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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정말 약인가 독인가 ?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이 매력적인 문장은 커피에 관한 코멘트 중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널리 알려진 터키의 속담이다. 커피는 이처럼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촉진시키는 약으로 인식되며 무섭게 번져왔는데 그 반대로 커피에 대한 악담이나 역효과도 비례해서 거론되어 왔다.
혈액의 순환을 발견했다는 17세기의 의사 윌리엄 하비 경이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의 변호사를 병상 곁으로 불러 커피콩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자그마한 열매가 바로 나의 행복과 재치의 원천이다!” 죽어가는 그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눈빛은 아침에 마신 커피 덕분에 아직도 번뜩였다. 그리고는 윌리엄 경은 자기가 지니고 있던 56파운드나 되는 커피를 런던 의사 협회에 기증하면서 매달 자기가 죽은 날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 케니스 데이비즈(미국의 커피전문가 작가) –
1. 알라가 내려주신 기도약
바니 마타리 지방에서 채취된 커피원두, 그것을 모카 항에서 출하하게 된 것으로 인해 모카 마타리 커피 라는 이름이 붙여져 유명한 커피 산지가 예맨이다..아라비아반도의 남쪽 변두리, 사우디아라비아의 남방에 있는 아랍* 이슬람 국가인 예멘이 라는 나라는 커피를 마신다라고 하는 문화가 처음으로 시작된 나라이다.
여러 세기에 걸쳐 커피시장을 독점한 최고급품으로 아라비안모카와 모카롱베리가 있다.
아라비안모카는 예멘의 1500m가 넘는 산중턱 급경사지에서 생산되며 강한 신맛에 독특한 향기와 품미가 있다. 모카롱베리는 에티오피아에서 산출되며 아라비안모카와 풍미가 비슷하고 스트레이트용·블렌드용으로 알려져 있다.
7세기경 아라비아의 예맨 해안 지방에서 양을 치던 한 사람이 수도원장을 찾아왔다. 양치는 언덕 한 복판엔 이슬람 수도원이 서 있었다.
그는 양들이 밤중에 일어나 날뛰고 법석을 떨고 있으니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도원장이 나가 목장을 살펴보았더니 키 작은 관목의 윤기 나는 잎이 모조리 뜯겨 나가고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양들은 그 열매마저 따먹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열매는 버찌만한 검붉은 것이었는데 수도원장은 열매가 달린 가지 하나를 꺾어 들고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양들이 흥분해 날뛴 것이 이 열매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책장에서 도감을 꺼내어 이식물의 정체를 알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씨를 깨물어 맛을 보았더니 짐승이 아니고는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딱딱한 씨앗을 빻아 물에 탔더니 걸쭉한 검은 진액이 되었다. 그냥 먹기에는 너무 써서 벌꿀을 타 마셔 봤다. 한참 있으니 가슴이 두근거리 더니 정신과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명석해져 좋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후 야반 기도 시간에 수도사 모두가 꾸벅꾸벅 졸아도 유일하게 졸지 않는 것은 이 수도원장 뿐이었다.
당시 커피라 불렸던 이 관목의 열매는 알라가 내려주신 기도약으로 또는 잠을 쫓는다 하여 축수약으로 하루 다섯 번 예배해야 하고 심야의 명상이 규율로 되어 있는 교도간에 영약으로 번져나갔다. 수면시간이 겨우 네 시간인 성직자들에게 커피는 그야말로 효험 좋은 약이 아닐 수 없었다.
내게 커피를 주시오. 아니면 죽음을 주시오.
----- 패트릭 헨리(미국 독립전쟁 지도자 1736~1799)
2.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마셔야 하는 커피
커피라는 것이 위에 들어가자 마자 야단법석이 일어난다. 싸움터에 나선 대군의 각 부대처럼 생각들이 움직이며 전투가 벌어진다. 기억이 되살아나 질풍처럼 몰아친다. ‘비교’라는 경기병은 훌륭한 대형으로 전진하고, ‘논리’라는 포병은 서둘러 포와 포탄을 준비하며, ‘비평’은 저격수처럼 사격을 시작한다. 비유가 쏟아져 종이는 잉크로 뒤덮인다.
- ------오노레 드 발자크, ‘커피의 기쁨과 괴로움’ 중에서
비엔나를 포위한 폴란드왕 이안소비에스키에 의해 저항하던 터기군이 완전 패주했던 일이 있었다. 이안 소비에스키왕은 패주한 터키군이 진지에 놓고 간 산적된 커피를 발견했다. 부대를 뜯어보았을 때 쏟아지는 알맹이를 보고 그는 기병대용 사료인 터키 보리인줄로만 알았다. 마침 터키군에게 커피 서비스를 했던 포로가 있어 물어보니 커피는 바로 터키병사의 사기진작 약임을 알게 됐다는 일화도 있다. 1453년 터키 병사들에게 커피는 군량의 하나로 커피 마시는 것이 의무가 되어 있었다. 커피가 피로를 잊고 활력을 불어 넣어줄 뿐 아니라 사기를 돋구어 병사들의 용맹성을 높여 주기 때문이었다.
사실, 거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 우리의 심장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따끈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 알렉산더대왕 -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 2부에는.
"다른 이유야 어쨌든 설탕과 진한 크림이 들어간 진짜 커피를 마실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북군을 증오했다." 라고 씌어있다.
남북전쟁에서는 남군도 북군도 식량이 모자라 병사들은 마른 빵을 커피에 적셔 먹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커피의 존재는 매우 귀중했다. 야전에서는 더했다. 커피의 부족은 남부에서 특히 심해 민들레랑 치커리의 뿌리까지 마셨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커피가 귀하여 사람들은 늘 '진짜 커피가 먹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하였다고 한다.
결국 커피를 제대로 마실 수 없었던 남군의 항복으로 전쟁은 막을 내린다
내게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은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이다. 커피는 내게 온기를 주고, 특이한 힘과 쾌락과 그리고 쾌락이 동반된 고통을 불러 일으킨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커피광이었던 백과전서파의 디도로와 달란벡은 희랍의 고전 오딧세이에서 커피를 연상케하는 한 대목을 발견했다. '이집트의 여왕 포리담나로부터 선물받아 처음 알았던 것으로 항아리 속에 넣어 두고 잠 오는 것을 억제하고 , 눈물흐르는 것을 억제하는 영약으로 썼다'했다. 이는 오딧세이의 네 번째 노래 속에 나오며 아름다운 헬렌이 그 영약을 써 오딧세이가 없어져 비탄하는 텔레마코스의 슬픔을 부드럽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대의 연구를 통해 커피속의 적당량의 카페인은 누선의 분비물을 고갈 시키고 슬픔을 가라앉히는 작용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에 대륙과 교역이 왕성했던 것으로 미루어 트로이의 헬렌이 커피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와 헬렌의 영약은 커피가 아니라 아프리카에 자라는 카페인이 많은 코라너트였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3. 예술가들의 집착 - 발상을 틔워주는 에스프리
크레타 섬이 터키에 점령당하고 있던 시절에 그곳은 깐디 섬이라 불렸었다. 당시 섬사람들은 점심에 와인 마시는 것이 관습인데다 더위로 인해 무기력해져 바깥 마루에 퍼져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 섬에 깐디오라는 꼽추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커피를 끓여 들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조는 사람 코밑에 들이대어 흡입시킴으로써 잠을 깨우고 활기를 주고 다녔다. 그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으며 돌아다녔다.
