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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1) - 창조주 하나님① 십자가의 도(1) 이재록 목사 | 2005-03-13 | 창 1:1 앞으로 인간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공의를 명쾌하게 제시해 줄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도를 듣게 됩니다. 곧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그것을 안다 해서 구원의 도, 곧 십자가의 도 안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두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선악과가 없었다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범치 않았을 것이고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편안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따 먹을 수도 있는 선악과를 만들어 두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을 줄을 모르셨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시므로 결코 모르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지 모른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지요. 그러나 구원의 섭리에 담긴 더 깊은 내용들까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면 더욱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밝히 알고 더욱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지요. 우리가 귤을 그냥 먹기만 해도 유익이 되지만 귤 안에 어떤 영양소가 있고 어떤 유익을 주는지를 알고 먹는다면 더 좋지요. 곧 귤에는 비타민 씨가 많이 있어 피부와 건강에 좋다 하는 지식이 있다면 단지 맛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필요한 때에 귤을 찾아서 먹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막연히 "믿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담긴 구원의 섭리에 대해 밝히 알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굳건한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해 들어갈 수 있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껏 축복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 세상에는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뵐 수 없다 해도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섬기고 경배할 신은 천지간에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뿐으로서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며 만물의 주관자요, 심판자가 되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실까요? 사람 편에서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을 초월하는 신이시며 무한하신 존재이시기 때문이지요. 한정된 사람의 식견 속에서 아무리 궁구해 본다 해도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전부를 알 수는 없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이 있는데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증거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6일 동안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창조의 마지막 날인 6일째에는 인류의 조상인 첫사람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받은 존재이기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본능적으로 신의 존재를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3:11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으로 양심이 선한 사람들은 비록 하나님에 대해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해도 막연하게나마 신을 인정하고 찾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로마서 1:20에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을 직접 뵈옵지 못한다 해도 만물을 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창조주가 한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하만물 가운데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증거를 살펴보지요. 세상에는 많은 인종과 민족이 살고 있는데 각각의 생김새는 물론 언어와 문화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눈은 두 개, 귀도 두 개, 코와 입은 하나이며 그 위치도 동일합니다. 얼굴 중앙에 코가 있고 얼굴의 윗부분에는 눈이 있으며 입은 코 아래에 있고 귀는 얼굴 양 옆에 하나씩 있지요. 이처럼 동일한 구조와 위치를 가진 것이 사람만이 아닙니다. 땅 위에 있는 짐승이나 공중의 새와 곤충, 바다에 있는 물고기도 다 마찬가지로 각각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는데 이는 바로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설계 가운데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창조를 부인하면서 '진화'라는 이론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만약 인류가 진화되어 나왔다면 한 가지가 아닌 여러 형태와 구조로 다양하게 진화되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창조주가 한 분이 아니라 여럿이라면 각자가 원하는 구조와 기능으로 창조할 것이기에 사람이나 동물들이 동일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을 수 없겠지요. 그러니 만물이 한 가지의 구조와 기능을 가진 것을 볼 때, 분명히 단 한 분의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정확히 설계되어 지음받았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하등한 생물에서 고등한 생물로 진화되어 마침내 사람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21에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한 대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형태 변화는 조금씩 있었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물고기가 진화하여 육지 동물이 되고 육지동물이 진화하여 새가 된 것이 아닙니다. 유인원이 사람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원숭이는 처음부터 원숭이로 지음받았고 사람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지음받은 것이지요.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과 혼과 육을 다 가진 존재로 지음받았으며 아무리 인간을 닮았다 해도 원숭이가 영이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깨닫고 경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의 증거는 자연 현상들을 보아도 너무나 확실히 드러납니다. 지구는 하루 한 바퀴씩 자전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달은 지구 주위를 한 달에 한 번 공전합니다. 이런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 지구에는 여러 가지 규칙적인 현상들이 생겨납니다. 낮과 밤이 생기고 사계절도 생기지요. 밀물과 썰물이 생기고 대기가 순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천체의 위치나 움직임은 사람이나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환경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도, 지구와 달의 거리도 지금만큼이 가장 적당하지요. 더 멀어도 안 되고 더 가까와도 안 됩니다. 이렇게 가장 적당한 거리에서,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규칙적으로 자전과 공전을 해 온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모든 질서가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대폭발로 인해서 우연히 이뤄졌겠습니까?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시계를 뜯어보면 그 안에는 많은 부속품들이 정교하게 결합되어 시계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시계는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여러 가지 부속품들이 튀어나왔고 그 부품들이 저절로 조립되어서 규칙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다면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지요? 