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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1/04
 

[스크랩] 존덴버 노래의 고향, 웨스트 버지니아..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다리 [인테리어세상]

2009.10.21 16:27 | 스크랩북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714 주소복사

존덴버 노래의 고향. 웨스트버지니아.
2009/03/11 오 전 9:40 | 존덴버 노래의 고향


  아이오와를 지나고 일리노이스, 인디애나, 오하이오 주 에서 하루씩 묵으면서 박물관도 가고 여러곳 들렀는데 이런~~~ 우라질~~!!!!!! 사진을 정리하다 3개 주의 것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80번 고속도록을 따라 동부로 오다가 시카고를 가려는데 갑자기 노바마군 생각이 떠올라서 올라가다말고 차를 돌려 74번 도로 동부로 방향을 틀었는데 허비한 시간이 장난이 아닌 것이 시카고 방향으로 꽤 올라갔었으니까... 노바마군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미운 것이 덜커덕 당선이 되었으니 그의 주거지였던 시카고가 싫어져 버렸다.

사람들은 에이브라함 링컨이 흑인해방자에 인권주의자네 어쩌네 말이 많지만 링컨은 공업화되어가는 북부의 공업화된 자본주의 세력들이 대대적인 노동력의 필요에 의해 좀 띨빵한 그가 엄선되었고, 시키는대로 말을 잘듣겠다던 그를 밀어주고 남부 농장의 흑인들을 자신들 입맛에 따라 해방시킨다고 선포하여 남부의 흑인들을 빼내어 오려고 간계를 꾸민 것이고, 갑자기 노동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열받은 남부의 사람들과 전쟁을 벌인 것인데 뭔 그가 인권주의자라는 건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역사는 정말이지 승리한 자에 의해 조작되고 정의로운듯 각색되어 흘러내려오긴 한다만 하여간 제임스 오빠는 시카고 살던 그애도 싫고 일리노이 에서 출생한 링컨도 싫어서 쏜살처럼 달려 일리노이를 지나서 인디애나까지 와서 Champaign 에서 하루를 묵었다.

신시내티 시티까지 와서 길을 잘 몰라 그만 캔터키주로 들어갔다가 1 년전 다닌 곳이라서 오던 길로 돌아서 신시내티를 지나 오르편으로 방향을 틀어 125번 동쪽으로 와서 68번 지방도로를따라 오하이오강가의 모텔에서 하루를 쉬게 되었다. 동네 이름이 묘한 Ripley "리플리" 강변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강변엘 나간것으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강건너는 캔터키 주 로서 뒷편의 수량이 많은 강 이름은 :오하이오강"이다.

담배농사를 많이 짓던 이곳 오하이오 시골마을에 '토바코' 박물관이 있어 찾아갔더니 오후 1시에 문을 연다고 써있어서 발길을 돌려 오가다가 마침 일요일이어서 다리를 건너 캔터키 주 로 건너가서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온통 백인들 뿐이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텍사스의 불친절한 사람들 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로 극과 극을 이루는 듯 했다.
시간대가 바뀌는 지역이었는지 한시간 가량 여유가 있다 싶었는데 얼마후 시간을 다시보니 그새 한시간 앞당겨 있어서 교회에 좀 늦게 예배를 보러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온통 백인 뿐 나만이 동방에서 온 나그네였다.

Mason County Sheriff "메이슨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 이라고 벽에 써있고 교회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며, 미국은 지금도 보안관이 존재하는데 주로 그 지역 마을에서 고용해 활동하며 경찰과 마찬가지로 체포와 구금과 수색을 할 수 있고, 지금도 보안관은 카우보이 모자에 가슴에는 보안관 마크 "별"을 달고 다닌다. 참고. (몬타나 여행 편에서 "옐로스톤 불타는화산"에 보안관이 나온다.)

강을 사이에 두고 곳곳에 교량이 있어 왕래는 자유롭고 빈번하였으며 오하이오강은
미시시피강으로 흘러들어가지만 원체 물이 깊고 많아서 운하 역활을 하면서 활용된다.

캔터키와 오하이오를 다리만 보이면 건너다니며 동부로 오다가 웨스트버지니아
안내소에 West Virginia Information Center 왔다. 1년전 3월에 본 아줌마였지만
그가 날 알아볼리 없고 지도를 하나 얻으면서 얘기가 시작되었는데 무척 친절한
모습이 몸에 배인 그런 여인이었고 나에게 모자에 꽂는 뱃지까지 꺼내어 준다.

가까운 곳 호텔을 물어보니 15% 디스카운트 쿠폰을 떼어 붙여주고 호텔에 직접
전화해서 싼값에 예약까지 해준 감사하신 웨스트버지니아의 사랑스런 아줌마...

헌팅톤서 밤을새고 64번 동쪽으로 오다 작년에 갔었던 아름다운 쉐난도의 "뉴리버
다리"를 가고자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사방을 둘러보며 천천히 나아가는데 선넘어
광산에서 콘베어로 운반되는 석탄 야적장이 있고 기차로, 트레일러로 분주하게 실어
나른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드나드는 크고작은 모든 차량은 양편에서 뿜어나오는
엄청난 물벼락을 맞으면서 차를 자동 세차하는데 들어가고 나오는 차 모두 그렇게.

아래는 존덴버 노래의 고향 웨스트버지니아 Country road take me home의 무대 .

  가수-존 덴버(Henry John Deutschendorf Jr) 1943~1997자가용 비행기 사고 사망.

웨스트버지니아 산골엔 물이 많아서 호수처럼 보일 정도로 넓은 강이 흐르고 규모는
작으나 수력발전소도 있고 각종 기간시설들이 활용되어 지는 자연 조건이 좋은 곳이다.


언덕 위 안내표지판 기록을 살펴보니 이곳엔 1830년대 강을 따라 올라온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고 주민이 대거 정착하게 되었다. 산간지방이라서 좀 늦게 시작된 듯 하다.

1979년 불과 30년전 세워진 "New River Br" 뉴리버의 다리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곳을 다시 온것인데, 자세한 내용은 작년에 이곳을 지나며 쓴 (2008 자동차여행기 중
에서 8편)을 참고하면 좋겠다. 나의 블러그 아래에 그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지난해엔 비가오고 안개가 자욱해서 아쉬움이 많았으나 오늘은 청명한 날씨라서 차를
몰고 벼랑길을 따라 내려갔다. 일방도로 1차선이며 경치를 구경하며 내려가는데 젊은
이 셋이 암벽등반을 한다. 여자 아이는 저만치 올라가고 남자아이가 생명줄을 잡았다.

친구들은 코네티컷의 "뉴헤이븐'에서 10시간을 달려 이곳에 등반을 왔다. 예일대를
다니는 친구들끼리 초행길 등반을 왔는데 경치가 무척 맘에 든다고 하는 젊은이...

도봉산 만장봉에는 이것보다는 좀 많이 벌어진 바위가 있어 그리로 지그재그 발을
옮기면서 밧줄없이 등반하던 삼십 수년전 옛추억이 떠오르는데 저위 여자 아이는
아래서 올려다 보니 바들 거리지만 자리확보를 하며 매우 용감하게 올라가고 있다.

길을 만들며 아래만 파고 윗부분을 놔둔 모습인데 보기에도 위태롭지만 정감은 있다.

강 아래까지 내려오는 길은 대략 3~4마일은 되는데 드디어 강가에서 전체를 보게되었다. Appalachian Mts. "애팔라치안 산맥" 계곡을 흐르는 강이지만 수량이 풍부한 강이며 이름은 "뉴리버' 이지만 Shenandoah River "쉐난도 강" 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칸추리뮤지션 (존덴버)가 부른 노래의 고향이 이곳이다.

