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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을 한 잔 걸치고 아까 켜두었던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술 한 잔 털어넣다 울컥 소주 쓴 물이 목에 걸려 내 뱉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쓴 눈물을 뱉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분명 폭거입니다. 의회 쿠데타? 맞습니다. 이는 합법의 탈을 쓴 폭거입니다.
그리고 ... ... ...
그것은 노무현이 쳐 놓은 링입니다. 보수정치판은 기꺼이 그 링에 들어가 자신들의 폭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한 줌의 잔당들이 아직도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음에, 그리고 그들의 후안무치함에, 국민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 오만함에 치가 떨립니다. 그들이 역사를 되돌리고 있음에 울분이 터집니다. 선배들께서, 이 나라를 이나마도 끌어온 선배들께서 자신들의 개인적 삶을 송두리채 바쳐가며 꾸려온, 피와 눈물의 이 나라를 또 다시 87년 이전으로 되돌려 놓은 폭거에 선배들의 희생이 모두 헛된 것 같아 눈물이 납니다.
이것은 분명 노무현이 바라던 것이리라 짐작합니다. 그의 순수함까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순수합니다. 진정으로 순수하여,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껍데기 같은--정말로 순수하여 공허한--민주의 외침에 정치를 구겨넣으려 탄핵을 스스로 조장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순수하지만 또 주도면밀합니다. 역사를 또 다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몰고 가려합니다.
헛껍데기같은 민주라는 공허한 구호에 이 땅의 수많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노동의 소망을 짓이겨 담으려 합니다. 그리고 선동합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신념에 대통령직까지도 던질만큼의 각오가 있어보입니다.
작년 노무현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자신이 노동자들 앞에 선 것은 그것이 민주화 운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복무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무의미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묻습니다. 노동운동에 민주화 운동이 복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껍데기뿐인 민주주의, 저들의 민주주의, 저희들끼리 쳐놓은 장에서 저희들끼리 난장질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명나는 노동으로 알맹이 가득 박혀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것이 아닌가? 다음 선거는 그 공허한 저들 만의 민주주의를 위해 또 다시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에 구겨진 노동자의 이름, 동태의 충혈된 시뻘건 눈은 또 다시 짓이겨지는 우리들의 외침이 묻혀간다는 억울분통함입니다.
오늘의 탄핵은 껍데기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입니다. 이제 껍데기조차 무의미하게 만들 폭거입니다. 알맹이는 애초에 없었으니, 이젠 껍질부터 내용까지 몽땅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거입니다. 그 폭거를 노무현이 불러들였습니다. 의도적인 것이라고 밖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이는 그렇게 해서 이제 그 껍데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선동할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신명나는 노동으로 알맹이 가득 민주주의를 채워 넣으려는 이 역사를 되돌리려 합니다. 그래서 다시금 87년의 그 껍데기를 위한 투쟁으로 선동하고 있습니다.
다음 선거는 그리하여 또 그 껍데기를 구출해야겠다는 뜨거운 열망으로 달아오를 것입니다. 우리라고 불렀던 사람들 중 몇몇은 그 열정에 함께 할 것입니다. 그들은 가라고 하십시오. 그 허위의식에 휘둘릴 사람들은 애초에 우리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엔 선배들께서 우리에게 불러주셨던 민중가요도 흘러 나올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그들이 빼앗아간 민중가요를 되찾아와야 합니다. 역사를 뒤로 돌리고, 선배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든, 노무현의 음모와 보수정치판의 폭거에 눈물이 납니다.
아직도 우리 노동형제들이 저리도 시린 작업장에 내던져져 있는데,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오늘 ... ... ... 광기와 비이성에 소스라치는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