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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10
 

꽁치와 과매기 <>

 

 

4.  과매기의 유래 <>

 


과매기(貫目)를 아십니까?
과매기는 영일만 근해에서 잡히는 대표적인 어종인 청어를 말려만든 이 고장 특유의 전통
적인 토산품으로 그 유래와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이 고장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지역에 청어가 예로부터 오랫동안 잡혀왔으나 조선시대 때
진공품(
進貢品)으로 선정된 관련 식품은 영일과 장기 두 곳 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1832
년과 1871녀의 읍지(
邑誌)에 다 같이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하는 말에 의하면,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반드시 맨 먼저 여기서 잡힌다고
하는 데 먼저 나라에 진헌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이를 잡았다. 잡히는 것이 많고 적음
으로 그 해 (오는 해 겨울을 가르킴) 의 풍흉을 짐작했다.라는 기록은 영일만 앞바다에 청어
가 많이 잡혀 형산강 하류에 까지 올라왔음을 지적해 주는 훌륭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동해안의 청어잡이가 이 고장의 청어잡이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고장과 청어 사이에
이루어진 특별한 역사적 사연을 말해주는 사화(
史話)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진공품(進貢品)이 바로 청어(비웃)를 말려서 만든 관목(貫目),관매기, 과매기 이가.말린
청어 또는 건청어(
乾靑漁)라고 불릴 수도 있는 것이나 만드는 과정에서 특별히 붙여진 이름
으로 이해된다.관목(
貫目)은 오늘날 이 고장에서 '과매기'라고 부르는 이 곳 주민의 애호를
받고 있는 건강식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름철의 포항 물회와 함께 포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겨울철의 향토 식품이 되고 있다

 

.식품으로의 청어는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와서 남겨진 기록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도문대(屠門大 )1611)의 청어(비웃)에 관한 설명을 보면,북도(北道)에서 나는 것은 외피
(
外皮)가 검고 뱃속이 붉으며 전라도에서 잡히는 것은 경상도의 것보다 작고 경주 근해에서는
2
월에야
잡히고 맛이 극히 좋다. 예전에는 천한 물고기 더니 고려 말년에는 쌀 한 되에 마흔
마리만 줌으로 목은집(
牧隱集)에서 이색(李嗇)이 한탄하기를 '세상이 어지럽고 흉년이 들어
백물(
百物)이 주천함으로 청어 마져 드물다고 하였다' 는 것이다.

 

그런데 이익(李瀷)의 성호사설(1763년경)에는 청어에 관한 설명을 '지금 생산되는 청어는
옛날에도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마다 가을철이 되면 함경도에서 생산
되고 있는데 형태가 아주 크게 생겼다. 추운 겨울이 되면 경상도에서 생산되고 봄이 되면
차츰 전라도와 충청도로 옮겨갔다. 봄과 여름 사이에는 황해도에서 생산 되는데 차츰 서쪽
으로 옮겨감에 따라 점점 잘아져서 천해지기 때문에 사람마다 먹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성호사설 시대의
청어는 서해의 청어이다. 이 서해 청어를 가리켜 서울 지방에서는
'
가난한 선비들이 잘 먹는 고기'라고 지적 하고 비유어로 표기 하였다. 이렇듯 선비들을 살찌게
하는 물고기 이니 '비웃'이 된 것이다
.

1940
년대 까지만 해도 많이 잡히던 영일만 동해안의 청어가 근래에 희귀해져서 오늘날 시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것이 북태평양 원양어업이 잡아 오는 청어로서 맛이 훨씬 떨어진다. 관목(
貫目)
은 음력 동짓달 추운 겨울에 잡힌 청어를 배를 따지도 않고 소금도 치지 않고 그냥 온 마리를
엮어 그늘진 곳에서 겨울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말려 만드는 것인데 곧 냉훈법으로 얼렸다
녹혔다를 반복해서 얼말린(동결건조)식품이다. 이같은 방법 은 경상도 동해안 지방에서 전해
오는 청어 말리는 방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농가의 부엌은 밤에 차고 밥짓는 동안은 열과 연기로 따뜻해진다.아궁이에 송엽을 땔 때 부엌
안은 연기로 자욱하게 되고 자연 통풍의 필요가 생긴다. 채광을 겸한 그 통기구가 추녀 바로
아래에다 뚫은 살창이다. 그 곳이 바로 청어의 건조장 비웃 및 두름을 겨우내 그 살창에 걸어
두면 동결 건조되고 송엽의 향연으로 훈제 되어 이른 봄 에는 빳빳한 관목(
貫目)
이 되는 것이다.
조상의 미각과 삶의 지혜가 한층 돋보이는 장면이다
.