칸츄리로드 테크미홈

1,
Almost heaven, West Virginia~! Blue Ridge Mountains~ Shenandoah River~!
Life is old there~ older than the trees~! younger then the mountains ~!
growin like breeze~!!
올모스트 헤이븐 웨스트 비진니아~ 불루릿지 마운틴~ 쉐난도 리버~
라이프이스 올드데어~ 올더덴더추리~ 영거댄더 마운틴스~
그로윈 라이크 브리지~~

천국과 같은 웨스트 비진니아 ~ 불루릿지 산맥과 쉐난도 강~
주민들은 오래전 부터 이곳에 살고있는데 ~
이곳에서 자란 나무들 보다 오래 되었지만 ~
높은 산 보다는 오래 되지 않았으며~
(불루릿지 산맥과 쉐난도 강~) 

이곳은 안개가 피어나듯 아름답게 변해만 가요 ~

2,
All my memories gather round her ~ 
Miner's lady stranger to blue water ~    
Dark and dusty painted on the sky ~  Misty taste of moonshine~
teardrop in my eyes
 ~  
올마이메모리 게러라운허~ 마이너스레이디 ㅅ트렌져불루워러~
다캔더스티 페인티온스카이~ 미스티 테스티 문샤인
티어드랍 마~아이~  

나의 추억은 광부의 아낙네 그리고~
흐르는 푸른물 모두를
기억해요~ 
흐르는 눈물 때문에 달빛도 흐리고 ~
하늘은 어두운 페인트칠 처럼 보여요 ~


후렴.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West Virginia~
mountain momma~ Take me home~ country roads~

칸추리 로~ 태크미 홈~  투디 플레이~ 
아비 롱~  웨스트 비진니아~
마운틴 마마~ 
태크미 홈~ 칸추리 로~  
 

아름다운 시골 길로 날 데려가 줘요 ~
웨스트 비진니아~ 산에 사는 여인아 ~ 
아름다운 그대 사는 곳~ 
아름다운 시골
길~ 그대 사는 곳으로~ 


(제임스 오빠의  번역의 소견.
웨스트 버지니아 산속의 숲과 강은 세월이 갈수록 아름다워 지는 곳이라는 뜻 입니다)

이 노래의 번역은 미국인들의 사고 방식에서 생각하고 해야지 그저 학교에서
배운 영어 실력으로 직역 해 놓으면 잘 맞지 않는 다는 것이 저의 의견 입니다.

이 노래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쉐난도 강, 그 깊은 계곡을 다녀온 오빠의
이야기는 지난해 찾아놓은 사진을 아래에 올려 놓겠습니다.


                *** New River Gorge Bridge ***

New River Bridge over the New River in West Virginia is the world's longest spanning, steel single-arch bridge


The New River Gorge Bridge (1977), soaring 876 feet above the rugged whitewaters of West Virginia's New River, is the second tallest bridge in the United States. Its biggest claim to fame, however, is as the world's longest spanning, steel single-arch bridge.

 

  뉴 리버(새로운 강) "골지" 다리는 1977년에 건설되었으며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있는데 높이는 876피트(약 300 미터)이며 미국에서 두번 째 높은 교량으로서 , 웨스트 버지니아의 계곡 맑은 강물 위 난이도가 높은 곳에 건설되었다.

한개의 아치형 철골에 의해 받쳐 있는 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교량)이다. (단일 교량 간격이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뜻이네요)

 

아래 사진은 건설 당시의 모습으로 두개의 아치를 양쪽에서 매단채 짜맞추어 이었다.

Construction of the New River Gorge Bridge

                               Construction of the New River Gorge Bridge

                     The New River Gorge Bridge was dedicated on October 22, 1977.

  New River Gorge Bridge DEF
신록이 우거지는 계절의 사진은 위처럼 아름답지만 내 사진은 황홀하지 않다.
이 사진은 나의 것과 똑 같이 내가 앉아있는 바위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오늘 이곳에 앉아서 뭔 생각을 했는가 하면 나중에 누구와 같이 오면 이곳 아름다운
자연 속, 바위 위에 앉아서 Deep Kiss를 해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강물이 흘러오는 저곳을 바라보며, 그리고 물이 흘러가는 아래를 바라보면서도 하고...

 

깊 은 산속 계곡, 어쩌다 차량이 한두대 지날뿐 인적이 거의 없는 이곳 계곡에서...
키스뿐이겠는가... 더우면 미역도 감고 멀리갈 것 없이 자연의 숲속에서 그대와 둘이...

웨스트버지니아 산속은 어딜가나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한국 사람들 잘하는
얘기대로 "산삼썩은 약수물"이 곳곳에 흐르며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사슴이 와서 물을 먹고 가는 산삼이 썩어 약수가 된 천천히 흐르는 계곡물...

난 외롭게 다리위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공해의 흔적도 있을 수 없는 이곳 불루릿지 마운틴, 쉐난도아 강변의 깊은 계곡...

방갈로를 들어가 보니 둘이 조용히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듣느니 산새와 짐승들
뿐인데 누가있어 나와 더불어 이 깊은 숲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엮어 가련가...

더우면 나와서 물을 마시고 저곳에 벗고 앉으면 자연의 깨끗한 물에 의해서 씻어지며...

그리고는 차를 몰고 이 숲속 길을 지나 오던 곳으로 떠나면 되는 것 아니냐...

어딜보아도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아팔라치안 산맥. 불루릿지 마운틴 쉐난도아 리버.

제임스 오빠는 저곳을 둘러보며 생각만 그랬을 뿐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77번 도로
동쪽으로 나와 Princeton "프린스톤' 모텔에서 외로이 하루를 보냈다는거 아니냐... 
나의 오늘의 웨스트버지니아 불루릿지 마운틴과 쉐난도리버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다들 안녕하세요?

블로그 활용에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있어서,

부득이 2009년 9월 1일부터 네이버 블로그로 이사갑니다.

주소는 다음과 같으니 많이 찾아와 주세요. ^^;;

http://blog.naver.com/philgeog72

주인장 백

'워킹푸어(Working Poor)' 300만… 출구없는 이웃

2009.07.20 11:15 | 스크랩북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709 주소복사

[워킹푸어 300만명 시대] [1] '워킹푸어(Working Poor)' 300만… 출구없는 이웃

입력 : 2009.07.20 02:32 / 수정 : 2009.07.20 05:1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0/2009072000066.html


하루도 제대로 쉰 날 없는데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어… '워킹푸어 예비군'도 급증
"투잡·스리잡 뛰어도 저축 불가능"… 무너지는 '근면 신화' '통장잔고 0원' 근로자들
물가가 늘 임금상승률 앞질러 노력해도 삶의 질은 계속 떨어져
IMF서 비롯… 금융위기로 악화 서민들 '하면 된다' 희망 사라져


이광일(46)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류회사에 근무하다 1995년 서울 동대문구에 섬유공장을 차렸다. 원단을 의류공장에 납품해 월 매출 2억원을 올리고, 그 돈으로 당시로선 앞서가는 아이템이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IMF 외환위기로 그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주 거래은행이던 동화은행이 문을 닫고, 그 여파로 이씨의 공장도 부도가 났다.

"어떻게든 재기하려고 2000년 봄부터 오후 4시에 나가 이튿날 새벽 4시까지 택시를 몰았어요. 밤새 한 번도 차에서 안 내리고 페트병에 용변을 해결하며 독하게 일했지요. 매달 180만원을 벌었지만 반년 만에 몸이 상해 그만뒀어요."


▲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광일씨가 막 튀긴 닭꼬치를 쌓고 있다. 이씨는 IMF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뒤 지난 10년 동안 택시 운전과 야시장 옷장사를 하다 작년 7월부터 이동식 닭장사를 시작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그는 아파트 야시장을 돌며 의류와 액세서리 좌판을 폈다. 지난해부터 부인과 함께 트럭을 몰고 수도권 아파트 단지를 돌며 닭튀김을 팔고 있다. 부부는 매일 오전 10시에 나가 이튿날 오전 2시에 귀가한다. 집은 월세 20만원짜리 한옥이다.

"지난 10년간 하루 6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어요.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고요. 그래도 삶은 제자리걸음이에요. 부모님과 우리 부부, 아이 셋이 밥 먹고 학교 다니면 남는 게 없어요. 간신히 생활유지만 될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어요."

남의 건물에서 조그만 가게를 꾸리는 자영업자, 박봉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밤마다 내일의 일자리를 걱정하며 잠드는 임시직….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도 기본적인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근로빈곤층)'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외식과 휴일을 포기하고 악착같이 일해도 아이들 학원비와 공과금, 식비를 내고 나면 통장 잔고가 '0원'인 '제로 인생'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기자 데이비드 쉬플러(Shipler)는 "워킹푸어는 빈곤과 안락한 삶의 경계선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가 있어 얼핏 보기엔 건실한 중산층 같지만, 고용도 불안하고 저축도 없어 실직하거나 병이 나면 곧바로 빈곤층으로 추락한다.

