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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10
 

꿈에 본 내 고향 (9)

9.  꿈에 본 내 고향

 

 

고향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람 외에 산천이라는 자연도 포함이 되기에 고향산천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고구(
故丘 : 옛 언덕)·고리(故里 : 옛 마을)·고산(故山 : 옛 산)·가향(家鄕 : 집 있는 마을)·
벽향(
僻鄕 : 먼 외진 고을)·향리(鄕里 : 고향 마을)라고도 불렀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관(出鄕關)·이향(離鄕),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며, 그런 사람은
나그네요 그 삶은 타향살이며 그의 고향 그리는 시름은
향수(鄕愁), 객수(客愁, 旅愁)라 하였다.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스위스에 가면 하임베 플루(Heimweh Fluh)라고 하는 몹시 아름다운 산을 볼 수 있다.

이 산에서 계곡과 마을의 호수와 눈 덮인 산을 바라보는 절경은 정말 너무도 아름답다. 그런데
여행자들은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마음속에 고향을 생각하기에 이 산을 향수의 산
(Home Sick Mountain)
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고 여행이 즐거워도 인간은
끝내 고향을 잊을 수 없는 것이라 한다. 

 

20여 년도 더 넘은 오랜 세월의 고단한 이민 생활을 통하여 때로는 지치고 힘들고, 간혹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각색 모양으로 고국으로 또는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을 보게 되거나 아니면 저
죽음의 나라로 보내게 될 때 , 그런 때에는 다 떨쳐버리고 정말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뭉클 떠올라 먼 하늘을 쳐다보며 하염없는 생각에 잡히곤 한다.

 

고향에 돌아온 것이 본 마음이면 귀향(歸鄕)이요, 어쩔 수 없으면 낙향(落鄕)이라 하였다. 이로써
보면 고향에 대해서는 그대로 눌러 사는 사람과 떠나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과 마침내 돌아가는
사람 등으로 분류가 된다.

 

그 상황에 따라 실로 다양한 단어가 있음은 한국인의 고향에 대한 심성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다.
이는 고향을 떠난 사람이 주로 국내에 있는 경우이지만, 다른 나라에 가 있을 때는 좁은 고향 땅과
넓은 우리 나라 땅이 겹쳐서 고향이 곧 고국이며 조국이며 모국으로 확대된다. 이때 고국을 그리는
교포는 타국살이이며, 일제강점으로 인한 경우는 망국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객지살림·타향살이·타국생활이 고단하면 상대적으로 평안하고 포근하고 아름답고 부모
형제와
선산(先山)이 있는 고향 땅을 그리게 마련이며, 바깥생활이 풍족하면 고향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을 부모와 조상의 묘가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런 대화는 한국인의 고향관을
단적으로 표시한다. “이몸이 삼기실 제 님을 따라 삼기시니……”라는 조선시대
정철(鄭澈)
〈사미인곡〉 첫머리에 있는 말대로 탄생이 ‘삼기다·삼다’이기에 고향은 출생지로서 ‘삼터’가 되고,
타향이나 객지가 아니기에 본향이다.

 

백령도 북쪽 두무진이라는 곳에서 보면 7㎞ 북방이 황해도의 돌출 부분인 장산곶이며 몽금포인데,
그곳에 70세가 넘은 어부가 있어 물으니 “여기가 고향이 제일 가깝기 때문에 눌러 사는 것이오.
이 나이가 되어도 물에 들어가는 것은 저기 빤히 보이는 장산곶 우리 마을인 앞 백사장에 내 몸이
닿은 바닷물이 찰삭거리라는 뜻이라오.”라고 비장하게 말하였다.

바닷물은 국경선을 무시한다는 실향민의 술회는 한국인의 고향의식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갈 수는
없는 고향에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가서 살겠다는 의지가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이 노래는 육이오 전쟁으로 남북이 휴전선으로 막혀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오도가도 못 하는 수백만
실향민의 사연과 한을 담아 노래한 것이지만 요즘은 어쩌다 해외로 이민 와서 낯 선 나라에서 정착
하느라 삶에 지치고 어느새 훌쩍 흘러버린 세월을 돌아보며 고국이 그리운 사람들한테도 찡하고
가슴을 올리는 노래 중의 하나이다. 

