니다.
   요즘은 생명 과학이 발달하여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인공 장기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복제양 "돌리"와 같은 생명체를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이러할진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생기를 불어넣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못할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창조를 비롯하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으려면 가장 먼저 제한적인 자기 생각의 한계를 깨뜨려 버리고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1:28을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시며 축복해 주신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만이 아니라 무수한 자녀를 얻기 원하셨으므로 남자와 여자에게 생명의 씨인 정자와 난자를 주셔서 번성하도록 섭리하신 것이지요. 마치 밭에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고 또 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의 씨를 주심으로 계속해서 인간 경작이 가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씨 자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아버지도 되시지만 육의 아버지도 되십니다. 부모님의 생명의 씨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잉태되는 분야에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혹 보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다고 하니까 자녀의 성별이나 체질, 지능과 같은 선천적인 요소까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의 씨를 주시기는 했지만 어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결합하느냐까지 일일이 관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께서 잉태될 때마다 간섭하셔서 누구는 남자로, 누구는 여자로, 또 누구는 강한 체질로, 누구는 약한 체질로 태어나도록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또 지능의 높고 낮음이나 성격이 온순하거나 혈기가 많다거나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어 추수할 때도 한 밭에서 알곡도 나오고 쭉정이도 나오는 것처럼, 생명이 잉태될 때도 결합된 정자와 난자에 따라 자녀의 성별, 체질, 성격, 지능 등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기형아로 태어나는 경우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태어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실수나 유전적인 결함으로 생겨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잉태를 간섭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는 경우입니다. 본교회에는 특히 이런 일들이 많지요. 어떤 분은 습관성 유산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본교회에 와서 기도를 받고 열심히 충성했더니, 결국 건강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간 잉태하지 못하던 분들이 아이를 갖게 되는가 하면, 다운 증후군처럼 유전자 이상의 기형아도 기도받고 정상아로 태어나며, 부모의 신체구조상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믿음으로 응답받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아들을 갖기를 원하여 딸이라는 진단을 받고 제게 와서 기도받은 후 아들을 낳은 간증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딸 중 어느 쪽을 더 사랑하실까요? 우리 하나님은 남녀를 차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크게 쓰임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창세기 2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가 이미 복중에 있을 때에 야곱을 사랑하시고 택하십니다. 이것은 누구를 차별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예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에서보다 야곱의 중심을 더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남자를 더 기뻐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남자와 같이 곧고 변개함 없는 중심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자라 해도 구약의 드보라나 에스더와 같은 인물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곧은 중심과 남자에 못지않은 담대함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말씀한 대로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마음과 중심을 이뤘느냐,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육 말씀을 통해 우리의 근본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깨달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경외하며 정녕히 기쁨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혼육 http://www.manmintv.org/KO/Preach/Sermon/search.asp?CodeNum=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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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고 헛되니 회춘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 시공을 초월

하여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 
    [만민중앙소식 ]
2003년 11월 20일 목요일
"시력 1급 장애인인 제가 사물을 보게 되었어요"
● 아바리아미 리카띠리나(70세)

저는 1942년부터 시력을 상실하게 된데다가 최근에는 중풍으로 인해 다리까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그러던 중 금번 「러시아 연합대성회」 소식을 듣고 성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성회 둘째 날인 11월 13일,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을 때 강한 불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왼쪽 다리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시력이 회복된 해뵈나(12세)
② 백내장을 치료받은 로자 벨리치꼬(66세)
③ 시력이 회복된 니키포로바 율라(18세)



④ 시력이 회복된 막시모바 비에라 비또르브나(66세)
⑤ 시력이 회복된 옐례나 안드례쁘나(79세)
⑥ 시력이 회복된 빅토리아

"태어나면서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게 되었어요"
● 블라디미르 블라디미토비취(77세)

저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잘 듣지 못한 채 77년 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성회 둘째 날인 11월 13일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다음날인 14일에는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은 후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전혀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게 된 빠꼬따에브 막스(20세)
② 청각장애를 치료받고 듣게 된 블라드 미로브나 이리나(18세)
③ 6년 만에 듣게 되었어요
④ 난청을 치료받았어요

"중증 장애인인 제가 휠체어에서 일어나걷게 되었습니다"
● 알렉 산드르(44세)

저는 어릴 때부터 원인 모를 질병으로 다리가 심하게 꼬여 지난 5년 간 지팡이와 의자에 지탱하여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금번 성회에 참석하여 성회 첫날인 11월 12일,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을 때 누군가 저를 붙들고 있는 느낌이 들더니 혼자서도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2급 지체장애를 치료받은 알 갈비에르 갈리옐리 할랴도비취(22세)
② 선천성 뇌성마비를 치료받고 휠체어에서 일어나게 된 추리노바 나따리야(32세)
③ 10년 된 다발성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받고 목발을 버린 세르게이(48세)
④ 불완전 하지 마비를 치료받은 안또니나 바실례브나(45세)



