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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12월4일자 <목도리 할머니의 굿모닝 프레지던트> 기사입니다. 국민일보-쿠키미디어 양해 하에 청와대 블로그를 통해서도 네티즌 여러분께 소개드립니다. ----------------------------------------------------------------------------------------- 할머니의 하루는 밤 10시에 시작된다. 일부러 늦은 저녁을 차려 먹고 서울 송파구 삼전동 큰딸 집을 나선다.
키 150㎝ 안팎의 노인 걸음으로 15분쯤 가서 3423번 버스를 타면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 도착하는 시각이 밤 11시다.
면적 54만㎡ 시장에서 할머니 자리는 ‘기둥 옆’이다. 가락시장 북문으로 들어가 좌측 대아청과 배추 1매장 입구의 두 기둥 중 왼쪽 기둥 앞에서 배추 우거지와 무청을 판다.
시장 속 노점상, 박부자(74) 할머니. 상인들은 ‘시래기 할매’ ‘목도리 할매’라고 부른다.
지난달 30일 밤에도 할머니는 정확히 10시58분 기둥 옆에 도착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벌써 1년 됐네요.
“뭐가?”
-이명박 대통령이 목도리 주고 간 게 지난해 12월 4일이잖아요. 그때 대통령 붙들고 많이 우시던데.
“하하하하, 그라네. 벌써 1년 되았네. 그때 대통령이 (매장 진입로를 가리키며) 요∼리로 왔으믄 알아보고 인사혔을 터인디, (매장 안을 가리키며) 쩌∼리 뒤에서 갑자기 와갔고 귀한 분이 말을 거니께 너무 반가워서 울었제. 대통령이 ‘얼마나 힘드세요’ 했는데, 내는 대통령헌티 한 마디도 몬혔어.”
기둥 뒤 얌전히 덮어놓은 방수천을 벗기자 우거지와 무청 묶음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20m 떨어진 매장 담벼락 밑에는 ‘재산 1호’ 손수레와 플라스틱 궤짝 예닐곱 개가 있었다. 손수레로 궤짝을 실어다 땅바닥에 ‘진열대’를 만들고, 우거지와 무청을 올려놓고, 한바탕 비질을 하니 장사 준비가 끝났다.
“전에는 시장서 노점 단속한다고 몇 번씩 손수레를 갖고 갔는디, 대통령 왔다 가신 뒤론 내 건 줄 알고 안 가져가, 하하하.”
밤 11시면 무 배추 등 청과물 경매가 시작된다. 강원도 강릉, 전남 무안·해남 등 전국에서 모인 트럭 사이로 우거지와 무청이 쌓인다. “우거지는 한 단에 육칠천원이여, 무청은 칠팔천원 혀고. 무청이 더 잘 팔려.” 손수레를 끌고 옆 매장으로 간 할머니는 20여분 만에 무청을 가득 담아 돌아왔다.
“대통령이 그때 무청 석 단을 샀는디, 삼칠이 이십일, 이만천원이잖여. 안 받을라꼬 혔는데 자꾸 주더라고. 근디 한 단만 가져가고 두 단은 놓고 갔어.”
-그때 받은 목도리는 어떻게 하셨어요?
“집에 잘 모셔뒀어. (검은 조끼 밑에 입은 파란 점퍼를 가리키며) 이 파카잠바도 청와대서 받은겨. 대통령 왔다 가시고 쫌 있응께 청와대서 밥 먹으러 오라더라고. 안국역으로 갔더만 차가 잔뜩 서 있는디, 전국서 (청와대 오찬 참석자가) 한 250명 왔디야. 그때 이 파카잠바 받은겨. 아주 따셔.”
할머니는 ‘몸뻬’ 바지에 파란 점퍼 위로 두툼한 조끼를 덧입고 있었다. 양 손에 목장갑, 팔에 토시를 차고, 허리춤엔 붉은 노끈이 허리띠처럼 감겨 있다. 노끈에 무청 다듬는 작은 칼이 매달려 있었다. 자꾸 잃어버려 묶어 뒀다고 했다.