워킹푸어의 확산은 한국에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열심히 일하고도 한달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기준·월 132만6609원)에 못 미치는 사람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에 따라 연말까지 최소 211만명에서 최대 227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2007년 156만명에서 불과 2년 만에 55만~71만명 늘어난 숫자다.



이 연구원 노대명 연구위원은 지난 2007년 발표한 논문에서 "국내에는 아직 워킹푸어에 대한 기준과 통계가 없으나 널리 쓰이는 유럽 기준을 적용하면 271만~301만명"이라고 분석했다. 워킹푸어가 해마다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국내 워킹푸어는 적게 잡아도 3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은 중산층 범위에 들어 있지만 사정이 조금만 악화돼도 워킹푸어로 떨어질 위험에 처한 '워킹푸어 예비군'도 적지 않다. 남편의 월급으로는 최저생계비를 못 맞춰 부부가 맞벌이하거나 투잡, 쓰리잡을 해서 간신히 200만~250만원가량을 버는 가정의 경우, 부부 중 한 사람이 일자리를 잃거나 몸이 아프면 언제든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워킹푸어와 '워킹푸어 예비군'들은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의지가 있고, 실제로 녹초가 되도록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독거노인·조손(祖孫) 가정 같은 전통적인 빈곤층과 다르다. 이들은 한 발만 삐끗하면 곧장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칠 때까지 투잡(two jobs), 스리잡(three jobs)을 뛴다. 벌고 또 벌어도 저축이 불가능한 '제로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IMF 외환위기 전까지 김옥채(49)씨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월급 250만원을 받는 지배인이었다. 그는 13~16㎡(4~5평)짜리 월셋집에 살면서 5000만원을 저축했다. 고향에 사는 노모에게도 한달에 20만원씩 용돈을 드렸다. 조금만 더 모아 번듯한 전셋집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식당이 망하면서 김씨의 몰락이 시작됐다. 2~3년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며 저축해둔 돈을 모두 썼다. 그는 전셋집으로 옮기는 대신 2004년 지금 살고 있는 남산 쪽방촌으로 이사했다.

현재 김씨는 한달에 90만~100만원을 번다. 오전 6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회현동 주민센터를 청소해 월 40만원을 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남대문 시장 근처 빌딩의 계단과 화장실을 청소해 월 40만원을 번다. 오후에는 일주일에 1~2번씩 이삿짐센터 연락을 받고 달려가서 막일을 하고 그때마다 3만원씩 받는다. 그 돈으로 방값 20만원, 식비 30만원, 휴대폰 요금, 담뱃값, 전기요금, 교통비 등을 낸다.

그는 "세 가지 일을 하며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녀도 내 손에 남는 돈은 20만원 안팎"이라며 "빚을 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긴 하지만 1년에 모을 수 있는 돈이 최대 240만원에 불과하다니 장래가 암담하다"고 했다.


 


▲ 가난의 굴레는 단단했다. 건물청소 두 곳과 이삿짐 운반 등 ‘스리잡’을 뛰어도 김옥채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한달 110만원 남짓. 김씨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회현동주민센터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택시회사 사무직 직원 임모(51)씨는 하루에 두 번 출근한다. 그는 오전 6시까지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 나가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저녁을 때운 뒤 오후 7시까지 집 근처 주유소에 나가 밤 12시까지 5시간 동안 시급(時給) 3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하루 1만7500원을 번다.

"승용차 같은 경우는 받는 돈의 액수가 크니까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아서 돈을 꼬박꼬박 받아요. 그런데 오토바이같이 몇천원 단위로 주유를 하면 실수로 돈을 덜 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럼 제 하루 일당이 날아갑니다. 내가 대신 돈을 채워 넣어야 하니까. 외제 스쿠터 중에는 경유를 넣는 기종이 있는데 피곤해서 깜박하고 휘발유를 넣었다가 어린 운전자한테 야단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 나이에…."

그는 "200만원 좀 못 되는 월급으로는 군대 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대학 등록금을 댈 방법이 없다"며 "단돈 1만원이라도 더 벌어놔야 하는 처지인데 그나마 집 근처에 이런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씨의 아들은 내년 이맘때 제대한다. 그때를 위해 1년간 300만원쯤 저축해두는 것이 임씨의 당면 목표다.

전문가들은 워킹푸어 문제가 시작된 지점으로 IMF 외환위기를 꼽는다. 사무직, 생산직 가릴 것 없이 대량으로 실업자가 생겼다. 이들이 간신히 재기를 꿈꿀 무렵인 2004년, 카드 대란으로 나라 경제가 다시 한번 휘청했다. 직장에서 나와 영세자영업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어났다. 여기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이 지난해 말 전 세계를 덮친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영세 자영업자는 불황으로 소비가 얼어붙을 때마다 맨 먼저 타격을 받는다"며 "이들이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경제가 출렁거릴 때마다 '첫 번째 희생자'로 다시 주저앉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상승률이 주거비·교육비·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워킹푸어의 확산을 부추긴다.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기본적인 생활비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보니, 노력해도 삶의 질이 계속 떨어지기만 한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구인회 교수는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억척스레 일하고 알뜰살뜰 살림하면 부자는 못 되어도 웬만큼은 먹고 산다는 건강한 근로 윤리와 희망이 우리나라 서민들에게 있었다"며 "지난 10년간 열심히 살아도 생활이 나아진다는 희망이 빛바래면서 '하면 된다'는 투지 대신 좌절과 불안이 사회의 저변에 스멀거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워킹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미국에서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용어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일반적인 정의는 취업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저축할 여력이 없어, 일시적 질병이나 실직이 곧바로 절대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층을 일컫는다. 국내 워킹푸어는 30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0/2009072000066.html

 

<사회공간이론교육세미나> 2009. 6.17. 수 발제:chan-󰅇

The lay of the land

: geographies of imperialism


Anne McClintock, 1995, In Imperial Leather :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the Colonial Contest (Sage, London), pp.56-74.



■ Imperialism as Commodity Spectacle 상품 스펙타클로서의 제국주의

1) 세계 박람회와 상품 스텍타클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의 수정궁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팝옵티컬 한 시간과 시대착오적인 공간의 건축적 구현을 발견할 수 있음. 박람회의 진보적 서사는 대중(mass)의 스펙타클로서 소비되어지기 시작했음. 박람회는 “모든 국민국가들의 산업”이라는 기념비적 전시를 하나의 둥근 유리지붕 아래 에 집결시킴. 산업품, 장식품, 관상용 원예, 기계류, 악기, 산업용 광석들이 쌓 여 있고, 수 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음. 수정궁[박람회]은 대중 소비의 새로운 형태일 뿐만 아니라 상품 스펙타클의 새로운 형태에 있어 하나의 기념비가 되었음. 즉 전지구적인 역사의 진보가 인류 가족의 상품 진보로 재현되었음. 동시에 박람회는 마케팅 역사의 새로운 양식을 알림. 즉 디오로마와 파노라마(제국과 자연사로부터 나온 풍경에 대한 대중적이고 사실적인 복제품들)는 전지구의 모든 문화를 단 하나의, 시각적인 세계시간이라는 계보로 인도하는 환영을 제공했음.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박람회는 문자 그대로 전세계의 사람들을 상품의 기념비적 전시에 끌어들였고 시간은 전지구적임. 즉 파노라마와 풍경에 대한 전진적인 축적은 제국적 자본의 논리에 따라 배열되고, 규정되며, 목록화됨. 동시에 그것은 서양만이 테크니컬한 기술과 혁신적 정신을 소유한다는 점을 명확히 함축하였음.

2)관음증적 훈육모델로서 팝옵티콘적 시간과 진보적 서사로서 상품스펙타클

-박람회는 팝옵티콘 혹은 감시의 집에 정치적으로 상응함. 1787년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사회훈육을 위한 건축적 해결책의 모델로 제안한 팝옵티콘의 조직화 원리는 단순했음. 공장, 감옥, 작업장, 학교는 중앙에 높은 관찰[감시] 탑을 세우고 설계되었음. 감시탑 내부를 볼 수 없지만, 거주자들은 자신들이 지속적인 감시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게 됨. 일상은 계속해서 가시화될 수 있는 무대 위에서 이뤄질 것임. 이러한 사고의 정밀함은 자기-감시의 원리에 있음. 즉 끊임없는 관찰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수감자들은 그들 스스로 경찰이 될 것임. 따라서 팝옵티콘은 산재되어 있는 헤게모니적 권력의 부르주아적 원리를 체현함. 감시의 집에서 스펙타클의 제도(regime)-감시, 관찰, 조망-는 권력의 제도와 병합됨.

