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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mba_Chapter 1: Situating colonial and postcolonial studies(43-69)

2009.06.13 17:22 | 대학원 세미나룸 | 달라셩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640 주소복사

사회공간이론교육 /  09.04.28

Ania Loomba, 1998, “"Chapter 1: Situating colonial and postcolonial studies”", in

Colonialism/Postcolonialism, Routledge, New York, 43-69


식민과 탈식민 연구의 위치 설정하기

<식민 담론>

?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나타난 주요 논점

- 지식의 ‘객관성’에 대한 해체

지식은 순수한 게 아니라 심오하게 권력의 작동과 관련되어 있음. 이러한 푸코주의적 시각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작인 ??오리엔탈리즘??에 잘 나타나 있고, 그것은 유럽에서 생산되고, 널리 퍼져있는 ‘동양’에 관한 ‘지식’이 식민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부산물이었음을 지시함. 이 책은 비-서구문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 특히나 오리엔탈리즘이라 불리는 학문분과에서 비-서구 문화들의 서구적 재현에 관한 것임. 사이드는 어떻게 이러한 학문분과가 ‘가까운 동양’이라는 유럽적인 침투를 통해 생성되었는지, 어떻게 그것이 다양한 학문에 의해서 성장하고, 유지되는지를 보여주었음.

??오리엔탈리즘??은 식민주의 연구를 재-질서화하는 담론의 개념을 사용함. 그것은 문학과 문화적 텍스트에서 ‘동양’(중동)에 대한 공식적 연구가 어떻게 식민 권력이 기능하는데 기여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통합되는지를 고찰함. 이것들은 식민주의의 전통적 분석이 고려해왔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오리엔탈리즘??과 이데올로기와 문화에 관한 변화하는 관점으로 인하여 식민 사회를 만들고 기능하는 데에 중심으로 간주될 수 있는 물질적인 측면임.

사이드는 푸코와 같이 개인적인 저서들을 사고의 구조와 권력의 작동과 연결시키면서도 푸코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함. 따라서 그는 ‘동양’이 보여지고, 통제되는 렌즈를 제공하는 제도로서 오리엔탈리즘에 기여했던 다양한 저자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음. 식민화된 영토에 관한 지식과 권력은 기획된 것임.

??오리엔탈리즘??은 식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연구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음. 사이드는 유럽에서 ‘동양’에 대한 재현은 유럽/유럽의 ‘타자들’ 간의 이분법, 영토에 대한 유럽 헤게모니의 유지, 확장뿐 아니라 유럽 문화 창조에 중심이 되는 이분법 생성에 기여했다고 주장함. 사이드의 프로젝트는 어떻게 비-유럽에 관한 ‘지식’이 비-유럽을 지배하는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지식’의 지위가 탈신비화되었는지, 어떻게 이데올로기와 객관화의 경계가 흐려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임.

오리엔탈리스트(동양학자)의 인상적인 지식은 문화적 편견을 통해서 여과됨. 동양에 대한 ‘연구’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친숙함과 낯섦 간의 차이를 구조화하는 현실에 대한 정치적 관점임. 사이드는 동양에 대한 지식이 식민 역사와 관계에 둘러싸인 인간존재에 의해서 생산되기 때문에 결코 동양에 대한 지식이 순진무결하거나 객관적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임. 사이드가 다른 이들에 의해서 비판받기도 했지만, 그것의 폭넓은 제거 범위와 초점에서, 지식생산과 권력작동 간의 관련성을 형성하기 위한 푸코의 작업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새롭고, 역사적이고, 인식론적인 과정을 논의하기 위해 문학적인 자료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임. 여러 측면에서 사이드의 식민 권력을 질문하는 문화와 지식의 이용은 식민담론연구의 시작을 알림.