"내가 사랑하는 물약이여/온 세계로 번져나갈지어다/나는 와인 신자들을 개종시키리로다/와인보다
너를 찾게끔..." 깐디오는 커피 한잔에 꽤 비싼 값을 받았는데 그는 이를 커피라 하지 않고
청량약이라 했다.
사람의 정신력은 바로 그가 마신 커피의 양에 비례한다.
- -----제임스 매킨토시 경(영국의 정치가∙평론가 1765~1832) –
1686년에 자코뱅당의 지도자 에베르가 문을 연 프랑스 파리의 카페 '프로코프'는 삼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업을 이루고 있다. 이 카페에 들어가면 역대에 이 카페에 드나들었던 단골 명사들의 이름이 걸려있는데 라퐁텐느, 볼테르, 로베스피엘, 발자크, 빅토르 위고, 베르레느 등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스위프트도 커피광이요 작곡가 바흐 역시 커피 칸타타를 지었을 만큼 커피광이었다.
나는 커피 스푼으로 내 인생을 측량해 왔다.
------ T.S. 엘리어트, ‘J. 앨프레드프러프록의연가’ 중에서 –
이토록 명사나 예술가들이 커피에 집착한 것은 커피가 아이디어나 에스프리가 생명인 이들에게 막혀 버린 발상을 섬광처럼 터주기 때문이다. 커피는 실존주의 작가인 샤르트르가 말했듯이 에스프리 약이기도 했다. 베토벤 역시 커피광이었는데 그가 집에 없으면 산보를 나갔거나 산보 아니면 카페로 가 있는 것이 일상 이었다. 그는 커피를 기호음료가 아니라 막희 발상을 트는 약으로 시간 맞추어 약 마시듯 마시곤 했다. 그가 커피 한잔에 커피콩60개씩을 헤아려 갈아 마셨던 것도 커피를 약으로 간주한 때문이다. 그보다 적거나 많아도 발상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4. 스웨덴 황제 구스타프 3세의 실험
9세기 이집트의 대상들이 실어다 아랍세계에 퍼트린 커피는 아랍의 종교 지도자나 고관, 상류층 등 선택 받은 사람들만 마시는 강장제로 소문나자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한 메디나, 카이로,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등 이슬람권의 대도시들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휴식하고, 여론을 집산시키는 카페가 급증했다. 알렉산델 듀마의 요리사전엔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사람들의 커피 기호가 대단하여 커피점은 항상 만원으로 붐비고 모스크(이슬람교 회당)에는 한적하게 뻐꾹새만 울었다'라고 적혀있다.
커피를 마시기 전까지 나는 절대 웃지 않는다.
------ 클라크 게이블 -
정상적인 정치를 베풀고 있지 않은 나라나 정권일수록 지배자들이 국사나 시사를 논하는 것을 싫어하고 박해를 가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현상이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무라트3세는 다섯 명의 형을 학살하고 술탄의 자리를 차지하여 화려한 즉위식을 올렸지만 그의 학살은 시중에 항상 화제의 중심이었다. 그런 말들이 퍼져 나간 본거지가 바로 카페였으므로 술탄은 이 반체제 파의 입을 봉하기 위해 온 도시의 카페 소유주들을 잡아 가두어 고문하고 카페를
모조리 폐쇄시켜 버렸다.
메프메트 4세 때에는 커피를 숨어서 파는 사람을 커피 부대에 담아서 산채로 보스포로스 해협에 던져 커피 부대가 둥둥 떠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그 후 세계 각지에서 커피는 악마의 음료라느니 독이 들어 있어 있어 누적되면 일찍 죽는다느니 성 능력이 쇠퇴한다느니 피임약이 라는 등의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커피가 이슬람권에서 기독교권으로 흘러들었을 때 일부 기독교도들은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 하여 이를 금지할 것을 교황에게 간청했다. 교황 클레멘트8세(1592~1605)는 커피를 마셔 보고는 마음에 들었던지 '이 악마의 음료는 맛이 대단히 좋다. 이 좋은 것을 악마에게 독점시킨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이 음료를 배척하느니 세례시켜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기독교 문화권에서 커피 마시는 것이 공식화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양의 바닷가에서 온 음료가 나오자, 비록 모카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과일의 향기가
가득하다. 까다로운 입술로 그 검은 액체를 맛보자, 소화 기관은 기쁨에 들떠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 교황레오 12세 -
8세기 후반 북유럽 스웨덴에는 커피에 독이 들었다는 말이 번지고 있었고, 커피와 차의 어느 쪽에 보다 많은 독이 있는가가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이에 황제 구스타프3세는 사형수 둘을 선정하여 커피와 차를 하루 일정량씩 먹이고 어느 쪽이 빨리 죽는가를 실험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커피를 마신 쪽이나 차를 마신 쪽이나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결과를 몹시도 궁금해 했을 황제가 먼저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은 지속 되었는데 차를 마신 쪽이 79세, 커피를 마신 쪽이 80세까지 살며 당시에는 경이적인 장수 기록을 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커피 덕분에 사형수는 장수를 누린 셈이 되었다. 이로써 커피 유해론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되었다.
커피에 독 기운이 있다는 풍문 속에서도 커피광 볼테르는 85세까지 살았다. 그는'매우 효력이 더디고 느린 독'이라며 풍문을 비아냥 거렸고 또 다른 커피광인 퐁트넬 역시 백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2세 역시 매일 아침 커피7~8잔, 저녁에는 한 주전자씩 마셨는데 유럽 제왕으로는 이례적으로 85세까지 장수했다.
유럽의 진보적인 의사들은 대체로 커피를 약으로 권장했는데 특히 베를린의 궁전 시의 분데쿠는 환자들에게 커피 마시기를 권했다. 그는 여러 질병 중에서도 괴혈병과 각종 궤양, 통풍에 커피의 효능이 크다고 주장했다. 커피는 또 프랑스 귀족사회에서 관장제로 선호되기도 했었다. 이 같은 커피의 의약론이 대두되자 누구보다 위협을 받은 것이 커피와 라이벌 관계를 지속했던 맥주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맥주업자였다. 커피에 대한 악담의 온상도 바로 이들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커피가 불임의 요인이요, 남성의 생식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소문은 밤낮 없이 카페에 나가 소일하며 집안을 돌보지 않는 기자들을 둔 주부들의 반발로써 생겼다는 설도 있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잠깐 실례하겠다.
------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에서 휴스턴의 존슨 우주센터에 보낸 메시지
1969년 7월 20일 -
5. 드리나강의 카피야
덴마크 여성들에 따르면, 커피는 주님의 말씀이 영혼에 미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몸에 가져다 준다고 한다.
- ------이사크 디네센(덴마크소설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작가) -
커피는 불화와 갈등을 해소시키는 명약이라 하여 손님을 끌고 있는 곳도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고 작가 안드리치의 작품 <드리나강의 다리>로 유명한 드리나강 다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돌다리이다. 이 다리 한복판에는 테라스를 만들어 커피를 팔고 있는 곳이 있는데 현지 사람들은 이 커피숍을 '카피야'라고 불렀다. 카피야란 원래 터키말로 커피를 뜻한다고 한다.
