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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국산천(故國山川) (하) 5.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임진왜란 때 19살의 나이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청소년 백수회는 9년이 지나서 돌아온다. 일본으로 잡혀 갈 때의 감회를 남긴 시조 ‘해운대 여흰 날의 대마도 도라드러’ 에 담긴 그의 떠나가는 배의 물살을 가르는 빠른 배의 속도에 놀라는 심정이, 9년 이 지나 이번에는 대마도를 지나 금방 해운대 앞바다 로 돌아오는 감격이 어찌 없었겠는가? 저만치 수평선 저 너머 가물 대는 육지가 부산 양산 땅 고국이자 꿈에도 잊지 못하였던 고향 땅이 아닌가? 청의를 메었고, 성전에 절하며, 이제의 채미와 소무의 한절과 천상의 위국단심을 잊지 않은 이내 마음 조조 모모에 서산을 창망하니, 일촌 간장이 끊는 듯 잇는 듯 건곤을 부앙하고, 고사를 사량하니, 부모의 은덕과 형제의 우애를 못다 갚은 잔구로다.
김상헌은 청 나라 심양 (1641년-1645년)에 끌려가 4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였다. 청 나라 심양의 감옥에 갇힌 김상헌 이 어느 날 보니 옆방에 최명길(1643년-1645년 2년간 수감생활)이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김상헌 은 최명길 을 송나라 진회(秦檜)와 같이 화의함으로서 나라를 망칠 뿐만 아니라 일신의 영화와 부귀만을 노리는 매국노라고 생각하여 원수처럼 미워하였으나 그것이 아니고 최명길 이 진심으로 임금을 구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보전하고자 항복하기를 주장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천 최명길 은 청음 김상헌 이 이름을 후세에 날리기 위하여 척화를 고집한 것으로 오해했으나 지금 잡혀 와서도 여전히 굳굳하게 저항하며 항복하지 않는 것을 보니 참으로 충의의 선비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같이 배청숭명 (背淸崇明) 즉 오랑캐 나라인 청나라를 배척하고 비록 국력이 쇠락해가고 있지 만 명 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지니고 있음을 그 감옥에서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자기의 뜨거운 애국심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고 깨닫고 서로 상대방 앞에 머리 숙여 화해를 자청했던 것 이다. 두 사람의 길은 한 곳이었으나 다만 그 가는 길이 다를 뿐이고 만나는 곳은 하나였던 것이다 청인들의 굴복 요구에 굴하지 않고 강직한 성격과 기개로써 끝까지 저항하였던 김상헌 은 1645년 소현 세자와 더불어 최명길 과 함께 귀국하게 된다. 돌아오면서 쳐다 본 삼각산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우뚝 서있고 흘러가는 강물은 한결같이 한강을 메우고 초췌해진 김상현을 안을 듯이 넘실대고 있었다. 백헌 이경석의 감회 또한 크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씩이나 청나라에 잡혀가 고초를 겪고 더 이상 벼슬을 하지 않고 청나라를 배반하는 짓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돌아 온 이경석은 이번에는 돌아 오자마자 정사를 맡아 왕을 보필하는 대신 왕의 지근에서 자문을 하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그는 처음으로 금강산 등 아름다운 산천 경개를 찾아 다니는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금강산 예찬(金剛山 禮讚)-이경석(李景奭),
夢想平生在嶺東 몽상평생재령동 평생토록 금강산을 꿈속에 그려보다가
紅塵空作白頭翁 홍진공작백두옹 세속에서 헛되이 늙기만 했네.
如今始得尋眞境 여금시득심진경 이제야 금강산을 참으로 와서 보니
還恐玆行是夢中 환공자행시몽중 오히려 이번 길 꿈인가 두렵다.
병자호란 시 청나라로 잡혀간 남녀 포로가 60 만이 넘었었고 이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 온 여자´ 라는 말인 ‘환향녀(還鄕女)’는 온갖 능멸과 고초를 겪고 ‘화냥년’으로 정절을 지키지 못한 부정 적인 이미지로 사용되어.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다시 순결해질 수 있다고 하였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사대부들은 죽음을 강요하였고, 재가(再嫁)한 여자의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척화론자들은 그들의 자식 들도 관직에 등용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이경석은 이 주장에 대해서도 여자의 재가와 나라가 힘이 약하 여 보호해 주지 못하여 포로로 끌려간 일은 경우가 다르다며 임금을 설득했다. 환향녀들은 저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오면서 고국산천의 가족 품 안에서 편히 여생을 보내리라고 기대하 면서 그리고 그립고 보고팠던 남편과 자식들은 물론 친정의 부모형제자매들과 시댁의 식구들로부터 살아 돌아온 것 만이 고맙고 반갑다고 따뜻하게 환영 받을 줄 알았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목청껏 터져라 하고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와 같은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울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뒤 얼마 후 서울 거리 거리마다 확성기를 통해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이인권>이 부른 <귀국선>이라는 이 노래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우리 동포들이 광복된 조국을 찾아 물밀듯이 귀환했다. <떠나가는 배>를 타고 고국산천을 멀리 떠나갔던 시인 박용철도 기뻐 돌아오며 <귀국선 뱃머리에서 돌아오네>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저 360 여 년 전 청음 김상헌이 그의 가슴에 담았던 삼각산과 한강수를 인용하여 피 토하는 절규로 조국 의 독립이 오기를 노래한 심훈은 <그날이 오면> 이란 시를 남기고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6년 9월 16일에 35세의 젊은 나이로 장티부스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 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이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아마도 시인은 서른다섯 해 그 짧은 인생을 살다가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아쉬 워서 눈도 못 감았을 것 같다. 1945년 8월 15 해방의 날. 그야말로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치는 심훈이 꿈꾸던 그 날. 기차를 타고 만주로 시베리아로 떠나 갔던 사람들은 물론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중국으로, 또 일본으로 징용되어 잡혀갔던 사람들이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귀국선'을 타고 돌아왔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부모형제 찾아서 몇 번을 울었던가 타국살이에 몇 번을 불렀던가 고향노래를 칠성별아 빛나라 달빛도 흘러라 귀국선 고동소리 건설은 크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백의동포 찾아서 얼마나 싸웠던가 우리해방을 얼마나 찾았던가 우리 독립을 흰 구름아 날러라 바람은 불어라 귀국선 파도 위에 새날은 크다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고 우리민족이 삼천리 한반도에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듯이 시편 126 편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70년이 지나서 BC 538년 처음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면서 부르는 찬송시(讚頌詩)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편 126 : 1-3 ) 조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으면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을 꾼다고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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