-사이드의 식민‘담론’연구의 시작

담론분석은 가시적인 것/감추어진 것, 지배적인 것/주변적인 것, 사상/제도 간의 관련성을 추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 또한 어떻게 권력이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는 언어, 문학, 문화와 제도를 통해 작동하는지를 보여줌. 이러한 권력의 확장된 정의를 활용하여 사이드는 식민 권위에 대한 협소하고, 기술적인 이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동양에 관한 ‘담론’을 생산함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보여줌. 사이드의 기본적인 주제는 오리엔탈리즘이 친숙함(유럽, 서구, “우리”)과 낯섦(오리엔트, 동구, “그들”) 간의 이원적 대립을 촉진하는 구조를 가진 현실의 정치적 관점이라는 것임. 사이드는 이러한 대립이 유럽의 자기-개념(self-conception)에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줌. 자아와 타자 간의 변증법(일부 해체론의 영향을 받은)은 식민담론연구에서 중대한 영향력을 끼침. ??오리엔탈리즘??이후에 식민담론연구는 문화적 텍스트와 실천의 폭넓은 범위를 분석해왔음. 식민담론분석은 서구 지식의 범주와 가설의 질문방식의 지점을 이룸. 사이드는 동양학 내에서 뿐 아니라 서구 학문에서 객관성이나 순수성을 부정함. 서구의 다양한 개별적인 학문은 사이드의 의미에서 지식과 문화에 대한 식민적 구성을 분석하는데 부적절함. 식민담론연구는 많은 학문분과 내에서 급진적 변화에 의해 가능한 학제간 연구를 함의.

?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

비판점1: ??오리엔탈리즘??에서는 동양/서양 간의 이원적 대립은 고대 그리스에서 현재까지 서구 담론이 고정적인 특징이었다는 것을 제시함. 그래서 사이드의 책은 고정된 동양 vs. 서구 분리라는 단조로운 역사적 뉘앙스를 띰. 이러한 관점에 따라서 비-서구에 대한 태도는 매우 불안정함.

비판점 2: 서구에 대한 동질성, 오리엔탈리스트 지식생산을 식민 역사에 연관시키는 것, 자본주의 발전과 연관시키는 것의 불충분성 ⇔ 식민주의는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강조해야함.

비판점 3: 식민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자기-재현을 무시하고, 그들의 저항보다는 식민 권력의 함의에만 초점을 둠. 그렇게 함으로써 ‘식민 권력과 담론이 전면적으로 식민지배자에 의해 소유되고’, 협상이나 변화의 여지가 없는 식민 관계의 고정적 모델을 조장함.

?식민 권력의 특성에 관한 논의

‘식민담론연구’는 식민 권력이 모두 보편적이라는 푸코의 관점을 채택하므로 비판받음. ??오리엔탈리즘??은 서구 테스트들이 오리엔트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라 그들이 기술하는 바로 그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편견에 대한 책임이 있음. 그래서 “식민지 사람들 자체의 역사적 경험은 오리엔탈리즘 텍스트 외부에 있는 존재와는 별개라는 것을 함축하게 됨. 이론적 수준에서 사이드는 자신을 ‘동양’에 대한 대안적인 기술, 지식의 대안적인 형태, 피식민자의 행위성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위치로 놓고 있는 것으로 보임( by Megan Vaughan).

푸코의 권력개념이 사회적 지배를 재-개념화하는데 유용한가? 아니면 권력을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도전하기 어렵다고 간주하는 것인가? 사이드 자신은 그러한 권력에 대한 이해가 정치적으로 비평에 참여하는데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함. 사이드에 대한 일부 비평에서는 사이드의 푸코 관점 사용과 사회적 변화 가능성에 대한 그의 견해가 모순적이라고 하고, 다른 부류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이전의 분석방법을 해체하는데 생산적일 수 있다고 평함.