<드리나강의 다리>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 카피야 에선 첫사랑의 정렬을 감지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곳에 와 앉아 있는 모든 남녀의 얼굴표정과 대화 그리고 눈매에서 청순한 사랑을 듣고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비단 카피야 뿐 아니라 드리나강의 돌난간에도 남녀들이 기대어 사랑의 주력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여자라면 나는 커피를 향수로 뿌리고 다닐것이다.
------ 존 반드루텐(미국의극작가) -
수백 년 전부터 이 드리나강의 커피에는 사랑과 화해의 약효가 스며 있다고 여겨져 왔다. 그래서 젊은 연인이나 부부싸움을 했거나 이혼 직전의 부부들도 이곳에 와 화해의 커피를 마시는 것이 18세기 이후의 풍속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렇게 된 데에는 연유가 있다.
이 강을 두고 고대에는 로마와 게르만이 대결했고 근세에는 터기와 오스트리아가 대치했으며 근대에는 헝가리와 독일이 피를 보더니 현대에는 유고 연방의 약소 민족끼리 피를 흘렸었다. 그 강의 오른편에는 슬라브 민족 계통의 세르비아가 자리하고 그 왼편에는 모슬렘 민족 계통인 보스니아가 자리하고 있다. 역사도 다르고 말도 다르며 문화나 기질도 서로 다른 그 두 민족 사이를 잇고 있는 것이 드리나 강의 다리인 것이다. 대결하고 대치하고 있기에 절실한 화해의 염원이 깃들이어 민속화된 것 같다.
내 커피 잔 속에 위안이 있다.
- -------빌리 조엘 -
다리 이편 저편을 두고 사랑하게 된 남녀가 이 다리의 난간 위를 두 팔을 펴고 건너 복판에서 떨어지지 않고 만나면 부모들도 그들에 승복했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난간을 건너는 도중에 떨어져 목숨을 잃은 비련의 이야기도 없지 않지만, 또 불화를 겪는 부부의 화해방법이 밤중에 촛불을 들고 달려와 다리 복판에서 포옹하는 것이었다는 습속도 있다고 한다. 이 민족, 이 종교, 이 문화 간의 불화를 화해시켜 온 기나긴 이 다리의 역사에서 이 다리가 사랑의 주력을 갖기에 이르렀고 이 주력이 그 다리 복판의 접합지점에 차린 카피야의 커피에서 발효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력을 높이고 싶다면 커피를 마셔라. 커피는 인텔리전트 음료다.
- -----시드니스미스(영국의수필가1771~1845) -
지금도 유럽 각지에서 이 사랑의 커피를 마시고자 하루에 수백 쌍의 남녀가 모여든다고 그곳의 카피야 주인은 말한다. 커피에 화해의 약효가 정말 들어있는 것이냐고 묻자 이 카피야 주인이 장황하게 설명했다 의약에는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 있어 약을 먹었을 때 비록 과학적 약효는 없더라도 약을 먹었다는 의식에서 형성된 정신적 약효가 나기 마련이며 드리나 강의 커피는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들이 마시기에 그 효과는 어떤 명약보다 크다며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었다.
나는 인류가 많은 일을 해냈다고 믿는다. 인간의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라,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손가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 ------플래시 로젠버그(미국의 사진가∙작가∙영화 제작자) –
자료 출처 : 네이브 사전 - 커피
동서 식품 - 커피 에 대한 유명인의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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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lisukum/trackback/3194117/1237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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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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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를 막 갖았을때까지도 커피를 하루 대여섯전 마실정도로 많이 마셨는데 태아에게 안 좋다해서 안동안 안마시다 요즘은 식사후에나 겨우 한잔씩해요.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다던가, 명상을한다던가, 책을 보는건 아직까지 제게 사치가 되네요.
몸은 좀 어떠세요?
빨리 좋아 졌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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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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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네모도리 깰까봐 불꺼놓고 타자를 치다보니 오타가 많네요~
이쁘게 봐주세용!
애교,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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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진자연사랑 2005.04.2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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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것도 에스프레소만 고집하는 저로써는 커피 이야기만 나오면 꼭 읽어보곤 한답니다..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유일하게 마시는 것이 커피인 저로써는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거든요..
몸살이 나시려는것은 아닌지요..얼른 떨치고 일어나셔서 다시 밝고 맑은 모습으로 뵈었음 하고 바래봅니다..
편온한 밤이 되시구요,,.내일 더 미소짓는 시간 시간이 되시라고 다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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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9901 2005.04.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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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말들을 읽고 있자니 "커피와 도넛" 이 아니라 '커피와 담배"가 떠올려지네요
전투적으로 생활 하다보면 커피가 정신을 깨워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커피잔을 들고있다 보면 어느새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도 해요
문득 김소월의 <담배>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 라고 시가 시작하는데요.. 맘에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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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2005.04.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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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나두...코피 넘넘넘 좋아좋아(택아버젼~~) 나는 왕올빼미족인데요 하루에 코피를 다섯잔이상 안마시면 입에서 곰팡네가 나요. 코피..샹송...겨울비...흐린하늘...밤에흐르는적막...내앞에놓인원고지...그리고 내옆에서 젖달라고 보채는 구여븐사자...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예요. 코피없는 세상은 넘넘 삭막해. 누가 그러데요. 내가 코피한잔을 손에들고 창밖을 응시하는 모습은 예술이라고...왕비병 말기증세..처방전이 없답니다..즐거운인생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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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 산 커피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남미의 몇 나라는 그 해의 커피 농사가 잘 되느냐 못 되느냐에 따라 일년 농사가 풍년이냐 아니면 흉년인가를 판가름하게 된다.
그리고 국제 시장에 있어서 커피 가격의 변수가 브라질의 기후 조건에 따라 브라질의 커피 수확이 풍작이냐 흉작이냐 여부에 따라 결정되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브라질의 작황여부에 상관없이 커피의 품질에 의한 고품질 고가격 정책을 유지 할려는 나라들도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과테말라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은 미국의 Blockbuster 같은 커피 메이저가 과테말라산 커피를 거의 싹슬이 하다 싶이 해왔는데 이제는 일본과의 대량거래의 길이 트임으로써 보다 나은 가격조건으로 배짱을 부리며 커피를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1. 과테말라 커피
커피 생산과 지구의 미니어추어
매일 이른 아침 7시면 과테말라 수출의 일등 공신인 봉제공장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회사들이 업무를 개시하고 또한 각급 학교들이 수업을 시작한다. 이 때에 한번 출근길의 도시 중심지 즉 다운타운을 향한 엄청난 러시아워 현상으로 애를 먹고 또 그 후 9시부터는 상가의 가게들과 은행들이 문을 열기 때문에 또 한차례의 출근길 전쟁을 겪게 된다.
이른 아침 차를 주차장에 넣어 놓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1층 넓은 홀 한 모퉁이에 원두 커피를 파는 집이 있다.
