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한-아세안 센터(www.aseankorea.org)에서 마련한 대중 강좌인 <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A New Look at ASEAN>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느낌을 정리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역사, 영화, 현대미술, 디자인에서 음식까지, 아세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강좌 시리즈는 이제껏 흔히 접할 수 없었던 동남아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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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열린 강좌 시리즈 II - 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세 번째, 동남아 미술 보기
강사: 안소연(2007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
일자: 2009년 11월 1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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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소개된 작가와 작품들
Sanggawa Group
- 5명의 필리핀 작가 그룹. 공동작업
- 현대사회의 자본주의화, 개인화 비판
- 위트와 희화화를 통해 미학적 성과와 정치적 성과를 동시에 달성
아래 작품의 이름은 인데, "Sin"은 '(원)죄'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림 속 추기경의 실제 이름이기도 하다. 이 그룹의 작업 방식이 이런 식인 거다. 절묘하다. ㅋ
(참고로 예전 재노형 말에 의하면 'sin'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죄' 혹은 '원죄'로 (잘못) 번역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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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i Maestro
- 필리핀 마닐라 출생. 캐나다 이주
- "Full-void"
Nindityo Adipurnomo
- 인도네시아 자바 출생
- 자바 전통문화 재해석
- "conde" 장식 + 페티쉬
Arahmaiani
- 현대 인도네시아 미술계의 중심 인물
- 자신의 몸을 이용한 퍼포먼스
- "Lost paradise" (동남아에 대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 + 무슬림이라는 또 다른 편견)
Simryn Gill
- 싱가포르 출생. 호주와 말레이시아에 거주, 작업
Lee Wen
-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퍼포먼스
- 쇠사슬: 족쇄,억압 /안정.수호
- 쌀: 양식 / 민주주의
Chatchai Puipia
- 태국 출생
-서구 입장에서는 이해 불가능한 '아시아의 미소'
- "Mai pen rai" (Never mind. It's OK)
Navin Rawanchaikul
- 태국 출생. 일본 거주
- Navin Production 협동 작업
- 시리즈
Surai Kusolwong
- 태국 방콕 거주, 작업
- 설치, 퍼포먼스, 관객 참여 이벤트
보물을 찾아라!
1유로 마켓.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오브제(물건)들이 팔려나간다. 시간이 갈수록 다 팔려 전시가 텅 비어도. 뭐, 어쩔 수 없다. 그것 그대로가 예술이다.
전시 관람 도중 마사지를 받으면서 쉴 수 있게 만들어 놨다. (이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듯!!)
2002년 광주 비엔날레에서직접 본 거다! 반갑다!! ㅋ
이 작가는 "비엔날레 스타일 작가"라는 (비판 섞인) 별칭도 있다고 한다.
Rirkrit Tiravanija
- 아르헨티나 출생. 태국, 독일, 미국에 거주
- 예술과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경험의 공유, 휴식과 배움, 위안
※ 본 글은 한-아세안 센터(www.aseankorea.org)에서 마련한 대중 강좌인 <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A New Look at ASEAN>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느낌을 정리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역사, 영화, 현대미술, 디자인에서 음식까지, 아세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강좌 시리즈는 이제껏 흔히 접할 수 없었던 동남아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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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열린 강좌 시리즈 II - 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세 번째, 동남아 미술 보기
강사: 안소연(2007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
일자: 2009년 11월 1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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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조금 늦어서 앞부분을 놓쳤음. 그리고 부분부분 정리한 거라 말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감안해 주시길 :)
현대미술은 서구의 미술문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의 식민지 경험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미술의 공통된 변화단계:
1) 식민지 동화
2) 아방가르드 운동
3) 독립/자주 운동(민중적 미술운동 + 지역적 정체성 추구)
4) 동시대 미술로서의 위상 확보
199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국가들은 근대화된 현재와 전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서구 미술을 그대로 답습하여서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민중미술은 사실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는데, 사실 미학적 관점에서는 새로운 흥미 거리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주제와 이슈가 부각되기 때문에 관심을 받는다. 민중미술은 사회적, 정치적 상황들이 시각적으로 번안된 것이다.
미술(의 발달)은 사회/경제적 발전정도와 그대로 부합한다. 동남아에서는 어느 정도 다음과 같은 국가별 단계를 보인다. (아래로 갈수록 더 발달)
- 브루나이,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 태국
예술의 목표는 (어쨌든)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예술이든 다른 무엇이든) 우리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관계적 미학 Relational Aesthetics
- 작품 속에 관객이 개입하는 것으로, 1990년대 하나의 중요한 경향
- 전시장의 주인도 관객이며, 환경과 관객의 우발성을 중시
데카르트가 주창한 '인간의 이성'을 비판. 주체는 완벽하지 않다.