-팝옵티콘의 중요한 지점은 누구나 감시의 집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점임. 감시자들은 무한히 상호 변화할 수 있으며, 공공영역의 모든 성원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시하기 위한 <감시의 집>을 방문할 수 있음... 푸코가 말하듯이 “이러한 팝옵티콘은 관찰자가 한눈에 많은 사람들을 관찰 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으며, 또한 와서 관찰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관찰자가 될 수도 있음. 보는(seeing) 기계는... 사회 전체가 감독/감시하는 권력의 실천 속에서 투명한 건물이 되어왔음.”

-수정궁의 혁신, 즉 전형적인 유리 감시의 집은 쾌락의 원리를 스펙타클의 훈육에 맞춰 동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음. 유리 보는-기계속에서 수많은 시민 감시자들은 관찰자를 관찰할 수 있음. 즉 관음증적 훈육은 파노라마의 대중적 성격 속에서 완벽하게 구현됨. 파노라마는 팝옵티컬적 감시를 상품 스펙타클로 바꾸어서, 팝옵티컬적 원리를 전도시켰고, 관음증자들에 의한 전지구적 소비를 가능하게 함. 그러나 감시의 매혹 속에 사로잡혀서 있는 동안 그들 모두가 관찰하는 이러한 제국적 군주제는 타자의 관찰에서 그것들의 움직일 수 없는 이면들이 나타남.

-수정궁은 팝옵티컬적 감시를 소비자의 쾌락으로 전환했음. 수잔 벅-모스(Susan Buck-Morss)가 지적한 것에 따르면, “세계 박람회의 메시지는 혁명 없는 대중들에게 사회적 진보의 약속이었음.” 대박람회는 역사없는 박물관, 노동없는 시장, 노동자 없는 공장이었음. 동시에, 박람회의 사회적 실험실에서 중요한 정치적 원리는 형태를 갖췄다. 즉 상품 스펙타클에 대한 관음증적 소비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 가장 중요하게 부상한 국민국가적 서사는 노동계급을 국민국가의 스펙타클에 대한 소비자로서 진보적 서사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음. 박람회가 제국적 진보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함축은 국민국가의 스펙타클로 소비되었음<그림1.15>. 박람회에, 백인 영국인 노동자들은 제국적 국가 속에 포함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인종차별적인 “우월성”이라는 관음증적인 스펙타클은 그들에게 이들의 계급적 종속성에 대해 보상적임<그림1.16>. 예) 루크 기본스(Luke Gibbons)가 “식민주의의 여명”이라고 부르는 시기 동안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은 세계 전체를 소비하려는 팝옵티컬적 욕망을 고무시키는 시각적인(scopic) 과대망상을 완벽하게 구현함. 또한 장난감 세계는 제국의 과학이라는 지표면에서 상품 인종차별주의와 제국적 키치로의 하나의 과도기를 보여줌. 제국적 키치와 상품 스펙타클은 식민 지도가 단 하나 약속할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만듦. 즉 기호들의 전지구적 시스템으로서 제국주의의 대중 시장<그림 1.17>

■ Colonial Mimicry and Ambivalence 콜로니얼의 모방성과 양가성

-나는 역사가 단하나의 특권적인 사회범주를 둘러싸고 형성되지 않는다는 신념에서 글을 씀. 인종과 계급의 차이는 성적 차이를 순차적으로 끌어낸다고 이해될 수 없음. 혹은 그 역도 마찬가지임. 오히려 공식적인 제국적 근대성의 범주들은 각각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며, 변동하고 역동적이고, 친밀한 상호의존성 속에서만 출현하는 범주들에서 접합됨. 이러한 범주들[인종, 계급, 섹슈얼리티]은 복잡하고 종종 모순적인 방식 속에서 서로를 소환하고 병합하고 중층결정함. 코베나 메르제르(Kobena Mercer)는 우리에게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양가적이며, 불완전한 ‘정체성들’의 성격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서 변동적이고 불안정한 사회적 차이의 이율배반을 경고함.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살아진 경험들 속에서 거주함.

1)이리가레이의 젠더 모방성과와 호미바바의 식민적양가성

루스 이리가레이

-정통 정신분석학에 대해 도전하는 이리가레이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여성들이 여성성이라는 필수적인 가면을 쓰고 수행한다. 이리가레이에게, 여성들은 사회적 마스크로서 모방적 여성성을 학습함. 남성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여성은 이성애를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연극 못지 않은 아이러닉한 수행성을 상연함. 이리가레이가 제시하는 특정한 국면들에서, 여성들은 우리에게 부과된 여성다운 역할들은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방식에서 “종속의 형태를 긍정으로 전환”하도록 할 수 있음. 이성애를 지탱하는 “모사놀이”의 비가시적인 규준들에 따라, 여성들은 “자연”과 젠더 수행성 사이의 동등성의 결여를 기교적으로 드러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방은 부득이하게 대가를 치러야함. 즉 필수성에서 태어난, 그것은 망각(무의식)을 거부하는 양날의, 이중적이고, 일시적인 전략임. 이는 ①모방을 여성 전략에 있어 본질적인 것으로서 우선권을 주는 위험이 있음.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녀의 뛰어난 도전들이 그러한 ②젠더 이분법을 정확히 재각인시킨다는 점임. 그 과정에서 이리가레이 또한 ③남성 가면[가장]의 연극적이고 전략적인 가능성들을 생략함. 즉 캠프, 보깅(패션모델 같은 걸음걸이나 몸짓을 흉내낸 디스코 댄스), 드래그(이성복장착용), 패싱, 복장도착 등등.

호미 바바

-이리가레이의 젠더화된 개입을 제외하면, 호미바바는 모방에 대한 생각을 식민의 무대(arena)로 가져가서, 모방을 미묘하게 설명함. 즉 모방을 “식민 권력과 지식의 가장 효과적이고 난해한 전략중 하나”로서 설명함. 바바의 도식에서, 모방은 피식민지인들에게 부과된 흠집있는 정체성임(“거의 동일하지만, 백인이지는 않은”). 문명화의 사명에 종속되어 있는, 모방적 인간(바바에게 이들은 유일한 남성들로 보임)은 제국의 중개자로 복무함. 즉 그들은 “식민 문화의 식민화된 교사, 군인, 관료, 문화해설가들임. 이러한 모방의 계통은 맥컬린, 포스터, 키플링, 오웰, 나이폴 등 몇몇 작가들에 의해 추적될 수 있었음.

-바바의 독창성은 제국의 상황에서 정신분석학적 목적에서 미적 범주(아이러니, 미메시스, 패러디)를 도발적으로 전개한데 있음. 바바에게 식민담론은 “재형성되고 재인식할 수 있는 타자... 즉 거의 동일하지만 조금은 다른” 이미지의 재생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양가적임. 모방적 남성은 양가성이 존재할 수 없는 구역, 즉 정체성도 차이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구역에서 강제로 살게됨.

-여기에 바바가 모방을 본 것처럼, 모방의 실패가 놓여 있음. 우리는 정체성과 차이 사이의 미끄러짐 속에서 식민 담론을 “표준화하는” 권위에 질문을 던짐. 포스트-계몽 문명화의 꿈은 그것 자체로부터 양도됨. 왜냐하면 식민국가에서 그것은 상 자연 상태로서의 퍼레이드일 수 없기 때문임. 모방은 “곧 유사와 위협”이 됨.

-나는 바바의 식민적 모방에 대한 관념의 풍부한 통찰력에 의문이 없으며, 파농을 따른 그의 가치있는 주장, 즉 식민 논쟁들 속에서 판타지, 욕망, 무의식에 대한 어려운 작업에도 의문이 없음. 그러나 나에게 흥미로운 점은 모방적 도식에서 함축하는 행위자의 정치학임. 바바는 그것을 볼때, 적어도 이 글에서, 모방의 위협은 그것의 양가성에서 기인함. 즉 식민담론의 이중적 관점을 노출시키고 그럼으로써 그것의 권위를 붕괴시키는 인식론적 미끄러짐. 자멸적이고, 내부적인 전복은 식민주의에 흠집을 냄. 즉 담론들의 공식적 전복, 담론들의 “파열”, 담론들의 “붕괴”, 담론들의 “양가성”, 담론들의 “in-between". 식민적 모방은 자신의 “전략적 실패”를 보증하는 “아이러닉한 타협”임.