그 시간이면 벌써 몇몇 사람이 서서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는데 그 커피 집 앞으로 다가가면 솔솔 풍겨 오는 커피 향이 나를 유혹하여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크게 숨을 한번 들이 쉬어 커피 향을 듬뿍 마시곤 곧바로 사무실로 올라가 잠시 그 커피 향을 음미하다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 커피 집은 철저하게 과테말라산 원두커피만을 사용하는 집이다. 그리고 과테말라 커피의 품질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나에게 들려주는 그의 집에서 사용하는 커피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커피는 대략 아리비카(Arabica) 커피 와 로부스타(Robusta) 커피 두 가지로 대별 되는데 로부스타 커피에 속하는 것은 브라질, 아프리카,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생산 하는 커피가 이에 해당되고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단단한 열매(Cherry-hard pick) 를 따서 깨끗하게 세척하여 말려서 내는 커피를 Good Wash ( 해발 1,000 피트 지역에서 생산)라 하며 그 보다 나은 단계의 커피를 Prime ( 2,000 피트에서 생산) 그 다음에 좀 더 품질이 나은 커피를 Extra prime 커피(2,500- 3,000 피트)라고 하고 자기 커피 집에서 사용하는 커피는 Semi Hard (3,500 ft)나 Hard (4,000ft) Extra Hard (5,000 ft)등 3가지 최고의 품질을 가진 유기농 커피라고 하는 것이다.
원두커피 맛을 잘 모르고 평생을 인스턴트 커피만 고집스럽게 마셔오고 있는 나는 그의 얘기를 그런가
보다 고만 들을 뿐 솔직히 이들 커피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의 설명 중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커피 생산에 관한한 과테말라는 지구의 미니어추어라는
것이다. 즉 열대 지방인 해발 1,000 피트의 베트남 아프리카 산 커피에서 부터 해발 1,000 이상 2,000 피트의 브라질의 평원과 야산에서 생산되는 커피와 또 약간 높은 고산지대의 콜롬비아산 우수품질의 커피와도 경쟁이 되는 고급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일본 수출 1위의 품질 우수 커피 생산국
최근에 일본의 산토리 그룹에서 과테말라 산 커피를 수입하여 일본 전역에 보급하여 그 맛과 향의 우수성으로 일본 시장에서 인기를 끌게 되어 지난 1월 20일 23명의 일본 커피 수입업자들이 단체로 과테말라를 방문하여 과테말라 커피수출조합과 직거래 계약을 체결하여 과테말라의 커피 생산량의 50%를 일본으로 수입해 가게 되었다.
이는 금액으로 약 10억불의 농산물 수출액(설탕포함)의 20%에 달하는 것이다.
자세히 알지는 못 하지만, 흔히 일본 사람들은 일찍 다도의 경지를 오래 전부터 생활화 해 와서 원두 커피의 아주 세미한 맛과 향의 진수를 음미할 줄 알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한 커피수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과테말라산 커피가 저들의 고급취향에 맞는다고 판단되어 대대적으로 수입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2006년도 커피 물량 (2005년 9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사이에 수확하는 커피)의 50% 정도를 일본에서 수입하겠다고 하여 과테말라 커피 생산 업자들은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며 제발 풍수해 같은 천재지변이 없기 만을 빌고 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의 Blockbuster 가 바짝 긴장하여 과테말라산 커피확보를 위하여 일본과의 전쟁(?)에 뛰어들어 마치 메이저 간의 석유전쟁을 방불 시키는 듯 하다.
커피도 유행 탄다
커피의 맛과 종류가 개량되고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이젠 고르는 재미가 커피 애용자들에게
유행으로 번지고 있다.
전엔 아메리칸 커피를 주문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우유를 가미한 라테커피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카푸치노, 모카커피, 냉커피, 계피, 초콜렛 가미 등등 커피 매점의 메뉴판이 벽을 완전히 덮고있어 고르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린다.
과테말라의 커피수출은 커피수출조합에서 직접 미국 뉴욕의 선물시장을 통하여 거래해 왔다.
과테말라산 커피의 품질의 우수성이 널리 세계적으로 알려져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수입국들이 부상함에 따라 커피 생산의 증가와 수출 확대로 지속적인 커피산업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중남미의 3대 커피산지라고 하면 브라질, 콜롬비아, 자메이카로 불려진다.
이들 나라에서 생산되는 커피를 한번 알아보자.
2. 콜롬비아 커피
카페테로와 당나귀
콜롬비아는 브라질 다음 가는 세계 제2의 커피 생산국인 동시에‘세척 커피’라 불리는 마일드 커피의 세계 제1위 생산국이다. 콜롬비아에 커피나무가 들어온 것은 19세기 초로 스페인 선교사들이 프랑스로부터 베네수엘라를 거쳐 아라비카 종의 커피 종자를 들여와 안데스 산맥의 가파른 언덕에 심은 것이 시초이다.
콜롬비아 커피는 대부분이 사람의 손에 의해 수확되며, 습식법으로 가공되기 때문에 고급 커피로 분류된다. 원두 색깔은 녹청색으로 외관이 타원형으로 균일하기 때문에 같은 양을 추출했을 때 브라질 커피보다 25% 정도 더 많은 양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일반적인 콜롬비아 원두는 단지 크기에 따라, 크고 균일한 것은 수페리모(Supremo : Screen 17 이상이 80% 이상), 상대적으로 작고 다소 불균일한 것은 엑셀소(Excelso : Screen 14 이상)로 분류된다. 잘 볶은 콜롬비아 커피는 뛰어난 산미와 부드러운 맛과 풍부한 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볶은 정도에 따라 올라오는 향이 틀린 것도 특징이다. 중배전의 경우에는 너티(nutty)라고 하는 고소한 땅콩류의 향이, 강배전의 경우에는 스모키(smoky)라는 독특하면서도 강한 커피 향이 잘 발현된다. 콜롬비아 커피 중에서는 엑셀소(Excelso)와 수페리모 에스멜라다(Superimo Esmelada)가 유명하며 최고의 맛으로 알려져 있다.
안데스 산맥의 커피 농장
콜롬비아 커피는 해발 1,000~2,000m의 가파른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데 이곳은 화산재가 퇴적되어 형성된 비옥한 토양, 맑고 풍부한 물, 일조량, 고원지대의 온화한 기후 및 큰 일교차가 커피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는 곳이다. 안데스 산맥의 이러한 기후 조건은 커피열매가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익도록 하여 맛과 향이 다른 어떤 지역에서 재배된 커피보다 진하고 풍부하게 한다.
콜롬비아 커피 농장은 ‘카페테로’ 라 불리는 콜롬비아 커피 농부들에 의해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재배방식에 따라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커피 수확기가 되면 콜롬비아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바구니를 들고 나가 빨갛게 잘 익은 커피 열매만을 골라 손으로 직접 수확한다. 수확된 커피는 삼베 부대에 담겨져 말, 당나귀 혹은 자동차로 커피 방앗간에 옮겨져 펄프 분리기에 넣어진다. 커피 원두를 싸고 있는 붉은 과피와 노란 펄프질이 제거되고 나면 두 개의 커피 원두가 남게 되는데 이는 곧바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커다란 발효탱크 속으로 넣어진다. 발효 과정이 끝난 커피 원두는 곧바로 인공 수로로 끌어온 깨끗한 물에 씻겨지게 되는데 말끔히 씻겨진 커피는 여닫이 뚜껑과 바퀴가 달려 지붕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되어 있는 ‘헬다스’ 라 불리는 얕은 나무 상자 혹은 시멘트 마당에 얇게 펴 말려진다. 마지막으로 말리는 작업이 끝나면 원두를 자루에 넣어 껍질 벗기는 창고로 옮긴다. 이와 같은 수세 건조법은 과정이 복잡하고 물이 많이 필요한 반면 질 좋은 원두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 브라질 커피
세계 제1위의 커피 생산국
브라질은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제1위 커피 생산국이자 제3위 커피 소비국으로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민감하게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연 평균 3천만 포대가 브라질에서 수출되고 자국에서 소비되는 커피량만 해도 9백만 포대에 달한다.