 

 

고향을 떠나 온지 몇몇해련가
타관땅 돌고돌아 헤메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돈이 있는 곳을 찾아 살기 위하여 고향을 등지고’, ‘정들면 고향이니 도시 가서 외국 가서  뿌리를
내리고’, ‘젊은 사람은 나가서 벌어야지.,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랬지., ‘돈이
몰린 곳에 사람이 몰리게 마련’, ‘도시 발전에 먼저 참가한 자가 유리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논리가 팽배하였다.

 

도시에 정착한 세대는 전반기 농촌(지방이라고 확대한 뜻이다.), 후반기 도시라는 두 가지 경험을
가져서,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복잡한 귀향 활동을 일으키고 고향 사람을 만나서 향수를
달랜다. 설이나 추석 때 귀성객의 모습을 보면 잘 알 것이다.

 

 

고향생각                 이은상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요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도시로 떠나온 사람은 이전 어릴 적의 고향을 생각할 때 ‘고정된 이전 모습’을 바꾸지 않았는데,
실제로 고향 땅에 가보면 거기도 적잖이 변하였기에, 고향의 꿈은 깨어지고 배신당한 것 같고,
귀중한 보물을 도둑맞은 것 같고, 고향을 방문한 자기는 늙지 않았는데, 고향 사람만 늙었다는
착잡한 생각에 빠진다.

 

골목친구·동기동창·선후배·불알친구·꾀복장이동무(어려서 같이 옷벗고 컸다는 뜻) 네것 내것
없이 자란 친구라는 말이 여기에 합당한 것이다.

 

 

향수의 달밤           노래  김희갑

 

 

어연간 몇해던가 청춘도 가고

집없는 나그네 타향살이 서럽구나

땅을 치고 울어봐도 다시 못 갈 내 고향

북쪽 하늘 바라보며 담배 연기 뿜어본다

 

 

언제나 가보려나 그리운 가족

쓸쓸한 나에겐 쪼각달도 눈물인가

가슴치고 통곡해도 다시 못 볼 내 처자

북두칠성 바라보며 애절이도 흐느끼네 

 

 

1970년도 H 은행 을지로 지점에 간혹 나타나서 최 ㅇㅇ 지점장 실로 들어가서 차를 한잔 대접
하는 지점장과 환담하던 인기 연예인 김희갑 선생의 모습이 눈 앞에 가물가물 떠오른다.

홀쭉이와 뚱뚱이로 짝을 이루어 50년대 말부터 60년대를 풍미하였던 인기 연에인 김희갑씨와
최지점장의 딸이 당시 이화여고 같은 반에 다니고 있어서 딸들의 친교를 통하여 두 사람이 서로
친해졌다는 뒷얘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듬해 소위 임원으로 출세하는 정통코스라는 영업
부장으로 영전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어 은행원이 힘 없는 것이 억울
하다며 한강에서 투신 자살한 최지점장의 운구행렬을 따라가며 친구의 마지막을 전송하며 눈물
뿌리던 김희갑씨가 이북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애절한 음률로 불러 힛트했던 노래가 이 향수
의 달밤이다.

 

내 기억에는 정확히 어떤 곡인지는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지만 이 노래 말고도 더 많은 노래를
취입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아련하게 남아 있다.

 

 

내 고향산천 ***        - 草莽 / 朴東國 -

 

내 고향 거진(巨津)은 물방게 떠 오르는
논자락 샘터가 있고

옹고지떼 노니는 따뜻한 논도랑물

꼬불꼬불 바닷가로 이어진다네


 

밤이면 부엉이 우는 고장
갈갈이 울음이 시샘을 놓고

철석이는 파도가 있는 내고향 거진(
巨津)

 

힌섬이 우뚝하니 서서
바닷가 향하는 마음을 막아 버티고

서낭당 등대는 반짝이며 오라오라

지나는 길손배 손짖을 하는 데


 

넘지말라 넘지말라 넘지를 말아라
태백산맥 영세(
嶺西)로 넘지를 말아라
예맥의 땅을 지키며 옹기종기 모여앉은

초가집들이 산모퉁이마다 앉아있고

소 여물 끓일때 쯤 모락모락 오르던 굴뚝 연기

여기가 내고향일세 나른나른 하늘로 오른다


 

산더덕 산도라지 산동백 산목련
버찌 뽕오두 산딸기 머루다래

철마다 피어올라 군입질 진창이던 세월

가을이면 피어 오르던 송이 싸리버섯


 

아리아리아리랑 쓰리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를 넘겨주소
...
산나물 캐며 부르시던 님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묻어 있는 곳

고초당초 맵던 시집살이 우리님 가신 자리

눈 감으면 삼삼이 떠오르는 고향

핏줄이 흐르는 곳


 

지척이 몇천리인가
님이 아니계시니 맞는이 없구뇨

타향이 외로움이니 구리움만

고향산천 헤메이는구뇨.

