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어떤 인연들이 있다 아릿한 인연도 있었고, 꿈처럼 몽롱했던 인연도 있었고, 상처가 된 인연도 있었다.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 보고싶다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왔고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땜시롱 입원도 하였다. 그런, 그런 나를 아는 친구가 나와 그녀가 잘되길 응원해주겠다라고 했다.
그런데, 여인이 그를 사랑했다. 수많은 시간을 숨죽이며 자갈을 씹어 삼키는 듯한 순간들을 겪었지만 내가 사랑했듯 여인은 그를 사랑한다라고 그렇게 기원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또한 상처가 되었다. 그가 나를 속이고 여인과 사랑한 것은 용서가 되었지만 그 여인마저 속이고 결국 돌아선 것은 지금도 용서하기 힘들다
멀고 먼 낯선 곳에서 어떤 인연이 있었던가 친구의 연을 갖게된 사람이 있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한 그였고, 팔걷어 붙이고 나서서 사람들을 독려하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술한잔에 걸출하게 부르던 그의 노래가 지금도 들려온다
그런데 사람이 가까이서 보게되니 달랐다 한마디의 축하에 인색한 그의 모습에, 한줌의 배려가 부족한 그의 모습에, 한순간의 냉소를 뿌리던 그의 모습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가 자리를 떠난지 십수년이 지났건만 사람이 떠나간 마음의 빈 공간은 지금도 전부는 채워지지 않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전화가 울린다 밤늦은 시간 술취한 목소리가 저 너머에서 들려온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각나면 전화걸어오는 친구가 있다. 귀찮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전화가 없는 날은 기다려지고 전화기를 쳐다보기도 했다 나를 찾는 전화가 울리면 귀찮아하고 번거로워하면서도 친구가 기다리는 곳으로 눈썹이 휘날려라 달려간다
그의 10% 부족한 진실에도 눈을 감아주었고, 그의 10% 넘치는 거짓말에도 속아주었다. 그에게 절교를 선언하고서 그가 먼저 차갑게 돌아서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우연히 길에서 스쳐지나가기라도 했을땐 먼저 말걸어주길 바랬다 그랬다면 쑥쓰러워하면서도 그의 어깨를 한번 툭치고 웃어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그대들도 그런가...? 나와의 인연이 끝난 이후에도 마음 깊은 곳에선 아직도 다하지 않은 인연이 있고, 이렇게 되돌아보는 적지 않은 시간이 그대들에게도 있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죽는 그날까지 내 어깨 한번 툭치며 반갑다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 내가 먼저 그러지 못한다라는 거 알아주면 그래서 그대가 먼저 다가와주면 좋겠다 내가 버린 그대들, 버려짐과 동시에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버린 그대들, 그대들이 그립다
인연은 늘 부족함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만족할만한 인연이라면 아마 상대쪽에서 나를 부족하게 볼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나 부족한거, 그러기에 인연이란 것을 이제는 아는데, 이제 더는 새로운 인연이 들어올 방이 없어보인다 먹고살기 빠듯한 40줄에 막 들어선 내게 있어 일하고 돌아오면 쓰러지듯 몸을 뉘이는 내게 있어 한평남짓한 보금자리를 지키기위해 피터지는 삶은 현장에 선 내게 있어 이제 더는 친구가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갈 열정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이젠 그것을 인연이라고 생각할란다
새벽, 인적뜸한 거리, 그 길 중앙에 선 출근길인 듯한 한 중년의 남자가 내 시선안에 들어왔다.
남자,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팔을 든다. 손을 흔든다.
한번, 두번, 세번.... 머리위로 한참 올라간 팔이 인적뜸한 새벽거리를 휘젖는다. 멀리, 그 남자가 바라보는 저어기 멀리 너무 멀어서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저어기 멀리 앞치마를 두른 여인하나가 남자를 바라보며 서 있다.
새벽, 인적뜸한 거리, 일직선 아스팔트 길위에 중년의 남자하나와 중년인 듯한 여자하나가 서로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먼 거리에서 마주보며 팔을 흔든다.