⑤ 뇌성마비를 치료받고 걷게 된 까팔(21세)
⑥ 중풍을 치료받은 츄드죠프 스끼야(52세)
⑦ 쇄골 골절을 치료받은 갈리나 니꼴라예브나 라고바(68세)
⑧ 25년 전 다친 추간판 탈출증을 치료받은 쥐치꼬보

"13년 된 유방암을 치료받았어요"
● 레쉐니꼬비 바레리 (51세)

저는 유방암으로 13년 동안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치료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1월 13일 금번 성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받은 후 차츰 고통이 사라지면서 행복과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지금은 몸이 좋아진 것을 느낄 뿐 아니라 몸무게가 늘고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① 부인병을 치료받은 제로봐 파아나(35세)
② 협심증을 치료받은 마리야 스피라나(65세)
③ AIDS, 간염을 치료받은 뻬르짜르뷔브뾰뜨르 (18세)
④ B형 간염을 치료받은 체네무쉬에레나 (33세)

"12년 간 고통 받던 정신질환을 치료받았어요"
● 막심 겐나지예비치(42세)

저는 12년 전부터 정신이 혼미하고 모든 곳에서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회 첫날인 11월 12일,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힘이 생기고 심리적으로 정상이 된 느낌이 들었으며, 사람들과의 교제가 자유로워지고 어디를 가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① 악귀로부터 해방된 성도
② 정신 질환을 치료받은 세로쉬딴 류드미라(48세)
③ 알콜중독을 치료받은 이바노프 알렉산드르 니콜라이 예비치(55세)
④ 마약중독 후유증을 치료받은 비딸리 쌀라비욥(33세)

"스크린 성회 시 기도받고 목발을 버리게 되었어요"
● 나자(17세, 뚤라 시 스크린 성회 참석자

저는 1년 반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목발 없이는 걸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권유로 스크린 성회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강사 이재록 목사님께서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 그 기도 내용을 저도 반복하여 따라했습니다. 그 순간 다리 자세가 바르게 되었으며 어긋나 있던 뼈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이제는 목발 없이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1. "TV를 통해 러시아 성회를 시청하던 중 수많은 성도들이 치료받았습니다"
필리핀 그렉 두란떼 총회장
2. "위성을 통한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수많은 성도들이 치료받았습니다"
인도 오웬 로버츠 목사
3. "TV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목도했습니다"
이고르 니키틴 목사 (러시아 성회 준비 위원장)

 

1차 영·혼·육(2) 성경에 나타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

2009.06.24 14:13 | 영혼육 | 닛시

http://kr.blog.yahoo.com/mpooo.7000/277 주소복사

1차 영·혼·육(2) 성경에 나타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이재록 목사 | 2003-09-21 | 살전 5:23 
 
오늘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결혼관과 생명체가 모체에서 잉태되어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서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성경에 나타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
  