 

 

영세 - 領西 (영동 사투리)
옹고지 - 영동지방에서 논도랑물에 사는 민물고기

갈갈이 - 산짐승(여우종류)

 

 

객지 생활이 어려울수록 고향은 그립고 객지에서 고독할수록 고향 사람은 절절한 정을 준다.
고향의 경험은 추억이 되는데, 그 추억은 기쁘고 슬프고 무서운 것이 강력한 법이다. 그 중 무서운
것에 대한 기억은 고향 마을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진정한 전쟁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5)

2009.11.27 14:12 | 승자와 패자의 세월 | 고동소리

http://kr.blog.yahoo.com/lisukum/1239035 주소복사

진정한 전쟁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5)

 

2.  맥아더 장군의 생애

 

 

1)  50 년을 현역군인으로 산 영웅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역사의 뒤 안 길로 조용히 걸어간 맥아더장군은
그가 죽기 2년 전인 1962년 자신이 수석으로 졸업하였으며 최연소 교장을 역임하였음을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던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 아주 감동적인 명 연설을 육사생도들에게 남겼다. 다음은 그 때 맥아더
장군이 행한 연설문 중의 한 구절이다.

 

「의무」, 「명예」, 「조국」 -- 바로 이 숭고한 세 단어는 여러분의 소망, 여러분의 자질, 여러분의 미래를
경건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세 마디는 용기가 꺾일 듯할 때 용기를 북돋아주고, 자신의 믿음이 약해지려
할 때 신념을 되찾게 해주고, 희망이 사라져버렸을 때는 희망의 불꽃을 되살려주는 再起의 거점인 것입니다.

 

“Duty,” “honor,” “country” ―those three hallowed words reverently dictate what you want to be, what
you can be, what you will be. They are your rallying point to build courage when courage seems to
fail, to regain faith when there seems to be little cause for faith, to create hope when hope becomes
forlorn.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8801964)만큼 20세기 미국에서 군사적 성공을 이룩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1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며 미군들에겐 살아생전 최고의 훈장이라는 은성무공훈장을
무려 일곱 차례나 받았고, 미 육군 역사상 넷밖에 없는 5성 장군이다.

 

비록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복장규정에 어긋나는 말채찍과 스웨터, 긴 머플러로 동료 장교와 자신을 확연히
차별화한 맥아더는 제2차 세계대전에선 꾸깃꾸깃한 작업모.작업복 차림에선글라스에 옥수수대 담배파이프를
문 모습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고 하여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긴 해도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조국의 부름에 명예롭게 그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군인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또한 그런
삶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심어 주었던 진정한 전쟁영웅으로 기억되고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 바로
맥아더 장군이다.

 

그는 작업복에 훈장을 다는 일은 없지만 5성 계급장만은 꼭 달고 다녔는데 1950년 트루먼 대통령과 태평양 상
웨이크 섬에서 만날 때 그는 정장대신 이런 복장을 하고 나가 의전을 문제 삼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으며 거침없는 맥아더의 태도에 무시당했다고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불쾌감을 삭이지 못한
트루먼으로 하여금 노여움을 갖게 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장군들로 맥아더 장군과 함께 기억되는 사람들로는 아프리카와 유럽 전투의
영웅 패턴 장군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유엔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을 들 수 있다. 패턴 장군과 맥아더
장군 두 사람은 전쟁을 읽는 비상한 능력과 확신에 찬 결단력으로 수립된 전략을 밀고 나가는 추진력에서는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맥아더 장군이 참모총장 시절 자신의 보좌관으로 데리고 있었던 아이젠
하워 장군의 경우는 그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억지로 비교해 본다면 1979 10.26 사건
후 역사의 전면으로 떠 올랐던 장군 전두환과 노태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그들인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긴다.

