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명절 때 마다 손님오신다고 청소하고, 전부치고, 매해 똑같은 컨셉의 tv프로그램도 지겹고 뭐 할것도 없이 무료한 시간들. 시집이나 갔으면 좋겠다고 하면 어른들 말씀이 "엄마아빠 울타리에서 지내는 지금이 천국이다. 시집가 며느리 노릇, 딸노릇 하는 명절이 쉬운줄 아냐"고 하셨다.
임신하고 나서 초기엔 입덧 때문에 고생하고 중반부 이후엔 손발이 붓기 시작하고 막달엔 남산만하게 부른 배 안고 돌아다니기만 해도 숨차고 힘들어 빨리 아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면 어른들 말씀이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한거다. 나오면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하셨다.
지솔이를 낳고 나서 백일 이전에는 밤이고 낮이고 젖물리고 재우느라 늘 졸리고 피곤하고 백일이 지나 뒤집고 기고 잡고 서고 쫒아다니다가 진빠지고 밥 한끼 제대로 먹기 힘들어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하면 어른들 말씀이 "돌아보니 어린내 키우던 그 때가 바쁘고 고단했지만 그 순간이 제일 보람있고 행복한 시간이더라"고 하신다.
지나고 나면 인생을 먼저 사신 어른들 이야기 틀린거 하나 없더라. 그래서 이번엔 무조건 믿어보기로 했다. 어린내를 키우는 지금의 순간이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임을... 그리고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이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마음껏 즐기리라.
어린 시절 방 책꽂이 한켠에 꽂혀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우리 자매가 가장 사랑했던 책이었다. 그 책의 역자 이름이 "장왕록"이었는데 처음 그 이름을 보고 '세상에나 저런 이름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그때도 그 이름이 주는 임팩트가 어찌나 강했는지 그 이름을 보고 한참이나 "장왕록? 장왕록..."을 되내이던 기억이 있다. 어린시절 가장 사랑하며 몇번이고 읽고 또 읽었던 그 책의 장왕록교수의 딸이 장영희교수라는 걸 알고 나서는 어린시절부터 왠지 알고지낸 사람처럼 친근감 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의 기사가 나오면 반가운 맘에 읽고 또 신간이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갖곤 했다.
그리고 그녀의 부고를 듣고 참 많이 가슴이 아팠고 이 책을 손에 쥐고는 그녀가 쓴 마지막 책이라는 생각에 헛헛한 맘이 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마지막 유작인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웃었다. 번드르르하지도 미려한 문체의 글도 아니고 약간은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녀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나를 미소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진솔함에 반해버렸다고나 할까.
실로 오랜만에 "육아"와 관련이 없는 오직 나만을 위한 책. 지솔이를 안고 수유하면서 지솔이와 눈 한번 맞추고 책 한줄 읽고, 지솔이를 업고 재우면서 한손에 들고 왔다갔다하며... 그렇게 읽어 내려간 책. 고된 몸의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 휴식과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