-“식민적 전유”에 대한 “전략적 실패”는 담론적 양가성에 의해 보증된 구조적 효과라는 관점에서 임. 바바가 질문하는 “어떻게”, 즉 “어떻게 욕망이 훈육되며, 어떻게 권위가 들어서는가?”는 권력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임. 그리고 그것은 또한 역사적 행위자에 관한 물음임. 일부 비판들에 반하여, 나는 이리가레이가 모방이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라고 제안하지 않았던 것처럼 바바가 모방이 식민현상에서 유일하다거나, 가장 중요하다고 제안했다고 생각하지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바바에게 식민적 권위는 사회적 모순들 혹은 피식민지의 투쟁적인 전략들을 전환시키기 보다는 식민적 재현 그 자체의 공식적 양가성에 의한 것으로 대체하는 것처럼 보임.

2)이리가레이와 바바의 양가성 개념의 문제

① 이리가레이와 바바에게 양가성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된 반면, 문제는 담론의 내부조직에서 행위자를 충분히 위치켰는가의 여부는 여전히 남아있음. 가성속에서 행위자를 위치시키는 것은 페티시즘의 형태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함. 즉 그들 자신들의 삶을 인격화되고 주어지게하는 공식적 추상들로부터의 역사적 행위자의 투사(projection). 여기 추상들은 역사적 행동가들이 됨. 즉 욕망과 꿈을 말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사망을 확실하게 하는 식민주의 작업을 행함. 그 과정에서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형식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 즉 역사적 변화와 사회적 행동주의에 대한 복잡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삭제하는 형식주의적 페티시즘을 통해서 변경됨.

② 다른 방식들을 통해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는 양가성이 본래부터 전복적인지 아닌지 임. 이후 저작에서, 바바는 그의 모방에 대한 생각을 복잡하게 제시하고, 식민화된 주체성의 양가성이 결국 식민적 권력을 위협하는 자세를 할 필요가 없다고 제시함. 즉 “...이러한 변동하는 위치성들은 결코 지배권력 관계를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을 것임. 그것들은 그들이 즐겁고 생산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바바는 오히려 식민화된 주체성의 “변동하는 위치들”은 ‘상상’속에 사로잡혀”있기에, 여기서 지배권력을 권력 내부의 보다 큰 전투적, 정치적 혹은 경제적 세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가성의 놀이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함. 그러나 일단 행위자는 변동하고 불확정적인 상태의 조건을 보증하는 구조적 추상(상상)으로 배치됨.---> 또 다른 글, “경이롭게 여겨진 기호들(Signs Taken for Wonders)"에서 바바는 모방에 대한 사고를 더욱더 발전시킴. 이것은 자기방어적인 식민 전략보다는 반(anti)식민적 거부의 형태로서 식민전략에 더 맞추어져있음. 현재 모방은 “이러한 시민 불복종의 순간들을 문명화의 훈육 내에서 표시함. 즉 스펙타클한 저항의 기호들” 이것은 저항이론에서 중요한 약속을 제공했고, 동시에 역사적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영역을 제공함. 이것은 또한 모방이 탈세력화된 전략으로서 보여지지만, 만일 모방이 항상 정체성과 차이 사이의 미끄러짐을 드러낸다면, 실제로 만일 모든 담론들이 양가적이라면, 탈세력화된 담론과 세력화된 담론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식민과 반식민 사이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모방은 이론적 그림자를 드리움.

③ 만일 이리가레이가 라캉의 매스큘리즘(masculinism:남성주의)에 도전하고 모방을 특별한 여성의 전략(인종과 계급을 삭제하는 것이 본질주의자의 특징)으로서 주장한다면, 바바는 이리가레이를 우회하여, 젠더와 계급 과정들 속에서 삭제된 인종만으로 모방을 주장함. 탈젠더화된 모방으로 되돌아가서, 바바는 효과적으로 그것의 젠더화된 특수성을 인식하지 않고서 남성 전략으로 재기입함. 아이러닉하게 바바가 실재로 남성에 관한 유일하게 말하고 있는 바바의 제목( “모방과 인간에 대하여(Of Minicry and Man”)에서 일반적인 “대문자 남성”은 은폐하면서도 드러남. 그러나 젠더차이를 삭제함으로써 바바는 암묵적으로 젠거 권력을 승인하고, 따라서 남성성은 탈식민적 담론의 비가시적인 규범이 됨. 인종적 차이를 삭제함으로써, 이리가레이는 제국적 권력의 비가시성을 승인함.

-so, 무엇보다도 이들은 양가성의 초역사적인 편재에 대해 주장하고, 양가성을 보다 덜 강력한 개념으로 만듦. 반복해서 말하면, 어디에나 있는 양가성은 동일한 장면(scene)이 됨. 만일 양가성이 도처에 있다면, 그것이 전복적이게 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러나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물음들이 양가성의 개념을 실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것을 복잡하게 하는 것임.

■ Hybridity, Cross-Dressing and Racial Fetishism 혼성성, 이성복장착용과 인종적 페티시즘

-앞서서 나는 모방이나 양가성과 같은 개념이 (이리가레이에게서는 젠더가, 바바에게서는 인종이라는) 우선적인 사회적 범주만으로 축소되었다면 덜 강력하다라고 주장함. 인종적 모방성은 중요한 방식에서 젠더 모방성과 유사할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사회적으로 상호교환 될 수 없음. 실제로 용어로서 모방성은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함.

-패싱과 이성복장착용과 같은 모방성의 또 다른 형태들은 다른 방식에서 애매모호함을 전개함. 즉 비판적인 구별짓기는 역사적으로 다른 이러한 문화적 실천들이 무역사적인 동일한 기회들 아래에서 붕괴되었다면 상실됨. 인종적 패싱은 이성 복장착용자들과 동일하지 않음. 즉 흑인 보깅은 흑인 얼굴을 한 백인적 수행성과 동일하지 않음. 페티쉬의 장면에서, 복장 도착(transvestism)은 종종 애매모호함(실크 스커트 아래 털복숭이 다리)의 명백한 전시를 포함함. 즉 실제로 복장도착의 수많은 스캔들은 차이로서 정체성에 대한 그것의 연극적 패러디속에 존재함. 반면에, 패싱은 정체성으로서 차이에 대한 애매모호함의 주의깊은 가장을 보다 더 포괄함.

1) 문학에서의 혼성성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제국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전구지구적 변화는 소름끼치는 효과를 지닌 문명화의 미션에 대한 양가성을 포함할 수 있었음을 드러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서, 말로우(Merlow)는 하이브리드한 모방적 남성에 대한 명백한 사례가 되는 아프리카인을 통해 상류를 향하는데 주의를 기울임. 배의 기관장으로 일하는 아프리카인은 식민지배자와 피식민자들 사이의 불가능한 경계에 거주함. 말로우는 자신을 역사적 예외로서 재현함. 즉 근대성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는 또한 구시대의 거류민[외국인]임. 이러한 “개선된 사례(improved specimen)”는 “총미와 깃털 모자의 패러디 속에서 한 마리의 개로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바바의 명칭에서, 그는 모방성의 “아이러닉한 보상”인 동시에 완벽한 백인은 아님. 그러나 콘래드의 모방적 남성은 그의 불완전한 패러디가 아프리카인의 퇴보에 대한 식민적 서사와 일치하기 때문에 식민적 귄위성보다는 처음에 보여준 모습을 더 파괴시킴. 상류로 올라가면서, 식민지들은 시대착오적인 공간의 뒤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줌.... 시대착오적 공간에 대한 비유 내에서, 선장의 모방적 실패는 담론적 딜레마 보다는 식민 지배의 발전 서사와 유사한 요소가 더 많음. 전(前)역사와 제국적 근대성의 끝에 거주하면서, “개선된 사례”는 아프리카인들이 모더니티의 달성을 위해 어느 지점까지 여행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살아있는 측정단위로서 이해되었음. 다시말해서, 차이와 정체성 사이의 미끄러짐은 시간의 축을 제국적 진보의 자연적 기능으로 기획함으로써 비-모순성을 보여줌.