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완벽하게 전지전능한 저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의미선상에서, 완벽한 창조물은 없다. 이제까지 보고, 듣고, 배워온 여러 가지 요소를 한 번에 결합. 따라서 (예술은) 공동창작물.
관계적 미학에 대한 비판도 존재
- 작품을 객관적으로 판단 불가능
- 페스티벌에 휩쓸려 버림
- 너무 무형의 것
*나도 미술에 대해 모르는 것이많고, 강좌 내용을 세세히 다 적어온 것이 아니라 여기 내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이 거의 안 올듯. 그래도 미술, 특히 현대미술에 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나로서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받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질의 응답시간에는 위 내용과 관계없이 중국과 한국의 팝아트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아래와 같이 답하였다.
팝아트는 대중적인 문화의 특질을 반영하고, 대중적 속성을 표현한다. 당연히 중국과 한국의 팝아트는 다르다. 중국의 경우 90년대 의도적으로 양산된 경향이 있다. 이른바 정치적 팝아트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캐릭터를 소유하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액면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 본 글은 한-아세안 센터(www.aseankorea.org)에서 마련한 대중 강좌인 <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A New Look at ASEAN>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느낌을 정리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역사, 영화, 현대미술, 디자인에서 음식까지, 아세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강좌 시리즈는 이제껏 흔히 접할 수 없었던 동남아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이다.
[2009 열린 강좌 시리즈 II - 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두 번째, 동남아 영화 보기
강사: 김진섭(숭실대 언론홍보학과 조교수)
일자: 2009년 11월 4일 (수)
김진섭 선생님은 "동남아 영화는 헐리웃 영화에 비해 어떤 특성을 지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강좌를 시작하였는데, 우선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등의 클립을 통해 헐리웃 영화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 컷과 컷 사이의 이음새 없는 편집
2. 대화 장면의 경우 서로의 말이 겹치는 경우가 없음
3. 인물이 카메라(관객)를 향해 위치
- 스토리 전달이 목적이기 때문
4. 인물이 프레임 가운데에 위치
- 이로써 관객은 인물에 집중하고, 인물의 행위가 우리가 벌이는 행위로 인식되면서 감정에 몰입
5. 스타 기용
6. 180도 규칙
(주: 이건 영상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대화 장면에서 각각의 인물을 찍을 때 두 인물을 잇는 가상의 선을 상정하고, 카메라의 방향이 바뀌더라도 이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을 말한다. 이 규칙을 어기게 되면 컷과 컷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부자연스럽다. 속된 말로 "컷이 튄다"고 함.)
7. 카메라가 능동적으로 인물 소개
8. 음향의 적절한(적극적인) 사용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아쉽게도(어이없게도?) 김진섭 선생님은 말레이시아 영화감독인 우밍진(Woo Ming Jin)의 영화 두 편을 소개하면서, 동남아 영화에선 이러한 헐리웃의 특성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동남아 영화의 특성을 정의해 버렸다. 이어지는 질문(비판?)들.
- 이 영화들의 특징들이 모두 동남아 영화의 특징이라고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
- 그러한 점들은 다른 제3세계 영화나 인디 영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들인데, 이것들이 동남아 영화만의 특징은 아니지 않느냐?
- 형식적, 기술적인 부분외에 다른 면에서, 이를테면 소재의 선택이나 내러티브 전개, 혹은 영화산업적인 측면에서 동남아 영화의 특성은 없는가?
- 동남아 문화는 어떤 식으로 동남아 영화에 반영되는가?
