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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문화어: 조국해방의 날)은 1945년 8월 15일, 한반도가 일제의 점령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대한민국 국경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8월 15일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국경일에 대한 법률〉에 따라 국경일로 지정되었다.4대국경일의 하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날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1949년 10월 1일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국경일이 되었다.
이날은 전국적으로 경축 행사를 거행하는데, 중앙 경축식은 서울에서 지방 경축행사는 각 시·도 단위별로 거행한다.
이날의 의의를 고양하고자 전국의 모든 가정은 국기를 게양하여 경축하며, 정부는 이날 저녁에 각계각층의 인사와 외교사절을 초청하여 경축연회를 베푼다.
광복회원을 위한 우대조치의 하나로 광복회원 및 동반가족에 대하여 8월 14일부터 8월 16일까지 3일 동안 전국의 철도· 시내버스 및 수도권전철의 무임 승차와 고궁 및 공원에 무료 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어 한국이 독립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날과 독립국으로서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광복'이란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서 잃었던 국권의 회복을 의미한다.
광복회 [光復會]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 일본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기 시작한 1895년 을미사변으로부터 광복 때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하였거나, 옥고를 치른 사람으로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건국훈장·독립유공건국포장·독립유공대통령표창을 받은 사람과 그들의 유족으로서 연금(年金)을 받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가와 그 유족의 총집합체이다.
본부에는 회장과 부회장 2명에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의전부(儀典部)가 특설되어 있다. 전국에 11개의 지회를 두고 있으며, 회원수는 1999년 현재 4,100명이다. 회원자격은 독립유공 수상자와 그 유족 중 연금 또는 생계부조금을 받는 사람 전원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항일투쟁은 한말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하여 시해된 1895년 을미사변을 시발로 국내 곳곳에서 의병항쟁으로 나타났고, 중국의 동북지방과 노령(露領)에서의 독립군의 항쟁에 이어 중국대륙에서의 무력항쟁으로 이어져, 광복을 맞을 때까지 근 반세기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 기간중 수십만 명의 유명무명의 열사와 지사들이 민족의 제단 위에 거룩한 희생이 되었다.
이와 같이, 순국한 사람들의 유지를 현창(顯彰)하고 올바른 국권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애국지사들의 염원이 한덩어리를 이루어, 1946년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백정기(白貞基) 등 삼의사유해봉송사업(三義士遺骸奉送事業)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그 뒤 광복 직후의 사회적 혼란과 6·25전쟁 등 계속되는 국가적 시련으로 말미암아 소망했던 광복회의 구성이 미루어져 왔으며,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포상을 본궤도에 올리자는 뜻은 있었으면서도 시행되지 못하였다.
1949년 당시 일차적으로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시영에게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수여되었고, 이어서 1953년 한국을 방문했던 자유중국 총통 장개석(蔣介石)에게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준 공로로 대한민국장이 수여된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바쳐 희생된 삼의사와 안중근(安重根)·김구(金九) 등 수많은 애국지사에 대한 보다 큰 규모의 정부포상이 기대되었다.
이와 같은 국민적 소망 속에서 마침내 1962년 삼일절을 기해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을 비롯하여 김구·안중근·윤봉길·이봉창·김창숙(金昌淑)·조만식(曺晩植)·안창호(安昌浩)·신익희(申翼熙) 등 18명에게 대한민국장이, 그리고 김성수(金性洙) 등 58명에게는 대통령장(大統領章)이, 김규식(金奎植) 등 128명에게는 국민장이 각각 추서 또는 수여되었다.
제1차 정부포상에 이어 이듬해인 1963년 광복절에는 독립유공자 774명에게 건국훈장 또는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다. 이로써, 그 동안 수훈하거나 수상한 사람이 무려 1,000여 명에 달하면서 수훈애국지사(受勳愛國志士)와 그 유족 중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을 회원으로 하여, 1965년 2월 27일 사단법인 ‘광복회’가 탄생하였으며, 초대 회장에는 기미독립운동의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李甲成)을 선임하였다.
그 뒤 정부의 포상은 계속되어 1968년 402명, 1977년 1,314명, 1980년 407명, 1982년 428명, 1983년 424명 등 1999년 11월 현재 8,698명에게 포상이 수여되었으며, 이 가운데는 한국독립에 공헌한 38명의 외국인에 대한 포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장을 받은 사람은 장개석·손문(孫文)·송미령(宋美齡)·진과부(陳果夫)·진기미(陳其美) 등 중국인 5명이었다.
회원의 친목단결을 위하여 여러 가지 회원경조지원(會員慶弔支援)을 시행하고, 민족정기의 선양을 위해서 해마다 광복절에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무후선열추모제(無後先烈追慕祭)를 지내며, 또한 매년 11월 17일에는 독립운동선열추모제를 가진다. 1981년부터는 애국선열유적지 순례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해마다 지역별로 가지는 이 순례행사에는 선열후손 대학생들로 구성된 호우회(護友會)가 회동하여 유허지(遺墟地)를 동시에 돌면서 묘소가꾸기도 정성스럽게 하고 있다.