-사실상, 콘래드의 모방적 남성은 포스트 계몽 이미지의 남성을 치명적으로 파괴하지 않으며, 그것의 전략적 실패도 보증하지 않음. 즉 그의 모방적 부조리는 오히려 피식민지의 역사적 뒤늦음에 대해 필수불가결함. 게다가, 그의 양가성은 그의 죽음, 즉 내러티브의 소멸[삭제]에 의해 심각하게 배제됨.

키플링의 󰡔킴󰡕

-식민의 박물관과 식민의 총(gun)의 측면에 서있는 키플링의 서사에서 모방적 남성인 킴의 남근적 잠재성은 인종적 정당성의 문제임. 식민주의는 시적인 문화적 양가성으로서(유럽 박물관의 페티쉬적인 Wonder House속에서 체현된)뿐만 아니라 군대 폭력의 정치학에서도 나타남. 총과 박물관으로 통제하는 것은 큰 게임의 지배에 있어서 필수적임.

-역사적 행위자에 대한 물음 제기(“어떻게... 귄위성이 들어서는가?”)는 양가성의 형태들보다 더 많은 의문들을 수반함. 즉 그것은 또한 복잡한 역사의 불명확성, 전투태세를 갖춘 협상들, 탈세력화된 자들의 전략들, 남성성의 군국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권력으로부터의 여성의 삭제, 에스틱한 폭력에 대한 결정적인 배제 등등의 의문들을 수반함. 양가성은 전복의 비판적인 측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식민적 실패의 충분한 작인(agent)은 아님.

2) 이성복장착용

-문화적으로 모방성의 또 다른 사례로서 이성복장착용이 있음. 옷은 사회적 정체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기호이지만, 그것은 또한 혼란과 상징적 절도라는 것에 영원히 지배받기도 함. 이러한 이유에서, 이성복장착용자는 잠재적이고 전복적인 권력을 부여받을 수 있음. 마저리 가버(marjorie garber)의 󰡔기득권󰡕(Vested Interests: Cross-Dressing and Cultural Anxiety )은 복장도착을 병리학적이고 생물학적으로 변형된 것이라는 전통적 서사를 거부하고, 애매성의 위반적 구체화[체현]로 이성복장착용자를 받아들일 것을 제안함. 가버는 복장도착적 가면 아래의 (남성 혹은 여성의) “현실의” 정체성을 가정하는 진보적 서사에 도전함. 그녀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범주에 복장도착을 빠트린다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그것을] “분열시키는 모습”이 됨. 가버의 책은 이성복장착용하는 장면에서 인종의 문제를 포함하려는 그녀의 시도는 적어도 유효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3장과 4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주장하는... 모든 이성복장착용자들을 위반적으로(“분열시키는 모습”)보편화함으로써, 그리고 모든 페티쉬를 라캉의 거세 장면(“팔루스는 페티쉬이며, 페티쉬는 팔루스이다”)속에서 발생되는 것으로서 재기입함으로써, 가버는 문화적인 이성복장착용자의 풍부한 다양성과 그녀가 스스로 드러내는 역사적 페티쉬들에 대한 역사적 정의(justice)를 수행하지 못함.

-예를 들면 핑크 삼각형은 급진적으로 대안적인 정치적 실천들이 양가적 기호로 전개해왔던 것임. 이성복장착용도 똑같이 정치적 목적의 다양성을 동원할 수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전복적인 것은 아니었음. 그러한 페티시즘은 그것이 전복성을 반드시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모순 속에서 발견됨. 그러나 그러한 이성복장착용은 안정적인 사회적 정체성들을 붕괴시키지만, 젠더, 인종 혹은 계급 권력의 전복을 보증하지 않음. 미국에서 해병대가 드래그(여성복장)로 꾸미거나 얼굴을 검게 칠할 때, 백인 권력이 반드시 전복되지도 않으며, 남성성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지지도 않음. 반면에, 군대에서의 레즈비언이 날마다 이성복장을 착용하거나, 게이인 흑인 남성이 밤바다 보깅클럽에서 공연한다면, 그 효과를 단순히 유쾌하거나 무식한 것으로 간과할 수 없음.

-문화적으로 강요하는 에스닉한 패싱(미국에 동화된 유태인 혹은 아일랜드 이주민) 혹은 잔인하게 강요하는 혼성성(보스니아-헤르체코비아에서 강간을 통한 무슬림 여성에 대한 계획적인 임신)은 혼성성과 애매성의 매우 다른 관계를 초래함. 차이와 정체성의 미끄러짐은 이러한 모든 경우 속에서 현존하지만, 정신적 요금(toll)과 정치적 결과는 완전히 다름. 양가성과 혼성성을 넘어선 일부 포스트 식민 이론가들에 의해 서정적이며 매혹적인 배역은 항상 역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음.

-이성복장착용은 젠더 애매성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적, 계급적, 에스닉한 이성복장착용의 풍부한 증거가 있음. 남근적 애매성 때문에 이론적인 미묘함과 역사적 깊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성적 차이를 남근적 기호 아래에서 포함될 수 없는 인종적, 국민국가적, 에스닉한 페티쉬들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을 막고 있음을 발견했음. 라캉의 이론에서(4장에서 제기함),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차이는 성적 차이 내에서 발견되며, 아버지의 법속에의 상징적이고 체현적인 것 아래에서 질서지워짐. 결과적으로 인종적이고 계급적인 차이는 남성 이성애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연결고리에 대한 기호화를 따라서 성적 차이를 이론적으로 유도해 냄.

-가버는 페티쉬를 “거세의 결정불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모습”으로 독해함. 3장에서 보다 상세하게 내가 주장하는 것으로서, 그녀는 “미국에서 흑인 남성의 패러독스를 동시에 성적 잠재성의 기호이자 무력화 혹은 거세의 기호로서” 기록하고 있기에 성적 애매성의 이차적 기능으로 인종적 복장도착을 축소시키는 위험성을 지님. 여기서 흑인여성은 사라진다- 반드시, 아마도, 왜냐하면 백인 페티시즘속에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페티시즘의 형식들 속에서 그들의 역할은(라캉주의자들의 장면에서 어떤 경우라도 방해됨) 거세에 대한 남근 기호의 아래에서 설명될 수 없음.

-한편 이성복장착용, 드래그, 패싱, 캠프와 보깅은 전부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모방의 형태들이지만, 그것들은 또한 매우 다른 문화적 가능성들을 규정하는 경향이 있음. 만일 그들이 남근적 양가성의 초역사적 기호아래로 착실하게 정렬한다면 이러한 차이들은 상실됨. 라캉의 백인 남근주의의 상황에 도전하는 것은 이성애적 진보 서사 속에서 휘말리기 보다는 그러한 현상에 대해 보다 문화적으로 말하고, 역사적으로 세력화하는 계보학을 구체화하는 것임.

-사회적 규준들의 붕괴는 항상 전복적이지 않음. 특히 차이를 통해 형식적인 유동성, 파편화 시장화가 중심적 요소인 포스트모더니스트적 상품 문화 속에서는 전복적이지 않음. 실제로, 지배집단은 때때로, 자신들의 애매성에 대한 권리를 엄청나게 전시하면서 그들의 우선권을 드러낼 수 있음. (축구스타, tv쇼->사회적 규준들을 불곤하게 붕괴시키면서 백인 남성 이성애자의 특권을 긍정함.)

■ Colonial Passing 콜로니얼 패싱

1)루드야드 키플링의 󰡔킴󰡕 줄거리와 주인공 킴의 모방성

-루드야드 키플링의 킴은 식민 전복의 기법이 아니라 감시의 기법으로서의 모방성과 복장도착에 대한 훌륭한 사례를 제공함. 다른 측면에서, 키플링의 이야기는 인종적 패싱의 서사로 독해될 수 있음. 킴의 출신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양가성 속에 있음. 왜냐하면 그는 완벽하게 출신에 있어서 식민적 위기를 체현하고 있기 때문임. 영국인인 유모와 아일랜드 하사관 사이에서 태아나 고아가 된 아이인 킴은 라호르의 북적북적한 시장통에서 스스로 백인으로 패싱한 “혼혈인 여성half-caste woman"에 의해 길러짐. 반면에 킴은 많은 시간을 인도인으로 패싱하는데 보냄. “현지인처럼 피부는 검게 그을렸고”, “제나라 말은 방언”을 하고, 잠자는 것은 “현지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하고, “현지인들처럼” 물을 마시고... 킴은 책속에서 인도인이 아니라 백인으로 패싱할 수 있는 방식에서 “현지인”들에게 패스함. 문화의 맨 끝자락에서, 즉 시장의 경계구역, 거리, 지붕 그리고 길에서의 거주에서 킴은 문화적 잡종과 인종적인 모방적 남성임.