위 질문들은 내가 강좌 내내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다른 분들이 실제 질문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즉, 강좌를 들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과 비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김진섭 선생님을 비판할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선생님도 자신과 이번 강좌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질문들에 답변하길, 자신은 연출을 공부한 사람이고, 따라서 영화의 연출적인 면에서 영화제에 소개된 동남아 작가들의 작품의 특징을 소개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내에 '동남아' 전문가나 '영화' 전문가는 있어도 둘에 모두 정통한 이는 없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자의적으로) 동남아 영화와 문화를 엮기보다는 한 가지 특성만 놓고 주류(헐리웃) 영화와의 비교를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동남아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인디 영화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반-헐리우드적인 요소만을 놓고 동남아 영화를 소개한 점은 너무 아쉬웠다. 오히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동남아 영화를 더 소개한다던가, 같은 동남아를 두고 서양의 시선과 동남아 내부의 시선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다루었다면 더 알차고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더군다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진 이번 강좌에서 2시간 동안 다루어진 내용들은 일종의 '전공'으로서 영화를 공부한 내가 모두 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라 나에게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ㅠㅠ)
거대하고 신비한 사원 앙코르와트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는 열대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무척 덥다. 게다가 나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불볕더위를 이겨 내야 하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길거리에서 사탕수수를 갈아서 만든 즙에 얼음을 넣어 팔곤 하는데, 무척 달고 시원해 더울 때 사탕수수 주스 한 잔이면 잠시나마 더위가 가신다. 게다가 가격도 우리나라 돈으로 250원 정도로 아주 싸서 자주 사먹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사탕수수 주스 파는 아저씨가 집 앞 골목길을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심한 더위에 현기증 증세까지 나타나던 그 순간 사탕수수 주스 장수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 부리나케 돈을 가지고 달려갔다.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았던 시원한 사탕수수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돈을 내려는 순간, 왠지 낯이 익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집 앞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닌가! 오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학교 앞에서 사탕수수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선생님 말고도 많은 선생님들이 이른바 ‘투잡족’이었다. 캄보디아에서는 법적으로 겸직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선생님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두세 개의 직업을 가진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젊고 똑똑한 선생님들은 낮 동안은 학교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영어 과외를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거나 집안 대대로 해 오던 일이 있는 선생님들은 학교 앞에서 사탕수수를 팔거나, 시장에서 옷 파는 일을 부업으로 삼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 보니 30~40달러밖에 안 되는 교사 월급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고육지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선생님이 길거리에 나와 장사를 한다면 어떨까?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해도,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어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캄보디아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일을 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또 사람들도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직업의 귀하고 천함을 따지지 않고 주어진 일이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며, 또 그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네들의 문화가 살짝 부러웠다.
3명의 간지나는 남성. 실종된 남성. 남성을 찾는 또 다른 남성. 비. 포스터만으로 정말 여러가지가 생각납니다. 놈놈놈, 스릴러, 액션. 심하게는 정지훈까지 상상이 되더군요. 감독은 트란 안 홍. 전작은 하나도 못 봤지만 씨클로를 만들었고 곧 상실이 시대를 만들 감독. 큰 기대를 가지고 극장을 찾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5커플이 자리를 떴고 영화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욕지기가 들렸습니다. 함께 본 친구도 마찬가지구요. 내가 보러 가자고 우겼으니까. 그런데 이거 걱정이네요. 이제 내 취향은 대중적인 것에서 많이 벗어나 버린 것 같습니다. 영화 꽤 좋았습니다.
내용이든 뭐든 하나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종교영화더군요. 심하게 말하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가 끝나고 난 영화가 좋다고 하자 친구 놈은 이새끼는 지 교회 다닌다고 기독교 이야기만 나오면 영화 좋다네라는 멘트를 날리더군요. 그래서 오기로라도 종교 이야기는 싹 빼고 영화의 장점을 좀 이야기 해보고 싶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클라인은 쉽게 말해 사설 탐정입니다. 옛날엔 경찰이었구요. 그는 그 만의 수사방법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봤나 뭔 책에서 봤나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요. 경찰이 범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죠. 그래서 다음 타깃을 먼저 추정하고 놈을 잡으러 가는 겁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어요. 과거 잘나가는 연쇄살인범 하나를 잡다가 그렇게 돼 버린거죠. 하지만 그는 연쇄살인범을 잡다가 이성을 잃죠. 그리곤 사설 탐정. 그는 높은 사람의 지시로 시타오를 찾아 나섭니다. 이 작품의 캐릭터는 성경의 캐릭터와 굉장히 닮은 부분이 많은데요. 클라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끌어내려 안고 사라집니다. 성경에도 그런 캐릭터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시타오는 닥터 K입니다. 예수구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입니다. 그는 고통받고 그를 거쳐간 사람은 전부 평안합니다. 그에게 왜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몰라요. 그는 죽지 않고 고통만 당합니다. 뭐 좋아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주니까. 성경에서처럼 아버지는 완전 끝내주는 권력자. 문제는 수동포의 여자가 시타오를 못 잊는다는 겁니다.
아. 몸은 진짜 최고. 수동포 역할의 이병헌입니다. 놈놈놈에서와 비슷한 캐릭터. 자기 여자가 딴 놈에게 가니까 아주 미치지요. 원래 반쯤은 미친거 같고. 여자를 찾아 다니다가 개로 노숙자 패는 장면은 진짜 최고의 아이디어인 듯 싶네요. 수동포는 성경에서 딱 맞는 캐릭터가 있죠. 바로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굉장히 고민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예수에 대한 두려움도 있구요.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박자고 결정합니다. 시타오에게 '난 니가 두렵지 않다'고 하지만 흔들리는 눈에서 빌라도가 보이더군요. 홍콩에서 알아주는 깡패로 나옵니다. 홍콩의 형사 조맹지가 잡고 싶어 안달이 났죠.
