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 시절 유치원을 다닐 정도면 부유한 가정이었다. 이미, 60~70이 넘었을 어른들이시다. 유치부 학예발표회와 교실 풍경
치마. 저고리를 입으시고 풍금을 치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아련하게 그리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들의 큰언니.
울며 보채는 아기를 바쁜 엄마는 큰언니에게 아기를 업혀준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아기를 업어주는 큰언니. 예전에는 이렇게 위의 누나가 아기를 돌보아줘 가며 자랐다. 지금은 모두 60대가 넘었을 사진속의 주인공이 궁금하다. 섬총각 장가 가는 모습 쥐잡는 날
예전에는 쥐잡는 날을 정해 학교에서 봉투를 나누어 주었다. 나도 이 생각이 난다. 잡은 쥐를 널어 숫자를 새고 잡은 수가 많으면 상도 받았다. 우린 도회지라 이렇게 널어 전시하지는 않았던것 같다.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학생에게 쥐를 잡으라는 것 자체가 불법인 세상이니까! 빚바랜 사진 속의 할아버지와 손자
장날 내다 팔 무게를 재시는 할아버지와 가만 있지않는 동생을 업고서도 신이 난 손자의 모습. 궁핍했지만 가난하지 않았던 우리의 마음을 엿본다. 동네 어귀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싸움소리,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마을어귀 지금은 적막만이 시골동네를 감싼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져버린 시골, 독거노인들이 대부분인 농촌에 어떻게 하면 새바람이 불어 다시 예전의 시끌벅적했던 아이들을 불러모을 수 있을지...... 70년대 T.V가 처음 나왔을때 부라운관을 보호하느라고 여닫이식 장식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T.V옆 비틀즈의 사진이 그 시절을 그립게 하네. 남포등
전기공급이 원할하지 않던 시절 바람막이 남포등이 있어 어둠을 밝힐 수 있었다. 호롱불보다 뒤에 나왔지 싶다. 가스공급이 안되던 시절 석유곤로는 자취생들에게 유일한 취사도구였다.
불을 붙이고 잘못 돌렸다가는 검은 그으름에 콧잔등이 시꺼멓게 묻혀서 눈물 짓던 시절도 있었지. 전기곤로와 다이얼을 츠르르 손가락 끼워 돌렸던 전화기. 연탄화덕.
냄비가 화덕과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삼발이를 올려 밥을 뜸들이곤 했다. 오빠의 앉은뱅이 책상.
그 시절 집집마다 빠지지 않고 있었던 '못난이 삼형제' 인형 책상위의 '수학정석'과 '성문영어'를 달달 외웠던 그 시절의 공부방법.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그지없다. 모든 것을 외우는 것으로 해결하다니.... 인간 뇌를 웃습게 아는 교육법이었지만 그 땐 또 그게 최선이었다.
일기예보가 정확하지 않던 시절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 비닐우산을 팔려고 거리를 외치고 다니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비닐우산이라는게 원래 일회용이지만, 물자가 귀하던 시절 한 번 사용한 비닐우산이라고 고이 간직했다가 다음 비올 때 사용했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이야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