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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10
 

! 고국산천(故國山川)  ()

 

 

1…왜국 유배 백수회(白受繪)

 

해운대(海雲臺) 여흰 날의 대마도(對馬島) 도라드러 눈물 베셔고

좌우를 도라보니 창파만리(滄波萬里)를 이 어디라 할게이고

두어라 천심조순(天心助順)하면 사반고국(使返故國) 하리라



백수회는 ‘양산군(梁山郡) 동이십리(東二十里) 사배아리(沙背兒里)’에서 출생한 것으로 적혀 있으며
임진 왜란이 일어 났을 때 사배아리로 불리기도 한 오늘날 양산의 사송리에 살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의 나이 19세 되던 해 임진왜란을 맞고 왜군에 포로로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가 거기서 무려 9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다. 19살의 젊은이로서 포로로 잡혀갔다고 하니 당시 그의 신분이 병졸(兵卒)
이었거나 왜군과 대항한 민병(民兵)이나 의병군(義兵軍) 중의 하나도 아닌 양민의신분으로 잡혀갔다
고 알려지고 있으나 어쨌든 자세한 사정을 알아볼 만한 자료가 없다.

 

그러나 고국에 대한 애국심을 굽히지 않아 현지 왜인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고 하며 그때 쓴 시의
하나가 이른바 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이다.

 

 

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


아아! 이 내 몸이 일일도 삼추로다.
해동 이역을 이 어디라 할 것인가
?
천심이 블조하니, 만리 표림이라
.
눈물을 씻고서 좌우를 돌아보니
,
어음이 부동하고, 풍속이 상위로다
.
청의를 메었고, 성전에 절하며
,
이제의 채미와 소무의 한절과

천상의 위국단심을 잊지 않은 이내 마음

조조 모모에 서산을 창망하니
,
일촌 간장이 끊는 듯 잇는 듯

건곤을 부앙하고, 고사를 사량하니
,
부모의 은덕과 형제의 우애를 못다 갚은 잔구로다
.
침상에 꿈꾸어 고국에 돌아 오니
,
궁실이 여전하고, 송국이 황무로다
.
부모께 절하며, 이제를 덥썩 잡고
,
중년 불견하며, 양생 상비

이르며 물으면서 체루를 상휘하고
,
적적 전정을 못내 베푼 사이에

이요 난이하니, 원접 경회하도다
.
                       
송담집


 

타국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은 시 중 조국애(祖國愛)가 서린 몇 안 되는 우리 민족의 애국시
(愛國詩)
임진왜란기의 가사 문학 공백기의 맥을 이어주었다는 국문학사적 의의와, 적지에서 불굴의
우국충정을 노래했다는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

 

한등객창(寒燈客窓)의 벗 업시 혼자 안자  님 생각 하며서  좌우를  도라보니
북해(北海)인가  연옥(燕獄)인가  이 어데라 할 께 이고

청풍(淸風)  명월(明月)을 벗 삼은 몸이 위국단심(爲國丹心)을 못내 슬허 하노라
 


백수회가 9년 이라는 긴 세월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일본에서 27세 되던 때에 풀려나 환국한다. 그 뒤 40
세기 되었을 때 광해군 폐모사건으로 정국이 혼란할 때 분연히 반대의사를 상소하여 광해군의 난정을
맹렬한 비판을 가하였고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반정 후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
을 지냈다
.

 

어와 하도 할샤 이내 분별 하도 할샤

남 모르는 근심을 못내하야 셜운지고

언제사 하늘이 이 뜻 알으샤 사반고국(使返故國) 하려인고

 


백수회의 작품으로는 왜군에 포로가 되었을 때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5편의 한시와 가사를 남기고
있는데, 〈도대마도가(到對馬島歌)·〈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단가(短歌)·〈화경도인안인수가
(和京都人安仁壽歌)로서 모두가 우국충정의 내용을 담고 있다.

 

 


2. 
험한 세월 속에서

 

                                                   

조선 인조 대왕 시절.

 

병자호란(1637)을 맞아 나라가 위기에 처하여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임금을 모신 충신

김상헌과 최명길은 죽기를 결하고 서로 반대 의견을 주장한다.

