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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이 아닌 석파랑
석파정에서 옮겨놓은 대원군 별장 석파정터는 현재 개인소유로 되었답니다.

-고급 음식점인 석파랑

-소전 손재형이 1958년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뒤뜰 바위 위에 옮겨놓은 것.
규모는 10평으로 크지 않으나 중국식으로 지은 벽돌집으로 둥근 창을 낸 것 등이 특징입니다.
현재 음식점을 하고 있는 석파랑은 손재형이 30년간 전국에서 철거되는 건축자재, 특히 운현궁, 선희궁, 칠궁, 이완용 별장 등이 헐린 목재, 기와 등을 사용하였고 덕수궁 돌담 철거때도 30트럭분을 실어와 담장을 쌓았다고 합니다.
1989년 김주원씨에게 팔려 지금에 이른답니다.
별채는 보기드문 호벽(胡壁)으로, 보통때는 청회색이지만 비를 맞으면 이끼가 낀 것처럼 파랗게 색이 변합니다.
소전 손재형은 추사김정희의 세한도를 일본에게 가져오게 한 분이기도 하며 그 일화로도 유명하지요.



석파정은 철종 때 김홍근이 지은 것인데 후에 흥선대원군이 우격다짐으로 빼앗았습니다.
김홍근이 이 정자를 팔려하지 않자 대원군은 고종을 이정자로 불러 함께 연회를 즐겼고,
김홍근은 왕이 행차했던 곳을 신하가 쓸수 없다 하여, 울며겨자먹는 격으로 대원군에게 내주었답니다.


-화살나무

붉게 붉게 타오르다 떨어진 꽃잎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어찌나 이쁘던지요.... 낙엽의 미학....
실물이 훨씬 이쁘답니다.





-이곳에서난을 치고 천하장사를 두고 호령하였을 대원군을 그려봅니다.

-부암동 부침바위
1970년 자하문길이 확장될 때 없어진 돌로, 오목한 곰보자국이 나있는 2m 바위입니다. 이는 여인들이 아들낳기를 기원하여 돌을 문질렀기 때문입니다.

-홍지문


-멀리 성곽이 보이는군요.

-홍지문 천장

-홍지문 (유형문화재33호)
서울의 서북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숙종 45년(1719)탕추대성을 쌓으면서 건축하였지만,
일제때부터 티락하기 시작하여 1921년 1월 문루가 내려앉았고
8월 장마로 홍제천 물이 불어나자 오간수문마저 유실되었답니다.

-1977년에 복원된 오간수문



-인왕산 기차바위입니다.

-보도각 백불 (유형문화재 17호)
10m 높이의 바위에 부처를 새긴 마애불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장의사에 딸린 불상일수도 있다).
부처바위, 해수관음불상으로도 부른답니다.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는 '장의사 앞에는 냇물이 돌아 흘러 몇리 아래 불암이 있는데, 이 바위에 불상을 조각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도 '옥천암의 불상은 언덕 바위를 깎아서 만들어 이를 해수관음불상이라고 합니다.
근처에 약수가 있는데 물을 마시기 전에 짠 것을 많이 먹은 뒤에 물을 종일토록 마셔 배가 불러야만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고'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불'이 된 것은 고종때, 대원군의 부인 민씨가 아들이 왕이 되자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들였는데, 이 때 흰칠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옥천암의 약수가 없어졌더군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마애불상 앞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 : :
부처 뒷면바위를 꼭 붙잡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에 맨질맨질해졌더군요.
저도 만져보고 왔는데.... 우리 아들 수능대박나려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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