   어떤 분들은 결혼하면서 "저희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만나 결혼합니다." 말하는데 과연 모든 결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뤄지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신들이 좋아서 만나고 배우자로 택하는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 임의로 정해 주시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믿음으로 배우자를 구하고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믿음대로 합당한 상대를 예비하여 주시고 두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여 인도해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좋아서 만나고 싫으면 헤어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말씀하셨으니 남녀가 결혼해서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지음받을 당시는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달라서 이 땅에 자손을 많이 퍼뜨려야 하는 때였습니다.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만 해도 성경에는 무엇이라 기록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7:7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곧 자신과 같이 독신으로 지내기를 원한다 했고, 26절에는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한 것입니다.
   물론 지금 이 말씀이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7:38을 보면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했지요. 곧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이 아니지만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말입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7:34에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한 사람보다 주님을 위해 더욱 마음을 다하여 충성할 수 있으므로 영적으로 큰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들만 떠올려 보아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결혼을 주관하셔서 각 사람의 배우자를 정해 놓으셨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는 여러분 중에 결혼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결혼해서 함께 하나님 앞에 더 충성할 수 있고 서로간에 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배필을 만나도록 믿음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2. 생명체가 모체에서 잉태되어 성장하는 과정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사랑을 하게 되면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이 잉태됩니다. 마치 밭에 씨가 떨어져 열매맺는 것처럼, 남자의 생명의 씨가 여자의 밭에 떨어져 생명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잉태된 태아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10개월 간 있으면서 성장하게 되는데, 생명이 잉태되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창조의 신비가 얼마나 정교하고 신묘막측한지를 느낄 수 있지요.
   먼저 수정되는 모습을 보면, 수정은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서 결합하는 것으로서 정자는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머리 부분에는 어떤 아이가 잉태될 것인지에 대한 중요 정보인 유전 물질을 담고 있으며 꼬리 부분은 난자와 만나기까지 이동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머리 부분에는 난자를 만났을 때 결합할 수 있도록 난자의 벽을 뚫는 효소도 갖고 있지요.
   수정은 대략 3억 개의 정자가 자궁에 들어와 그 중 한 개의 정자가 난자와 만나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렇게 수정이 되면 난자 벽에서는 고압의 전기가 발산되어 다른 정자들이 쇼크를 받게 됩니다. 먼저 난자에 도착하여 결합한 정자 외에는 다른 정자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다른 정자가 뚫지 못하도록 수정란 벽이 급속히 두꺼워지는 변화가 일어나지요. 이런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진행되도록 하나님께서 너무나 신비롭게 창조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결합된 수정란은 하루 만에 2개로 나누어지고 2일 후에는 8개로 다음에는 16개, 이렇게 분열되어 8일 후 자궁벽에 안착한 수정란은 2주가 지나면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후 3주 후에는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다시 일주일 뒤에는 뇌와 척추, 신경조직이 생기며 수정된 지 12주가 되면 모든 기관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최초 수정에서 두 달간,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는 몸무게가 무려 2백만 배가 증가된다고 합니다. 째깍 하는 순간에, 자기 몸의 크기와 무게가 약 20배씩 성장하는 때도 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의 변화라 할 수 있지요. 초당 몸무게가 20배씩 증가하려면 세포 분열도 그만큼 일어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인 DNA도 그만큼 증가해야 합니다.
   DNA 하나에는 30억 개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는데, DNA를 하나의 집이라고 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유전 정보들을 각각 하나의 벽돌이라고 한다면 DNA를 하나 복제하는 것은 벽돌 30억 개의 집을 한 채씩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벽돌의 배열 순서가 처음의 집과 단 하나라도 틀려서는 안 됩니다. 1초도 안 되어 30억 개의 벽돌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결되고 각각 모양대로 제 위치에 들어가 완전히 똑같은 집이 지어진다면, 이것을 어떻게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여기서 태아의 성장 과정을 좀 더 살펴보면 잉태하여 1개월이 되면 신경관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혈액, 뼈, 근육, 혈관, 내부기관이 형성되기 위한 기초 작업이 이뤄집니다. 2개월이 되면 심장이 펌프운동을 하며 어느 정도 신체의 외양이 갖춰져 육안으로도 머리와 팔다리의 형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지요. 3개월째는 얼굴이 만들어지는 시기이며 머리와 몸, 팔다리를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4개월이 되면 신체와 생명유지에 필요한 기관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5개월부터는 근육을 움직이고 주변 환경을 확인하는 등 더 활동적으로 움직이며 청각 기능이 형성되어 가지요. 그리고 6개월이 되면 소화기관이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이 빨라지고 7개월째에는 머리에 털이 나며 남자아이의 경우 성 호르몬에 의해 정소가 음낭 내로 들어가지요. 여자아이의 경우는 8개월째에 성기가 완성됩니다. 9개월째는 머리털이 선명해지고 전신의 솜털이 퇴화되며 몸의 주름도 없어지고 사지가 포동포동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10개월이 차면 평균 50cm의 신장에 3kg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나게 됩니다.
  
   3. 잉태된 지 6개월이 되면서 태아의 몸에 영혼이 주어져
  
   그러면 이렇게 성장하는 태아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이미 예전 지옥 설교 때 말씀드린 대로 바로 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비록 6개월 이전, 곧 영혼이 주어지기 전이라 해서 사람이 그 생명을 임의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 속한 생명체이며 그 생명에 관한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1-44에 보면 이미 6개월이 지난 태아가 영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반응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6개월 앞서 세례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만났을 때 뱃속의 아이가 태중의 아기 예수님으로 인해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뻐하는 모습이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이미 복중에 있는 태아는 생명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6개월이 지난 아기는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을 수 있는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잉태후 10개월 간은 태아의 인격과 지능, 성품 등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
  
   앞에서 살펴본 대로 태아는 잉태된 후 10개월 간 모체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이 기간은 장차 육의 성장뿐만 아니라 인격과 지능과 성품이 형성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예를 들어, 음식물만 해도 태아는 태내에서 어머니가 섭취하는 것을 그대로 공급받게 되지요. 어머니가 술이나 담배, 약물 등 몸에 해로운 것이나 자극성 있는 것을 받아들이면 이는 곧바로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잉태하고 있는 동안 어머니가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생각을 하는가도 태아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므로 옛날부터 사람들이 태교를 중시했던 것입니다.
   잉태된 기간 동안 부모 특히 어머니의 영향을 받는 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상에서도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잉태케 하신 사무엘은 이미 어릴 때부터 하나님과 교통하였고 장성하여서는 하나님 앞에 큰 선지자가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세례 요한의 경우도 하나님의 역사로 잉태되었기에 태중에서부터 성령의 역사를 받았고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 1:80) 하여 아이 때부터 성령의 주관 가운데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자 준비해 나갔던 것입니다.
  
