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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5/21
 

김 삿 갓 (김 병 연) 은 누구인가?
검색 
[스크랩] 방랑시인 김삿갓
원본: 소쩍새 2008/08/15 오전 11:58 | 김 삿 갓 (김 병 연) 은 누구인가?












당신이

나를 스쳤으니

이 또한 인연입니다




귀천은 굳이

나누지 맙시다

애증도 행복과

불행도 정하지 맙시다




당신과 내가

사람과 짐승과 벌레가

모두 사는 세상에

함께 하였으니

되돌려 아파 할 일이면

이 만큼만

알고 지나 갑시다




그리하여

서로의 얼굴이

바람처럼 불어갈 즈음

가슴에서 울컥

설움이 솟거든

사랑했다 합시다




만났던 모든 것이

쓸쓸히 지났음에

노엽지 않을만 하거든

그 때에도 따끈한

온기가 있거든

그 가슴에서

그립다 생각합시다




풀잎도 열매도

낙엽과 모든 것의

그림자까지

그 속에

내가 있었음을

그래도 다행히

우리였음을




몹시도 사랑했다면

인연의 덕이라

그리합시다









-훈장을 훈계하다-



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

문장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

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

소 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

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

나는 날아 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

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 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



訓戒訓長 훈계훈장

化外頑氓怪習餘 文章大塊不平噓 화외완맹괴습여 문장대괴불평허

여盃測海難爲水 牛耳誦經豈悟書 여배측해난위수 우이송경기오서

含黍山間奸鼠爾 凌雲筆下躍龍余 함서산간간서이 능운필하약용여

罪當笞死姑舍己 敢向尊前語詰거 죄당태사고사기 감향존전어힐거



*김삿갓이 강원도 어느 서당을 찾아가니 마침 훈장은 학동들에게 고대의 문장을 강의하고 있는데

주제넘게도 그 문장을 천시하는 말을 하고 김삿갓을 보자 멸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훈장의 허세를 꼬집는 시를 지었다.








방랑시인 김삿갓 [본명:김병연]





1807(순조 7)∼1863(철종 14).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 경기도 양주 출생.



평안도 선천(宣川)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다. 노복 김성수 (金聖洙)의 구원으로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 공부하였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안근(安根)은 홧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에 응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로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각지의 서당을 주로 순방하고, 4년 뒤에 일단 귀향하여 1년 남짓 묵었다. 이때 둘째아들 익균(翼均)을 낳았다. 또다시 고향을 떠나서 서울·충청도·경상도로 돌았다. 도산서원(陶山書院) 아랫마을 서당에서 몇 해동안 훈장노릇도 하였다. 다시 전라도·충청도·평안도를 거쳐 어릴 때 자라던 곡산의 김성수 아들집에서 1년쯤 훈장노릇을 하였다.





충청도 계룡산 밑에서, 찾아온 아들 익균을 만나 재워놓고 도망하였다가 1년 만에 또 찾아온 그 아들과 경상도 어느 산촌에서 만났으나, 이번에는 심부름을 보내놓고 도망쳤다. 3년 뒤 경상도 진주땅에서 또다시 아들을 만나 귀향을 마음먹었다가 또 변심하여 이번에는 용변을 핑계로 도피하였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同福)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신세를 졌다. 그 뒤에 지리산을 두루 살펴보고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한많은 생애를 마쳤다. 뒤에 익균이 유해를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김병연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怜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다. 그 파격적인 양상을 한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스무나무 아래 앉은 설운 나그네에게/망할놈의 마을에선 쉰밥을 주더라/인간에 이런 일이 어찌 있는가/내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느니만 못하다(二十樹下三十客 四十村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이 시에서 전통적인 한시의 신성함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 그 양식 파괴 등에서 이러한 파격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문학사에서는 ‘김삿갓’으로 칭해지는 인물이 김병연 외에도 여럿 있었음을 들어 김삿갓의 이러한 복수성은 당시 사회의 몰락한 양반계층의 편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과거제도의 문란으로 인하여 선비들의 시 창작기술은 이와 같은 절망적 파격과 조롱·야유·기지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78년 김병연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 무등산 기슭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19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시비를 세웠다. 그의 시를 묶은 ≪김립시집 金笠詩集≫이 있다.



