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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들’의 세상을 꿈꾸며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고-
83443 임하결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6살 난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게 옳은 일일까?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아이를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경쟁에 노출 시켜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는 6살 난 아이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을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에게는 시키지 않을 일을 남의 아이에게는 권장하거나 강요한다. 장교수는 6살 난 아이에게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아이가 보람 있고 보수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쌓을 때까지 부모의 보호가 당연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80년대 이후 위세를 떨치며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숨겨진 진실’을 들춰 보이고 부자 나라들의 위선을 비판한다. 앞에서 언급한 6살 난 아이의 예는 세계화의 경제적 논리를 제공해온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무역에 관한 주장을 비판하는 이야기다. 과거에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으로 현재의 경제기반을 다진 부자나라들이 이제는 자유무역이 경제발전의 최상의 원리라고 주장하며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는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제목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에서 따온 것으로,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이미 올라온 높은 곳을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개발도상국)이 올라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차는’ 부자나라들을 비유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나 혹은 정설이라고 알려진 것들의 진실성에 대해서 보다 비판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부자나라와 신자유주의자들이 현재 자신들의 관점에서 자신들이 유리할 대로 역사를 고쳐 쓰거나 과거를 재해석하며 왜곡하고 있다고 폭로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들은 구체적이고 풍부하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화를 역설하며 ‘자유무역’ ‘자본시장 개방’ ‘강력한 특허권 보장’ ‘공기업의 민영화’ 등을 경제발전을 위한 명제로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거의 대부분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배치되는 정책을 토대로 부자나라가 됐다”며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의 위선과 독선을 지적한다.
어떻게 해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해를 끼치는 일을 그만 두게 할 수 있을까?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자유무역과 자유시장등을 설파하는 대신 어떤 일을 해야할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해 역사와 현대 세계의 분석, 미래에 대한 예측, 그리고 변화를 위한 제안 등을 통해 답을 제시한다.
고도의 전지구적 통합을 주창하는 세계화는 사실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세계화 경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부자나라들에 의해 결정된다. 부자나라들은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세계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한다. IMF, World Bank, WTO 등 세계 경제기구는 부자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저자는 이들 기구를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른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행된 198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소득불평등은 증대한 반면, 성장은 크게 둔화됐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훨씬 더 철저하게 실행된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경제성장의 실패가 특히 두드러진다.
이책은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를 분석해보며 오늘날 선진국들의 부끄러운 비밀들을 파헤친다.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역사를 통해 거의 모든 부자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와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히고 부자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유 시장, 자유무역 정책을 강요해왔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라고 확인시켜 준다.
지난 4반세기동안 개발도상국들을 자유무역으로 몰아붙이는 데 전력을 기울여온 나쁜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자유 무역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며 저자는 이의를 제기한다. 부자나라들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새로운 국제무역 체제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하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과거 자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무역과 상업 정책의 여러 가지 도구들을 가난한 나라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방해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성공한 나라들의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유치(幼稚)산업 보호정책을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의식을 접하며 한․미FTA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세계화 과정에서 진행되는 급속하고 포괄적인 무역 ‘자유화’는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해 옮기는 개발도상국들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국의 미래를 팔아 눈앞에 있는 사소한 이익을 챙기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경고는 우리 정책 당국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거나 강요하는 자본시장의 개방, 국영기업의 민영화, 지적 소유권 보호의 강화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나쁜 이기심이 숨어있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현재같은 신자유주의의 위세가 지속된다면 경제가 황폐화된 세계가 바로 우리 미래의 모습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부자나라들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은 과거 역사에서 그 희망을 찾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변화시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돕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고 결론짓는다.
이 책을 덮으며 갖게 되는 아쉬운 점 한 가지.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불평등 문제에 관한 대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유익했지만, 한 나라 안에서의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서는 미흡하다는 점. 이 책의 주제가 그것과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개발 독재 등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저자의 입장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염려스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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