하물며 시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우주가 어떻게 저절로 만들어지며 이처럼 정확한 질서 가운데 스스로 운행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지극히 뛰어나신 하나님의 지혜로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이 계획되었고 창조되었으며 운행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이런 분명한 증거들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날에는 누구도 "나는 하나님이 안 계신 줄 알았습니다"라고 변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창조의 명백한 증거들을 보면서도 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눈에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 자신의 지식과 생각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안보이는 신이 계시다는 사실이나 성경에 나오는 기사와 표적 등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은 인정하려 하지 않지요. 그러나 성경의 모든 말씀은 분명한 참입니다. 요한복음 4:48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는 표적과 기사를 볼 때, 사람의 생각과 틀이 깨어집니다. 자신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할 때,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배우고 믿어온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이 일치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이요, 진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권능의 역사들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에게 모세는 열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사와 표적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셨고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질병과 약한 것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었으며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들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권능은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지요. 본제단을 통해서는 개척 후 지금까지 무수한 기사와 표적들이 나타났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권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며 천지 만물 속에, 또한 권능의 역사들 속에 창조주 하나님의 증거들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전도서 12:13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확실히 믿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명령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마음껏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 시공을 초월하여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 [만민중앙소식 ] |
| | "시력 1급 장애인인 제가 사물을 보게 되었어요" ● 아바리아미 리카띠리나(70세)
저는 1942년부터 시력을 상실하게 된데다가 최근에는 중풍으로 인해 다리까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그러던 중 금번 「러시아 연합대성회」 소식을 듣고 성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성회 둘째 날인 11월 13일,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을 때 강한 불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왼쪽 다리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시력이 회복된 해뵈나(12세) ② 백내장을 치료받은 로자 벨리치꼬(66세) ③ 시력이 회복된 니키포로바 율라(18세)

④ 시력이 회복된 막시모바 비에라 비또르브나(66세) ⑤ 시력이 회복된 옐례나 안드례쁘나(79세) ⑥ 시력이 회복된 빅토리아
"태어나면서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게 되었어요" ● 블라디미르 블라디미토비취(77세)
저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잘 듣지 못한 채 77년 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성회 둘째 날인 11월 13일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다음날인 14일에는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은 후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전혀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게 된 빠꼬따에브 막스(20세) ② 청각장애를 치료받고 듣게 된 블라드 미로브나 이리나(18세) ③ 6년 만에 듣게 되었어요 ④ 난청을 치료받았어요
"중증 장애인인 제가 휠체어에서 일어나걷게 되었습니다" ● 알렉 산드르(44세)
저는 어릴 때부터 원인 모를 질병으로 다리가 심하게 꼬여 지난 5년 간 지팡이와 의자에 지탱하여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금번 성회에 참석하여 성회 첫날인 11월 12일,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을 때 누군가 저를 붙들고 있는 느낌이 들더니 혼자서도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2급 지체장애를 치료받은 알 갈비에르 갈리옐리 할랴도비취(22세) ② 선천성 뇌성마비를 치료받고 휠체어에서 일어나게 된 추리노바 나따리야(32세) ③ 10년 된 다발성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받고 목발을 버린 세르게이(48세) ④ 불완전 하지 마비를 치료받은 안또니나 바실례브나(45세)

⑤ 뇌성마비를 치료받고 걷게 된 까팔(21세) ⑥ 중풍을 치료받은 츄드죠프 스끼야(52세) ⑦ 쇄골 골절을 치료받은 갈리나 니꼴라예브나 라고바(68세) ⑧ 25년 전 다친 추간판 탈출증을 치료받은 쥐치꼬보
"13년 된 유방암을 치료받았어요" ● 레쉐니꼬비 바레리 (51세)
저는 유방암으로 13년 동안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치료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1월 13일 금번 성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받은 후 차츰 고통이 사라지면서 행복과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지금은 몸이 좋아진 것을 느낄 뿐 아니라 몸무게가 늘고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① 부인병을 치료받은 제로봐 파아나(35세) ② 협심증을 치료받은 마리야 스피라나(65세) ③ AIDS, 간염을 치료받은 뻬르짜르뷔브뾰뜨르 (18세) ④ B형 간염을 치료받은 체네무쉬에레나 (33세)
"12년 간 고통 받던 정신질환을 치료받았어요" ● 막심 겐나지예비치(42세)
저는 12년 전부터 정신이 혼미하고 모든 곳에서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회 첫날인 11월 12일,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힘이 생기고 심리적으로 정상이 된 느낌이 들었으며, 사람들과의 교제가 자유로워지고 어디를 가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① 악귀로부터 해방된 성도 ② 정신 질환을 치료받은 세로쉬딴 류드미라(48세) ③ 알콜중독을 치료받은 이바노프 알렉산드르 니콜라이 예비치(55세) ④ 마약중독 후유증을 치료받은 비딸리 쌀라비욥(33세)
"스크린 성회 시 기도받고 목발을 버리게 되었어요" ● 나자(17세, 뚤라 시 스크린 성회 참석자