≪참고문헌≫ 綠北集(黃五), 海藏集, 大東奇聞, 金笠詩集(李應洙編, 有吉書店, 1939), 金笠의 詩와 諷刺精神(金容浩, 漢陽 3권 7호, 1964), 金笠硏究(尹銀根, 고려대학교교육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79).(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삿갓의 사상



김삿갓의 방랑 생활은 출발 동기부터 불평객과 반항아의 색채를 띠고 있다. 그것은 그가 가명(假名)을 김란이라 하고 난고(蘭皐) 외에 이명(而鳴)이라는 호(號)로 불리고 머리에 삿갓을 쓴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명(而鳴)은 중국 서적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있는 불평이명(不平而鳴)이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불평과 반항은 계급적 몰락에서 오는 개인적 입장에서 시작되었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폭넓은 사회 경험을 함에 따라 세계관과 사회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 조선 왕조에 대해 은근히 반대의 감정을 표시한 것은 물론 봉건 질서와 제도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였으며 빈부의 차가 심한 사회적 불합리를 저주하고 양반 귀족들의 죄악과 불의, 거만, 허식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중년을 넘으면서 점점 더 심해졌다. 그의 사상에 이러한 변동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폐족이라는 계급적 지위, 종의 집에서 자라난 유년 시기의 성장 과정, 또는 일생의 방랑 생활이 말해주는 불우한 사회적 처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 그가 살던 조선 말기의 사회 환경과 시대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행한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깊은 동정을 표시하고 만인이 갈망하는 벼슬을 포기함과 동시에 당시 봉건 질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그 사상과 태도 속에는 멸망과 붕괴에 직면한 민중들과 사회의 시대적 기운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사상에서 가장 중심적인 경향은 강한 의분과 정의감에 기초한 반항 정신과 풍자 정신이었으며 인도주의로 받침되는 평민 사상이었다. 이 외에 자유분방함, 노골적인 연애 감정, 낙천성과 풍부한 유머, 개개 사물에 대한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관심 등의 경향도 있으나 그것은 부차적인 의의를 가지거나 중심 사상의 간접적이며 우회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그의 사상과 결부하여 몇 가지 특징을 말한다면



첫째, 이러한 사상 경향의 심도와 강도가 매우 철저하고 강렬했다.



일생 동안 방랑 생활을 하는 중 그의 아들이 세 번이나 찾아와서 귀가를 간청하였으나 끝까지 돌아가지 않은 점, 모친이 계신 외가가 있는 마을을 지날 때는 들러서 직접 만나지는 않고 산에 올라가 나무하러 온 아이들에게 안부를 묻고 갔다는 이야기, 친구 정현덕의 주선으로 왕의 사면을 받고 벼슬 받을 기회를 거절했다는 사실 등에서 그러한 특성을 볼 수 있다.



둘째, 사상 경향의 표현 방법과 형태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였다.



우선 방랑 생활 자체가 불평과 반항의 한 표현이었다. 그 이전의 많은 반항아들 역시 이 방법을 취했으니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일생을 방랑객으로 지냈고 봉건 체제에 반항했던 허균(許筠)도 강원도, 경기도 등을 방랑하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기이하고 광적(狂的)인 행동도 반항적 태도의 한 표현이었다.



