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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 Gibson-Graham, "Class and the Politics of Identity" 후반부

2009.06.18 14:24 | 대학원 세미나룸 | 달라셩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693 주소복사

J.K. Gibson-Graham, 1996, “"Class and the Politics of Identity”", in The End of Capitalism as We Knew it: A Feminist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Blackwell, London, 59-71.


계급과 정체성의 정치학

계급 정의: 사회적, 개인적 정체성의 문제들

계급에 대한 다른 개념

계급 정치학을 위한 사회적, 개인적 정체성과 그것들의 영향에 대한 대안적인 개념

Sue와 Bill의 계급 규명하기

여성, 가구, 계급

결론


Sue와 Bill의 계급 규명하기


동질적인 자본주의적 사회형성의 세계적인 재현이 탈중심화되고 복합적인 이질성으로 대체될 때, 다른 과정과 같이 계급은 이질적이고, 불균등하게 발전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음. 공산주의적, 노예적, 봉건적, 자본주의적, 그 외 다른 계급 과정은 -단일하고 체계적인 사회적 정체성의 개념에 의해 모호해진-현대 사회적 형성의 구성체로서 인식되고 이론화될 수 있음.

사회적 형성의 “정체성”과 같이, 개인적인 계급 정체성은 탈중심화되고 다양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음. 개인은 다층적인 계급 위치를 지니면서 다양한 계급 과정에 참여할 것임.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수준에서 다층적이고 탈구된 계급 정체성의 개념을 예증하기 위해서 필리핀 태생의 간호사인 수와 그녀의 백인 오스트레일리아 광부인 남편 빌의 이야기를 고려함.

<빌>은 경제적으로는, 임금노동자로서 연간 65,000달러를 벌고, 수입 수준이 트럭운전사보다는 높고, 경력 있는 대학교수와 동등한 수준임. 그가 재직하고 있는 광산에서 수입-공유 계획은 생산성 획득을 북돋우고, 산업적 붕괴를 약화시키기 위해 도입돼 왔음. 그래서 빌은 그의 임금을 보완할 수 있는 추가 수당을 받음. 빌은 수입의 일부를 저축하고, 투자해왔음. 임대 주택과 주식을 소유하고 있음. 빌은 정치적으로는, 보수당의 지지자이고, 광부로서는 호주광산노동자연맹에 가입. 여가로 야생돼지 사냥 부업을 함. 집에서는 전통적인 역할에 그침. 수입은 본인이 관리하고, 수에게는 생활비, 필리핀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할 돈을 줌.

계급을 사회적 집단으로 이해한다면, 빌의 계급적 위치는 규명하기가 어려움. 광부로서의(임노동자) 생산관계에 우선성을 준다면, 노조활동은 “진정한” 계급이해가 되고, 보수당 지지는 “허위의식”의 산물임. 그러나 야생돼지 사냥사업이나 펀드투자자 측면의 생산관계에 우선성을 둔다면, 그 반대가 될 것임. “노동계급”으로서의 빌의 소속은 그가 포함하는 일부 관계를 강조하고, 그 외는 강조하지 않는 것에 의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음. 즉 중요성의 위계에서 그의 경험의 구성요소를 서열화하는 것에 의해서 혹은 근본적인 혹은 필수적인 요소를 위해 총체적인 사회적 경험을 줄이는 것에 의해서.

수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계급 측면에서 말하기가 더 어려움. 수는 필리핀인이고, 빌과 결혼해서는 임노동을 포기해야하는 훈련된 간호사임. 현재는 전업주부로서 가사, 양육을 전담하고, 친구들과 서비스제공자들과 함께 가족관계의 주된 관리자임. 게다가 필리핀에 있는 가족의 교육과 복지를 위한 재정적 책임을 지고 있고, 호주 광부들의 필리핀 부인들의 지역 지원집단으로 자원활동에 적극적임. 수는 고전적인 유연한 다업종숙련 노동자임. 다른 결혼이주 필리핀 여성들에 비해 나은 경제적 배경과 다른 언어집단 출신이지만, 수는 인종차별에 대비해 주류 집단과 동일시함.

수의 계급적 정체성에 있어 빌의 역할을 중시한다면, 그녀는 결혼, 재생산역할, 사회적 구성에서 임노동자와 연결되어 노동자 계급의 성원으로 간주될 수 있고, 광산촌으로 이사하기 전 관리자격인 간호사였고, 이주 전에는 필리핀에서 쁘띠 부르조아의 딸이었음. 이러한 “계급적 위치선정들(location)” 중에 하나는 남편에게, 과거에, 아버지에게 속해있으면서 사회적 범주로서 계급은 수를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 같음.

