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8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출장차 들렀다가 밤늦은 항공기 편으로 밤 12시가 넘어 동포들의 한이 서린 이곳 사할린 공항에 도착했다.
사진은 며칠 후 촬영한 사할린 공항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광산을 인수하고 개발를 준비 중인 춘천에 계시는 정사장님과 만나 항만시설에 있어 철강 구조물에 관한 업무를 논의 하던 차에 암울했던 일제시대 수많은 동포들이 강제징용 당해 이곳 사할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역사의 현장 이야기를 듣고 7월12일 일요일 그 일부 지역인 현장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유즈노 사할린 시내 외곽에 위치하는 뾰쟈르스크로 가는 길이다.
39번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100m 이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기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들어가는 입구가 잡초로 우거져 길를 찿기도 힘들다. 보이는 도로는 강으로 내려가는 길로 여름철 이맘 때 부터 계곡를 찿는 사람들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길이다.
한국에도 많은 일명 머구 종류로 큰 것은 키가 1m 아니 1m 50cm에 육박한다. 사할린 사람들은 주로 줄기를 잘라 외피를 벗기고 밑반찬 재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인들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입구를 조금 지나자 길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해 사할린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일본인들에게 잔인하게 총살 당한 27인의 추념비가 세워진 모습이다.
다행이 해외동포 희생추념사업회에서 발굴해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으나 찿는이는 드물다고 전해지고 있다.
준비해간 조촐한 국화로 묵념을 드리고 이곳을 소개한 정사장님과 기념촬영을 했다. 이곳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정사장님 같은 분이 아니면 찿기 힘든 곳이다.
앞에 보이는 이곳에서 저 아랫 동네까지 약 6000여명의 동포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1945년 광복 전 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지금 인근에는 러시아인들이 조금 살고 있으며,동포들은 거의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한 때 정사장님의 소개로 강원도 춘천시 봉사단체인 로타리클럽에서 이곳에 추가적인 기념 사업을 계획했으나 지금은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귀띰해 주었다. 본인의 사견으로는 종교단체에서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천도제를 올려주는 사업도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은 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이하여 패전국이된 일본이 자국으로 철수하면서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소련군과 합세하여 자신들의 안전한 철군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며 무차별 적인 학살로 알게모르게 많은 동포들이 해방을 맞이하고도 억울하게 죽어간 한이 서린 사할린 뾰쟈르스크 27인의 추념비를 둘러보고 소개한 것이다.
과거를 모른척 방만한다는것은 큰 죄악이다! 죄악에는 죄값의 댓가가 따르는것이다!! 치욕과 모욕의 역사를 잊지말자! 이유없이 비참하게 죽어간 순수했던 선조들을 잊지말자!! 이분들을 잊으면 우리가 그러한 일을 당해도 똑같이 잊혀지고 방관 당하는것이다!! 민족의 개념이란 서로를 보호하고 돌봐주는 신성한 최대 공약수다!! 그 이상 신뢰할만한 신성한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