이규경(
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涎文長散稿)에도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
烟貫目)'이라 썼고 (음식디미방) 1670년경에 말린 고기를 오래 두려면
연기에 씌어 말리면 고기에 벌례가 안난다'고 한 것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

 

그리고 규합양서(閨閤養書)(1815년경) '비웃 말린 것을 세상에서 흔히들 관목(貫目)이라 하니
잘못 부름이요 정작 관목은 비웃을 들어 비추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
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면 그 맛이 기이 하다고 한 것과 천소지(
天笑地)
'동해안 지방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해안가를 걸어가다가 민가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파
오고 있었는데 해변가를 낀 언덕 위의 나무에 고기의 눈이 나뭇가지에 끼인 채로 죽어있는 것을
보고 찢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았었다. 과거를 보고 내려온 그 선비는 집에서 겨울마다 생선
중 청어나 꽁치를 그 방법대로 말려먹었다' 는 기록은 관목의 명칭에 대한 의미를 밝혀주는 것
으로 이채롭다.

 

다른 지방에서도 청어가 많이 잡혔으나 유독 이 고장과 장기지방의 청어가 관목으로 진상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연유 에서일까
.
앞서 성호사설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청어의 맛이 그 질이나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경상도 동해안 특히 영일만 연안에서 잡히는 겨울 청어가 최상품의 것이 된
것이다. 이러한 청어는 다른 생선과는 달리 특이한 불포화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어서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특효가 있는 우량상품으로 오늘날 판명되고 있다
.

근래에 이르러서는 청어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그 대용으로 꽁치를 얼말려 과매기를 만들어
먹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그 대용식품이 옛날 청어관목(
靑漁貫目)못지 않은 맛을 내며 인기
있는 식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이 고장 특유의 역사적 지혜와 산물로서
그 맥을 이어 가고 있는 때문이다. 오늘날의 꽁치도 핵산이 많이 함유된 건강에 유익한 수산식품
으로 꼽히고 있으며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 맛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역시 겨울의 꽁치로 만든
과매기는 청어 과매기 이후 이 고장의 토산식품으로 손색이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장기지방에서는 과매기를 만들지 않고 유일하게 포항지방에서 만 그 명맥을 유지하여 전통
적 향토 식품으로 오늘에 계승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포항의 과매기는 더욱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출처 : 다음블로그 푸른소나무

 

 

5.  꽁치의 맛 (영화)   오즈 아스지로 (1962) <>

 

홀아비 노신사인 주인공은 딸에게 중매가 들어오자 시집 보내야 할지 고민한다.

나이가 스물 넷이니 아직 늦은 건 아니지만  딸을 계속 곁에 두다가 좋은 혼사자리를 놓치면
어떡하나 하고 염려가 된다.

 

그러다가 지금은 조기마한 국수집을 하고 잇는 옛 은사,쪽박 선생을 만나는데 예전에는 귀엽
고 예뻤던 쪽박선생의 딸이 40 대에도 시집을 가지 않고 아버지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얼마 후 딸을 시집 보내고 술에 취한 채 집에 돌아온 아버지.
적적한 집안 복도에 앉아 있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영화가 끝난다.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기술적인 수식어는 많다. 고정된 카메라, 일명 다다미 샷이라고 불리
우는 로우 앵글. 그런데 이영화에서는 소위 ‘180도 법칙도 파괴하고 있다.   

180도 법칙이란 ,간단히 말해서 촬영을 할 때 한 컷과 이어지는 다른 컷의 각도가 180도 이내
여야 한다는 것인데 전의 컷과 정 반대에서 촬영을 하게 되면  관객이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 확립된 촬영의 기본 수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 꽁치의 맛에서는 그 법칙을 무시하거나 애초부터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아예
정반대의 각도에서 퐐영된 화면이 툭툭 이어지고 있었다. 공간적인 면에서는 복도를 저감으로
고정시켜놓고 촬영한 샷이나 공간의 이동을 나타내기 위해 도쿄의 굴뚝, 콘크리트, 아파트의
외관 등을 보여 준 후 바로 폐쇄공간의 이미지가 이어지는 구성 등이 눈에 띈다.

 

몇 개 안 되는 제한된 장소 사무실, 선술집, , 아파트, , 국수집 등-에서 영화의 대부분이
촬영되었고 웬지 이 영화의 절정일 것만 같은 딸의 결혼식은 완전히 생략되었다는 것도 특이
하다. 
그런 것을 과감히 생략할 수 있다는 것. 노련한 거장 오즈 야스지로이기 대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혼자가 된 주인공의 내면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딸을 데려
가는 사위나 딸의 결혼식 장면이나 이별 장면은 다 빼버렸다. 단지 결혼식에 가기 전, 하얀
드레스를 입은 딸이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려하자 네 맘 다 안다. 잘 살거라. 가자.”
라고 짤막하게 이야기 하는 장면이 절정의 전부다.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쳐냈다.

 

과거에 쪽박으로 아이들을 다구치던 선생은 초라한 국수집의 주방장이 되어 있고 고이고이
키운 딸은 어느덧 자기 품을 떠나 빈집의 고요함 만이 가득하고 전쟁이다 뭐다 해서 보내버린
청춘은 그저 한낮의 꿈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가을이고 가을에 가장 좋다는 꽁치의 맛이 아닐까.

 

일본영화계 전체가 하향세를 그릴 즈음 오즈 야스지로가 40년 후의 오늘 날 우리가 만나고
있는
쓸쓸한 노년을 바라보는 거장의 시선으로 만든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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