그러나 계급과정 관점으로부터 수의 계급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거나, 계급관점으로 그를 “위치시키기” 위해서 빌의 경험을 간과하거나 계급위치를 낮출 필요는 없음. 수는 가구에서 부인과 어머니로서의 역할로 잉여노동 생산, 전유에 대한 “봉건적” 착취계급과정에 포함됨. 그녀의 노동은 안식처의 제공 댓가로, 가정적인 생산의 상품화된 수단에 접근하면서 빌에 의해 전유되었음. 빌이 돈을 벌어오고, 따라서 집에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적, 가족적, 동료관계의 관습도 수의 착취 조건을 제공함. 수도 역시 자신의 잉여노동이 그 마을에 필리핀 집단의 구성원에 의해서 전유되고 있는 자발적인 계급과정으로 포함됨. 인종, 의존(부양), 연대감, 국가적 충성(로열티)에 관한 주류 담론은 착취형태의 실존조건을 제공함. 수의 공적인 정치참여의 부족은 광산촌의 독특한 문화에서 인종화된 “아시안”정체성의 사회적 구조를 포함하는 계급과정과 “강조된” 여성성과 모성에 포함에 의해서 영향 받음.

이러한 관점에서 수는 전통적인 성별노동분업의 역할과 인종화된 “타자성”의 구성에 의해 중층결정된 것과 복합적인 주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포함된 두 가지 계급과정에 소속됨. 그녀의 경험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론화될 때, 집안일 수행에 대한 빌과의 싸움은 그녀가 집에서 감당하는 착취정도에 대한 투쟁으로 이해될 수 있음. 즉 수는 계급에 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정치적인 것도 아님. 오히려 그녀는 계급의 비-연대성에 간헐적으로 포함됨.

계급과정 접근이 수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데 계급의 역할을 가시화한다면, 빌의 행동과 경험의 측면에 우선성을 부여하지 않고도 빌의 계급정체성을 이론화하도록 함. 빌은 잉여가치로서 자본주의적인 착취 계급과정으로, 그로부터 전유되는 잉여노동을 수행함.

자영업자로서 그는 자신의 잉여노동을 생산하고, 전유하고 분배하는 독립적인 계급과정에 포함됨. 집에서는 부인의 무임노동을 전유하고, 빌이 참여하는 정치적 과정은 노동계급 간에 헤게모니적 남성성, 백인 우월주의, 연대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구성처럼 다른 과정뿐만 아니라 다른 계급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의해서 영향 받음. 빌은 모순적이고 파편화된 사회적 장, 많은 다른 계급(그리고 비계급) 과정의 상호교차에 있음. 어느 누구도 이러한 과정을 그의 진정한 정체성, “계급” 이해로 정의하지 않았음. 복합적이고 변화하는 상호교차로 빌의 진정한, 단일한 계급 정체성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버틀러의 “의례적 픽션” 유형의 탐색을 포함해야함.

다양한 계급과정으로 수와 빌의 개임은 변화하고, 포개지고 겹쳐있음. 그러나 계급과정에 끊임없이 참여함. 이러한 개입은 공적, 사적인 모든 면에서 적극적이고, 강력한 주체로 구성하게 함.정체성과 계급에 대한 탈중심적 접근은 계급 정치학의 이해에 다양한 함의를 갖음.


여성, 가구, 계급


계급논쟁이 대체로 자본주의적 계급정의와 성격에 치중해왔기 때문에 여성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계급과 관련해 설명하는 것을 곤란하게 여겨왔고, 여성들은 자본주의적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비계급 과정에 관여하고 있는 이들로 이론화되어 왔음.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남성을 받들듯이 재생산 혹은 가부장적 영역이 차지하는 부차적 위치에 대해 재언급함. 가부장적 억압이 계급착취에 종속적인 것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면서, 다양한 형태를 갖는 “이원론”(dual systems)적 접근을 제안함. 이원론의 첫번째 형태에서 보면, 가부장제는 계급영역으로 이동.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사회적 관계의 두 체제이고, 이 둘은 사회적 삶의 모든 부문에서 상호작용. 젠더관계는 따라서 “생산관계”의 부분이고, 가부장제는 분리된 영역으로 분류될 수 없음. 이원론의 두 번째 형태에서 보면, 계급이 가부장제로 이동. 가구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논리와는 다르지만 가부장적 혹은 가사영역의 “생산양식”의 중심지로 이론화됨. 이런 식의 개념화들은 가부장제를 하나의 체제 혹은 사회구조로 이론화하는 어려움에 빠뜨림. 물론 이 이론가들은 이 이론화들이 가구를 계급영역으로 식민화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도 고려하고 있음. 전통적 맑스주의의 ‘전체성’에 대한 페미니스트 투쟁의 역사 속에서 여성주의적 분석은 가부장제와 젠더 지배를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이론화하려는 경향이 있음.

