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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선서를 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연합뉴스 사진) 영화보다 더 재미난 오바마 대통령취임식 이야기
멋있다, 대단하다, 부럽다, 행복하다... 이런 단어들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왔다. 오바마라는 ‘세계 최고 인기 배우’가 미국 제 44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장면을 새벽까지 지켜보면서 비몽사몽간에 그런 단어들이 내 심장을 뒤흔들어놓았다. 오바마는 대통령이라기보다 세계 최고의 배우, 세계 최고의 엔터테이너라고나 할까. 더구나 그의 총명함과 착해 보이는 인상에 사람들은 오바마니아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제 오바마는 단순히 미국의 대통령에서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등극했다. 20세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떤 지도자가 오바마처럼 전세계인에게 그토록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오바마 효과는 극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오바마 자신의 화두처럼 'We are One !'이라는 주술적인 문장이 온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결말의 멋진 영화 한편을 보고 난 것처럼 오바마의 취임식은 지난해 11월 그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끊이지 않고 매스컴을 장식한 ‘오바마 스토리’의 하이라이트이자 새로운 출발점에선 설레는 미국인의 마음과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 한마당의 대축제였다. 비단 미국인뿐 아니라 전세계인에게 잔치 기분을 맛보게 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전세계 10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오바마의 취임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봤다고 한다. 나도 그 10억 명 중 한명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치켜 올리며 새벽 2시 반 넘어서까지 우리 집 마루에서 뚫어져라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봤다.
단순한 TV시청이건만 무슨 대단한 역사적 의식에 참여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 기분 꽤 괜찮았다.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나와는 별 상관이 없을 듯한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보며 이렇게 엄숙하면서도 소중한 기분에 빠져 들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오바마의 존재감 덕분이다. 그만큼 미국 건국 232년 만에 탄생한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존재는 미국과 전 세계에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어떤 배우가 지금 취임식을 막 마친 저 오바마처럼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4년의 임기 동안 오바마에겐 수많은 시련이 닥칠 것이다. 그러나 노예 해방을 시킨 링컨대통령이 사용했던 150년 전 성경책에 손을 얹고 ‘미국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최선을 다해 미국헌법을 존중하고 수호할 것을 엄숙히 맹세한’ 젊은 오바마에겐 오로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오바마는 취임 하루 전 몹시도 바빴을 텐데도 가출 10대들을 위한 쉼터에서 벽에 손수 페인트칠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의 담대하면서도 따스한 리더십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페인트롤로 벽을 칠하면서 그는 “이렇게 경제가 어려울 때는 서로서로 도와야죠, 나는 10대때부터 이 일을 많이 해 와서 아주 잘 합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웃음이 아주 진솔하면서도 멋졌다. 어쩌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의 이런 생활체험담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의 진솔하면서도 감동적인 화법과 배우 뺨치게 멋있는 그의 스마일!
그리고 상대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중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 이런 천부적인 재능(?)을 기본으로 워낙 뛰어난 머리와 그에 걸맞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학력과 찬스를 놓치지 않는 타고난 정치본능 등이 ‘적수공권’의 이 흑인 청년을 자수성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린 두 딸의 자애로운 아버지로서 오바마는 백악관에 들어가기 직전 딸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보통 아버지로서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어서 해야 할 일들을 어린 딸들에게 자상한 필치로 적어놓았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어린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그 편지는 읽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취임식장에서 오바마의 어린 두딸은 앙증맞은 마스코트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나왔다. 열 살짜리 큰 딸 말리아는 진한 청색 코트에 미용사가 애써 드라이해주었을 것 같은 머리모양이 돋보였다. 자리에 앉아서도 어린 소녀답게 디카로 연신 이곳 저곳을 향해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귀여웠다. 막내딸은 더 어려선지 연신 하품을 하면서 조금은 지루해 하는 표정이었지만 까만 인형처럼 예뻐 보였다. 워싱턴 시내 최고 사립초등학교를 다니게 될 이 꼬마 아가씨들은 아마도 학교에서 꽤나 인기를 끌 것 같다.
오바마의 이번 대통령취임식 연설문을 작성한 사람은 올해 스물일곱 살의 파브로라는 청년이라고 한다. 4년 전부터 오바마와 인연을 맺은 글재주 좋은 이 청년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대통령 취임연설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오바마의 선택 덕분이었을 것이다.
18분 30초 동안 취임연설을 하면서 오바마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제시했고 200만명이 넘는 현장의 청중들 가운데는 ‘아멘!’이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연설은 설득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남편 오바마와 함께 건국 이래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가 된 미셸 오바마 역시 이번 취임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여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오바마와 함께 하버드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로서 미셸은 역대 어느 영부인에 뒤지지 않는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솜씨를 보여줄 것이라고 본다.
취임식에 입고 나온 노란색 바탕에 흰색 꽃 무늬와 레이스 장식이 달린 그녀의 드레스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쿠바 계 미국인 이사벨 톨레도라는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미셸은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못지않게 센스있는 패션 감각으로 꾸준히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에 뽑힌 옷 잘 입는 여성이지만 고가의 명품 드레스대신 중저가 브랜드로 멋을 부리는 진짜 멋쟁이로 알려져 왔다.
시카고 빈민 지역에서 정치를 시작한 남편 오바마의 정치적 성향에 아내로서의 내조를 보여주려는 듯 미셸은 “비싼 옷은 안 입는다”는 패션 철학을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다. 아직은 젊은 영부인의 이런 검소한 자세가 ‘다시 시작하는 미국’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취임식에선 부시대통령 부부와 클린턴 대통령 부부의 모습도 종종 화면에 잡혔는데 두 전직 대통령 부부의 표정이 사뭇 대조적이었다. 오바마 정부의 국무 장관으로 임명된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보다 더 의기 양양한 표정이었다. 대통령직을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해보고 싶었다는 클린턴은 상당히 노쇠한 모습이었다.
8년간 정들었던 백악관을 떠나는 부시 대통령 부부의 표정은 심드렁해 보였다. 특히 물러나면서 ‘욕을 많이 먹은 대통령’이 되고 만 부시는 평소 장난꾸러기같이 활달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밤잠을 설쳤는지 시무룩하면서도 졸린 표정으로 하품을 여러번 하는 장면이 나와서 우스웠다.
취임식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보통나라가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금융위기와 여러 가지 경제적 환란을 겪으며 쇠락해가는 나라로 치부되어왔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었다. 이제 저렇게 펄펄 나는 듯한 젊은 ‘흑표범’같은 오바마를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앉힘으로써 미국은 다시 일어서서 전 세계를 향해 미국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 했다.
진취적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성향의 목소리에도 진지하게 귀를 열어놓는 오바마의 포용력과 리더십은 이제 쇠락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미국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의 신형 엔진역할을 함으로써 다시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로서 자리 잡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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