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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than Friedman, 1997, “ Global crises, the struggles for cultural identity and intellectual porkbarrelling”, in Pnina Werbner and Tariq Modood, Eds., Debating Cultural Hybridity: Multi-Cultural Identities and The Politics of Anti-Racism, Zed, London, 70-89.
Global crises, the struggles for cultural identity and intellectual porkbarrelling: Cosmopolitans versus locals, ethnics and nationals in an era of de-hegemonisation
전지구적 위기, 문화적 정체성과 지적인 정부보조금 획득을 위한 투쟁 :탈-헤게모니화 시기에 코스모폴리탄 대 지역, 민족, 국가 ?서 론
모든 사람들은 세상이 심오한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 우리는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복지국가에서도 증가하는 도시 폭력과 하층계급의 일시적인 출현의 직접적인 경험을 거쳐 이러한 변화를 인식함. 우리는 문화적 권리에 대한 요구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뉴스 네트워크에서 보고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에스닉한 폭력에 관해 읽을 수 있음. 우리는 세계는 하나다라는 얘기를 들음(지구촌). 지구촌의 지배규범에 벗어나 있는 국가를 제외하고.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전지구화의 표현이 아니라 단계적인, 진화적인 사고에서 연유한다고 보고, 대신에 복잡하지만 파편화(fragmentation)의 단일한 과정으로 표현되는 평행적인 과정이 있다고 봄. 이런 과정의 논리는 분리된 영역과 연결된 동족관계(homology)로 표현됨. 이것들은 다음과 같음.
1. 지식생산에 대한 공적 영역의 파편화 2. 3가지 분리된 파편화 과정을 거친 국민국가의 민족?인종화(ethnification) 1)현지우선(혹은 토착성) / 2)지방분권화(혹은 지역분할) / 3)이주민과 국가의 민족? 인종화 3. 민족?인종화를 수반하는 체계의 중심으로, 국가 영역의 게토화로, 증가하는 경제적 양극화와 주변화된 인구의 출현 상황 |
이러한 과정들은 밀접하게 상호관련되어 있음. 파편화의 과정은 정체화의 지역화와 동등함. 국지적인 것은 지리적인 국지로서 균질적인 국민국가의 붕괴의 주된 표현임. 토착성은 에스닉한 근본성의 의미와 관련된 국지에 대한 강력한 의미와 연결됨. 토착적인 것은 역사적으로 침략이나 식민화의 산물인 또 다른 인구와 동일시된 국민국가의 원류적인 거주자들을 참조함. 이민자와 국민의 민족?인종화는 정체성의 구체화 과정의 일부임. 국가를 둘러싼 민족?인종화는 국민국가 자체의 민족?인종화와 평행적임. 이민인구의 민족?인종화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외국 고향과 동일시되는 디아스포라 형성을 발생시킴. 국민국가는 전자의 단일성을 분해시킬 때, 양극화하는 파편화의 일반적인 과정 내에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것으로 둘러싸임. 국가의 민족?인종화는 전지구적 체계에서 헤게모니적 질서의 쇠퇴(모더니즘의 쇠퇴)의 측면임. 나는 모더니즘의 쇠퇴가 팽창하는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유사한 이데올로기적 운동의 부상과 반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제안해왔음. 이것은 통계적 과정, 경향이지, 결정론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주장함. 문화적/사회적 파편화는 증대되는 소외의 지친 감정에 의해서 촉진됨. 국가가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더 광범위한 인구로부터 보충된 개인에 의해 내재화된다는 사실은 권력에 대한날카로운 비평의 특정한 푸코주의에 의해 간과되어옴. 즉, 마치 권력의 특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다문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국가는 아니라는 것임. 결국에는 동화를 실천하는 국가가 되고, 국가 이데올로기의 설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루트에 거주하는 변화하는 이데올로기를 탐색할 필요가 있음. 여기서 제안하는 점은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기능하게 하는 사회적 현실의 공유된 경험과 해석을 발견하는 것임. 강한 사회적 프로젝트 이상의 포기와 그러한 프로젝트와의 동화로서의 다문화주의는 서구 근대성의 쇠퇴에 대한 ‘정체성 공간’에서 폭넓은 변화로 나타남. 근원으로의 회귀를 낳는 모더니즘은 반작용적인 하위국가와 에스닉한 정체성의 강화를 가져옴. 그래서 우리는 위로부터(상명하달)의 단순한 함의보다는 이중적인 과정을 갖음.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사회적 행위자가 나타난 이래로 특정한 담론에서 가정되어왔던 것처럼. ?전지구적인 엘리트 형성의 잡종화(hibridisation)와 문화
연구과정의 주체인, 지적인 엘리트로서( 혹은 최소한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불렀던 엘리트의 부분이더라도) 자기-동일시하는 위치로부터 진술하기 때문에 신중한 고려를 부여하지 않는 동일시의 네 번째 과정이 있음.