그러나 푸코 역시 지배구조가 어떻게 불일치의 통제된 공간을 따라 합법화되었는지를 논의함. 그의 작업에 영향을 받은 문학적, 문화적 비평은 권력구조에 의해 내포된 반대되는 이데올로기나 저항하는 집단이나 개인의 방식을 강조함. 그러한 비관적인 이론적 틀이 어떻게 여성이나 피식민 주체의 역사를 억압이 아닌 저항과 대립의 역사로 공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비판되어질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음. 그러나 다른 이론가들은 푸코주의적인 사상을 권위에 대한 다층적인 도전을 개념화하는데 전유해왔음.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에 대한 변론

??오리엔탈리즘??은 그러한 구조가 식민 주체에 의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해체되었는지 보다는 동양이 어떻게 서구 문학, 여행기, 동양 연구 체계에 의해 주로 구조화되었는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 그러나 단지 사이드가 전자의 지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식민주의자의 담론이 모두 보편적이라고 제안하는 것은 불공정함. 식민권위는 그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협상 과정을 통해 합법화되고,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의 실재는 권위 자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요인임. 푸코도 지배와 저항은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제안했고, 사이드가 말한 것처럼 텍스트가 어떻게 동양을 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반드시 특정한 사람과 문화, 상황 없이는 불충하게 됨.

?사이드의 ‘식민담론’을 넘어서

식민담론연구는 권력의 작동을 서술하는 것을 제한하려는 것은 아님. 그것은 피식민자들의 일부로 대립, 저항, 반란을 이론화하고 위치 지우려함. 예리한 논쟁들이 이러한 질문으로 발생하기 시작했음. 스피박과 같은 비평가들은 피식민자나 ‘서발턴’(하위주체) 주체의 ‘목소리’, ‘행위성’의 ‘복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신중한 태도를 취함. 그렇게 하는 것은 식민 권력의 파괴적인 효과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함.

식민담론연구가 푸코의 담론개념에 근거하고 있을지라도, 푸코는 유럽 중심사회의 특질로서 식민 팽창이나 어떻게 식민주의가 근대 유럽국가의 권력/지시 체계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심이 없었음. 그래서 푸코의 이론은 유럽 중심이고, 식민 사회를 이해하는데 제한적임.

by Vaughan. 푸코의 관점과 달리 1) 식민국가는 유럽적 의미에서 ‘근대적’이지 않고, 억압적(생산적이기보다는) 권력에 더 많이 의존함. 2) 유럽에서 주체의 개체화는 피식민자들에게는 부정됨. 식민지 아프리카의 의료담론은 아프리카인을 개인이라기 보다는 집단으로 개념화하면서 구별되는 심리와 신체를 소유하는 것으로 간주함. 고로 식민권력의 양상은 아프리카에서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과 그와 관련된 ‘아프리카인’에 관한 담론으로 인하여 유럽식민권력과 다름( by Jenny Sharpe. 인도에서 영국에 대한 봉기(1857) 분석에서도 푸코에 대한 유사한 비판이 이루어졌음). Vaughan과 Sharpe의 푸코에 대한 비평은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사고와 식민담론분석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논증하도록 해줌.

‘식민 담론’은 단지 식민주의를 위한 새로운 용어의 상상이 아님. 문화적, 지식적, 경제적, 정치적 과정이 식민주의의 형성, 지속, 해체를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리킴. 사상, 제도, 지식, 권력의 상호교차를 검토함으로써 식민주의 연구의 폭넓은 영역을 탐색하고자 함. 따라서 식민폭력은 ‘인식론적인’(epistemic) 측면, 즉 피식민자들의 문화, 사상, 가치체계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음. 그러한 인식은 전면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순환하고 있음. 그러나 식민담론연구는 식민 인식론의 심층적인 분석을 제공하려하고, 그것을 식민제도의 역사와 관련지으려고 함. 일반적으로 식민담론연구는 식민주체와 문화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이미지, ‘지식’ 이 경제적, 관료적, 사법적, 생체-의료적 통제에 대한 제도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음.

?식민담론연구에 대한 비평

식민담론연구는 경제적, 정치적 제도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식민지배에 대한 왜곡된 상을 제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 실천적으로 ‘담론’은 문학적 텍스트와 여타의 문화적 재현을 의미하게 됨. 다른 말로 하면, 식민담론연구는 물질과 이데올로기간의 구별(이데올로기에만 집중)을 제거한다는 뜻이 됨. 그러나 ‘담론’은 이데올로기와 물질적인 것 간의 상호관련성을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함.