-킴의 인종적 애매성은 그의 이성복장착용에 대한 재능에 의해 고양됨. 즉 그는 “사업을 수행하면서 힌두식 옷이나 이슬람식 옷이 입고 벗기에 얼마나 편한지” 발견했음. 보다 정확하게 킴은 스위치임. 그 내러티브 곳곳에서, 그는 백인 신사의 정체성과 옷 입는데 있어서 “힌두식 옷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완벽하게 낮은 카스트의 힌두소년으로 되돌아감. 문화적 잡종으로서 킴은 키플링이 “양면적 남성”이라고 부르는 존재임. 그러나 여기서 모방성은 지배국에서 부과한 흠집난 정체성도 아니면, 반(anti)식민저항의 전략도 아님. 복장도착적인 킴은 식민지배와 피식민지 사이를 구별을 휘젓고 다니지만, 오로지 재형성된 식민적 통제를 제시하기 위해서임. 부랑아인 모방적 남성은 상징적 애매성과 윤리적 혼성성을 체현하지만, 그의 애매성을 식민적 귄위를 전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고양시기기 위해서 전개함. 그는 인도스러운 영국신사임. 즉 인도인이지만 인도인은 아닌...

-킴의 패싱은 백인성에 우선권을 부여함. 영국계 아일랜드인 복장도착자로서, 그는 인종 정체성성의 모순적인 관념을 구체화함. 백인 혹은 흑인? 식민지 개척자 혹은 피식민지배자? 그의 패싱과 복장도착은 “개인적 정체성이라 불리는 것으로 진지한 사색에” 빠져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백인 혈통”과 아일랜드적 의식은 비판적 계기들에서 이점을 제공함. 즉 인종, 그것은 피부 혹은 의복만으로 보다는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 처럼 보임....콘래드처럼, “개량된 혹은 개선된 사례”는 영국인이 아니라 바바가 영국화된 남성이라고 말한 사람임. 반면에, 킴은 인도인은 아니지만 인도화된 남성임. 분명히 문화적 위계 “바닥에” 패싱은 허용될 수 있음. 그러나 문화적 위계 “위쪽” 패싱은 허용될 수 없음.

-킴의 “백인 혈통”은 그로 하여금 문화적 애매성을 포함하도록 했으며, 그를 “모든 카스트들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특권적인 보편주의를 획득함. 킴은 또 다른 모방성의 측면을 가지고 있음. 즉 타자를 보다 더 잘 지배하기 위해 패스하는 식민 개척자. 이러한 방식에서 영국계 아인랜드인 고아의 갱생은 제국적 통제를 재형성시키고 보다 신중한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한 전형적인 알레고리가 됨.

-킴에서 패싱의 특권은 유일하게 남성만이 가진다는 점에서 간과되지 않음. 그 내러티브 곳곳에서, 여성들이 아브젝시옹의 모습을 하고 거부되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임. “나는 엄마가 없지만, 나의 엄마”라고 말하는 킴... 여성들은 경계적 표식자로서 그리고 맨 끝의 모습으로 존재함. 이 여성들은 남성 플롯과 남성 변형물을 용이하게 하지만, 그들은 변화의 작인들이 아니며, 또한 그들의 정치력을 고려할 수도 없음.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계속해서 남성권력을 위협하는 역할을 함. “항상 여자들에게 시달리면서 어떻게 한 남자가 도를 추구하며 ‘큰 게임’을 해나갈 수 있단 말인가?” 성적재생산은 서사 속에서 폭풍우를 표시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되고 거부되는 성적 재생산은 인종의 애매성을 억제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되돌아감.

-여성 섹슈얼리티가 킴에서 부인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인종의 불안정성을 포함하는 위태롭게 안정적인 이성애임. 서사가 결말로 치달으면서, 킴의 다형적인 에스니시티는 통제를 벗어나서 나선형적으로 공격함. “ 킴-킴-킴은 누구인가?”...나는 누구지? 무슬림인가, 힌두인인가, 자이나교인인가 불자인가?... 나는 킴이며, 킴이다. 그리고 킴은 누구란 말인가? 에스닉한 선회에 의해 압도되고, 고행적인 발견으로 제어하기 어려워진 그는 큰 게임에서 없어도 되는 “맞물리는 톱니바퀴”임. 킴은 그의 정체성을 복구된 이성애에 대한 기묘한 의례를 통해 교정함. 언덕에서 여성의 위협적인 섹슈얼리티를 막아내는 것에서, 그는 지구상에서 그 스스로는 넘어쓰리면서, 그리고 “대지Mother Earth"에 대체되고 근친상간적인 뒤섞임을 실행함. 즉 섹슈얼리티는 거부되면서 확인되는 애매한 행동임. 거부된 엄마[여성]은 남성섹슈얼리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한계로 복귀할 것임. 이는 줄리아 크레스테바아 아브젝시옹으로 부르는 것임.

■ Abjection and A Situated Psychoanalysis 비체(아브젝시옹)과 상황적 정신분석학

1)크레스테바와 아브젝시옹

-아브젝시옹(라틴어, ab-jicere)는 내쫓거나 추방하거나 버림받는 것을 의미함. 󰡔토템과 터부󰡕그리고 󰡔문명속의 불만󰡕에서 프로이트는 문명화가 특정한 전-오이디푸스적 쾌락과 근친상간적 애착을 거부하는데 근거해 있다고 제안했음. 프로이트와 메리 더글라스의 경계적 의례에 관한 작업을 따라서, 크레스테바는 사회적 존재가 추방력을 통해서 구성된다고 주장함.회적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더럽다고 간주하는 특정한 요소들을 삭제해야만 함. 즉 배설물, 월경, 땀, 오줌, 정액, 눈물, 구토, 음식, 자위, 근친상간 등등. 그러나 크레스테바에게, 이러한 추방된 요소들은 완벽하게 지워질 수 없음. 그들은 붕괴의 위협 혹은 심지어 소멸의 위협이 있는 주체의 정체성의 가장자리에서 붙어있음. 그녀는 이러한 과정을 아브젝시옹(비체)이라고 불렀음.

-아브젝트는 모든 것, 즉 주체가 사회적이게 되기 위해서 삭제되어야하는 것임. 그것은 또한 이러한 야망의 실패의 징후이기도 함. “비난과 동경”사이의 타협으로서, 아브젝시옹은 자아의 경계를 표시함. 동시에 그것은 영속적인 위험은 지닌 자아를 위협함. 신성불가침적인 경계들을 허용하지 않는, 아브젝시옹은 유동성을 넘어선 사회의 불확실한 지배력을 그리고 정신과 신체의 난잡한 측면을 증명함.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경계로 부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적고 있음. “아브젝시옹은 무엇보다도 애매함이다.” 아브젝시옹은 자아에 대한 불확실한 경계 위에서 사회의 실루엣을 추적함. 즉 그것은 동시에 정신착란과 분열의 힘을 지닌 사회질서를 위태롭게 함. 이것은 크레스테바의 놀라운 통찰력임. 즉 추방된 아브젝트는 주체를 그것 내부의 구성적 경계로서 붙어있음.

-이 책에서 부분적으로, 아브젝시옹의 패러독스를 근대 산업 제국주의의 공식적인 면모로 설명함. 제국주의 아래에서, 특정한 집단들이 모더니티의 불가능한 가장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거주하며, 추방되기도 함. 슬럼, 게토, 쪽방, 집장촌, 수도원, 식민지의 반투스탄(반자치 흑인구역) 등등. 아브젝트한 사람들은 산업 제국주의가 거부하였지만 그들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임. 즉 노예들, 매추부들, 피식민자, 가사노동자, 정신병자, 실업자 등등. 특정한 경계 지역은 아브젝트한 구역이 되었고 경비가 삼엄함. 즉 아랍 카스바, 유대인 게토, 아일랜드 인 슬럼가, 빅토리안의 쪽방과 부엌, 판자촌, 정신병원, 홍등가, 도시의 베드타운. 가정생활, 시장, 산업.