이러한 정체성은 잡종화, 크레올화(혹은 혼성화), 초-민족?인종성(trans-ethnicity), 초국가성, 하이픈된 정체성 등의 용어로 표현됨. 에스닉/이주 연구에서 가장 명확한 것은 민족?인종성이 식민지 세계에서 진행했던 위로부터의( 혹은 상명하달식) 구분(classification)의 산물이라는 것임. 인류학, 심지어 역사학에서 이와 유사한 접근방식이 있음. ‘부족’, 심지어 국지(예)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에 관한 범주적 정체성의 식민지적 부과 혹은 ‘관습’법의 설정은 자기-동일시로의 동화가 되는 존재질서의 일부가 되고, 심지어 ‘민족주의자’(예)서발턴 연구 집단)가 식민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무기로 사용됨. 식민 관료적 범주화의 문제는 근대적 관점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음. 여기서는 범주화 자체의 허위성을 강조하고, 새로운 위계구조에 동화되는 것을 가정함. 이것은 부여된 범주화 아래에 있는 그밖의 것을 가정하는 접근 방식을 제공해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식민주의에 의해 부여된 범주와 상반되게 정의된 애매한 경계, 문화적 혼합, 일반적인 서발턴 실재와 같은 용어를 포함함(담론의 일종). 오늘날 현실에서 이것은 문화적 흐름들이 서로 조우하고, 새로운 조합, 잡종성을 이루는 문화적 전지구화의 논의와 관련됨. 그것은 증가하는 세계의 일반적인 전지구화의 실재 역사적 산물을 가정하는 것임. 지구가 강압하는 국제적인 자본 이전에 존재해왔을지도 모르는 이전의 순수한 문화 실존의 가정을 예견하는 담론임. 본질주의가 잡종화와 문화적 창조성 개념에 의해 대체된다는 한에서 규범적 담론임.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과 잡종성
이러한 입장은 코스모폴리탄적이지만 새로운 종류의 코스모폴리탄이즘임. 모더니즘이 주도하는 시기에 코스모폴리탄들은 스스로 더 큰 세계를 알고,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모더니스트였으나, 주되게는 이성주의자, 보편주의자였음. 오늘날의 코스모폴리탄들은 모더니즘 없는 코스모폴리탄임. 그들 스스로 세계의 다양성을 아우르고, 그것의 실질적인 혼합체와 동일시한다는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임. 이러한 정체성 출현의 또 다른 측면은 참여자들이 현실이외에 그밖에 다른 것을 보도록 하는 것임. 이러한 방향으로 이동한 사회학자들 중에서는 다층적인 뿌리의 정체화가 매우 쉽게 일어나는 문학, 지식, 영화, 음악 분석으로 옮긴 경우도 있음(길로이 주장, 이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 참조). 영국과 전체 검은 대서양에서 흑인의 역사는 지적인 코스모폴리탄뿐만 아니라 세계 체계의 일반적인 파편화 과정이 지시하는 주제를 나타냄. 이것은 포스트모던 코스모폴리탄의 하이픈된 현실이고, 이 현실은 근대, 추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식, 문화, 그것들의 지속적인 융합의 복수성에 의해서 정의됨. 이러한 입장을 위한 메타포는 전지구적 마을의 세계교회주의 개념으로 나타남. 이것은 새로운 단일체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입장 하에 있는 분리된 실체의 집합임. 세계교회주의 다원주의는 파편화된 에스닉 정체성의 보상적인 대립물임. 앞서 지적했듯이 지방분권화는 국민국가를 쇠퇴하게 하고, 대량 이주가 발생하는 국지적 혼돈을 가져올 것임. 일상적인 국가의 공유된 경험과 환상에 대한 위협은 증가하는 인종주의와 국민국가의 보편적인 민족?인종화를 가져올 것임. 이러한 파편화를 넘어서 있는 지적인 엘리트도 역시 실존과 세계를 정의내려야함. 잡종성은 이 집단에게는 정치적으로 옳은 해결책임. 반-인종주의, 반-민족주의이고, 고대, 80년대 이전, 모더니즘과 동등한 포스트모던적인 객관적인 대안 정체성을 공급해줌. 문제는 세계에 대한 도덕적 전망을 구체화하는, 입장과 입장설정하기임. 그것은 자기- 성찰적인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주체성으로서 스스로에게 투명하고, 자기-명백함. 근원성, 경계 설정하기, 즉각적인 사회적 환경에 대립되는 경향은 그러한 세계교회주의에 반하는 것을 명령하고, 이러한 경향은 전지구적 체계의 실제적인 파편화에 의해 발생하고, 재강화됨. -레비스트로스의 ‘인종주의’와 정체성(유네스코와 대립되 개념):문화적 정체성의 특성에 관한 지적인 혼란의 시기에 정치적으로 매우 부적절함.