   5. 뇌세포에 있는 생각하는 기능과 이를 통한 자기 자신의 형성
  
   그러면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인 생각하는 능력은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뇌세포에 어떤 것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는 자료를 담을 수 있는 본체가 있고 이 본체에 자료를 저장했다가 필요시 정보를 찾아내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사람의 뇌에는 다른 동물과 달리 뛰어난 기억 장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뇌는 태아가 모체에 있는 동안 이미 형성은 되지만 아직 보고 듣지 못하므로 지식을 쌓거나 그 지식을 가지고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태어난 후부터 보고 듣고 느끼는 오감을 통해 느낌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뇌 속에 하나하나 입력해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입력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람의 지식과 성품, 성격 등이 만들어지고 각자 나름대로의 가치 기준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 속에서 보고 듣고 입력해 온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의 지식이 되고 생각을 만들어 내는데 사람마다 환경과 교육이 다르고 보고 듣고 입력해 온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다르고 가치 기준이 다 다르지요. 그러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자라온 과정 속에 지식으로, 교양으로 쌓아온 것은 거의 대부분이 진리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지요. 따라서 자신이 옳다고 하는 기준에 맞춰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도 안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오늘 증거된 말씀을 통해 생명의 신비와 탄생의 과정을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행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차 영·혼·육(3) 택함과 택정함

2009.06.24 14:12 | 영혼육 |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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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영·혼·육(3) 택함과 택정함
 
이재록 목사 | 2003-09-28 | 살전 5:23 
 
오늘은 지난 시간에 증거해 드린 생명의 잉태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택함과 택정함이란 각각 무엇인지 살펴보고 다음 주제인 '씨'와 '밭'에 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택함과 택정함
  
   성경에는 택함이나 택정함에 대한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그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특정한 인물을 택정하여" 쓰시는 경우도 있고 "일반적인 기준을 정하여 그 기준 안에 들어온 사람을 택하여" 쓰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택함이란 하나님께서 어떠한 테두리를 만들어 놓으셔서 그 안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나 택함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구원의 문제라면, 구원의 테두리를 만들어 놓으시고 그 안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 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받을 자를 처음부터 이미 택해 놓으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번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비록 말씀대로 살지 못해도 결국은 구원받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테두리를 만들어 놓으셨기에 자유의지 가운데 믿음을 가지고 이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반면 구원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택함받지 못하며, 일단 들어왔다 해도 다시 나가 버리면 이 역시 택함을 받지 못한 것이 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7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했고, 히브리서 6:4-6에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여 주님을 알고 믿었다 해도 다시 구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됨을 말씀하고 있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22:14에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말씀하신 것이며, 택함받았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정함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만세 전부터 모든 것을 예지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어떤 사람을 택하셔서 그 삶을 전폭적으로 주관해 가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의 머리가 되게 하신 야곱, 출애굽을 위해 택하신 모세 등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택정함을 입은 사람들이지요.
   로마서 1:1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말씀하신 대로 사도 바울 역시 신약 시대 복음 전파를 위해 택정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가운데, 어느 시점에 이르면 어떤 중심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태어날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큰 사명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람으로서는 감당 못할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 온 세계에 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며 변치 않을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약 성경 서신서의 대부분을 기록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귀한 사명도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장과 교육, 하나님을 만나는 것까지 다 간섭하셨고 당대 최고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지식을 쌓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 역시 하나님의 택정하심 속에 잉태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어릴 때부터 남다른 삶을 살도록 주관하셨습니다. 광야에 홀로 거하면서 세상과 접하지 않고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맡게 하셨지요.
   모세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역사하셨고 모세가 하수에 던져졌을 때에도 애굽의 공주를 예비해 두심으로 애굽의 왕자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장할 때도 친어머니 밑에서 하나님과 자기 민족에 대해 배우게 하시고 애굽의 학문과 세상 지식들도 배우게 하셨지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40년 연단을 허락하신 후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의 사명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경작하시면서 어느 때, 어떤 중심을 가진 사람이 태어날 것을 아시고 강권적으로 주관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역사해 나가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택정함을 받은 것이지요.
  
   2.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의 씨를 주신 섭리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정자'와 '난자'라는 씨를 주셔서 이를 통해 이 땅에 인간 경작의 역사가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린 후 적당한 수분과 온도, 빛과 산소 등 알맞은 환경을 공급해 주면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듯이 사람의 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체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생명이 잉태되고 잉태된 생명은 모체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일정한 온도와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리고 열심히 경작하는 까닭은 바로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의 씨를 주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 것도 결국 열매를 거두시기 위함입니다. 이 열매란 바로 우리 영혼의 열매로서, 주님을 닮은 아름답고 선한 마음을 이루어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요,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살면서 맺어야 하는 열매인 것이지요.
   이러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영혼은 쭉정이와 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결국은 지옥불에 던져 살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영적인 사랑의 열매, 팔복의 열매 등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어 나가야 합니다.
  