콜롬비아나 페루의 커피가 주로 산악지대에서 소규모로 재배되어지기 때문에 기계화가 불가능한 반면 브라질의 커피는 해발 200~300m 정도의 비교적 평탄한 곳에서 대규모로 재배되어지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기계화 생산이 가능하다. 재배 지형과 함께 브라질 커피 재배의 기계화가 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기후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브라질이나 열대 몬순 지역에서는 건기와 우기가 상당히 뚜렷하여 연중 특정한 시기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이 같은 곳에서는 열매가 맺고 익는 시기가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기계를 이용한 수확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시로 비가 내리는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계로 수확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 손으로 익은 열매만을 따내야 한다. 그러나 커피라는 작물의 특성상 완전한 기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단지 다른 지역에 비해 기계화가 가능하다는 정도이고 실제로 브라질에서 수확되는 고급 커피는 모두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브라질 커피 농장의 어제와 오늘
브라질에 최초로 커피가 들어오게 된 것은 1727년 사랑에 눈 먼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부인이 스페인 연대장에게 커피 묘목을 선물하면서부터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영토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는 육군 상사인 팔레타를 단장으로 하는 특별사절단을 프랑스령의 기아나로 파견했다. 그러나 영토분쟁은 대외적인 구실이었고 젊고 잘생긴 이 스페인 연대장의 숨겨진 임무는 커피 묘목을 훔쳐내 오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커피 씨앗을 삼엄하게 감시하며 외부로의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발견하였으니 그것은 기아나 총독의 부인이었다. 그는 총독부인을 유혹하는 데 성공하였고 사랑에 눈 먼 그녀는 화려한 꽃다발 속에 커피 묘목을 숨겨 애인인 팔레타에게 선물했다. 그 후 이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렸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 나가 두 나라를 오늘날의 세계 최대 커피생산국으로 만들어주었다.
19세기에는 커피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목이었던 사탕수수가 커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커피 농장에서 노예인력을 이용했지만 1888년 노예제도 폐지와 더불어 커피 농장은 더더욱 규모가 커진다. 수천 명의 유럽 이민자들 특히 파젠다스(fazendas)라고 불린 이탈리아인들이 커피 농장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브라질의 커피 농장 수는 약 32만 개에 이른다. 그리고 이 커피 농장에 의해 경작되어지는 재배지는 3.5밀리언 헥타르에 달한다. 그러나 여전히 커피 농장의 75%는 10헥타르 이하의 소규모 농장이다.
4. 자메이카 커피
왕실커피로 불리는 블루 마운틴
카리브해의 중간쯤 쿠바 남쪽에 있는 섬인 자메이카는 세계에서 가장 품질 좋은 커피 중 하나인 블루 마운틴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블루 마운틴 커피는 섬 전체가 1,000~2,500m의 고지대인 자메이카의 등뼈 산맥, ‘블루 산맥’ 의 특정 부분에서만 재배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지역의 비옥한 검은 토양과 적당한 온도와 알맞은 강우량 등이 커피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이 지역의 연 강수량은 200인치가 넘고 짙은 구름에 의해 기온이 5도 이상 낮다. 이러한 기후적 요소는 커피의 성숙을 늦추어 개화에서 추수까지 5~6개월이면 충분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커피의 성숙기간은 10개월 정도로 길다. 결과적으로 서서히 성숙된 블루 마운틴 커피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와 비교해 풍미와 크기와 경도면에서 월등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커피 재배에 탁월한 블루 마운틴의 토양과 기후 덕에 블루마운틴 커피는 비록 아라비카 종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아라비카 커피에서 벗어난 독특한 향취를 갖는다. 블루 마운틴 커피는 부드러운 신맛과 단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블렌딩에 의하여 최고의 맛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기 때문에 순수한 블루 마운틴 커피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이트로 마실 것이 권해진다.
영국 왕실에서 많이 구입하여 가기 때문에 왕실커피라고도 불리는 블루 마운틴 커피는 최근에는 개량된 품종이 많아 명성이 예전만 같지 못하지만 진짜 블루 마운틴 커피는 일년에 겨우 3만 5천 포대 정도만 생산되기 때문에 쉽게 구해질 수 있는 커피가 아니다. 따라서 진짜는 값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거의 판매되지 않고 대부분 블루 마운틴 타입 또는 블루 마운틴 브랜드라고 씌여진 것이 판매되고 있으며 이것들은 블루 마운틴 커피의 맛의 특성은 지니고 있으나 오리지널 블루 마운틴 함량은 극히 미미하다.
커피 산업 위원회의 철저한 품질관리
자메이카에 커피가 들어온 1728년 이후 세계의 맛을 이끌고 있는 블루 마운틴 커피는 그 어떤 나라의 커피보다 철저한 정부의 관리를 받고 있다. 1950년에 설립된 커피 산업 위원회가 그 핵심 기관으로 모든 자메이카 산 커피의 질을 관리하고 규격화 한다. 정부 산하 기관인 커피 산업 위원회는 모든 블루 마운틴 커피의 생산과 가공 과정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으며 수확, 체리 과피 제거, 건조, 껍질 벗기기, 분류, 등급 매기기 등의 모든 단계를 감시한다. 커피 가공 역시 공식적으로 지정된 커피 산업 위원회 공장들에서만 행해지는데 커피 가공의 각 단계에는 최고로 높은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커피 콩은 모두 탈락된다.
커피 산업 위원회의 감정인에 의해 최종 검사인‘컵 퀄리티(cupquality)’테스트를 거친 커피만이 수출을 허락받는 등 이처럼 철저한 품질 관리는 수출을 위한 선적 과정에서도 계속된다. 커피 생산에 유리한 자연적 조건과 함께 철저한 국가관리 체제가 합쳐서 오늘날 블루 마운틴 커피는 세계 최고급 커피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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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6 2007.01.23 17:32 [210.192.8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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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통합운동 미국과체결한나라와갈등중남미국가간소득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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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은근의 중간
커피에 대한 단상이라.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85년에 보았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메릴 스트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향을 떠나 아프리카 땅에 자리를 잡고 홀로 살아가는 강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인, 카렌. 세상에 대해, 피부색 다른 토착민들에게나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나 편벽함 없이 다가서던 그녀의 생업은 다른 게 아닌 커피나무를 기르는 일이었다.
당시 난 아직 부모의 품안에 있던 풋내 나는 여학생 신분이었으면서도 여인의 홀로 서는 삶이라는 게 왜 그리 눈물겨웠던지. 카렌이 커피 열매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열성을 기울이는 초반부터 영화 끝날 때까지 눈물을 쏟아, 함께 갔던 남자애를 무척이나 당황케 했었다. 카렌에게 커피는 살아가는 작은 방편일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삶의 씨앗이었고, 커피 씨앗을 심는 그 여인에게선 진한 향기가 났었다.
열정을 가진 자, 그것을 내지를 때 술을 마시고 그것을 은근히 삭일 때 차를 마시지 않는가. 그리고 커피는 열정을 내지르는 것과 곰삭이는 것의 경계선쯤에서 입에 대지 않나 싶다. 그것이 가진 카페인으로 인해 가슴이 약간 뛰는 듯 쓸려 내려가고 머리는 맑아져서 열정의 대상에 쏟아 부을 빈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검고 맑은 음료, 커피.