저는 1년 반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목발 없이는 걸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권유로 스크린 성회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강사 이재록 목사님께서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 그 기도 내용을 저도 반복하여 따라했습니다. 그 순간 다리 자세가 바르게 되었으며 어긋나 있던 뼈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이제는 목발 없이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1. "TV를 통해 러시아 성회를 시청하던 중 수많은 성도들이 치료받았습니다" 필리핀 그렉 두란떼 총회장 2. "위성을 통한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수많은 성도들이 치료받았습니다" 인도 오웬 로버츠 목사 3. "TV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목도했습니다" 이고르 니키틴 목사 (러시아 성회 준비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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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2) - 창조주 하나님② 십자가의 도(2) 이재록 목사 | 2005-03-20 | 창 1:1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구원과 영생, 천국과 부활의 소망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유일하신 창조주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면 사람들은 종종 "창조주 하나님은 누가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부터 계셨으며 그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해 출애굽기 3:14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낳은 것도 아니고 지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고 계셨고 앞으로도 영원 후까지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경험과 지식 속에는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나 동물도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다" 하는 시작과 끝이 있고 아무리 오래된 골동품도 분명히 만들어진 시작점이 있으며 역사적인 사건에도 시작과 결말이 있지요. 하나님에 대해서도 처음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셨는지, 시작점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고 방식대로 창조주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시작점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느 시점부터 존재하게 되셨다면 그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지요. 또 누군가 하나님을 창조했거나 낳은 이가 있다면 하나님도 완전하신 분이 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적이고 완전하신 신이라면 당연히 시작도 끝도 없으시며 원래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존재하고 계셨을까요? 요한복음 1:1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태초는 만물이 창조되기 전,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존재하시던 아득한 오래 전의 시간을 말합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제한적인 경험과 지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원 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형상을 입으신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로 존재하고 계셨는데 이것이 곧 "소리"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1:5을 보면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지요. 여기서 빛과 어두움이라는 말에는 영적인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어두움"이란 불의, 불법, 죄와 악 등 진리가 아닌 모든 것을 뜻합니다. 반면에 "빛"이란 죄나 악이 전혀 없는 것이며 사랑, 선, 의 등 진리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의미로 빛이실 뿐 아니라 실제로도 빛으로 존재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말씀이신 하나님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빛 가운데 맑고 투명한 소리를 머금은 형태로 존재하고 계셨지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 속에 맑고 투명하며 감미롭고 부드러우면서도 온 우주를 울릴만한 웅장한 소리로 존재하셨던 것입니다.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인간을 창조하려는 마음을 품게 되셨습니다. 서로 사랑을 주고 받을 대상을 얻기 원하신 것이지요. 이러한 인간에 대한 모든 계획을 이루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가 되십니다.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장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실 성자 예수님,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께서 분리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 분으로 각각 존재하게 되셨지만 이 세 분의 근본은 동일하시므로 "삼위일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로 분리가 되시면서 하나님은 구체적인 형상을 입게 되셨습니다. 그 형상이 어떤 것인지, 창세기 1:26에 잘 나와 있지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사람은 겉모양만 아니라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지음받았지요.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던 마음이 변질되어 점차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되고 맙니다. 이러한 피조물과 달리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분입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만이 완전하신 참 신이시며 우리가 경배하며 사랑할 대상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을 몰라보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엄마, 아빠" 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상을 섬긴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말씀하시며 우상 숭배를 금하시는 것입니다(출 20:3-5). 오직 스스로 계신 하나님 한분만이 참 신이시며 그분만을 경배하며 섬겨야 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근본이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이시기에 사람이 예수님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실 때는 육신을 입고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지요. 그러나 이는 사람처럼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를 통해 부모의 기를 물려받고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마 1:18). 동정녀 마리아는 구세주를 잉태하는 도구로서 하나님께서 잠시 마리아의 몸만 사용하신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어머니"라 하지 않고 "여자여"라고 부르시지요.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 하듯 동정녀 마리아를 경배하고 찬양하는데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는 어떤 피조물도 결코 경배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해와 달의 운행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삼 년 반의 가뭄 속에 큰 비가 내리기도 했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죽은 자를 살리고 모든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며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등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은 사도들을 통해 계속 나타났습니다. 특히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병자를 데려와서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일 수 있기를 원했지요.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어도 병이 낫고 악귀가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히 13:8). 본교회에는 이러한 역사들이 개척 이래로 끊이지 않고 나타나므로 매주, 전국 전 세계에서 난치, 불치의 각색 병들을 치료받은 간증이 들어오지요. 더구나 제게 직접 기도받은 것이 아니고 인터넷이나 화상을 통해서만 기도받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결혼하여 수 년, 심지어 수 십 년 이상 아기를 갖지 못하던 부부가 기도받은 후 잉태한 경우도 많습니다. 해외에서는 팩스나 이메일로 기도 제목과 사진을 보내 오는데 그럴 때도 사진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그중 파키스탄의 '신시아'라는 소녀는 '셀리악'이라는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수술도 받을 수 없었고 의사들도 살릴 방법이 없다 했는데 언니가 제게 사진을 가지고 와 기도를 받은 바로 그 시간부터 급속히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지요. 부흥성회나 해외 대형 집회를 인도할 때는 일일이 기도해 줄 수 없으므로 단에서 전체를 위한 기도만 해 주는데 그럴 때도 무수한 사람들이 일시에 치료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페루 성회 때는 21세의 청년, 임마누엘 모라가 에이즈를 치료받았습니다. 