 

검은 선글라스와 파이프 담배를 문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은 말채찍과 긴 군화로 상징되는 조지 패튼의 패션을
능가했고,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물론 적국이었던 일본에서도 ‘신과 같은 존경을 받은’ 그의 카리스마
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압도했다
.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880-1964) 1950 6 25일에 전쟁광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 중 특히 인천상륙
작전을 통해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맥아더는 1880 1 26일 미국 남부 아칸소 주 리틀록에서 아서 맥아더 (MacArthur, Arthur 1845-1912)
메리 핑키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군인 가정에서 태어나 군인으로 일생을 마친 맥아더의 군 경력은 순탄하고 화려했다. 1903 6월 미 육군사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보통 공부를 좀 잘한 정도가 아니라 4년 재학 도중 2470점 만점에 2424.2를 얻어
( 100점 만점에 98.14) 당시 웨스트포인트 250년 역사상 3위 안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한 엄청난 수재였다.

 

2년 후 가을 맥아더 중위는 부친인 아서 맥아더 장군 밑에서 부관 생활(1905-1905)을 하기 위하여 필리핀으로
갔다. 그의 군인으로서 전 생애를 통하여 대부분의 중요하고 빛난 전과를 아시아에서 세움으로써 전쟁영웅이
되었는데 그 첫 발을 필리핀에서 내딛게 되어 아시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부친 아서 맥아더는 남북전쟁(1861-1865)말기인 1865 5월 스무 살의 나이에 대령이 되어 소년대령의 별명
을 얻었던 인물이다. 아버지는 1866년 정규군 중위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여 1898년 여단장으로 필리핀으로
파견되어 1899 2월 마닐라 방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로를 인정 받아 5월에 필리핀 점령군 사령관 겸 군정
장관에 올랐다.

 

필리핀 근무를 마친 맥아더는 1906년 데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관으로 1년 간 근무하면서 정치의 한 가운
데를 잠시 살펴보기도 했었다. 멕시코의 베라크루스 원정(1914.4 -11) 에서 공을 세워 명예훈장을 수여 받았
.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1917년 무지개사단의 참모장으로 프랑스에 파견되었고 1918 11

38
세에 준장으로 승진하여 사단장으로 독일 점령의무를 수행하다 1919 4월 귀국하여 육사교장
(1919-1922)
이 되었다. 전임 육사교장은 71세의 노 장군이었던데 반해 39세의 젊은 장군이 육사교장으로 부임한 이후 여러
가지 획기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당시 학교에서는 생도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니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다. 어느 날 이문제가 교수회의에 올려
져 대책이 논의되었다. 잔디밭으로 다니는 생도를 처벌하자는 주장과 곳곳에 팻말을 세워 계몽하자는 등 의견이
분분하여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을 때, 그 때까지 듣고 있던 맥아더 교장은 지성인인 생도들이 지름길로
다니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필요가 있어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잔디를 파헤치고 지름길을 만들어주면 될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고 곧 바로 지름길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혹시 자신이 육사 생도였을 때 그도 몇 번이나 잔디밭을 가로 질러 다녔던 경험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
만 십중팔구 그도 그런 생도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1922년 소장으로 승진하여 1922 10월 필리핀 사령관이 되어 1925 .1월까지 근무하고 1930 11월 대장으
로 승진되어 참모총장으로 1935 10월까지 5년 동안 대공황으로 미약해진 미 육군의 군사력을 보존하는 일에
노력을 경주하였다.      

 

유군 참모총장 직에서 물러난 뒤 1935 10월 필리핀 독립을 위한 방위 임무 조직을 위해 영구 소장 계급으로
그 곳에 갔으며 1936 8월 필리핀 정부로부터 원수계급을 수여 받고
필리핀 방위군을 조직하는데 전력하였다.
1937
12월 말 미 육군 현역에서 퇴역하였다

 

1922년 루이스 크롬웰 브룩스와 결혼했던 맥아더는 아이를 갖지 못한 채 7년 만에 파경을 맞고 1937년 잔 페어
클로스와 재혼하여 이듬해 마닐라에서 외아들 아서를 얻었다.