100미터도 더 걸어 나와서 뒤돌아본 남자 100미터도 더 간 남자를 계속해서 바라보던 여자, 그들이 중년이란걸, 이제 곧 하얀 머리 파뿌리의 노인이 될거란걸 생각하면 웃겼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니 그냥 웃겼다. 마음속이 촉촉한 웃음으로 젖어간다
할배는 할매의 손을 잡고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 그 옆, 인도위를 그들이 걸어가고 있다. 발맞주어 왼발, 오른발, 왼발, .... 그리곤 멈춰선다. 한 5초간 멈추었다가 다시 왼발, 오른발, 왼발.... 5초간 멈추고,
한낮, 어른인 두 사람이, 손잡고 나란히 정확히 세걸음 걷고나서 멈추었다가 다시 세걸음 걷고, 이렇게 반복하며 걸어가는 그 모습을 보고 난 생각했다. ㅋㅋㅋ 웃긴다^^
몸이 불편해보이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한낮의 그 시간, 내가 이 길 저쪽에서 이쪽까지 오는동안 그들이 걸어간 거리는 불과 십수미터 그 길은 아마도 그녀를 위한 산보가 아니었을까... ㅋㅋㅋ 그래도 웃긴다. 무슨 태엽인형도 아니고...
이제 사랑이란 마음조차 지겨울때도 되었을 법한 쭈글쭈글하고 온갖 크고 작은 점들로 가득들어찬 얼굴.... 이젠 사랑이란 기억조차 삭아서 사라졌을 법한 듬성듬성, 새하얗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그, 그 쭈글쭈글한 손끝엔 그가 평생 만져왔을 그녀의 쭈글쭈글한 손이 잡혀있다.
무심히 지나치는 차들과, 표정없이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세상의 바쁜 길위의 잠시잠깐 정지된 듯한 걸음걸이가 너무나 아득해서 마치 초침의 바쁜 걸음걸이뒤에 누워있는 움직임을 느끼기 힘든 시침을 떠오르게 한다. 바라보는 내 마음에 촉촉한 출렁임이 뱃속깊은 곳으로부터 전해져온다 바라보는 마음에 탄성이 배어온다. 아 ... 저렇게도 늙을 수 있는거구나...
할배할매와 같은 나이가 되면 아내와 함께 천천히 한낮의 길을 걸어가는 것 내 바램이다. 그와 그녀가 보여준 내 꿈이다.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이다. 옛날 고등학생때인가 한번 심하게 감기에 걸린적이 있었다. 음식도 잘 못먹고, 몸은 불덩이고, 주사맞고 약먹어도 그저그랬고, 하루종일 누워있었는데 몸위로 덮힌 이불이 너무나 무거워서 제대로 뒤척이지도 못했었다. 엄마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불덩어리처럼 뜨거운 이마를 쓸어내리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아이가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는데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저 아이 옆에 앉아서 몸을 부디며 눈물만 뚝뚝 흘리셨다.
외지에 나온지 12년째, 그동안 집에 돌아간 적은 몇번 안되고 지금은 2년째 집에 가지 않고 있다. 가끔 전화너머로 엄마 목소리만 한번씩 들을뿐 엄마 얼굴도 못보고, 엄마 돌봐드리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다.
오늘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감기에 걸린 듯 하다 몸이 후들거리고, 춥고, 뼈가 뻐근하다. 내장이 뒤틀린 듯 아프고, 허벅지가 덜덜거린다. 아무것도 안먹으면 더 몸이 쳐져서 안좋으니 일어나 국을 끓인다. 상위에 국과 밥솥에서 꺼낸 차가운 밥을 한공기 퍼 놓고 먹고 있으려니 엄마 생각이 난다.
뒤척이기조차 힘들정도로 무겁게 이불을 덮어주는게 고작이던 엄마 머리맡에 앉아 이마를 쓸어내려주던 엄마 나를 바라보며 어쩌면 좋으냐며 나보더 더 울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