황오(黃五)의 녹차집(綠此集)에는 '하루는 정현덕이 내게 편지를 보내 오기를 천하 기남자(奇男子)가 여기 있는데 한번 가 보지 않겠는가 하기에 같이 가 보니 과연 김삿갓이더라. 사람됨이 술을 좋아하고 광분하여 익살을 즐기며 시를 잘 짓고 취하면 가끔 통곡하면서도 평생 벼슬을 하지 않으니 과연 기인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석우는 해장집(海藏集)에서 '과거장에 들어가되 어떤 때는 수십 편을 짓고 나오고 어떤 때는 한편도 안 짓고 나오니 그 광태가 이와 같더라....과거장 밖의 술집에서도 그의 이름을 사랑하나 그 광태를 무서워하여 술을 모조리 먹어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그의 기행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 상대방을 공격할 때는 큰소리로 웃어주기도 하고 풍자와 재담으로 비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취하였다. 이것은 일반 대중이 그와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일부 양반들도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한편 즐겨 쓴 삿갓 역시 변형된 투쟁 무기였으니 보기 싫은 당시 사회와 세상에 대한 불평 불만의 사상적 표현이었다. 김삿갓은 조부를 탄핵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죄인이라기 보다는 봉건적인 지배 계급에 대한 반항아라는 사회 정치적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출처 : 김삿갓 풍자시 전집, 실천문학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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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방랑 시인 김삿갓의 유명한 일화.





언제나 그렇듯 갓쓴 선비네들은



정자에 앉아 옆에 계집을 꿰어차고는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삿갓을 쓴 행인이 그들의 틈에 끼더니



시를 쓸테니 술대접을 해 달라고 부탁했대요.



양반네들이 열이 채서 그 행인을 쫓으려고 했지만



한 양반이 호감을 느끼고는



선비들을 말려서 그 삿갓쓴 행인에게 시를 지어보게 했어요.



그 행인은 정자에 앉자말자 과제를 내라 했습니다.



너무 당당한 모습에 당황한 양반들.



양반들은 꾀를 내어 자신들의 이름을 이용해 시를 지으라 했지요.



그 양반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원 생원, 문 첨지, 서 진사, 조 석사'







그 말을 듣자 말자 대뜸 종이위에 휘갈겨 쓴 그 삿갓나그네는



종이를 내어 놓고는 술을 단숨에 들이키곤



길을 떠났습니다.....







그 선비들이 삿갓쓴 나그네가 지은 시가 궁금해서 종이를 봤는데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日出猿生員 (일출원생원) -> 해뜨자 원숭이 들에 나오고

黃昏蚊添至 (황혼문첨지) -> 날 저무니 모기들 처마에 모여드네.

猫過鼠盡死 (묘과서진사) -> 고양이 지나자 쥐는 모조리 죽고,

夜出蚤席射 (야출조석사) -> 밤 들자 벼룩은 자리에 나와 쏘네.







원생원을 원숭이로. 문첨지를 모기로.



서진사를 쥐로. 조석사는 벼룩으로....







김병연. 아니, 희대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그렇게 틀에박힌 양반들의 허위의식과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며



팔도강산을 떠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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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가련에게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可憐妓詩 가련기시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이별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離別 이별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自嘆 자탄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차호천지간남아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평수삼천리랑적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청운난력치비원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三更越鳥聲南枝 경파환향몽기좌 삼경월조성남지



*월조(越鳥)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설거지물을 밖으로 휙~ 뿌린다는 것이 그만 '김삿갓'에게 쏟아졌다. 구정물을 지나가던 객(客)이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하지만, '삿갓'의 행색이 워낙 초라해 보이는지라 이 아낙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선다.



그래서 '삿갓'이 등 뒤에 대고 한마디 욕을 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상스런 욕을 할 수는 없어서 단 두 마디를 했다. "해. 해."



이게 무슨 욕인가? 그러나 잘 풀어보면 해=年이니까 "해. 해." 그러면 '년(年)'자(字)가 2개니까 2年(=이 년!)이던지 아니면 두 번 연속이니까 쌍(雙), 곧 '雙年'이 될 것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 한글로 회문시를 지어보자고 제의했지만 적어도 김삿갓이 회문시를 지으려 했으면 몇 수 십 개는 지었을 것이다.