성회 첫날 간증자들을 보면서 믿음을 갖게 된 임마누엘은 성회 둘째 날 말씀을 듣는 중에 화장실에 가서 에이즈로 인해 두 달 반 동안 계속되던 설사가 멎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면역세포 수치가 정상인과 같이 회복되었다는 판정이 나왔고 함께 참석했던 할머니도 자궁암으로 인한 하혈이 성회 셋째 날부터 그치고 치료받았지요. 성회 장소에 직접 나오지 못하고 인터넷, 위성, 텔레비전과 케이블 방송 등을 통해 성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동시에 치료받은 경우가 무수합니다. 그래서 매번, 성회가 끝나고 나면 세계 곳곳에서 팩스나 이메일로 간증이 쇄도하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할 때는 기사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사란 날씨와 기후 등 하늘의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서 본교회 성도님들은 수련회나 어떤 행사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날씨를 주관하시는 것을 셀 수 없이 체험해 왔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는 순간 멈추기도 하고 각종 야외 행사 때는 믿음으로 기도하자 사방에서 구름이 몰려와서 따가운 햇볕을 가려 주기도 했지요. 제가 해외 성회를 갈 때도 늘 기사들을 체험합니다. 한 예로, 지난 2001년 필리핀 성회 때는 두 개의 태풍이 발생하여 성회 장소를 향해 오고 있었지요. 이때 기자 회견에서 저는 "태풍이 물러가거나 소멸되어 성회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과연 그 믿음의 고백대로 태풍 중에 하나는 필리핀에 이르기 전에 소멸되어 버렸고 다른 하나는 갑자기 진행 방향을 바꾸어 버렸지요. 그 밖에도 질병과 연약함의 치료는 물론 갖가지 희한한 능과 표적들, 구름과 별들과 각종 무지개 기사 등 본교회에 나타난 전능하신 하나님의 증거들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셔서 모든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는 사람들을 통해 앞일을 알려 주시고 예언하게 하십니다(암 3:7). 성경을 보면 인류의 구세주가 오심, 이스라엘의 멸망과 재건, 또한 마지막 때까지 세계의 흐름 등 수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언된 그대로 성취되어 왔지요.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들을 통해 앞일을 알려 주시는데 본 제단에서도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예언의 말씀들을 전해 드렸지요. 예를 들어 1987년 우리 나라 대통령 선거 때는 노태우 후보가 당선될 것과 이후로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차례로 당선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 영국의 대처 수상 당선에 대해서도 예언했습니다. 인도의 간디 여수상이나 소련의 서기장 체르넨코 등 여러 인물들의 죽음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알려 주셨지요. 1999년 코소보 사태에 대해서도 미리 예언했고 장차 이 분쟁이 어떻게 재발될 것도 알려 드렸습니다. 유가 변동과 중동의 흐름,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구 공산권 등 세계 주요 세력들의 흐름이 삼파전의 양상으로 굳혀질 것도 예언했지요. 대북 햇볕정책 실패와 앞으로 북한이 문호를 개방하게 될 것, 그리고 다시 닫게 될 것 등도 예언했습니다. 그 밖의 수많은 예언들도 그대로 성취되었으며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사의 모든 흐름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각자의 마음과 앞날도 아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을 다 맡기심으로 항상 형통한 길, 축복의 길로만 인도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4:48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셨지요.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 그리고 예언 등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여러 가지 일들을 나타내 주십니다. 이처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심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간증이 넘쳐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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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3) - 창조주 하나님③ 십자가의 도(3) 이재록 목사 | 2005-04-03 | 창 1:1, 딤후 3:16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의 창조주로서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성경의 저자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가 되십니다 세상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는 책은 오직 성경뿐이지요. 성경에는 구원의 도, 곧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만드셨으며 인류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인간 경작의 시작과 결말에 대해 그리고 천국과 지옥, 구세주이신 예수님, 사람의 본분 등에 대해서 밝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누가 기록한 것일까요?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구약 26명, 신약 8명, 총 34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구약이 1500년, 신약이 100년, 더해서 약 1600년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서른 네 명의 기록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저자가 아니라 대필자일 뿐입니다. 만일 어머니가 작은 아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같이 사는 큰 아들에게 편지 내용을 불러 주어서 기록하게 했다면 누구의 편지일까요? 기록자는 큰 아들이라 해도 분명히 어머니의 편지인 것처럼 성경도 하나님께서 합당한 사람들을 주관하셔서 성령의 역사 가운데 기록하게 하신 것이요, 성경 전체의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에 대해 디모데후서 3:16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했고, 베드로후서 1:21을 보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또 이사야 34:16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하셨지요. 성경의 기록자가 아무리 많아도 성경 전체는 마치 한 사람이 기록한 글처럼 서로 모순되는 것이 없고 일관성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 가운데 주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경은 성령의 감동함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성경은 해석할 때도 반드시 성령의 감동함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함으로 풀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풀어서 멸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벧후 3:16). 성령의 감동함으로 풀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 구절들이 서로 짝을 이루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하신 대로이지요. 구슬이 꿰어져 보배가 되듯이 '말씀의 짝'을 통해 각각의 구절들이 서로 보완되어 영적인 의미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21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만으로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신 말씀처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조건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0를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 사람이라야 입으로 구주를 시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2:14을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했습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는 사람에게는 어찌하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행함이 반드시 따릅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지 않기 원하며 자연히 죄를 버려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믿으면 형제를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판단정죄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희생하며 구제하는 등의 행함으로 믿음의 증거를 내보이는 것입니다. 