-기어츠의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민족주의, 독설 비판: 포스트모던하고, 다문화적인 관점. 다른 이의 세계를 내부로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함을 강조함. 인류학자가 되진 않더라도 특정한 세계와의 거리두기를 함축함. -바바: 국가와 국가에 내포된 동질성을 비판하고, 현실에 대한 이중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이주자의 위치의 중요성을 강조함. 문화적 잡종성을 반-모더니티의 개념과 연결시키고, 이것이 규범적 대립이 아니라 명백하게 일종의 초월성임을 강조함. 그 주장은 이주민은 한 곳의 문화적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은 본질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와 유사한 논리가 됨. 대신에 유동성과 필수적인 얽매임(boundedness)의 불안정이 있긴하지만.... 사잇성(in-betweenness), 경계성(liminality)의 언어는 바바의 잡종성 호명을 지배하고, 조직화할 것임. ... 제 3의 공간....동질적인 정체성의 개념이 운반되고 강화되는 경계-교차하기의 메타포에 있음. 왜냐면, 그러한 위반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임. 그러나 그러한 문화적 이주 현실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탈-식민적 경계-교차하기 작업에서 그것은 항상 프린트된 단어로 그것을 이러한 전치와 객관화(대상화)를 유지하는 것은 시인, 예술가, 지식인이었음. 그러나 누가 시를 읽고, 사회적 현실의 더 낮은 범위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종류의 동일시는 무엇인가? 경계-가로지르기는 미국에서 치카노(멕시코계 미국인 남성) 연구의 최근 메타포임. 그리고 전체 문학은 이주민의 국경을 초원한 경험을 둘러싸고 형성되어옴.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경계의 땅/라 프론테라:새로운 메스티조(1987)에서 저자는 국가뿐 아니라 성적인 모든 경계를 가로지름. 이것은 명백히 포스트-콜로니얼, 포스트모던 담론과 연결됨. ... ‘혼합체’와 ‘잡종’, ‘크레올’ 개념의 사용은 지리적 기원의 사실을 문화적 통합의 실천과 혼란스럽게 함. 후자보다는 전자가 문화를 규정하는 특성임. 그것은 보급(diffusionist)을 구성하고, 민족?인종적으로 근대 인류학에서 용어의 과학적 사용과 약간 관계가 있는 동일시 형태에 초점을 둠. 사회적 세계의 내부로부터, 문화적 혼합체는 자기-동일시 현상을 일으키고, 외부로부터, ‘객관적으로’ 타자를 동일시하는 행동을 수행하는 관찰자임. 혼합된 문화는 동일시의 산물임. 요약하면 잡종과 잡종화 이론가들은 민족?인종기술학적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규정, 자기-본질화하는 행동의 용어로 세계를 동일시하는/동일시하거나 하는 집단의 산물임. ... 잡종화는 자신의 단독 집단 만큼이아 어떤 주장을 가진 것으로 재현하지 않을 수 있었던 방식으로,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사회적 정체성에 개방되어 있음. ?정체성과 정체화(동일시)의 논리들
주장의 핵심 요약- 인종적 순수성, 인종주의, 잡종성은 문화에 대한 본질화된, 객관화된 개념에 관한 다양성임. 그 문화는 전지구적 체계의 지역적 위계구조 내에서 다른 위치에서 획득된 사회적 경험의 일반적 속성과 연결되면서, 특정한 형태의 정체화와 정체성 실험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됨. 문화에 대한 고전적인 개념은 기원의 정체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의미의 구성요소, 상징, 행동, 제도, 구조 간의 특정한 관계임. 그것은 인류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다른 ‘세계들’에 관심을 갖을 수 있는 통일성에 대한 특정한 형식의 가설에 관한 것일 뿐임.