 

아들을 위하여 남긴 그의 기도문은 참으로 군인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의 자애와 깊은 신앙인의
경건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아들을 위한 기도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때에 자기를 돌아볼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때 자신을 잃지 않는 담대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
생각해야 할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주옵소서
.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

이런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

내 자녀에게 유우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을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

그리하여 어느날 나 아버지는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

아멘...

 

Build me a son, O Lord,
who will be strong enough to know when he is weak;
and brave enough to face himself when he is afraid;
one who will be proud and unbending in honest defeat,
and humble and gentle in victory.

Build me a son
whose wishes will not take the place of deeds;
a son who will know Thee –
and that to know himself is the foundation stone of knowledge.

Lead him, I pray, not in the path of ease and comfort,
but under the stress and spur of difficulties and challenge.
Here let him learn to stand up in the storm;
here let him learn compassion for those who fail.

Build me a son
whose heart will be clear, whose goal will be high,
a son who will master himself before he seeks to master other men,
one who will reach into the future,
yet never forget the past.

And after all these things are his, add, I pray,
enough of a sense of humor,
so that he may always be serious,
yet never take himself too seriously.
Give him humility,
so that he may always remember the simplicity of true greatness,
the open mind of true wisdom,
and the meekness of true strength.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Amen

 

 

<펌>동물들은 동성애를 할까?

 

'유대감 높이려고' '착각 때문' 다양한 해석

조류, 파충류, 영장류 등 거의 모든 종()의 동물들이 동성애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손을 낳을 수 없어, '진화론'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이미 오래전에 도태됐어야
하는 동성애가 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
(19일자)가 리버사이드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네이선 베일리(Bailey) 교수와 말린 주크
(Zuk) 교수팀이 수십년간 동물 간 '동성(同性) 교배'를 연구해 낸 최근 논문을 인용해 소개
'동성애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우선 '라커룸의 남자애들(boys-in-the-locker-room)' 이론. 남자애들이 라커룸에서 동성
애를 둘러싼 각종 농담과 행위들을 하면서 서로 유대감을 높여가는 현상에 빗댄 설명이다.
수컷 청백돌고래는 무리의 유대를 강화하려고 동성애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먹을 것을
앞에 둔 보노보 침팬지들은 암수에 관계없이 '교배'한 뒤 나눠 먹는데, 이 역시 무리의 긴장
감을 낮추고 화해를 쉽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수컷들이 암컷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 수컷이 스스로 암컷을 자처해 동성애를
받아 들인다는 이론도 있다. 실제로 수컷 똥파리들은 제한된 수의 암컷을 놓고 경쟁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컷의 동성애가 이뤄지며 동성애를 주도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한다.

상대의 성()을 헷갈린 경우도 있다. 수컷 두꺼비는 성을 구분하는 유전자가 결여돼 있어
동성애를 한다. 멕시코에 주로 서식하는 수컷 구디드 물고기 중에는 임신한 암컷에게 생기는
검은 반점을 가진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다른 수컷이 이 '반점 수컷'을 암컷으로 착각해 동성
애를 한다.

비교적 어린 동물들은 '훈련' 삼아 동성애를 하기도 한다. 후에 있을 이성애의 준비 단계다.
수컷 초파리 등이 이런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동물 세계에서 벌어지는 동성애는 단순한 우연이거나, 암컷을 임신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적 방법일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여성과 남성 중 일부가 보이는 동성애는 이런
'
진화적' 관점의 이론으로도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타임은 보도했다.

장부의 단심 장부의 충절(3) 사육신의 노래 – 박팽년(朴彭年)

2009.11.24 11:13 | 시와 인생 -우정과 사랑 | 고동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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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의 단심 장부의 충절(3)

사육신의 노래 박팽년(朴彭年)

 

 

사육신의 의기와 충절이 담긴 시를 앞에 하고서는 필설이 무용하다.

그저 가슴으로 와 닿는 표현키 어려운 뜨거운 무엇이 차오르는 것으로….

 

 

金生(금생) 麗水(여수)라 한들 물마다 金()이 나며

玉出崑崗(옥출곤강)이라한들 뫼마다 玉()이나랴

아모리 女必從夫(여필종부)ㅣ들 님마다 조차랴

朴彭年(박팽년)

 

아름다운 물에서 금이 난다고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곤강(옥이 나는 산)에서 옥이난다
한들 산마다 옥이 나겠는가? 아무리 사랑이 중하다고 한들 임마다 따르랴
.
임금을 섬기되 분별없이 여러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 표현 기교로 노래했다.