로마서 3:28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진리를 행한다 해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닐 때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에 마음이 거룩하게 변화되고 그래서 행함도 거룩한 마음을 따라 온전한 행함으로 나와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거룩한 마음을 이루는 것, 곧 마음의 할례를 이뤄가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으므로 마음의 할례를 해 나가는 사람이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바로 그런 사람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이지요. 만약 이런 말씀의 짝들을 알지 못할 때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거나 "마음에 믿기만 하면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도 구원받는다" 하는 등 진리를 잘못 알게 됩니다. 그러니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를 범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멸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하나의 구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말씀의 짝을 알아 온전한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3.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참입니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안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참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와 주변 민족들의 사건과 등장 인물, 장소나 관습 등을 보면 하나하나가 매우 사실적인 것을 알 수 있지요. 또한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듯이 성경에는 많은 예언들이 나오는데 그 하나하나가 그대로 성취되어왔습니다. 한 예를 들어 누가복음 19:43-44에 보면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지요. 이때로부터 약 40여년이 지난 서기 70년에 로마의 타이토스 장군이 예루살렘성을 멸망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의 사면에 토성을 쌓아 성을 함락시켰지요. 성을 점령한 후에는 어린아이까지 잔인하게 죽였으며 돌 위에 돌이 쌓여있지 않을 정도로 건축물을 완전히 훼파했던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건들이 예언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곳곳에 메시아가 되실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고난, 부활 등에 대해 상세하게 예언하셨는데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신 내용이 신약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창세기 3:15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구세주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오실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실 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셨지요. 여기서 여자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여기서 굳이 여자의 후손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안에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요한계시록 12:5에도 보면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하여 여자 곧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7:14에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했고 미가서 5:2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언대로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고 베들레헴의 한 사관의 짐승 우리에서 태어나셨지요. 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당시 유대의 왕인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몰살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꿈을 통하여 예수님을 미리 애굽으로 도피시키셨고 헤롯이 죽은 후에 다시 꿈을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지시하셨지요. 이에 대해서도 구약 호세아 11:1을 보면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도 스가랴 9:9의 말씀대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또 시편 41:9에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하는 말씀대로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말씀의 떡을 공급받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았습니다. 스가랴 11:12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하신 말씀대로 유다가 예수님을 판 값은 은 삼십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사야, 시편, 스가랴 등 구약 곳곳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고난 받으시고 어떤 무덤에 장사되실 것인지, 그리고 부활과 승천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는데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은 신약에 와서 그대로 다 성취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 때의 징조와 마지막 때 세계 정세가 어떻게 돌아갈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고 축복받는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천국에 이를 수 있는지 등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에 약속된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약속대로 축복을 주십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9:2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온전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또 출애굽기 15:26 말씀대로 우리가 죄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면서 살 때는 어떤 질병도 임하지 않습니다. 계명대로 살지 못하여 질병에 걸렸다 해도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죄의 담을 헐고 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을 수 있지요. 본교회 이정아 집사님은 2002년 어린 딸 혜나에게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병원 진단 결과 "고관절 농양"으로서 아이가 너무 어려서 수술하기도 어렵고 수술을 하더라도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집사님은 기도, 충성, 감사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 등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중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에게 와 기도를 받았는데 곧바로 아이가 온전해졌으며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깨끗하게 치료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간증만 보아도 분명히 성경 말씀은 참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보장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8:17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기꺼이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게 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사랑하심으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만나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들을 힘써 행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런 여러분을 사랑하사 항상 만나 주시고 축복하시며 영원한 천국 새예루살렘까지 인도해 들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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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4) -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십자가의 도(4) 이재록 목사 | 2005-04-10 | 창 1:27-28, 2:7 오늘은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으신 분이며,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아득한 태초로부터 스스로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인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계획을 세우게 되셨습니다. 