내가 말하는 정체화의 특별한 형식은 민족성이나 인종주의, 즉 본질주의라는 유사한 전제에 기반함. 이것은 비평이 아니라 단순한 기술적 진술임. 그러나 그것의 결론은 어떤 비평적 힘을 가짐. 잡종성은 순수성의 메타포에 기반하고 있음. 순수한 잡종성의 개념은 자기-모순임. 이것은 집단정체성으로서 실천되는 상황에서 명백하게 됨. 미국에서 중산층, 특히나 학생에 제한된 혼합된 민족적 혹은 인종적 정체성을 설정하려는 노력들이 있었음. 복합적-민족적 계보학의 용어로 자신을 정체화하려는 기반들이 있음. 즉 ‘나는 일부-아일랜드인이고, 일부-스코틀랜드인이고, 일부-흑인이고, 일부-이탈리안이다.’라고 표현하는 것. 이것은 사회적 의미에서 혼혈인(하이픈이 붙은)의 정체성은 아님. 왜냐면 총체적으로 개인화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은 집단정체성을 위한 메타포와 공명함. 이것은 그와 같은 정체화의 특성으로부터 빗나가게 하는 것은 아님. 즉 한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본질의 계보학적 이행과 같은. 혼합-인종 운동은 자신의 신문과 지역조직을 갖고 있음. 그 프로젝트는 단일-인종 범주에 의해 권리를 박탈당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새롭고, 통일된 혼합체로 규정되어야함. 새로운 혼합체는 일부를 그들의 ‘사실적인’ 정체성으로 표현하도록 하지만 집단 수준에서 정체화의 논리는 버클리의 학생집단과의 분리로 표현됨. 아시안-아메리칸은 자신의 집단을 구성해온 ‘잡다함 miscellaneous’.. 왜냐하면 그들은 흑인-아메리칸 담론과 다른 특별한 이슈를 말해야 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정체화의 본질주의는 순수성 대 잡종성을 제거하는 모든 시도들을 쉽게 없애버릴 수 있음. 횡단적-민족성의 실천 기반 위에서는 유사한 유형의 새로운 범주 이외에는 생산할 수 없음. 낡은 코스모폴리탄은 민족성과 특별한 문화 위에/넘어 동일시하는 모더니스트였음. 그는 보편적 속성의 표현으로서 문화적 특정성을 이해하는 이성을 가진, 진보적인 지식인, 신봉자였음. 새로운 세계주의자들은 문화에 대한 세계교회주의의 수집가임. 그들은 자신의 자아-정체화로 차이의 수집 그 이상을 재현하지 않음. ?전지구적 계급들과 잡종성의 이데올로기
잡종성의 이데올로기는 명백하게 대중성으로 획득되어 왔음. 전반적인 정체성은 자신의 헤게모니적 논리에 놓임. 왜냐하면 잡종성의 이데올로기는 혼합과 연합의 행동을 구성함. 하위층 주변에서 발전한 논리는 문화산업의 교육받은 세계 여행가들 사이에서 발전한 것과는 다른 특성이 있는 것 같음. 그러나 둘 다는 세계영역의 전지구적 과정내에서 다른 위치를 갖는다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음. 이러한 일반적인 과정은 불안정성과 폭력의 증가, 인구이동, 종교, 성, 나이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 민족, 지역, 국가의 운동성의 증가를 가져오는 국가적인 분열을 구성함. 만약 이것이 포스트모던 카오스로서 경험된다면, 전지구적 관점에서 매우 체계적인 것이 됨.