   3. 사람의 마음밭 형성
  
   앞서 식물의 씨앗이 밭에 떨어져 자라는 것처럼 정자와 난자가 결합함으로 새로운 생명체로 자라날 수 있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설명할 "밭"은 그런 육적인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로서 "사람의 마음"을 뜻합니다. 이 부분은 육보다는 사람의 영과 혼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이지요.
   성경에는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신 것이 나오는데 마태복음 13:3-9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옥토, 가시떨기밭, 돌밭, 길가밭으로 나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밭, 즉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기를 받아 성품이 형성되고 이 성품이 사람의 마음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입니다.
   혹자는 '사람은 핏줄을 타고난다'고 하지만 사실은 피가 아닌 기(氣)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요, 이 기가 사람의 성품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기(氣)란 무엇일까요? 사전에는 "활동의 근원이 되는 힘"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기를 "사람의 전신에서 나오는 진액의 결정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정자와 난자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의 씨 안에 총체적으로 담겨 있으므로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기를 이어받아 생김새뿐 아니라 성품이나 성격, 버릇까지도 닮아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다시 말해 사람은 부모의 기를 이어받아 성품을 타고나게 되고 이 성품 가운데 마음을 형성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어떤 아이는 날 때부터 온유하고 인내심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혈기가 많고 조급합니다. 그러면 부모 역시 그러한 경우를 보게 되지요. 그래서 "기"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환경적인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심겨지지 않은 밭과 같아서 입력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는 무의 상태이지요.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보고 듣고 접하는 것들을 통해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것이 마음에 심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좋은 것이 생각 속에 입력되어지면 마음에 좋은 것이, 나쁜 것이 생각 속에 입력되면 마음에 나쁜 것이 심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크게 선천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의 결합으로 형성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즉, 부모의 기를 타고나온 밭 자체에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어떠한 것을 내 생각 속에 입력하고 배우고 어느 것을 담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밭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태어날 때는 좋은 마음 밭을 갖고 태어났다 해도 성장하면서 나쁜 것을 입력시켜 나가면 나쁜 밭으로 바뀌어지며 반대로, 태어날 때는 나쁜 밭이라 할지라도 좋은 것을 계속해서 입력시켜 나가면 결국은 좋은 밭으로 개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거칠고 악하다 해도 원래 온유한 기를 타고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변화되기가 더 쉬운 것을 봅니다. 만약 부모로부터 받은 기 자체가 악하고 거기다 악한 것까지 많이 입력해 놓은 경우는 성결되기 위해 더 많은 기도와 금식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라 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못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주님을 믿기 전에는 시기, 질투, 미움, 혈기 등 악한 마음이 심겨져 있었다 해도 주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좋은 밭으로 얼마든지 개조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돌밭이나 가시떨기밭을 옥토로 만들려면 돌을 주워 내고 가시를 다 뽑아 내면 되듯이 성경에 "버리라, 하지 말라" 하신 것을 버리고 하지 않으면 됩니다. 또 거친 밭에 거름을 주고 흙을 갈아엎어 좋은 밭으로 만들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지키라, 하라" 하신 대로 순종하면 기름진 옥토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진리를 열심히 벗어 버리고 진리인 좋은 것들을 행해 나가면 우리의 마음밭 자체가 개간되어 좋은 밭으로 바꿔지는데 이것이 바로 성결되어지는 지름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안다 하는 지식으로 교만해질 뿐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리를 행하고 악을 버려서 마음을 변화시켜 주님과 같이 100% 진리로만 채워진 옥토의 마음을 이루는 것임을 깨달아 자기를 발견하고 매일 변화시켜 아름다운 알곡으로 영광스러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차 영·혼·육(4) 마음밭에 따라 싹이 나고 열매 맺는 정도가 달라져

2009.06.24 14:11 | 영혼육 |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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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영·혼·육(4) 마음밭에 따라 싹이 나고 열매 맺는 정도가 달라져
 
이재록 목사 | 2003-10-05 | 살전 5:23 
 
오늘은 사람의 마음과 관련하여 네 가지 마음밭의 유형과 좋은 그릇됨됨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마음밭에 따라 싹이 나고 열매 맺는 정도가 달라져
  
