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안에 호랑이가 떠나도록 만들게요"
- ▲ 삽화=양동석
고려 시대에 뚝섬은 한양(서울) 동쪽에 있는 벌판이라고 해서 ‘동교’로 불렀습니다. 고려 현종 때는 이지역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한양 부윤이 강감찬 장군에게 한양 근처에 호랑이들이 많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고 걱정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때 강감찬은 한양 판관 벼슬에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닷새 안에 호랑이들을 모조리 사라지게 하겠습니다.”
강감찬은 한양 부윤에게 이렇게 장담하고 편지 한 통을 써서 아전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북동에 나가 보아라. 바위에 앉은 늙은 스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스님에게 이 편지를 전하고 스님을 데려오너라.”
다음 날 아침, 아전은 강감찬이 시키는 대로 북동으로 갔습니다. 과연 늙은 스님이 바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전은 스님에게 편지를 건네주고는 강감찬에게 데려왔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죄 없는 사람들을 해치느냐? 닷새 안에 여기를 떠나도록 하여라. 만약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를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한양 부윤은 곁에서 듣다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스님에게 그게 무슨 소리냐?”
“호랑이 우두머리가 늙은 스님으로 변신해 있는 것입니다.”
강감찬은 스님에게 부탁했습니다.
“네 진짜 모습을 부윤 대감께 보여 드려라.”
그러자 스님은 집채만한 호랑이로 변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강감찬은 아전을 불러 명령했습니다.
“동교에 좀 다녀오너라. 특별한 일이 생기면 내게 와서 보고하여라.”
아전은 동교에 갔다가 오후에 강감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래, 특별한 일이 있었느냐?”
“예, 집채만한 늙은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호랑이 수십 마리를 데리고 강을 건너갔습니다.”
“호랑이 우두머리가 약속대로 동교를 떠났구나.”
호랑이들이 사라지자 그 뒤로는 동교에서 호랑이에 대한 피해가 한 건도 없었다고 합니다.
뚝섬은 임금의 사냥터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대 태조 때부터 9대 성종 때까지 임금이 직접 와서 사냥을 한 것이 모두 151회나 되었습니다. 임금이 사냥을 나가거나 군대를 사열할 때는 그 표시로 독기를 세웠다고 합니다. 독기는 큰 깃발을 뜻합니다. 이곳은 임금이 자주 사냥을 나와서 독기를 세웠기 때문에 ‘독기를 세운섬’이라고 해서 ‘독도’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깃발의 이름이 ‘독’이 아니라 ‘뚝’이기 때문에 ‘뚝도’ 또는 ‘뚝섬’이라고 불렀습니다.
〈하편에 계속〉
- ▲ 현재 '서울숲'으로 변한 뚝섬.
서울시 성동구와 광진구로 나누어진 성수동·화양동·중곡동·능동·군자동·용답동·송정동·구의동·자양동·광장동 일대를 ‘뚝섬’이라고 부른다. 이름을 들으면 섬 같지만 섬은 아니고, 중랑천과 한강에 둘러싸여 있어 섬처럼 보인다. 옛날에는 동교, 독도, 뚝도, 뚝섬, 살곶이벌 등으로 불리었다. 서울 도성 동쪽 물과 풀이 넉넉한, 평평하고 넓은 땅이어서 임금의 사냥터, 말을 먹이는 목장 등으로 이용되었다.
이곳이 ‘뚝섬’이라 불린 데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초부터 이곳에는 ‘살곶이장’이라는 목장이 있어 나라에서 말을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1555년에는 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30리나 되는 땅 둘레에 돌담을 쌓아 놓았다. 그래서 멀리서 이곳을 보면 마치 둑을 쌓은 섬처럼 보여 ‘뚝섬’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뚝섬은 1940년대에 유원지가 되었고, 1954년부터는 경마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1980년대 이후 시민체육공원을 거쳐 2005년 6월부터는 ‘서울숲’이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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