바로 천지 창조와 인간 창조의 계획이었지요.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에 거쳐 하나하나의 준비 작업을 이루기 시작하셨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계시던 영의 공간에서 장차 천하 만물과 인간을 지으실 육의 공간을 구분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원래 홀로 계셨던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성자, 성령 하나님을 분리해 내심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하나님도 형상을 입으셨는데, 바로 우리 사람과 같은 형상이었지요. 영의 세계 안에는 천군과 천사, 그룹 등 영의 존재들을 만드셨고 육의 공간 안에는 장차 인간들이 살아갈 지구를 만들어 놓으셨지요. 이렇게 모든 준비를 갖추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빛과 궁창, 해와 달, 별 그리고 각종 식물과 동물 등 천하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을 만드셨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사람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얻게 됩니다.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목적에 맞게 사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인 것입니다. 1.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세기 2: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친히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오장 육부와 모든 조직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은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흙으로 빚어놓은 형상이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가" 하며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사람도 지식이 더하니 사람과 비슷한 로봇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의 두뇌를 흉내 내어 컴퓨터를 만들기도 하고 인공 장기나 인공 피부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피조물인 사람도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사람이 자신의 생각 속에 한계를 만들어 놓았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창조의 역사를 보여주십니다. 본교회의 부흥성회나 제가 강사로 섰던 해외 성회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소아마비나 교통사고로 양다리의 길이가 달라져서 수년 혹은 수십 년씩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제게 와서 기도를 받은 후 양쪽의 길이가 같아진 경우가 많이 있지요. 예를 들어, 본교회 송희경 집사님은 선천성 뇌성마비로 인해 왼쪽 다리가 오른쪽보다 4센티미터 짧았습니다. 걸을 때도 다리를 절었을 뿐 아니라 척추와 골반이 뒤틀려 있으므로 오래 서 있거나 걷기가 힘들었지요. 그러던 중, 1997년 본교회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저에게 기도를 받고 그 자리에서 짧았던 왼쪽 다리가 길어짐으로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짧았던 다리 때문에 휘었던 척추가 펴지면서 뒤틀린 골반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더구나 신장이 3센티미터 이상 커졌던 것이지요. 또 2002년 인도 연합대성회에 참석했던 가네쉬라는 소년은 골반뼈 낭종이라는 병으로 골반뼈와 고관절을 잘라낸 상태였습니다. 뼈를 잘라낸 부위에는 금속판을 넣고 볼트로 죄어서 대퇴골과 골반을 연결해야 했지요. 이후에도 가네쉬는 통증으로 계속 고통 받았고 목발을 의지하여 겨우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회에 참석해서 저의 기도를 받은 순간에 모든 통증이 사라져 버렸고 목발 없이도 혼자 걷고 뛰며 운동경기까지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러한 창조의 역사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첫사람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에 사람이 후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생명의 씨를 주셨습니다. 곧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를 주신 것이지요. 정자와 난자 안에는 부모의 모든 기가 결집되어 있습니다. 그 작은 생명의 씨 안에 외모는 물론 성격, 지능, 습관 등이 다 들어 있어서 자녀들이 부모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를 닮아서 태어날 수 있도록 생명의 씨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씨를 통해 잉태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아이가 생겨나지만 그 생명의 잉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조상인 아담은 누구를 닮았을까요? 창세기 1:27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말씀한 대로 아담과 하와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것은 단지 겉모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이며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일 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할 때 더 중요한 의미는 바로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나왔으며 하나님을 닮은 영으로 지음 받았다는 데 있지요. 처음 지음 받았을 때 아담의 영은 거룩하고 성결하신 하나님과 같이 선과 빛과 진리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범죄한 이후 인류는 점점 죄와 악에 물들어갔고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이유 우리가 "왜 사는가" 하는 인생의 목적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지으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지"를 깨우치면 됩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비유들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땅을 경작하여 농사를 짓고 열매와 곡식을 거두는 비유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네 가지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밭의 종류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이 그 마음에 임할 때 진리로 결실하는 정도가 다른 것을 설명하셨지요. 또 마태복음 3장의 알곡과 쭉정이 비유나 마태복음 13장의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장차 있을 심판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알곡과 같은 영혼들은 심판날에 천국 곡간에 들어가지만 가라지와 쭉정이 같은 영혼들은 지옥 불에 던져진다는 것이지요. 성경의 이러한 비유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람을 지으시고 인류 역사를 섭리해 가시는 과정이 바로 경작하는 것과 같음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농부가 추수하기 위해 땅을 일구어 경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경작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경작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참된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놀라운 권능과 두려운 심판자로서의 권세, 엄격한 공의 등 신성적인 면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긍휼, 자비 등의 인성적인 면도 있으시지요.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도 하고 슬퍼하고 탄식하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외로이 홀로 있는 것보다는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이 있기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고 경작하기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물론 굳이 인간을 만들지 않으셔도 하나님께는 수많은 천사와 천군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천사들과 달리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자유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참된 자녀를 원하셨습니다. 