도시빈민층, 민족적으로 혼합된 게토는 실제적으로 새로운 잡종적 정체성의 구성을 즉각적으로 공급하지 않는 영역임. 전지구적 안정 과/혹은 팽창의 기간에 생존의 문제는 영토와 안전한 삶공간을 만드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음. 계급 정체성(지역적 게토 정체성)은, 마치 지역적 영역 그 자체로 갱 영토화로 분화되는 것처럼, 보편적인 경향을 보임. 70년대 중반부터 변화는 중류층과 중?상류층 뿐만 아니라 도시 게토에 영향을 줬던 정체성 정치학에서 일반화된 증가와 그러한 공적인 사회적 영역의 민족화의 증가임. 그러한 과정에서는 문화적인 엘리트들에 의해서 논의되는 잡종적 정체화를 위한 여지가 거의 없음. 심지어 잡종성은 민족적, 즉 경계지워지고, 상반되는 경향을 보임. 민족?인종화는 긍정적인 피드백 과정에서 폐쇄의 증가(갈등의 증가)로 이끌어 갈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경계선과 경계성의 강화을 수반함. 전지구적인, 문화적 잡종, 엘리트 영역은 국제적 정치학, 아카데미 미디어, 예술과 연관되어 있는 세계의 다른 종류의 경험을 공유하는 개인에 의해서 차지됨. 3세계에서 태어나, 1세계에서 살아온 경력은 완전하게 코스모폴리탄임. 차라리 그들은 매우 성찰적으로 차이의 조함의 측면에서 문화적 용어로 규정됨. 이 시기는 동화주의에서 다문화주의로의 변환을 나타냄. 결국에는 ‘탈-영토화된’ 정체성의 형성을 가져옴. 후자는 국제적 이주의 단순한 현상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동일시로의 변화의 산물.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변화
우리가 말하는 디아스포라적인 전지구화 구조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일 뿐. 디아스포라는 10년전과 달리 합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억압으로부터 해방의 근원이 됨. 국민국가, 모더니티, 대규모의 자본주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 게다가 세계 체계에서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실질적인 권력의 근원이 됨.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의 부상은 국민국가 자체의 쇠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 나는 이런 과정을 자본축적의 탈중심화, 중심적 혹은 헤게모니적 권력의 쇠퇴, 정치적 정체성과 연대를 분열시키는 구성을 취하는 전지구적 체계로 인한 결과적 불안정성의 측면으로 해석할 것임. 모더니티의 쇠퇴는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정체성의 개입을 허용함. 처음에는 이것은 민족적 집단의 정치적 평등화의 문제임. 그러나 오늘날은 잡종성의 기념이 되고, 잡종성은 문화적 엘리트 자체에 의해서 경험됨. 이러한 잡종성은 체계의 기저에서 경험하는 발칸화와 부족화(tribalization)와 상반됨. 잡종적 정체성이 논의되고, 제도화된 유일한 장소는 특정한 유럽중심적 식민지임. 그것은 ‘절반-카스트’와 달리 말하면 혼합된 정체성은 사회적 질서에서 특별한 위치와 연관됨. ... 문화적 이론가들과 다른 지식인들은 그들이 관찰한 세계의 잡종성을 잘 정의내릴런지 모르지만, 이것은 두 가지 전제조건을 수반하는 것 같음. 1. 세상의 사람들은 문화의 측면에서, 다른 의미에서 문화, 즉 대상, 본질, 정수의 측면에서 기술될 수 있음. / 2.세계 체계가 ‘의자 뺏기 게임을 이런 사람들과 한 이래로, 정의상 문화와 같은 것이 행해짐. 그결과가 혼합, 하이픈으로 연결됨 등등. 세상의 관점에 속한 지식인에게는, 그것은 자기-동일시를 창조하는 것이지만, 역시 다른 사람의 현실을 기술하는체 하는 것임. -잡종성을 본질화시키는 문제
민족?인종성뿐만 아니라 성, 계급, 나이, 세대 등 다각적인 문제가 상호교차함. 그러나 중국-아메리칸 정체성을 본질화, 환원시키는 문제. 이 논문에서 표현된 정치학은 아시안-아메리칸과 같은 다각적인 에스닉 소수자들은 그들의 통일성을 더 큰 백인 인구,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인구에 직면해서도 유지해야한다는 것임. 동시에 새로운 연대를 가능하게 하고, 소수자를 결국에는 힘을 갖게 해줄 젠더, 계급, 나이가 발동시키는 통일성에도 도전해야함. 모더니즘 없는 모순적인 코스모폴리탄의 논리는 명백하게 표현됨. 계급, 젠더, 나이는 민족성처럼 사회적 구조물로 모두 환원됨. ?결 론
이러한 주장으로부터 출현하는 일반적인 주장은 정체화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위치지워진 실천이고, 주체가 지향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조건의 구성임. 잡종/크레올 정체화와 본질화(하층계급과 주변화집단, 민족적 운동의 ‘redneck' 지도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간의 대조는 사회적 위치에서 대조임. 그래서 나는 잡종 정체성에 대한 비평을 제공하지 않음. 그들의 실천은 그들이 비판하려고 해왔던 것들 만큼이나 진정함. 다른 한편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은 타자의 정치학을 규범적인 주장으로 증명하려고 정의하는 시도였음. 그러한 역량강화( 오히려 자기-역량강화)에 탐닉했던 것은 단지 특정한 문화적 엘리트였음. 세계는 증가하는 발칸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 세계의 경험은 진실도, 거짓도 아님. 그것인 단지 존재할 뿐임. 진행하는 세계의 역사는 모두 잘못됐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해결되는 문제에 대한 지적인 대화로서 해석될 수 없음. 그러한 위치의 불합리함(부조리함)은 여,남 대변인의 소외에 대한 명목상의 상징일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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