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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의 단심 장부의 충절(3) 사육신의 노래 – 박팽년(朴彭年) 사육신의 의기와 충절이 담긴 시를 앞에 하고서는 필설이 무용하다. 그저 가슴으로 와 닿는 표현키 어려운 뜨거운 무엇이 차오르는 것으로…. 金生(금생) 麗水(여수)라 한들 물마다 金(금)이 나며 玉出崑崗(옥출곤강)이라한들 뫼마다 玉(옥)이나랴 아모리 女必從夫(여필종부)ㅣ들 님마다 조차랴 朴彭年(박팽년)
아름다운 물에서 금이 난다고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곤강(옥이 나는 산)에서 옥이난다 한들 산마다 옥이 나겠는가? 아무리 사랑이 중하다고 한들 임마다 따르랴. 임금을 섬기되 분별없이 여러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 표현 기교로 노래했다. 수양 대군에 의해 쫓겨난 어린 단종에 대한 애끓는 충정을 담아 노래한 작품이다.
이 노래는 세종 24년(1442년) 25세의 팔팔한 청년으로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 박팽년이 한 살 연하의 성삼문 등과 함께 삼각산 진관사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 유능한 젊은 관료 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하던 제도)를 하면서 서로의 뜻을 담은 시를 주고 받았 는데, 충신불사이군 (忠臣不事二君)의 한결 같은 단종에 대한 충절을 다짐하는 의절가로 그의 ‘가마긔 눈비 맞아’와 함께 널리 흠모되는 노래이다.
가마귀 눈비마자 희는듯 검노매라 夜郞明月(야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 변할줄이 이시랴 朴彭年(박팽년)
까마귀(변절하는 간신)가 한때의 눈비를 맞아 희게 되었다고 해도 결국은 다시 제 모습으 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리고 야광명월의 구슬(충신)이 어둔 밤(역경)에도 변하지 않는 것 처럼, 임(단종)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일편단심은 변할 줄을 모른다고 굳은 절개를 표현하 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마귀'와 대조적인 시어는 '야광명월'과 '일편단심'으로 연군에 대한 한결같은 충성심을 나타낸다. 시련 속에서도 작자가 깊이 다짐하고 있는 절의가 돋보이는 시조이다.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은 당시 형조 참판 자리에 있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참지 못하여 경회루(慶會樓)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하였으나 함께 후일을 도모하자는 성삼문(成三問)의 만류로 단념하였는데, 이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복위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뒤 박팽년의 인물됨을 너무 아껴온 세조는 사람을 시켜 비밀스레 일렀다. "내게 돌아와 첫 모의에 참여한 것만 숨긴다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그러나 박팽년은 웃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임금이 된 세조에게도 '상감'이라 하지 않고 그냥 '나리'라고만 불렀다. 이를 듣고 있던 세조가 소리쳤다.
"너는 나에 대해 스스로를 이미 '신(臣)'이라 일컬었는데, 이제 와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러자 박팽년이 태연스레 말했다. "나는 상왕(문종)에게만 신(臣)이었을 뿐이오. 충청 감사로 내려가 한 해 동안 나리에게 여러 번 장계(壯啓)를 올렸지만, 나 스스로를 신(臣)이라 쓴 적은 없소." 정말로 그 때 올린 편지들을 가져다 확인해 보니 모두 '신(臣)'자 대신 '거(巨)'자로만 씌어 있었다. '거(巨)'자는 나리를 이르는 말이다. 세조는 그가 충청감사로 있을 때 올린 장계를 실제로 살펴보고 과연 ‘신’자가 하나도 없자 더욱 노기를 띠어 심한 고문을 가하면서 함께 모의한 자들을 대라고 하였다. 그는 서슴없이 성삼문·하위지· 유성원 ·이개· 김문기(金文起)·성승·박정·유응부·권자신(權自愼)· 송석동( 宋石同)·윤영손(尹令孫)·이휘(李徽)와 자신의 아비 중림이라 대답하였다. 박팽년은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 박중림 앞에서 울면서 말했다.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다가 이렇게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임금을 바로 섬기지 못하는 것 또한 불효이니라."
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그는 심한 고문으로 그 달 7일에 옥중에서 죽었으며, 다음 날에는 다른 모의자들도 능지처사 (凌遲處死) 당하였다. 그의 아버지도 능지처사 되고, 동생 대년(大年)과 아들 헌(憲)·순(珣)· 분(奮)이 모두 처형되어 삼대가 참화를 입었다. 이와 함께 그의 어머니·처·제수(弟嫂) 등도 대역부도(大逆不道)의 가족이라 하여 공신들의 노비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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