회사 다닐 적에 아침에 출근해서 한 잔, 점심 식사 후 한 잔, 하루에 두 잔씩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셨다. 우르르 동료들과 함께였지만 함께하는 식사와는 달리 두 잔의 커피는 다음 일을 준비하기 위한 나의 시간의 시작이었다.
그때 이미 난, 회사를 그만 두면 그 자판기 커피가 가장 그리울 것이란 걸 예감했다. 바삐 돌아가는 조직 속에서 완급을 조절해 가며 해야 하는 나만의 고독한 일. 커피는 그것을 의미했고 조직을 떠나면 길거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기가 쉽지 않듯 그 고독 또한 내 손에 쉽게 잡히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예감은 적중했다. 요즘도 가끔 그 커피 한 잔이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홀로 선다. 홀로 서야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다. 카렌이 그랬듯, 홀로 가는 여정에 별처럼 반짝이는 인연들로 비단을 짠다. 홀로 서려 할 때, 또 홀로 서는 그들끼리 인연의 고운 천을 엮어 갈 때, 이 세상 뜨거운 땅에서 자란 한 나무 열매에서 씨를 받아 열정을 지피고 거기에 발음도 고혹적인‘커-피-’라 이름하니, 그 섭리가, 우리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어우러짐이 참으로 눈물겨울 뿐이다.
유정아 |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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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카 마타리의 나라 - 예맨
1. 예맨
예멘이라는 나라는 커피를 마신다 라고 하는 문화가 처음으로 시작된 나라이다.
아라비아반도라고 하면 달의 사막과 낙타의 여신 등이 떠오를지 모르지만 예멘은 기본적으로는 산지국가이다. 홍해를 따라 3000 미터 급의 가파른 산지가 뻗어있고 이 산지와 인도양, 홍해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만나 비를 내린다. 그곳에서 계단식 밭을 갈아 농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멘인 이다.
예멘의 수도 사나아는 산간부의 분지에 위치하였고 고도는 2300미터로 일년 내내 쾌적한 기후이다.
모카 마타리의 모카라고 하는 명칭은 예멘의 항구 명이다. 그리고 마타리도 역시 예멘의 바니 마타리라는 지방 명에서 온 명칭이다. 바니 마타리 라고 하는 것은 아라비아어로 비의 자손들이라는 의미로 사나아에서 서쪽으로 홍해를 향한 바로 그곳에 있다.
이 주변은 항상 비가 내리고 있는 정도의 습기와 고도 2000미터 전후의 지역으로 커피의 생육에 적당한 지역이다. 이 [바니 마타리]지방에서 채취된 커피원두, 그것을 모카 항에서 출하하게 된 것으로 인해
모카 마타리 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작은 나라이긴 하였지만, 반도를 횡단하여 이주하는 사람들의 근원지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예멘 혈통을 주장하는 요르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이락, 걸프만 국가들 및 사우디 아라비아 거주의 예멘인들이 다수 있다. 따라서 '야마니'(Yamani)나 '함다니'(Hamdani)같은 인명은 예멘에 기반을 둔 사람들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예멘(Yemen)의 어원은 대개 두 가지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첫째는 축복이나 행복'을 의미하는 아랍어의 'yumn'에서 유래됐다는 설이며, 둘째는 '오른쪽'을 의미하는 'yamin'에서 유래됐다는 설이다. 실제로 멕카의 카바신전에서 보면 예멘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예멘은 우리에게 흔히 '솔로몬과 시바'의 나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시바왕국'(Sheba Kingdom)은 BC 950년부터 BC 115년까지 존속되었다. 시바왕국이후 AD 6세기까지 힘야르왕조에 의해 통치되었다. AD 525년 이디오피아에 의해 정복당했고, 다시 AD 575년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정복하여 통치하였다. 예멘은 7세기에 정식으로 이슬람(Islam)을 받아 들였으며, 9세기에 자이디(Zaidis)파 이맘인 야흐야 알-하디 일랄-하끄가 라쉬드왕조를 수립하였다. 라쉬드朝의 예멘은 1517년 오스만 터어키에 의해 점령되어 1918년까지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를 받게 된다.
2. 시바왕국
어린 시절 동네 바람벽에 대머리 배우인 율 브리너와 고혹스러운 미모의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끌어안고 있는 영화 포스터를 본적이 있다. 제목은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솔로몬을 연모한 에티오피아의 여왕인 시바가 이스라엘로 찾아와 사랑을 나누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성서에 바탕을 둔 러브스토리였다.
에티오피아의 여왕으로도 알려지고 있는 시바여왕의 왕국은 에티오피아가 아닌 실제로 예멘의 내륙부에 실재했던 왕국이었다.
시바왕국이 가지고 있었던 교역로는 [유향의 길, 스파이스 로드]라고 불리고 이 교역로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했던 나라가 시바왕국이었다.
이 시바왕국이 왜 번성했었던가 하면 동남아시아에서의 향목(香木), 중국에서의 비단, 아프리카에서의 신비한 새의 날개, 거기에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서 채취된 유향 이라고 하는 이름의 향료 등의 물건들을 고대 이집트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등에 공급하는 통상로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향은 지중해세계, 특히 이집트 주변에서 상당히 중시되었다. 왜냐하면 이 향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필요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향에는 [男乳香 남유향] [女乳香 여유향]이 있어 여신을 부를 때는 남유향, 남신을 부를 때는 여유향을 피우도록 되어 있어서 이것 없이는 제사자체가 불가능했었던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제사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하는 것은 즉 정치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정도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유향은 무게로 재어 금과 같은 가치로 거래가 되었다고 한다.
남아라비아의 상인들은 이 유향을 소재로한 여러 가지 전설을 만들어 내어, 신화, 온축(충분히 연구해서 간직한 깊은 지식), 신비라는 베일에 쌓아 부가가치를 덧붙여 비싸게 강매하는 것에 성공했다.
유향은 나무의 줄기에 흠집을 내어 거기서 흘러 나오는 수액을 고형화한 송진과 같은 것으로 아라비아상인들은 고객이었던 유럽, 지중해세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서 채취되는 가를 알리지 않고 원산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었다. 단 그것을 채취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때문에 지중해세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등장하기도 했었다.
유향나무는 날개를 가진 푸른뱀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가까이 갈 수 없다. 이것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숫소의 가죽을 쓴 남자가 여러 가지 기술을 구사해야만 겨우 채취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이것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의 기술(記述)된 내용으로 아라비아 상인은 이러한 전설을 만들어 내어 부가가치를 높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바왕국의 여왕을 둘러싼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구약성서중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왕의 전설이 있다.
3. 시바여왕의 긴 사랑의 여행
현명하고 지혜가 넘치는 왕으로서 이름높은 솔로몬왕은 어느날 짐승과 새와 정령(인간과 천사 사이에 위치하는 것)들을 데리고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다. 매일밤이 되면 모두 모여 그날의 활동을 보고했었는데 어느날 야쯔가시라라고 하는 새만이 모이는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솔로몬 왕은 대단히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 때, 야쯔가시라가 돌아와서 하는 말 “늦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남쪽으로 날아가 여러분들이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남쪽에 시바왕국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여왕이 다스리고 있는 대단히 풍요로운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고 태양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보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렸다? “ “ 예, 사실입니다.” “좋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늦게 온 너를 용서해 주겠지만 거짓이라면 그냥 두지 않겠다.” 라고 솔로몬왕은 말하고 야쯔가시라에게 시바왕국에 편지를 가지고 가도록 명령했다.