대통령이 다녀간 뒤로 “시래기 할매가 임대 아파트를 한 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할머니 노점이 관광지라도 되는 양 찾아와 “대통령이 어디쯤 서 계셨어요?”라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벨 사람이 다 오더라고. 한번은 부산서 돈 좀 있어 뵈는 여자가 왔는디, 한 오십 됐을랑가, 자기 재산 문제가 좀 있으니 청와대에 말 좀 넣어달라는 거여, 나보고.(당시 이 대통령이 할머니에게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한 말이 보도됐다) 또 한번은 점잖게 생긴 남자가 와서는 자꾸 집이 어디냐, 집에 갈 때 같이 가자, 목도리 좀 보자, 돈은 나왔냐, 묻더라고. 내가 무슨 큰 돈이라도 받은 줄 알고. 그 일(대통령 방문) 있고, 어떤 목사님이 전화하셔 갖고 30만원 부쳐주셨어. (돈 받은 건) 그기 다여.” 
<국민일보 2009년 12월 4일자 지면 일부 캡처이미지> 새벽 1시15분. 할머니 휴대전화가 울렸다. “손님 온디야.” 10년 이상 같은 시장에서 장사하다 보니 노점이라도 ‘단골’과 ‘거래처’가 있다. 주로 식당 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잠시 후 그랜저 승용차가 멈춰 서더니 우거지 두 단과 무청 한 단을 싣고 갔다. 할머니가 밝게 웃는다.
-개시하셨네요.
“개시혔어. 저 손님은 꼭 일이천원씩 더 주고 가. 만날, ‘더 주고 가는 사람이에요’ 그람서 전화로 우거지 있냐고 물어보고 와.”
-요즘은 장사 잘 되나봐요?
“그때(대통령 왔을 때)보다믄 쪼까 나슨(나은) 것 같어.”
-하루 얼마나 버세요?
“한 2만원, 최고 많이 벌면 3만원. 한 달에 얼마 버는지는 몰러. 벌면 급한 대로 쓰니께.”
할머니 고향은 전남 완도군 고금면이다. 1995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2남 3녀가 있는 서울로 왔다. 자녀들도 형편이 어려웠다. 송파구 거여동 큰아들 집에 머물며 집안일을 거들었다(큰아들이 이사해 지금은 큰딸 집으로 옮겼다).
“하루는 여그 시장 있단 얘기 듣고 거여동 종점서 버스 타고 와봤어. 노인들이 트럭 옆에서 무청 주워다 팔더라고. 나도 따라 줍는데 (노인들이) 못 줍게 하는 거여. 그래도 서너 달 주웠더니 껴 줬지. 그때부터 계속 이 일만 하는 겨.”
-원래 밤에 일하셨어요?
“아녀, 아침밥 해주고 나와서 저녁에 들어갔어. 몇 년 전부터 노점 단속이 생겨서 밤에 나와. 밤 11시 출근, 오전 9시 퇴근, 하하하. 옛날엔 배추 싣고 온 사람들이 우거지는 우리 같은 사람들 주우라고 놔뒀어. 줍기 바빴지. 지금은 그 사람들이 직접 팔려고 주지도 않어. 거서 좀 싸게 사다가 500원, 1000원 더 붙여 파는 겨.”
새벽 4시가 다 되도록 할머니는 아무 것도 입에 넣지 않았다. 손님과 흥정하거나, 배추 트럭 주변을 서성일 때가 아니면 제자리에 앉아 무청을 다듬었다. 할머니는 대통령을 가리켜 ‘믿는 양반’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울 엄니가 그렇게 교회를 잘 믿으셨어. 그려서 그런지 돌아가실 때도 편히 가셨고. 둘째 사위가 창신동(서울 종로구)서 개척교회 목사여. 큰아들도 신학교 댕겼어. 믿는 양반이 잘 허게 기도혀야지.”
오전 7시, 날이 밝으면서 할머니에게 말 붙일 기회가 점점 줄었다. 식당이나 가정에서 음식 재료를 사러 나온 소형 트럭과 승용차가 할머니 노점에 자주 멈춰 섰다. 오가는 돈은 주로 1000원짜리다.
-할머니,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지. 그래도 건강허니께, 아들헌티 손 안 벌리는 것도 얼마나 감사혀. 청와대 밥 먹으러 갔을 때 어떤 젊은 사람이 대통령헌티 그라더라고, 아파트 사기 힘드니께 도와달라고. 내가 속으로 그렸지, 노력허믄 다 먹고 사는디.”
-대통령이 다시 오면 뭐라고 하실 거예요?
“인자 웃어야지라, 하하하.”
대통령 붙들고 울음을 터뜨렸던 할머니, 이날은 참 많이 웃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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