   농사를 짓는 농부의 입장에서 흙이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는 똑같은 씨앗을 뿌리고 똑같이 물을 주고 거름을 주었다 해도 흙이 어떠하냐에 따라 거두는 수확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인데, 이것은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우리 마음밭에 떨어질 때 어떤 것은 결실하고 어떤 것은 결실치 못하며, 또 결실하는 정도가 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어떤 마음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밭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부모로부터 타고난 기(氣)와 자라면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입력되는 것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마음에 선악을 쌓아 나가게 되는 것이며 이렇게 마음에 어떤 것이 담겨지면서 사람에게 무엇이 옳다, 그르다 혹은 좋다, 나쁘다 하는 사리분별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무엇을 담아 나갈 때 그 마음밭이 어떠하냐에 따라 싹을 내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을 듣고 행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으니 판단하고 배척해 버리거나 들을 때는 은혜를 받으나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듣는 심정과 마음에 새기는 것과 또한 새긴 말씀을 행해 나가느냐 하는 것은 각 사람의 마음밭에 따라 달라지며,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해 사람의 그릇됨됨이가 결정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2. 마음밭의 유형과 그릇됨됨이
  
   성경에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곧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좋은 밭과 같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 열매 맺는 과정을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알려 주고 있지요.
  
   1) 길가밭과 같은 마음밭이 있습니다.
   길가밭은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밟고 다녀서 단단하게 굳어진 땅으로서 이런 땅은 씨를 뿌린다 해도 씨가 땅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싹이 나지도 않습니다. 곧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이 길바닥같이 굳어져서 강퍅하고 완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자기 생각과 틀을 고집함으로 권능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오늘날도 길가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강퍅하므로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어도 마음 문을 열지 않고 복음을 배척해 버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15에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하여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듣는다 해도 심겨지지 않기 때문에 사단이 와서 그것을 빼앗아 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사단이 그 마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두지 못하도록 빼앗아 간다는 것은 가령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고 부정하며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을 자기 생각 속에서 판단 정죄하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강퍅하고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은 말씀이 떨어져도 결실치 못함으로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니 단단한 마음이 있다면 신속히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2) 돌밭과 같은 마음밭이 있습니다.
   길가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받으려는 마음 자체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지만, 돌밭은 그래도 들으면 깨닫기는 합니다. 그러나 돌밭에 씨를 뿌리면 싹이 나기는 나지만 듬성듬성 나고 싹이 나온다 해도 흙이 얕기 때문에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하므로 금방 말라 버리게 되지요(막 4:5-6).
   그러면 어떤 사람이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졌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만 마음에 믿음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으로 화답하고 꼭 그렇게 해야겠다 결심도 하지만, 어려움이 오면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이지요. 또 은혜를 받을 때는 감격하고 기뻐하지만 고난과 핍박과 환난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낙심하고 금방 돌변해 버립니다. 중심에 믿음의 확신이 없으니 행함이 따르지가 않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17에 보면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이란 성경에 있는“안식일을 지키라, 십일조를 하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서로 섬기라, 낮아지라” 등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말씀들을 듣고 행해 나갈 때, 어떤 어려움이나 핍박이 오면 믿음으로 말씀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만 힘이 빠져 버리고 넘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닌가 돌아보아 혹여 자신의 마음에 돌이 있다면 신속히 버림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 행함이 따르는 참된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3) 가시떨기밭과 같은 마음도 있습니다.
   가시떨기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행해 나가기는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대로 행해 나가지 못하므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마가복음 4:19에는 가시떨기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곧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했습니다. 이런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해 나가는 것 같은데도 시험 환난이 따르고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지금 당장은 말씀대로 사는 것 같아도 어느 때엔가 재리의 유혹이나 시험이 오면 넘어가기가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8에는 이런 사람을 ‘두 마음을 품은 자’라 설명하고 있지요.
   가시떨기가 처음 싹이 났을 때는 별로 큰 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싹이 자란 후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이런 것처럼 세상의 근심이나 탐욕을 놔두면 사단이 교묘하게 유혹하므로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가시떨기가 있다면 아무리 작은 것처럼 보여도 처음부터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세상 염려를 모두 뿌리째 뽑아 버리고 또한 정과 욕심까지 십자가에 철저히 못박아 오직 영의 것을 사모하여 뜨겁게 달려가야 하는 것이지요.
  
   4) 좋은 밭은 옥토와 같은 마음밭입니다.
   옥토는 굳은 땅도 아니고 돌이나 가시떨기가 없는 땅에 농부가 정성껏 기경하고 가꾼 기름진 땅이지요. 이런 마음밭에는 어떤 장애물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맺힙니다. 바로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며 기도하면 응답이 척척 임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옥토와 같은 마음을 이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행해 나가고 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즉, 우리가 옥토를 이룬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 나가는 것이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들어서 알아도 육신의 피곤함, 게으름, 비진리의 생각, 욕심 등으로 인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옥토밭은 이런 방해물들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깨닫고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전에는 행하기 힘들었던 것들이 밭이 개간된 만큼 진리를 들을 때 행하기가 쉬워지지 않았습니까? 미워하고 시기하고 판단했던 마음이 점차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변하며 교만했던 마음이 낮아지고 섬기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마음의 할례하는 것이 바로 마음밭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옥토밭에 말씀의 씨앗이 떨어지면 씨가 쑥쑥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 즉,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또 옥토밭이 되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믿음이 옴으로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는 불같은 기도가 나오게 되며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옥토가 되어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잘 새겨 그대로 행하면 그만큼 그 사람은 그릇됨됨이가 좋다 말할 수가 있습니다.
  