국민의식 계도를 위해서는 국민정신교육추진종합계획 및 통일안보교육실시계획에 따라 광복회에 독립정신홍보위원회를 두고 전국 중·고·대학생 및 군인·예비군을 대상으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참고문헌≫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國史編纂委員會, 1983)
≪참고문헌≫ 獨立運動功勳史(報勳處, 1986)
광복회는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와 그 후손, 유족들이 구성한 단체로서 민족정기 선양 및 회원간 친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65년 설립되었으며 초대 회장에는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이갑성이 취임했다.
2002년 대한민국 국회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함께 친일파 708인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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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07.08.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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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우리가 꼭 되새겨 봐야하는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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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문화어: 조국해방의 날)은 1945년 8월 15일, 한반도가 일제의 점령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대한민국 국경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8월 15일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국경일에 대한 법률〉에 따라 국경일로 지정되었다.4대국경일의 하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날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1949년 10월 1일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국경일이 되었다.
이날은 전국적으로 경축 행사를 거행하는데, 중앙 경축식은 서울에서 지방 경축행사는 각 시·도 단위별로 거행한다.
이날의 의의를 고양하고자 전국의 모든 가정은 국기를 게양하여 경축하며, 정부는 이날 저녁에 각계각층의 인사와 외교사절을 초청하여 경축연회를 베푼다.
광복회원을 위한 우대조치의 하나로 광복회원 및 동반가족에 대하여 8월 14일부터 8월 16일까지 3일 동안 전국의 철도· 시내버스 및 수도권전철의 무임 승차와 고궁 및 공원에 무료 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어 한국이 독립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날과 독립국으로서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광복'이란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서 잃었던 국권의 회복을 의미한다.
광복회 [光復會]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 일본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기 시작한 1895년 을미사변으로부터 광복 때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하였거나, 옥고를 치른 사람으로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건국훈장·독립유공건국포장·독립유공대통령표창을 받은 사람과 그들의 유족으로서 연금(年金)을 받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가와 그 유족의 총집합체이다.
본부에는 회장과 부회장 2명에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의전부(儀典部)가 특설되어 있다. 전국에 11개의 지회를 두고 있으며, 회원수는 1999년 현재 4,100명이다. 회원자격은 독립유공 수상자와 그 유족 중 연금 또는 생계부조금을 받는 사람 전원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항일투쟁은 한말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하여 시해된 1895년 을미사변을 시발로 국내 곳곳에서 의병항쟁으로 나타났고, 중국의 동북지방과 노령(露領)에서의 독립군의 항쟁에 이어 중국대륙에서의 무력항쟁으로 이어져, 광복을 맞을 때까지 근 반세기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 기간중 수십만 명의 유명무명의 열사와 지사들이 민족의 제단 위에 거룩한 희생이 되었다.
이와 같이, 순국한 사람들의 유지를 현창(顯彰)하고 올바른 국권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애국지사들의 염원이 한덩어리를 이루어, 1946년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백정기(白貞基) 등 삼의사유해봉송사업(三義士遺骸奉送事業)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그 뒤 광복 직후의 사회적 혼란과 6·25전쟁 등 계속되는 국가적 시련으로 말미암아 소망했던 광복회의 구성이 미루어져 왔으며,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포상을 본궤도에 올리자는 뜻은 있었으면서도 시행되지 못하였다.
1949년 당시 일차적으로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시영에게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수여되었고, 이어서 1953년 한국을 방문했던 자유중국 총통 장개석(蔣介石)에게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준 공로로 대한민국장이 수여된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바쳐 희생된 삼의사와 안중근(安重根)·김구(金九) 등 수많은 애국지사에 대한 보다 큰 규모의 정부포상이 기대되었다.
이와 같은 국민적 소망 속에서 마침내 1962년 삼일절을 기해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을 비롯하여 김구·안중근·윤봉길·이봉창·김창숙(金昌淑)·조만식(曺晩植)·안창호(安昌浩)·신익희(申翼熙) 등 18명에게 대한민국장이, 그리고 김성수(金性洙) 등 58명에게는 대통령장(大統領章)이, 김규식(金奎植) 등 128명에게는 국민장이 각각 추서 또는 수여되었다.
제1차 정부포상에 이어 이듬해인 1963년 광복절에는 독립유공자 774명에게 건국훈장 또는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다. 이로써, 그 동안 수훈하거나 수상한 사람이 무려 1,000여 명에 달하면서 수훈애국지사(受勳愛國志士)와 그 유족 중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을 회원으로 하여, 1965년 2월 27일 사단법인 ‘광복회’가 탄생하였으며, 초대 회장에는 기미독립운동의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李甲成)을 선임하였다.