그에 관한 일화나 유머와 재치, 해학에 가득 찬 멋진 시가 어디 한 두 개인가? 한 농부의 처가 죽어 그에게 부고를 써달라고 하자 '유유화화(柳柳花花)'라고 써주었다는 얘기는 국민들이 외울 정도이다.



'버들버들하다가 꼿꼿해졌다'는 뜻이 아닌가? 이처럼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표현하기도 하며 한시를 한글의 음을 빌어 멋지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그의 솜씨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사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죽시 竹詩>이다. 그 시의 첫머리는 이렇다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이것을 옛 한시대로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어떤 뜻이 되나? "이 대나무 저 대나무 되어가는 대나무, 바람이 치는 대나무, 물결이 치는 대나무"이다. 제법 그럴 듯 한 것 같은데 사실은 해석이 틀렸다. 이 시의 비결은 대죽(竹)에 있다. 여기서 김삿갓은 대를 대나무가 아니라 "...대로"의 '대'로 썼다. 그렇게 해서 다시 이 시의 첫 구절을 다시 읽어보면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 된다.



엄격한 정형이 있는 한시가 아니라 우리말의 시조를 흉내낸 멋진 한시가 된다.



말하자면 시조를 한자의 운에 맞추어 부른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시 전체를 보면







此竹彼竹化去竹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竹竹生此竹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지만



是是非非付彼竹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고 제대로 붙이세



賓客接待家勢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歲月竹 -시장에서 사고 파는 것은 시세대로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는 내 마음대로 함만 같지 못하니



然然然世過然竹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가 된다.








또 그 유명한 구월산이란 시는 어떤가?





昨年九月過九月- 작년에는 구월에 구월산을 넘었는데



今年九月過九月- 금년에는 구월에 구월산을 넘는구나



年年九月過九月-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넘으니



九月山光長九月- 구월산 경치는 언제나 구월이로다.













김삿갓의 해학 가운데 비교적 많이 알려진 것이 "스무 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로 시작하는 <이십수하(二十樹下)>라는 시이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시에서 二十은 스무이고, 三十은 서러운 또는 설은이고, 四十은 마흔, 곧 망한, 망할을 뜻한다. 五十은 쉰, 七十은 일흔, 곧 이런이 된다.



그런데 <이십수하>라는 시 제목을 잘 보면 상당히 심한 욕임을 알 수 있다. '수'를 나무 또는 놈 등 훈으로 읽으면 '수하'는 '놈아'가 된다.



이십은 경음으로 읽으면 욕을 음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점잖게 해석하면









스무 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망할 놈의 집에서 쉰 밥을 먹는구나,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으리.



로 되는데, 스무 나무라는 말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심한 상소리 욕이기에 그냥 이렇게 점잖게 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인구에 회자되는 시,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는 뜻으로 풀면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가 되지만 한자음을 그대로 읽는 경우 그 발음이 뜻하는 바는 익히 발음 그대로이다.













詩 : 무제(無題)







四脚松盤粥一器 사각송반죽일기



天光雲影共排徊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주인막도무안색



吾愛靑山倒水來 오애청산도수래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김삿갓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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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평생시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섣달 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 인심 박해지고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남녘 지방은 옛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만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천금 자제와 만석군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蘭皐平生詩 난고평생시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불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初年自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자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簪纓先世富貴人 花柳長安名勝庄 잠영선세부귀인 화류장안명승장

隣人也賀弄璋慶 早晩前期冠蓋場 인인야하농장경 조만전기관개장

髮毛稍長命漸奇 灰劫殘門飜海桑 발모초장명점기 회겁잔문번해상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終南曉鍾一納履 風土東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리 풍토동방심세양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호 세역궁도촉번양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搖頭行勢豈本習 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구도생유소장

光陰漸向此中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중실 삼각청산하묘망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千金之子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자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빈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빈발창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일방황중로방



*난고는 김삿갓의 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