 

즉 수도를 점령하고 남한산성 코밑에 들이닥친 청나라 군사와 화의(和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최명길이 청 태종 앞으로 보내는 화의국서를 작성하자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다 죽을지언정 오랑캐
따위에게 항복할 수 없다며 최명길이 쓰고 있는 화의 국서를 찢어버린 김상헌. 결국 최명길의 의견
대로 화의가 이루어지고 전쟁은 인조 임금이 오랑캐 추장 앞에 세 번 조아리고 아홉 번 머리를 쳐박
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
頭禮)를 행하는 항복으로 끝났다.

 

삼배구고두례란 한번 절 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히는 것을 3번 하는데 청태조가 소리
가 나지 않는다고 다시 할 것을 요구해 인조는 사실상 수십 번 내리쳐
부딪혔고 이에 인조의 이마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가노라 삼각산 (三角山)아 다시보자 한강수(漢江水)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김상헌(金尙憲)

 

 

전란 후에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과 함께 볼모로 잡혀 가게 되었는데 청 나라에 잡혀가면서 지어 남긴
김상헌의 유명한 시조 한 수이다.

 

이듬해 청 나라 심양 (1638)

 

청 나라 심양의 감옥에 갇힌 김상헌이 어느 날 보니 옆방에 최명길이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김상헌은
최명길을 일신의 영화와 부귀만을 노리는 매국노라고 생각하여 원수처럼 미워하였으나 그것이 아니고
최명길이 진심으로 임금을 구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보전하고자 항복하기를 주장했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기의 뜨거운 애국심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고 깨닫고 최명길 앞에 머리 숙여 화해를 자청했던 것이다.

 

 

3.   청천탄야도 (晴川灘夜渡)                   이경석(李景奭)

 

 

 장하월흑우사사  長 河 月 黑 雨 絲 絲   청천강의 밤은 칠흑같고 비는 쉴새없이 나리는데

 인어탄성공개시  人 語 灘 聲 共 漑 時   민심은 흉흉하고 물소리도 요란하다.

 반야직장충신섭  半 夜 直 將 忠 信 涉   구국일념으로 야반에 이 강을 건너가네

 차심수직구신지  此 心 誰 直 鬼 神 知   이 마음은 오로지 천지신명만이 알 것이네....... 

 

 

조선 효종1(1650), 청나라는 강화조약을 위반하였다는 구실로 문책하기 위한 특사를 의주(義州)
파견한다효종(孝宗)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경석은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며 자청하여 나섰다. 국운이
화급한지라 이경석은 밤길을 재촉하며 청천강(지금의 평안도)을 건널 때 지은 시()이다.

조국의 운명이 달린 위급한 사정 앞에 자신의 목숨까지라도 바쳐 그 책임을 혼자 지겠다는 이경석의 충절
앞에 효종은 너무나 감격하여 백방으로 뇌물을 써서 극형을 면하고 목숨을 건질 수 있게 했다.

 

그리하여 극형을 면한 이경석은 효종의 북벌(北伐)계획에 모든 책임을 지고 약 1년간 의주(義州)  백마
산성(白馬山城)에 구금되었다.  

 

왕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려는 신하의 생명을 건지기 위하여 왕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아까운 줄 몰랐던
효종임금과 백헌 이경석의 아름다운 군신유의(君臣有義)의 한 장면이다.

 

 


4.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눈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밭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헤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떠나가는 배는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의 대표 시이다.

일제의 탄압으로 견디지 못하고 조국의 비참한 현실에 쫓겨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떠나 해외로 유랑의
길을 떠나는 울분과 비애와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노래 한 시이다.

 

김상현의 가노라 삼각산아 라는 시는 외세의 강압에 의하여 볼모로 잡혀가면서 돌아올 기약 없는 험한
세월을 두고 조국산하의 안녕과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 즉 인조대왕의 만수무강을 비는 충절을 담고 있는
데 반하여 박용철의 이 시는 비록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든 사람들 정든 땅을
버리고 떠나야만 한다고 반복해서 나 두 야 간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투는 그 표현이 매우 주관적
이고 감상적이지만 자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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