   3. 말씀을 바로 듣고 마음 중심에 새겨 행하면 좋은 그릇됨됨이
  
   성경에는 얼마나 좋은 그릇이냐에 따라서 그릇을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으로 나누어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그릇됨됨이가 어떤지 아십니다. ‘그가 얼마나 마음을 변화시켜 옥토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미리 예지하시기 때문에 그릇됨됨이를 보시고 사람을 택정하여 쓰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기(氣)나 성품이 연단 받아 깨어지고 변화되면 귀한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그를 모태로부터 택정하여 연단하셔서 쓰셨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도 율법대로만 살았고 그 중심이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중심이었기 때문에 주님이 직접 만나 주셨고 그때부터 바울은 한 번도 변함없이 주님만 위해서 죽도록 충성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어떤 그릇인지요?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시험에 들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마음밭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씨를 열심히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자기 마음을 얼마나 옥토로 일구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은 흙으로 지은 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밭은 그냥 두면 거칠어지고 잡초가 나서 금새 묵은 땅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 열심히 흙을 갈고 기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또 들은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얼마나 믿음으로 행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바로 그릇됨됨이를 결정하게 됩니다. 가령, 말씀을 들을 때 집중해서 듣고 중심에 새기는 것과 잡념이나 졸음 속에 듣고 건성으로 새기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나지요. 그러므로 좋은 그릇됨됨이를 만들려면 먼저는 말씀을 바로 들어야 하고 들은 말씀을 마음 중심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듣고 깨달은 말씀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좋은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온전히 양식삼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 옥토와 같은 마음을 이루어 이 땅의 삶이 끝났을 때, 영원한 천국 새예루살렘에서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차 영·혼·육(5) 그릇됨됨이의 중요성

2009.06.24 14:10 | 영혼육 |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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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영·혼·육(5) 그릇됨됨이의 중요성
 
이재록 목사 | 2003-10-26 | 살전 5:23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그릇됨됨이와 마음됨됨이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그릇됨됨이의 중요성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심정으로 받고 들은 말씀을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각 사람의 그릇됨됨이가 결정됩니다. 이러한 그릇됨됨이가 중요한 이유는 그릇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새기고 행하는 정도가 다르기에, 그릇됨이 좋으면 그만큼 성결을 신속히 이루고 영적인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들었다 해도 사람마다 마음에 담는 정도가 다르고 행해 나가는 정도도 다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듣기는 들어도 잘못 마음에 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담기는 해도 행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잘 담고 열심히 행해 나가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그릇됨에 따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그 말씀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이나 일꾼들의 능력과 권세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바로 사람마다 그릇됨됨이가 다르고, 그릇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행해 나가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수학 공식을 배워 달달 암기했다고 해도 그 공식을 대입해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풀면서 적용하고 응용하는가에 따라 학생들의 실력이 다 다르고 수학 성적도 다릅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로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도 영적인 능력이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는 대로 놀랍게 변화되는데 어떤 사람은 수년이 지나도록 큰 진보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그 말씀대로 행해 나간다면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기도하면 응답이 오고 영적인 축복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넘치게 받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어 사명을 감당해 나가니, 심령들을 대하면 깨어지고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지요.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겨 드리므로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2. 마음됨됨이의 분류
  