그 편지에는 “당신의 나라는 대단히 풍요로운 나라라고 들었다. 그러나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고 태양을 숭배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앞으로는 여호와를 숭배하도록 하시오” 라고 적혀 있었다. 야쯔가시라는 편지를 가지고 시바왕국으로 가서 상공에서 편지를 떨어 뜨렸다.
편지를 받은 시바여왕은 장로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우리들 앞으로 솔로몬이라는 왕이 편지를 보내 왔어요.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써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얘기를 해보세요" 하자 장로들 중 어떤 이는 “건방진 녀석 같으니, 전쟁을 일으켜서 혼을 내줍시다.” 또 어떤이는 “무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우리나라와 같이 풍요로운 나라는 없을 테니 토산물을 보내어 그들을 놀라게 하여 회유하는 것이 어떨지요?” 라고 진언했다. 그때 시바여왕은 그게 좋겠다 라고 말하고 대량의 금, 은, 보석을 이스라엘에 보냈다.
이것을 받은 솔로몬왕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물건들은 산처럼 쌓여 있어 기쁘지도 아무렇지도 않다. 만약 당신들이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겠다고 하면 군대를 보내어 전쟁을 일으키겠다.” 라고 회신을 보냈다.
이러한 회신을 받은 시바여왕은 “알았다. 그렇다면 직접 만나러 가겠다” 라고 직접교섭에 나설 것을 결정했다.
당시의 세계정세에서는 이스라엘과 시바왕국은 상당히 거대한 나라였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이 회견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수뇌급 회담이었다.
시바여왕은 토산물을 가득 싣고 가신, 장군 등을 거느리고 솔로몬왕을 만나러 출발하였다. 이 낙타의 대열(CARAVAN)은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가장 선두의 낙타가 출발한 후 마지막 낙타가 출발하기까지는 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 의하면 이때 시바여왕이 솔로몬왕에게 가지고 간 금, 은, 보석은 이제껏 없었던 양이었고 그 이후에도 그 정도의 양이 보내진 적은 없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량의 귀중한 토산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향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궁에 다다르자 시바여왕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내어 솔로몬왕이 정말로 지혜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려고 했다.
예를 들면 시바여왕이 여행에 나선 후, 정령들에게 명을 내려 시바왕국의 궁전에서 여왕의 옥좌를 이스라엘까지 가지고 오게 해라라고 한 후, 여왕이 왔을 때 “이것은 당신의 옥좌입니까? “ 라고 질문했다. 여왕은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 라고 대답했는데 구약성서에 의하면 여기서 아니요 라고도 그렇다 라고도 대답하지 않았던 것이 지혜의 증표라고 쓰여 있다. 또 솔로몬의 궁전에는 푸른 수정으로 깔려 있는 마루가 있었는데, 여왕은 솔로몬에게 다가갈 때 그 푸른 수정을 보고 물이라고 생각해서 옷자락을 약간 들어 올려 걸으려 했었다고도 쓰여져 있다.
어떻든 이러한 서로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지혜에 감탄했고 서로 마음이 끌리게 된데다 동침 조건을 건 지혜겨루기 내기에서 진 시바여왕이 솔로몬과 동침하여 서로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마지막에 솔로몬은 시바여왕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었고, 꿈같은 몇 달의 세월을 보낸 후 아쉬운 사랑의 빈 가슴을 달래며 여왕은 뱃속에서 자라는 사랑의 열매를 안고 귀국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4. 세계최초의 커피 원산지 에티오피아
이 때 시바여왕의 귀국 코스가 재미있다. 여왕은 갈 때는 향료의 길을 따라 아라비아반도를 북상하여 갔었는데 귀국할 때는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를 경유하여 남하하여 이디오피아까지 갔다. 그리고 이디오피아에서 구슬 같은 남자아이를 낳았는데 이것이 솔로몬과 시바여왕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이로, 이 아이가 이디오피아를 1974년까지 지배한 하이레세라시에 황제집안의 시조 메네리크 1세가 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즉 이디오피아 황제집안은 솔로몬과 시바여왕 사이에서 만들어진 가계(집안)인 것이다. 그 후 시바여왕은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커피가 마시는 음료가 되기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여기에 이디오피아와 예멘이라고 하는 커피에 얽힌 2명의 등장인물이 갖추어진 셈이다. 커피의 원생종이라는 것은 에티오피아가 기원이다.
그것이 예멘에 전래되어 커피가 음료가 된 것인데 시바여왕의 전설에도 나타나있듯이 예멘과 이디오피아는 대단히 친밀한 관계였었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동료. 당시의 시바왕국은 대단히 강대했기 때문에 이디오피아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어 솔로몬과 시바여왕의 전설 중에도 에티오피아가 등장했던 것이다. 이 의미에서 시바여왕은 마시는 음료로써의 커피의 탄생의 밑바탕을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잠깐 주의를 기울일 것은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러 갈 때 처녀여왕의 신분이었느냐 남편이 있는 결혼한 몸이었느냐 아니면 이혼한 채 혼자 몸이었느냐 그도 아니면 남편이 먼저 죽은 과부의 신분이었느냐 하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시바여왕이 굳이 본래 왔던 길로 해서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자기 나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항해술이 아직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굳이 멀리 돌아서 식민지로 있던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로 돌아서 갈려고 했을까 하는 점이 얼른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솔로몬의 아들을 낳은 것을 보면 아무리 여왕의 신분이라고 해도 외국에 수뇌회담하러 갔다가 상대방 왕과 바람이나 피우고 배가 불러 자기나라로 돌아 오는데 대한 부담감이 대단히 컸기 때문에 뱃머리를 그리로 돌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식으로 솔로몬 왕의 정비로서 왕비가 된 것도 아닌 관계에서 사생아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의 귀중한 선물-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에 대한 안전 보장을 위하여 시바여왕으로 하여금 에티오피아 식민지로 뱃길을 돌렸고 그곳에서 아들을 낳아 솔로몬에게서 받았던 많은 보석과 재화를 가지고 아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왕국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하여 장장 3,000년 왕조를 누리게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5. 커피의 탄생과 보급
커피가 마시는 음료(음물)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물론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멘 판 이야기이다. 이슬람교가 아라비아반도에 탄생한 것은 7세기 전반의 일로, 이 이후 메카메디나를 기점으로 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슬람탄생 당시의 아라비아반도에도 커피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라비아반도에 이슬람교가 완전히 퍼진 10세기경이 되어 겨우 음료로써의 커피가 발견되게 되었다. 당시 예멘인과 에티오피아인 사이에는 빈번한 왕래가 있었다. 어느날 이슬람의 수행자 ([커피룸바]에는 어느날 아랍의 위대한 도련님이---)라고 되어있지만 사실은 이슬람교에는 도련님은 없다.)가 병이 나서 어떻게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서 무언가 기분이 좋아질 것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겨우 에티오피아에 놀러 가서 먹었던 [분]의 열매를 생각해 내었다. 그래서 예멘의 산악지대를 찾아서 같은 모양의 열매를 발견하여 씹어 보았더니 몸에 활력이 넘치고 병이 낳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권하였고 [분]이 보급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분]이 커피의 열매였는데, 이 단계에서는 정신을 맑게 하는 약으로써 사용되었을 뿐, 기호품으로써 마시는 음료는 아니었었다.