아주 맘에 드는 캐릭터인데 사진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는 뒤에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 가운데 하나죠. 클라인과 막역한 사이로 나오는데 어떻게 그런 관계가 만들어졌는지는 역시나 설명이 없습니다. 홍콩의 외곽지에서 수동포를 만나 후진으로 따라잡고 욕설을 날리다가 총 꺼내는 장면도 정말 인상적입니다. 결국 시타오와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어 사라진게 아닐까 싶네요. 창녀와 자고 와 방에서 대머리와 총질하는 장면은 인상적인 교차편집.
릴리와 하스포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릴리는 조맹지에 의해 창녀로 불리며 시타오에게 돌아가는 걸로 봐 마리아의 역할을 하고 있고 하스포드는 2년 전 클라인이 쫓던 연쇄살인범으로 클라인의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합니다.
클라인은 과거 하스포드를 쫓았고 지금은 시타오를 찾고 있습니다. 시타오는 고통받는 사람을 찾고 있고 수동포 역시 시타오를 쫓고 있죠. 조맹지는 수동포를 쫓고 있지만 결국 클라인은 수동포에게 가 시타오의 행방을 묻습니다. 물고 물리는 듯 보이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시타오를 찾고 있습니다. 결국 종교적인 영화가 될 수밖에 없죠. 특히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고통과 두려움을 종교와 접목해 보여줍니다.
클라인은 하스포드를 통해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특히 하스포드는 클라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자신이 잡아 죽인 인체로 고통을 표현한 조형물을 보여주는데요. 그 조형물이 이 영화 전부를 말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웃고 즐겁게 살고 있지만 결국 기독교인이 떠 받드는 예수도 고통 속에서 죽어 갔으니까요. 물론 성경은 그 뒤의 부활로 고통 뒤의 행복을 보여주지만 영화는 현실만을 보여줍니다. 결국 미래를 보여준다는 것은 리얼리티를 거부한다는 거니까요. 대 놓고 말하면 성경의 현실만 보여준 영화. 고통스러운 현실만 보여준 영화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커플이 영화 도중에 뛰쳐나갈 수밖에 없죠.
종교 이야기는 쏙 빼고 그냥 그림 이야기만 해볼께요. 감독이 붉은 색과 빛을 정말 잘 씁니다. 영화 내내 피칠갑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정말 아름답습니다. 수동포가 릴리를 되찾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릴리. 다음 컷이 조맹지가 사창가에서 여자와 자는 장면. 홍등. 세로 구도의 절묘한 대비로 수동포와 조맹지의 대립 관계를 보여줍니다. 릴리가 돌아왔을 때 수동포가 입은 셔츠와 빛. 백열등과 형광등 사이를 오가면서 보라와 핑크를 오가는 셔츠는 진짜 환상적입니다. 그 외에도 정말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영상들로 가득합니다. 내용에 어떻든 간에 눈은 정말 즐겁고 라디오 헤드의 음악으로 귀도 정말 즐겁습니다.
마지막은 동양적인 해석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베트남 태생의 감독은 성경과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동양적인 것을 굉장히 많이 삽입합니다. 그것도 서양인들이 느낄만한 이질감을 최대한 배제한 채 말이죠. 동서양이 적절하게 믹스된 홍콩이란 배경. 물고기의 부레를 먹는 조쉬 하트넷.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조맹지. 부처가 열반할 때 나타는 금박을 입은 십자가에 못박힌 시타오. 이러한 문화의 짬뽕은 이 영화도 영화지만 1Q84에서도 이야기 했던 하루키의 장점이자 단점. 좋게 말해 이질감 없고 나쁘게 말해 특색이 없는 그림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트란 안 홍 감독이 만들게 될 상실의 시대는 완전 기대가 되네요. 정말 좋은 조합이니까요.
교회를 다니는 제가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제도 로또를 샀다가 어젯밤에 그대로 구겨서 버렸죠.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개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요즘은 조금은 있을 거 같네요. 슬픈 일이죠.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미래를 아름답게 생각할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현실의 고통입니다. 시타오를 봅시다. 예수 말고 시타오를요. 고통 속에 있지만 참고 또 참고 또 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이 고통스럽다는 것도 알고 있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앞의 고통을 결국은 참아야 합니다. 간단한 진리죠. 그렇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부터가 그러니까요. 자꾸 돌아가려고 하고 뒤로 밀어두려고 하는 저를 보게 된거죠. 모두들 힘들게 살고 있을텐데 눈 앞에 고통 참고 또 참으면서 나가봅시다. 미래는 밝지 않을까요?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