-아브젝시옹은 나의 목적을 풍부하게 제시하는 것임. 즉 그것은 신체의 경계와 신체의 정치학의 위를 맴도는 경계적 상태임. 그리고 따라서 정신분석학과 유물론적 역사 사이의 경계 위. 내가 2장과 4장에서 주장하는 것으로서, 정신분석과 역사 사이의 훈육적인 완충지대는 그 자체가 아브젝시옹의 산물임. 전통적인 프로이드적 정신분석학은 가족 로맨스에서의 특정한 요소들을 삭제하고자 함. 노동계급의 보살핌, 여성의 섹슈얼리티(특히 클리토리스), 경제학과 계급, 이성애, 인종과 제국, 문화적 차이 등등. 그러나 이러한 아브젝트된 요소들은 정신분석학을 구성적이고 내부적인 한계의 억압으로 따라다님. 이와 달리, 유물론적 역사, 특히 경제론적인 맑스주의적 형식에서 무의식적이고 성적인 욕망, 정체성, 비합리적인 것, 페티시즘 등등과 같은 다루기 어려운 요소들을 거부함. 아브젝시옹은 정신분석학과 유물론적 역사 사이의 접근금지 영역을 그늘지게 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역사적 분리를 급진적인 질문으로 제기하는 방식 속에 있음.

2)상황적 정신분석학

-이 글에서, 나는 상황적 정신분석학의 발전을 제안함. 즉 동시에 문화적으로 맥락화된 정신분석학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알려진 역사임. 아브젝시옹에 관해서는, 예를 들면 구별짓기가 아브젝트한 objects(클리토리스, 가정 쓰레기, 생리혈)과 아브젝트한 states(거식증, 자기도취적 상상, 히스테리)사이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 즉 이는 아브젝트한 zones(이스라엘이 차지한 영토들, 감옥, 오래된 여성의 쉼터들)과 동일하지 않음. 사회적으로 아브젝시옹(군인들, 가사노동자들, 간호사들)을 지명한 작인들(agents)은 사회적으로 아브젝트한 집단들(매춘부, 팔레스타인, 레즈비언)과 동일하지 않음. 아브젝시옹의 심리적 과정들(페티시즘, 부정, 초자연적인 것)은 아브젝시옹의 정치적 과정(에스닉한 제노사이드, 대중청소, 매춘 “정화”)과 동일하지 않음. 이것들은 상호의존적이만, 또한 아브젝시옹의 구별적 차원들을 포함함. 그러나 오히려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구성물의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에 대한 모순적인 요소들이라면 상호관계적으로 출현함.

-예) 백인 국민국가의 서사로부터 그들을 배제하는 것은 원시적인 어머니에 대한 남성의 공포와 관련되어 있음. 어머니에 대한 전형적인 남성 공포라는 관념은 여성의 배제를 충분히 이해하는데 있어서 부적절한 것임. 왜냐하면 그것은 인종에 대한 역사적 비틀림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음. 즉 왜 그것은 흑인이며 영토적으로 추방되는 자가 백인 여성인지. 내가 10장에서 설명하는 것으로서, 국민국가적 모성성에 대한 신화는 남아프리카에서 흑인여성과 백인 여성에게 다르게 적용됨. 역사적 다양성에 대한 물음은 양가성의 무대에서 비판적 역할에 대한 물음을 또한 제기함.

-요약하면, 이 책 Imperial Leather은 정신분석학과 유물론적 역사가 불안정한 권력을 전략적으로 보증하기 위해 상호간에 필수적이다는 확신에서 쓰여졌음. 나는 그것들의 이분법적 대립물의 그림자 양쪽을 유지하지 않으려는 정신분석학과 유물론적 역사사이의 관계에 의문을 품은 서사들을 구체화하고자 함. 여성과 인종적 페티시즘, 이성복장착용, S/M, 식민의 파로나마, 가정용 쓰레기의 제거, 시대착오적인 공간, 팝옵티컬적 시간 등등을 설명하면서, 나는 정신분석하는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와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 출현해왔기 때문이라면, 정신분석학이 식민지의 경합장 위에서 무역사적으로 부과될 수 없다고 주장함. 대신에 나는 정신분석학의 반식민화와 식민주의의 정신분석학 둘 다를 포함해야 한다는 상호 계약을 불러냄. 아마도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이 없는 유물론적 역사는 없을 것이며, 유물론적 역사 없이는 정신분석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임.

2009년 1학기 경제지리교육 과제2(배은지)

2009.06.19 00:10 | 학부 과제제출방 | iame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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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인터넷과 음악산업의 위기

세계의 음악 산업은 네 개의 큰 회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AOL-Time Warner, Sony/BMG, Universal, EMI가 그 회사들인데, 이들은 세계 음악시장에서 80%를 점유하고 있으며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술 부문에서 큰 이익을 누리고 있다.

인터넷 ‘해적질’이 수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음악 산업의 위기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다. 댄스음악과 같은 장르가 주목받고 있고 (이러한 장르에서는 얼굴 없는 가수가 등장했고, 음반을 사는 것보다 clubbing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양식화된 수단으로 컨트롤 하기가 어렵다.) 음악이 광고나 영화와 같은 다른 미디어와 결합하고 있으며 (또한 음악의 특색과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의심을 갖는 시각도 늘어나고 있다) 대중 음악이 더 이상 14~24세의 연령대에게 전에 그것이 그랬던 것과 같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 왜냐면 핸드폰이나 컴퓨터게임 등이 그들의 소비를 더 많이 사로잡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네 개의 회사들은 인터넷 기반 다운로드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취하고 있다. 음반 회사들이 파일 공유 네트워크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를 상대로 합법적인 절차를 취하려는 움직임 역시 그 중의 하나다.

동시에 그들은 음악 제작을 위한 전통적인 편곡의 장점을 강조한다. 음반 회사들은 전문가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다양한 접촉을 시도하고, 자금을 제공한다.

 기존의 회사들이 신청과 다운로드 서비스를 확립시키는 데 반해, 새로운 회사들은 신청 패키지나 음악가와 음반 회사 사이의 중개와 같은 특정한 틈새 시장을 채우며 등장하고 있다.

 주류가 되는 음반 회사들은 지금까지는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보급 시스템의 적용을 허락하는 급진적이고 조직적인 변화에 저항해왔다. 누군가 단기적으로 이익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그들이 지속가능하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개발해왔는지는 의문이다.


음반판매의 부진 신문기사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717200807415&p=starnews

대형 음반기획사들의 통합

2006년 미국의 음반 시장은 변환기를 맞는다. 10년간 거래액이 줄고, 고객들은 다른 채널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2005년의 기록에 의하면, CD 판매는 미국 총 음반 시장의 86%를 차지하지만 판매 수익은 2000년에 비해 20% 감소하였다.
반면 디지털 음악 구매는 상당히 성장하여 2004년에 1.5%를 차지하던 것이 2010년에는 25%를 초과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이에 대조족으로 미국의 타워 레코드사는 파산 신청을 하기도 하였다. 오프라인 음반 시장의 약화와 온라인 시장의 강화 속에서 미국의 음반 업체들은 합병과 인수를 시작한다.

미국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AOL과 타임워너계열의 워너뮤직의 합병(AOL-Time Warner)
독일의 미디어그룹인 베텔스만은 소니뮤직의 인수를 추진(Sony/BMG)

AOL의 인터넷 서비스망과 타임워너가 만나 인터넷 음반의 다양화가 예상된다.
소비자가 음반 대신 온라인으로 음악을 다운받는 인터넷 음반시대를 맞아 음반업계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음반시장 규모가 2002년 1백만달러에서 2003년에는 4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2006년 EMI, Sony/BMG, Universal, 워너뮤직은 세계시장의 72%를 점유했다.
그 중에서도 음반시장의 26%의 점유율로 시장을 이끄는 회사 Universal은 1998년 폴리그램을 인수하면서부터 그 위치를 쌓기 시작했다. Universal은 2006년에 62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했고, 또한 13%의 점유율로 뮤직 퍼블리싱 산업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Sony BMG Music Entertainment는 2004년 베텔스만과 소니 미국지부와 50-50으로 합병을 했고 그것은 음반 산업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를 탄생시켰다. 20%의 음반산업 점유율을 갖고 있으며 2004년에도 최고 순위 50 앨범 중에 20개를 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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