한편 이슬람의 수행자들이 밤의 근행(성전 코란의 공부)을 할 때에 무언가 졸리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분]을 음료로써 마셔보니 눈이 떠지고 머리도 맑아져 근행도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서서히 이슬람 세계 전체로 퍼졌고 이슬람의 성지 메카메디아에서도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퍼졌다.
이슬람교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는데 메카에서도 일부의 사람들이 커피가 지닌 각성작용을 문제로 하여 커피도 술의 일종이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16세기 초반에 커피 옹호파와 반대파 사이에 커다란 종교논의가 열렸는데 결국 커피는 술과는 다르다고하는 검증을 받게 되어 커피를 마신다고 하는 문화가 이슬람세계에서 확립되게 되었다.
드디어 16세기 후반에는 오스만토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도 커피가 전해져 궁정문화로 흡수되면서 상류계급이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 즉 다시 말해 [사론-살롱]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싸움, 즉 유럽에서 보면 십자군의 역사 중에서 이슬람의 문화가 서서히 유럽 세계로 소개되고 1683년의 유명한 윈의 전쟁에서 이슬람군이 철퇴한 후 , 거기에 남겨진 커피원두 자루를 사서 처음으로 만들어 낸 커피점이 유럽에서 의 최초의 커피숍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커피의 무역 상인로서는 최초로 네덜란드인 활약을 했다.
어쨌든 커피라고 하는 것이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 주위에서 나왔기 때문에 커피를 거래한다고 하면서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 때문에 최초로 커피원두를 모카로부터 사들여 암스테르담에서 수입했던 것이 1628년의 일이다. 이렇게 해서 모카는 세계 속으로 커피원두를 수출하게 되었고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커피교역이 시작되었을 때, 아랍상인은 생각했다. 가능한 자신들의 특산품인 것을 이용해서 비싸게 팔자. 희소가치, 부가가치를 붙이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그래서 자신들의 독점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원두를 수출할 때는 결코 다른 토지에서 발아하지 않도록 모두 달여서(煎) 수출하는 것으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밭에서만 할 수 있다는 희소가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는 쪽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원두를 손에 넣고 싶어했고 메카로 순례자가 돌아오는 길에 원두를 가지고 돌아오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이 원두가 당시의 세계무역의 중심지 암스테르담에 보내져 그곳에서 유럽의 제국 주의국가들은 자신의 식민지에 이 커피 원두를 이식, 플랜테이션을 만들어 값싸고 대량으로 안정적인 공급을 도모하였다. 이것이 현재 중남미나 쟈와의 커피농원의 기원인 것이다. 때문에 모카에서 적출된 커피는 세계 커피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후 커피를 마시는 문화는 유럽, 및 그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점점 퍼져나가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영국과의 대립에서 [보스톤*티파니] 사건(1773년)으로 홍차를 바다로 던지고 나서는 홍차 대신 커피가 한층 보급되어 세계 제1의 커피 소비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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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1. 커피 애호가들
서양에서는 옛부터 커피가 위대한 인물들에게 각별히 사랑받아 왔다. 프러시아를 대국으로 끌어올린 프리드리히 대왕은 서민들에게 커피를 금지하면서도 커피를 마셨고, 바하는 '커피 칸타타' 를 작곡했으며 철학자 칸트는 말년에 커피에 푹 빠졌다. 그리고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커피가 없으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베토벤의 경우 아침식사는 커피 뿐이었다.
식사.커피.집필. 도중에 또 커피… 프랑스의 유명한 문호 발자크는 이 생활을 20년 동안 계속해 74편의 장편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단편을 썼다. 프랑스의 작가 타레랑은 커피에 관해서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 고 노래했는데 이외에도 문학에 등장하는 커피는 수없이 많다.
2. 커피- 그 명암
인류가 한 해 마시는 커피는 4천억 잔이 넘는다고 한다. 석유 다음으로 유통량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커피의 유통 가공업체들은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반면 커피생산자들은 자녀들을
학교와 병원에도 보내지 못할 만큼의 절대빈곤에 시달린다고 한다. 거대 자본들이 초원과 숲을 밀어내고 만든 ‘녹색사막’ 에 기계를 들이고 약을 쳐서 커피의 생산량을 늘림으로써 공급과잉으로 인한 커피콩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3. 커피- 유럽문명과 아랍문명의 징검다리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린 곳 어디서나 포도농장을 볼 수 있듯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이던 곳 어디서나 커피향을 맡을 수 있었다. 흔히 우리는 커피의 원산지를 남미의 어디쯤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아랍이다. 알라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 쓸때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바로 그 음료가 커피였기에 이슬람에서는 커피가 종교였다.
와인을 즐기는 기독교인들이 정직하고 정열적인 반면 커피를 즐기는 이슬람인들은 침착하고 냉철하며
사색적이었는데, 이런 정신적 패턴은 문명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4. 커피 – 바스티유를 향하여
살롱의 기원은 고대 아테네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단다. 기원전 4~5세기 경 아테네에서 젊은 귀족들이 스포츠클럽과 더불어 살롱에서 향연(symposium)을 즐겼는데, 이곳에서 특정한 주제를 내걸고 담론과 사교를 즐기는 모습이 17~18세기 프랑스의 살롱 풍속도와 흡사하다. 사교인의 모태가 된 살롱은 17세기의 대표적 교양인들의 지적, 사교적인 연금장이었다. 신과 형이상학의 문제에서 여인의 패션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무궁무진한 관심이 화제에 올랐고, 그 화제가 바로 그대로 저술의 주제가 되었다. 또한 커피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와 논쟁을 하는 커피하우스의 출현을 가져왔고, 이 커피하우스는 정치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의 출발점이 된다.
1789년7월12일 프랑스 혁명가 카미유 데물랭이 파리의 팔레로열에 있는 카페포이의 옥외 테이블에
올라가 군중들을 바스티유로 향하도록 선동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프랑스 혁명의 진원지였던 유럽의 살롱문화가 점차 카페에 자리를 넘겨 주게 된다. 그건 무역상들이 들여온 아랍에서 발견된 ‘검은열매’, 즉 커피가 유럽인들을 열광시켰던 것이다
5. 커피 – 나폴레옹의 해상봉쇄
지금 브라질이 최대 커피 생산국이 된 것은 나폴레옹이 영국의 해상무역을 차단하기 위한 대륙봉쇄의
결과이다. 대륙봉쇄로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된 유럽과 아메리카는 새로운 커피 전진기지로 브라질을
선택했던 것이다.
6. 커피 – 남북전쟁의 승패를 가르며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 2부에는.
"다른 이유야 어쨌든 설탕과 진한 크림이 들어간 진짜 커피를 마실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북군을 증오했다." 라고 씌어있다.
남북전쟁에서는 남군도 북군도 식량이 모자라 병사들은 마른 빵을 커피에 적셔 먹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커피의 존재는 매우 귀중했다. 야전에서는 더했다. 커피의 부족은 남부에서 특히 심해 민들레랑 치커리의 뿌리까지 마셨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커피가 귀하여 사람들은 늘 '진짜 커피가 먹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하였다고 한다.
결국 커피를 제대로 마실 수 없었던 남군의 항복으로 전쟁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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