그 뒤 정부의 포상은 계속되어 1968년 402명, 1977년 1,314명, 1980년 407명, 1982년 428명, 1983년 424명 등 1999년 11월 현재 8,698명에게 포상이 수여되었으며, 이 가운데는 한국독립에 공헌한 38명의 외국인에 대한 포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장을 받은 사람은 장개석·손문(孫文)·송미령(宋美齡)·진과부(陳果夫)·진기미(陳其美) 등 중국인 5명이었다.
회원의 친목단결을 위하여 여러 가지 회원경조지원(會員慶弔支援)을 시행하고, 민족정기의 선양을 위해서 해마다 광복절에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무후선열추모제(無後先烈追慕祭)를 지내며, 또한 매년 11월 17일에는 독립운동선열추모제를 가진다. 1981년부터는 애국선열유적지 순례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해마다 지역별로 가지는 이 순례행사에는 선열후손 대학생들로 구성된 호우회(護友會)가 회동하여 유허지(遺墟地)를 동시에 돌면서 묘소가꾸기도 정성스럽게 하고 있다.
국민의식 계도를 위해서는 국민정신교육추진종합계획 및 통일안보교육실시계획에 따라 광복회에 독립정신홍보위원회를 두고 전국 중·고·대학생 및 군인·예비군을 대상으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참고문헌≫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國史編纂委員會, 1983)
≪참고문헌≫ 獨立運動功勳史(報勳處, 1986)
광복회는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와 그 후손, 유족들이 구성한 단체로서 민족정기 선양 및 회원간 친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65년 설립되었으며 초대 회장에는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이갑성이 취임했다.
2002년 대한민국 국회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함께 친일파 708인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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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07.08.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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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우리가 꼭 되새겨 봐야하는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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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위성 지도 서비스인 구글어스에 일본식 명칭인 다케시마(竹島)라는 지명과 함께 올라 있어 국내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구글어스의 독도와 백두산 지형에는 다케시마, 창바이산(長白山) 등 일본과 중국 명칭이 다수 표기돼 있어 객관성 논란이 일고 있다.
독도의 다케시마 표기는 구글 본사가 올해 초 인수한 지도 기반의 사진 공유 서비스 파노라미오(Panoramio)를 통해 일본 네티즌 등이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도 위성사진에는 구글 커뮤니티 운영자가 표기한 ‘독도(Dokdo)/다케시마(Dakeshima)/리앙쿠르트(Liancourt)’외에 이용자가 각각 올린 독도 표기 2건과 다케시마 표기 2건이 게재돼 있다. 다케시마 표기는 일반 네티즌이 파노라미오를 통해 관련 사진과 함께 지명 표기를 한 사례로 확인됐다.
파노라미오 아이디가 ‘takesima’인 네티즌은 해당 사이트에 독도 사진을 올린 뒤 이곳 주소와 지명을 ‘일본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라고 표기했다. 다른 네티즌도 파노라미오를 통해 사진과 함께 일본식 지명을 표기했다.
이 같은 표기는 네티즌이 처음 작성하긴 했어도 구글 운영자들이 해당 사진을 선별해 구글어스 게재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구글 서비스 정책의 객관성 여부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백두산의 경우 왜곡이 더 심하다. 구글어스 지도상의 백두산 지형에는 수십명의 파노라미오 이용자가 관련 사진과 지명 표기를 게재했는데 상당수가 창바이산(Chanbai)으로 표기돼 있다.
특히 구글은 자사가 설정한 국경선을 통해 백두산 천지가 100% 중국 소유인 것으로 사실과 왜곡되게 기술했다. 북한과 중국이 1964년 3월 20일 체결한 ‘조-중 변계의정서’에 따르면 북한이 천지의 54.5%, 중국이 45.5%를 갖는 것으로 획정돼 있다.
다음 아고라에는 ‘백두산 천지가 모두 중국 땅이라니 심하게 잘못됐다’며 ‘이런 어이없는 구글어스를 사용하지 말자’며 분노를 쏟아내는 글들이 게재돼 있다.
이에 대해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국경의 경우 지도 서비스 공급업체와 논의가 필요하지만 지명 오류에 대한 공식 요청이 있으면 한국 서비스를 내놓기 전에 검토를 거쳐 수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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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아요
2006/12/18 오후 3:15 | 알아두면 좋아요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 4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파랑)과 양(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네 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효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며, 건괘는 우주 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괘는 땅을, 감괘는 달과 물을, 이괘는 해와
불을 상징합니다.
이는 각각 정의, 풍요, 생명력, 지혜를 뜻하고, 이들 4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태극기는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의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태극기에 담긴 이러한 정신과 뜻을 이어받아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이룩하고
인류의 행복과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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