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마을터와 나란히 북한산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도로를 내는 바람에 구척장신(?)의 바위가 채석장처럼 변했더군요.
탕춘대 또는 연융대로 불리우며,
영조 때 군사 훈련을 받는 곳이라고 한답니다.
또 조선초 연산군이 미녀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연희를 즐기기 위해 만든 놀이터로서
사방 9 척되는 바위 위에서 즐겼다고 해서 유래하였답니다.
현재는 흔적이 없고 표석만 있답니다.
-탕춘대 표지석
-세검정 차일암
-세검정 정자
-세검정
인조반정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정자로, 영조 19년(1743)에 세워졌습니다.
광해군15년(1623) 반정군이 연서역(현 연신대)에서 집결하여 불광동 독바위 골에서 은거하다 산을 넘어 현재 세검정 부근을 거쳐 창의문을 깨뜨리고 도성으로 진입하였습니다. 그후 120년이 지난 뒤 영조가 창의문을 지나다가 옛일을 회상하며 정자를 세우게 하여 '세검정(洗劍亭)'이라는 현판을 써서 달았습니다.
세검(洗劍)이란 뜻이 실제 반정세력들이 이곳에서 칼을 씻었기 때문인지, 영조가 정의를 세운다는 의미를 칼을 씻었다는 상징적 의미로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답니다.
이곳 개울가는 넓적한 너럭바위가 많아
여름철 차일을 치고 놀이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고요.
실록편찬 후 세초하던 곳으로 더 알려졌지요.
-"세초"란
글씨 쓴 종이를 물에 씻어 내용을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당시 귀한 종이를 재활용하려는 목적과 내용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였지요.
-세검정계곡의 너럭바위
넓은 바위에 종이를 말리기 좋아 근방에 제지소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1941년 종이공장에서 종이를 말리다가 불을 내어 타버리고 말았답니다.
이번 답사중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으로 세검정과 대원군 별장이였답니다.
백사실계곡의 정원 비록 터만 남아있었지만 세상천지가 붉게 물들었던 단풍... 차와 간식으로..... 멋진 단풍을 실컷 저장하고
권력의 위대함 ???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으려는 근성은 변치 않았나 싶습니다.
부암동 계곡의 단풍 내년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가벼운 포옹을 하고 떠나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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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답사코스로는 백사실-탕춘대-세검정-홍지문-대원군별장(석파정 별장)-보도각 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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