수양 대군에 의해 쫓겨난 어린 단종에 대한 애끓는 충정을 담아 노래한 작품이다.

이 노래는 세종 24(1442) 25세의 팔팔한 청년으로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 박팽년이
한 살 연하의 성삼문 등과 함께 삼각산 진관사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 유능한 젊은 관료
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하던 제도)를 하면서 서로의 뜻을 담은 시를 주고 받았
는데, 충신불사이군 (忠臣不事二君)의 한결 같은 단종에 대한 충절을 다짐하는 의절가로
그의 가마긔 눈비 맞아와 함께 널리 흠모되는 노래이다.

 

가마귀 눈비마자 희는듯 검노매라

夜郞明月(야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 변할줄이 이시랴

朴彭年(박팽년)

 

까마귀(변절하는 간신)가 한때의 눈비를 맞아 희게 되었다고 해도 결국은 다시 제 모습으
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리고 야광명월의 구슬(충신)이 어둔 밤(역경)에도 변하지 않는 것
처럼, (단종)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일편단심은 변할 줄을 모른다고 굳은 절개를 표현하
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마귀'와 대조적인 시어는 '야광명월' '일편단심'으로 연군에
대한 한결같은 충성심을 나타낸다. 시련 속에서도 작자가 깊이 다짐하고 있는 절의가
돋보이는 시조이다.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은 당시 형조 참판 자리에 있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참지 못하여 경회루(慶會樓)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하였으나 함께 후일을 도모하자는 성삼문(成三問)의 만류로
단념하였는데, 이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복위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뒤 박팽년의 인물됨을 너무 아껴온 세조는 사람을 시켜 비밀스레
일렀다.


"내게 돌아와 첫 모의에 참여한 것만 숨긴다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그러나 박팽년은 웃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임금이 된 세조에게도 '상감'이라
하지 않고 그냥 '나리'라고만 불렀다. 이를 듣고 있던 세조가 소리쳤다
.

"너는 나에 대해 스스로를 이미 '()'이라 일컬었는데, 이제 와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러자 박팽년이 태연스레 말했다.


"나는 상왕(문종)에게만 신()이었을 뿐이오. 충청 감사로 내려가 한 해 동안 나리에게
여러 번 장계(壯啓)를 올렸지만, 나 스스로를 신()이라 쓴 적은 없소."


정말로 그 때 올린 편지들을 가져다 확인해 보니 모두 '()'자 대신 '()'자로만 씌어
있었다. '()'자는 나리를 이르는 말이다.

 

세조는 그가 충청감사로 있을 때 올린 장계를 실제로 살펴보고 과연 ‘신’자가 하나도 없자
더욱 노기를 띠어 심한 고문을 가하면서 함께 모의한 자들을 대라고 하였다
.
그는 서슴없이 성삼문·하위지· 유성원 ·이개· 김문기(金文起)·성승·박정·유응부·권자신(權自愼)·
송석동( 宋石同)·윤영손(尹令孫)·이휘(李徽)와 자신의 아비 중림이라 대답하였다.

 

박팽년은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 박중림 앞에서 울면서 말했다.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다가 이렇게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
임금을 바로 섬기지 못하는 것 또한 불효이니라."


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그는 심한 고문으로 그 달 7일에 옥중에서 죽었으며, 다음 날에는 다른 모의자들도 능지처사
(凌遲處死) 당하였다. 그의 아버지도 능지처사 되고, 동생 대년(大年)과 아들 헌()·순()·
()이 모두 처형되어 삼대가 참화를 입었다
.
이와 함께 그의 어머니·처·제수(弟嫂) 등도 대역부도(大逆不道)의 가족이라 하여 공신들의
노비로 끌려갔다.

장부의 단심 장부의 충절 (2) 사육신의 노래 – 성삼문

2009.11.22 03:51 | 시와 인생 -우정과 사랑 | 고동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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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의 단심 장부의 충절 (2)

사육신의 노래 성삼문

 

 

首陽山(수양산) 바라보며 夷齊(이제)를 恨()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菜薇(채미)도 하는것가

아모리 프새엣거신들 귀 뉘 따희 낫더니

成三問(성삼문)         甁歌(병가)  62

 

그의 나이 한창 나라를 위해 펄펄 날며 일 할 수 있을 아까운 서른 여덟 장년으로 아버지 승()
박팽년(朴彭年)등과 같이 단종(斷種)의 복위(復位)를 꾀하다 발각되어 이개(李塏), 하위지(河緯地),
유응부(兪應孚) 등과 함께 체포 되어 친국(親鞫)을 받고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거열(居烈)의 극형
(極刑)을 받았다.