   마음됨됨이는 어떤 면에서는 그릇됨됨이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그릇됨됨이에 비해 마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마음됨됨이라는 것은 똑같은 그릇됨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얼마나 마음을 넓혀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지지요. 쉽게 비유를 들면, 그릇됨됨이는 그릇의 재질 곧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 질그릇이냐 하는 것에 관계됩니다. 반면에 마음됨됨이는 그릇의 크기와 관계된다 할 수 있는데, 이 마음됨됨이를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해야 할 것 이상으로 해내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음됨됨이가 가장 좋은 그릇이지요.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방안에 떨어진 휴지를 주우라고 말씀하시면 휴지를 줍는 것뿐만 아니라 휴지통까지 비우는 자녀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방안의 먼지까지도 쓸고 닦고 구석구석까지 청소함으로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는 자녀도 있습니다. 또한 청소를 해도, 자기 집 마당과 문 앞만 치우고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옆집 대문, 더 나아가 동네 골목길까지 부지런히 청소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렇게 마음을 넉넉하게 쓰는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도 마음을 얼마나 넓게 쓰느냐에 따라 마음됨됨이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스데반 집사나 빌립 집사와 같은 경우는 주의 종이 아니니 적당히 신앙생활한 것이 아니라 주의 종에 못지 않은 마음됨됨이로 성결되고 충성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녀의 모습을 이뤄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되었고 집사로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많이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만 겨우 해내는 마음됨됨이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는 확실하게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거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데까지는 마음을 쓰지 못합니다. 가령, 부모가 휴지를 주우라 하면 달랑 휴지만 줍는 경우이지요. 주 안에서도, 어떤 사명을 맡았을 때 주어진 사명만 감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 다른 분야에는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경우인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큰 기쁨을 드리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찬양이나 어떤 분야에 특별한 달란트가 있어서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 해도 마음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그 분야만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영혼관리하는 직분을 맡지 않았다 해도 기관장이나 구역장과 하나 되어 영혼들을 돌아본다든가 그밖에 내가 도울 일이 없는가 마음을 쓰지요. 교회적인 행사가 있다 해도 마음을 넓게 쓰는 사람은 자신의 맡은 사명뿐 아니라 전반적인 분야들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과 목자의 심정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기도할 때도 자신의 맡은 분야만 놓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사명 맡은 분들을 위해 자신의 일처럼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것이며 이럴 때 하나님 앞에서도 큰 기쁨이 되고 그만큼 천국의 상급도 큰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만 하되 억지로 하는 마음됨됨이입니다.
   이런사람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 불만이 가득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이며,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는 데 인색합니다. 사명을 맡았을 때도 의무감 속에서 감당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부담을 주게 되지요.
   그러나 사람이 무엇을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해도 직분자이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녕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중심의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또한 맡은 분야에 부흥을 이루고자 할 때도 열매를 내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억지로 심방하고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들을 사랑하기에 자기 몸처럼 돌아보고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입에서는 부정적인 말이나 불평, 불만이 아니라 항상 기쁨의 찬송이 흘러나오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와 같이 내게 맡겨진 것을 이룰 때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로, 상관하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로 악을 행하는 마음됨됨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는커녕 책임감이나 의무감도 없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생각과 이론을 고집하여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요. 가령 부모님이 청소를 하라고 시키시면 동생도 있는데 왜 꼭 나에게 시키느냐 하면서 청소도 하지 않고, 가서 동생을 때려 울리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인데도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느냐고 불평, 불만하며 더 나아가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며 화평을 깨는 사람들이 있지요. 또한 맡겨 주신 영혼들을 사랑으로 갈무리하지 못하여 잃어버리거나 실족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하고 어찌하든 사명을 잘 감당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남의 탓, 환경 탓만 하며 맡았던 사명까지 놓아 버리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을 부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왕에 무슨 일을 맡기려면 첫 번째 경우처럼 자신의 일 이상의 것을 감당하되 기쁜 마음으로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마음됨됨이가 좋은 사람을 기뻐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크게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여러분은 네 가지 경우 중 어디에 속하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감당할 때 더 넓게 마음을 쓰고 포용하며 살펴보았습니까? 아니면 주어진 만큼만 간신히 감당하면서 불평, 불만이 가득한 마음이었거나 행할 것도 행치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서로 간에 다투며 부딪히는 분야는 없었습니까?
   이러한 것을 살펴보아 만약 내 마음됨됨이가 부족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넓고 큰 마음으로 바꿔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성결하게 하여 그릇됨됨이를 갖춰야 합니다. 그릇이 좋지 않은데 마음됨됨이만 좋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행하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됨됨이를 좋게 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마음됨됨이가 좋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때도 더 큰 일을 감당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 질투로 인해 애굽으로 팔려가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종이 되었으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매를 맞지 않으려고 주인이 시키는 일만 적당히 한 것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으로 집안일을 성실히 돌아봄으로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받아 그 가정의 제반 업무를 맡게 될 정도였지요.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마침내 애굽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으며 자기 가족과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매순간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며 좋은 마음됨됨이로 보고 듣고 행하였기에 하나님 앞에 크게 쓰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각자가 어떻게 마음을 쓰고 자신의 마음됨됨이를 만들어 가는가에 따라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관에서 기관장이 아닌 회원이라 해도 기관장의 마음으로 모임에 동참하고 심방하며 영혼들을 돌아볼 때는 결국 회원들의 인정을 받아 기관을 맡게 되며 더 나아가 선교회장이나 연합회장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교회에서만 열심내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음을 넓게 쓰며 뭇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됨됨이를 아름답게 이뤄나가면 결국은 온 집에 충성하는 자라 인정받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귀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좋은 그릇과 큰 마음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되어 드리며 삶 가운데 늘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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