그러나 계급을 가구로부터 제외시키는 것은 잉여노동의 생산, 전유, 분배를 비가시적으로 만들 수도 있음. 따라서 가구와 다른 계급과정들을 경제적, 사회적 “체제” 혹은 구조와 떼어놓고 계급과 가구의 관계를 재협상시켜야 함. 이것은 가구분석을 위한 범주로서의 성별관계를 치워버리거나 다른 것과 바꿔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착취 혹은 계급이라는 측면을 첨가하기 위함. 산업사회의 형성과정에서 자본주의적 계급과정만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계급과정도 함께 전개되었다면, 가구는 비단 자본주의적 재생산에만 관여한 것이 아니라 “자기-고용(자영업)”과 “자기 착취”와 같은 독립적 계급과정과 같은 비자본주의적 계급의 재생산에도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음. 중요한 것은 가구는 자율적인 생산 지점으로서 성립될 수 있고 다양한 계급과정이 수행된 중요한 계급갈등의 지대가 된다는 것임.

봉건적 가내 계급 과정에서 여성은 혼자 살았다면 생산하지 않았을 초과잉여노동을 사용가치의 형태로 생산. 그의 배우자가 먹고, 씻고, 입고, 자는 것은 그가 생산해낸 것, 즉 그의 잉여노동을 그의 배우자가 전유하는 것임. 그러나 많은 가구들에서 이러한 봉건적 가내계급과정은 여성들의 투쟁에 힘입어 위기에 놓이게 되었음.

가내 노동 영역에서의 잉여노동의 수행, 전유, 분배에 대한 성별화된 계급투쟁은 공동체적 계급과정이 일어나는 가구의 수를 늘려놓았고 성별분리를 통해 계급갈등이 해소된 독립가구들을 급속하게 늘리고 있음. 가구는 하나의 지배적 구조나 가부장적 생산양식과 같은 규율들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라기보다는 광범위하게 다양한, 즉 계급, 성별, 인종적, 성적 그리고 다른 행위들이 상호교차하는 사회적 지점으로 재현됨. 이 지점은 가부장제나 자본주의와 같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안정된 사회체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차이와 지속적인 변화의 중심지로서 이론화 가능


결론


역사의 집단적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이라는 개념은 산업자본주의의 결정적이고 주요한 역할에 대한 맑시즘적 담론과 비맑시즘적 담론의 효과임. “자본주의적 발전” 담론은 사회의 개념을 객관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의해, 주관적으로는 산업화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경험에 의해 정의되는 두 가지 주요한 계급으로 조장해왔음.

계급을 현대 사회의 중추적인 사회관계로 그려냈던 이러한 계급담론은 이제 계급을 주변화시키는 데에 공헌하고 있음. 맑스주의자들이 노동계급 해체(비조직화)를 애도하고 있는 동안, 맑시즘의 비판자들은 계급의 죽음을 주장함. 그러나 죽거나 해체되고 있다는 것은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지배적 관념의 부분으로 만들어진 노동계급에 대한 허구이고, 그것의 임무임. 이러한 관념이 비평가들에 의해서 가치절하될 때, “노동계급”은 주변화되고, 계급의 지위가 강등되어왔음.

“노동계급”이 이론적으로, 정치적으로 시들어가는 운에 처해 있어도 계급자체는 여전히 현존하고 지배적인 것으로 이론화될 수도 있음. 동업(craft) 노조주의와 포드주의적 산업과 관련되어왔던 “노동계급”에 대한 획일적인 상은 더 이상 사회이론가들이나 노동하는 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음. 그들이 사회적 변화를 향한 추동과 저항을 조직화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고, 사회이론 단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지도 않음. 그러나 계급이 사회진보와 정치적 변화의 지적인 구성요소로서 축소될 필요는 없음. 대신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계급의 역할이 다른 사회적, 이론적 틀 안에서 개작될 수 있고 여기서 새로운 정치적 기회들이 나타날 수 있음.

사회적 주체들은 계급이라는 사안에 부분적으로만 동일시할 것이고 계급변혁을 위한 전략적 연대와 동맹은 담론적으로 그리고 비담론적으로 구성될 것이며, 계급 “정체성”은 많은 다른 정체성 담론들과 사회적 구별 담론을 통해 개별적인 사회적 주체들에게서 중층결정됨.

philgeog 2009.06.18  16:11

열심히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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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셩 2009.06.19  16:51

과연 도움이 될까요? 발제가 많이 부족해서요.
근데 이번 학기는 선생님께 많은 자극을 받고, '전환점'이 되는 시기가 된 것같아서
살맛나는 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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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geog 2009.06.20  22:46

네~ 저도 훌륭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서 즐거웠습니다.^^ 보다 넓은 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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