 

이에 부()인 승()도 주모자(主謀者)로 극형(極刑)을 받았고 삼빙(三聘), 삼고(三顧), 삼성(三省)
의 세 동생(同生)과 맹담(孟澹), 맹년(孟年), 맹종(孟終)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도 모두 살해(殺害)
되었다.

 

 

이몸이 죽어가셔 무엇이 될고 하니

蓬萊山(봉래산) 제일봉에 落落長松(낙낙장송) 되야이셔

白雪(백설)이 滿乾坤(만건곤)할제 獨也靑靑(독야청청) 하리라 

成三問(성삼문)             甁歌(병가)   63

 

 

병자(丙子,1456) 6 8일 형장으로 가던 수레가 잠시 머물렀을 때 그의 종이 울면서 술을 올리니
몸을 숙여 받아 마시고 그의 충절(忠節)을 다음과 같이 시()로 나타냈다
.


식인지식의인의 食人之食衣人衣  임의 밥 임의 옷을 먹고 입으며
소지평생막유위 素志平生莫有違  일평생 먹은 마음 변할 줄이 있으랴
일사고지충의재 一死固知忠義在  이 죽음이 충과 의를 위함이기에
현릉송백몽의의 顯陵松栢夢依依  현릉(문종의 능) 푸른 송백꿈 속에서도 못잊져라

 

수레에 실려 형장(刑場)으로 끌려 갈 때 대여섯 살 밖에 안된 그의 딸이 따라오며 울부짖으니 그는
뒤돌아 보며


사내아이는 다 죽어도 너만은 죽지 않으리라
하고는 목이 매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식 사랑하지 않는 아비가 어디 있으며, 아비 사랑하지 않는 딸이 어디 있을까마는, 아버지가 목에
칼을 쓰고 오랏줄에 묶여 음산한 죽음의 괴기(怪氣)가 감도는 수레에 실려가는 모습을 보고 기절해
버린 어머니를 뒤로하고 대여섯 살 어린 딸이 엄습하는 무서운 공포를 이겨내고 세상에서 누구보다
도 더 사랑하는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하고 목 메여 울부짖으며 수레 뒤를 따라오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절로 가슴이 울렁거리게 된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그가 읊은 이 절명시(絶命詩)에서 다시 한번 인간 성삼문의 다른 진면목을
만나게 되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 홀로 가야 할 저 저승길, 그 멀고도 먼 길의 외롭고 쓸쓸하고 길고도 음산하며 고단한 걸음을 생각
하며 그는 오늘 밤 잠자리를 염려하고 있다. 외롭고 쓸쓸한 저승 길, 어쩌면 가도가도 적막한 어두움의
노중(路中)에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아버지 성승과 함께 세 동생들 그리
고 자신의 네 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마땅한 잠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느 황량하기 그지없는 들녁
같은 곳에서 저승의 하룻밤을 쉬어야 하는 것 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어쩌면 아버지의 잠자리를 염려하
는 불효자의 안타까운 심경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으려나하여튼 그도 보통 사람과 별 반
다를 것 없는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이 절명시
(絶命詩)에서 적나라(赤裸裸)
하게 보여주고 있다.

   

절명시(絶命詩)

 

檄鼓催人命 (격고최인명) 북은 어서 목을 베라고 조급히 울리고

西風日欲斜 (서풍일욕사) 저녁해는 하늬바람 속에 기울어 가는데
黃泉無客店 (황천무객점) 저승길엔 나그네 머물 집도 없으리니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오늘밤은 뉘 집에 들러 자고 간단 말인가)


황천무객점 (黃泉無客店) 저승길엔 나그네 머물 집도 없다는데 

오늘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절명시 한 구절을 떠 올리노라면 절로 550년 전의 어느 장면이 아련히
펼쳐진다.

 

, 지는 해를 바라보며 형장으로 끌려가는 성삼문의 쓸쓸한 그림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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