비유를 들어, 여러분의 가정에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뛰어난 성능의 로봇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 말썽도 부리지만 자라면서 점차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림으로 중심에서 부모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녀가 있다면 누가 더 소중하겠는지요? 아무리 순종을 잘 하고 사람과 비슷한 로봇이라 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자녀에 비할 수는 없지요.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스스로 순종하는 자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참된 자녀를 얻기 원하셨기에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최선을 다해 경작을 한다 해도 추수 때는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가 섞여 나오기 마련입니다. 쭉정이는 먹지도 못하며 알곡과 함께 곡간에 넣으면 알곡까지도 못 먹게 되지요. 그러니 쭉정이는 거름으로 쓰거나 불에 태워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경작하신 후 최후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작업을 하시지요. 마태복음 3:12에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꺼지지 않는 불'이란 지옥 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마지막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마감하시고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지요. 이때 알곡이 아닌 쭉정이가 된 사람들은 심판을 통해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가는 알곡과 지옥에 가는 쭉정이는 각각 어떤 사람일까요? 알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부지런히 죄악을 벗어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이지요. 반면에 쭉정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비진리와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다 알곡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입으로는 주를 믿는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 정욕을 좇아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들도 알곡이 아닌 쭉정이인 것이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7:21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알곡이 되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셨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이나 여전히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으로서의 참된 가치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의 본분을 행치 못하니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요, 쭉정이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의 가치성을 잃은 쭉정이를 알곡된 영혼들과 함께 천국에 들일 수는 없습니다. 세상 정욕 가운데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며 욕심과 다툼과 온갖 악을 가진 사람들을 천국에 들인다면 더 이상 천국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 영광스러운 곳이라고 말할 수가 없게 되지요. 그러면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 영혼들은 그냥 소멸되어 버릴까요? 사람의 영혼은 영원불멸한 것이기에 소멸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도 한곳에 모아서 영원히 가둬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둬두는 장소가 바로 지옥이요, 쭉정이가 된 영혼들은 각자의 죄값에 따라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지옥 책자 참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목적에 따라 알곡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지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여러분을 아름다운 천국으로 이끌어 들이셔서 영원한 행복과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고 성결한 마음을 가진 참된 자녀로 나와 영화로운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영원히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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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5) - 선악과를 두신 섭리 십자가의 도(5) 이재록 목사 | 2005-04-17 | 창 2:16-17 1.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까지의 과정 맨 처음 아담이 지음받았을 때, 아담의 외모는 장성한 어른의 형상이었지만 지식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마치 새로 사온 컴퓨터 안에 어떤 데이터도 입력하지 않은 것과도 같았지요. 이런 상태에서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여러 가지 지식을 배워나갔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영의 세계에 대해, 진리와 선과 빛에 대해 많은 영의 지식들을 배웠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식들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으며 창세기 1:28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말씀하신 대로 많은 자녀들을 낳으며 번성해 갔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은 성경을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6을 보면 범죄하여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는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신다"는 것은 이전에도 잉태하는 고통이 조금은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저주받기 이전에는 그 고통이 적었는데 이후로는 그 고통이 커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질병이나 늙음, 사망이 없는 에덴 동산에서 사람으로서는 계산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인간경작의 역사가 육천 년이라고 할 때, 이는 아담이 창조된 때부터의 세월이 아니라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난 후부터의 세월입니다. 아담이 창조된 후부터 범죄하기까지는 무수한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아담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단 한 가지 있었습니다. 창세기 2:16-17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이 명령을 잘 지켰으나 무수한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하나님의 명령을 명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순종하도록 지음받은 천사와는 달리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순종할 수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경고를 명심하지 못하고 자유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까지는 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원수 마귀 사단이 뱀을 사주하여 하와를 미혹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을 소름끼치도록 싫어하고 징그럽게 여기는데 이는 뱀으로 인해 인류가 사망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에 깊은 본성 속에서부터 싫어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뱀의 모습은 하와를 미혹한 뒤로 저주받아 변질된 모습이며 사실, 저주받기 전의 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생물들이 그랬듯이 사랑스럽고 보기에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일 뿐 아니라 성경에 간교한 짐승이라 한 대로 뱀은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지혜가 있었지요. 이처럼 뱀은 간교하여 하와를 기쁘게 하고 그 마음을 살 수 있었기에 뱀이 미혹할 때 하와가 방심하기가 더 쉬웠습니다. 뱀이 어느 날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물었지요. 이에 여자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함으로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변질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변질시켜 버리면 그다음에는 더 쉽게 사단의 미혹을 받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들은 순종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순종하면 생명을 얻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사망으로 가는 것이지요.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는 것을 보자 뱀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듭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한 것입니다.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아들이니 선악과를 볼 때, 전과는 달리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동하므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을 뿐 아니라 아담에게까지 주어 먹게 했지요.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결과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영계의 법칙대로 죄의 값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당장 호흡이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때 "정녕 죽으리라" 하신 것은 육의 죽음만이 아닌 더 근본적인 죽음, 곧 사람의 영이 죽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몸, 곧 육은 영혼을 담고 있는 껍질에 불과한 것이며, 사람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몸 안에 담겨 있는 영과 혼이지요. 사람의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는데 아담이 범죄하여 죄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을 원수 마귀 사단이 자기 것으로 삼아서 범죄하게 하고 마침내는 지옥으로 끌고 가게 되었지요. 사람의 몸이 죽어서 썩어 없어진다 해도 사람의 영혼은 소멸되지 않으므로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교통이 끊어진 것을 곧 아담의 영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아담 자신만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이후로 태어난 모든 아담의 후손까지도 아담과 같은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의 주관 아래 있던 이 땅의 만물도 다 같이 저주를 받게 되었지요. 창세기 3:17에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신 대로 이제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도 고생을 해야 합니다. 전에는 풍성하게 열린 과실을 따먹기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므로 아담이 직접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경작을 해야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주받은 만물 중에서도 뱀은 더욱 큰 저주를 받았지요. 창세기 3:14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뱀"은 영적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하며 "흙"이란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이 죄 가운데 사는 육의 사람을 밥으로 삼아 시험, 환난,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이지요. 이 말씀대로 범죄하여 육으로 타락한 사람들은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서 온갖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지 않으셨으면 아담이 따먹지 않았을 것이고 사망의 형벌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아셨고 아담을 너무나 사랑하셨는데도 선악과를 두셨는데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아담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담이 살던 에덴 동산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안하며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에덴에서 살던 아담은 참된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질병이나 죽음, 슬픔, 고통 등 행복의 반대가 되는 불행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의 참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것을 체험하여 상대성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태어나서 병에 걸린 적이 한 번도 없다면 병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어떤 것인지 느끼기가 어렵고 그만큼 건강에 대해서도 감사하기 어렵지요. 굶주림으로 고생해 본 사람이라야 풍성한 음식에 중심에서 감사할 수 있고 악이 있어야 선이 얼마나 좋으며 어둠이 있어야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압니다. 가난이 없으면 부요함에 감사할 줄 모르며 미움이 없으면 사랑이 좋은 줄 모르지요. 그러니 불행이 전혀 없는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은 자신의 행복을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본 일이 없기에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셔도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지만 아담은 진정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저주받은 세상에서 배고픔, 추위와 더위, 죽음, 이별 그리고 죄악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들을 경험하면서 에덴 동산에서 살 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참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편안하게 산다 해도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비록 잠깐 동안 고생을 한다 해도 그 고생을 통해 행복을 깨달으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지요.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시고 이를 통해 불행과 고통을 겪어봄으로 상대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이 범죄하도록 하나님께서 유도하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아담이 자유의지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뿐이지요. 아담은 결국 자유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따먹었고 인류는 추위와 더위, 질병과 가난, 배고픔, 이별, 죽음 등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고통받은 경작의 과정을 겪어 본 후에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면 천국의 삶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게 되고 그런 천국을 주신 하나님께 중심에서 감사하며 세세토록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에덴에 살던 아담과 달리 상대성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를 분명히 알므로 시간이 지난다 해서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감사가 더해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불행을 체험하게 되었고 에덴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죄인이 되어 버린 후였습니다. 이미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어 영이 죽어버린 상태로서 아담과 하와뿐 아니라 모든 후손들까지도 죄인으로서 사망의 형벌을 당할 처지가 되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아셨으므로 만세 전부터 죄인된 인류가 구원받을 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길은 과연 무엇인지 다음 시간부터 증거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선악과를 두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에 감탄하며 영원한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감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산다 할지라도 오직 감사와 기쁨만 있게 되지요. 고린도후서 4:17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말씀한 대로 이 땅에서 잠시 슬픔과 고난을 당한다 해도 이 후에는 지극히 영화로운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날마다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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