최근에 탈식민 연구에 대한 비평은 문학보다는 언어적 문학적 작업내에서 발전한 기술과 관점에 의존하는 역사학에 초점이 맞춰짐. by Vaughan. ‘식민 담론 이론’이 과거의 분석적 방법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비판함. 아프리카 역사가들은 (푸코 이전에) 관습과 전통이 식민주의자들과 그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구조화되고, 고안되어 온 방식에 대해서 논의해왔음. 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도(포스트모던 이론의 측면에서) 유사한 주장이 진전되어 왔음.

확실히 식민담론분석이나 포스트-구조주의이론이 이전의 지적, 정치적 역사와 분리된 것은 잘못. 식민지해방이나 여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정치적 운동은 주체에 관한 현대 논쟁의 계보학을 구성할 때 분석의 초기 양식만큼 중요함. 동시에 그것은 1) 그것들을 ‘언어적 전환’과 ‘텍스트성’의 문제로 축소하거나 2) 역사가들이 이미 알았던 것을 재-순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최근 이론적 혁신의 풍자임. 강조하고 싶은 것은 , 폭넓은 범위의 지적, 정치적 역사와 합병으로부터 도출되기 때문에 많은 논쟁의 장인 ‘식민담론분석’내에서 일치나 동질성은 없다는 것임. ‘사회적 역사가들’에 반하는 ‘식민담론분석’을 움푹 파이게 하는 것은 단순히 기존의 학문분과와 지적인 분리를 부활시키는 것이 아님. 근대 유럽 식민주의는 단일한 현상이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미묘한 차이를 드러냄.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미요한 차이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권력과 저항의 공유된 속성, 특질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러한 책무는 확장된 어휘를 요구하고 있고, 현재 식민담론에 관한 논쟁이 정확하게 그러한 확장의 특성에 관한 것이어야함.

<식민주의와 지식>

식민주의는 현존하는 인간지식의 구조를 재형성했음. 식민경험이 닿지 않는 학습영역이 없음. 이 과정은 이데올로기가 기능하는 것처럼 현실에 대한 잘못된 재현(misrepresentation)과 재질서화과정을 거침. 이데올로기처럼 식민주의는 ‘물질적 상황’이면서 ‘ 그것의 효과에서도 물질적’으로 제기되었음. 이러한 과정의 중대한 측면은 식민권력에 종속된 영토와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질서화하는 것이었음. 15-16세기 유럽의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대한 탐험은 유럽과 비-유럽 간의 첫 만남이 아니라 이미 이 시기의 저작들은 이원적 대립으로써 사람들에 대한 두 가지 범주화에 대해 생각하고, 생산하는 새로운 방식을 표시했음. 여행기가 유럽의 차별화된 개념(유럽 vs. 그 외 나머지 세계)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었음.

? 식민주의에서 타자의 구성

-문명과 야만의 개념: ‘흑인과 ’백인‘, 자아와 타자 간의 타협할 수 없는 차이의 생산에 의존함. 야생에서 살고, 문명화 언저리에 있는 중세 후기 유럽의 ’wild man'의 모습은 문화적 관심의 모든 양식을 표현함. 그와 그의 여자는 문명사회 밖에 존재하는 ‘타자’이고, 아직까지도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위협하는 것으로 재현됨. 그러한 신화는 중세 유럽인과 접촉(contact)했던 외국인의 이미지와 교차함. 이러한 이미지는 식민주의 담론에서 ‘타자’의 구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임. ‘식민 담론’의 논의는 ‘서구’와 ‘비서구’ 사람과 사상 간의 무시간적 대립의 고정적 산물과 같은 이미지를 다룸. 사실과 상관없이 타자에 관한 모든 이미지는 다양한 접촉역사를 통해 (재)주조됨. 식민주의는 재구조화와 확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

-식인에 대한 관념: 식민주의는 유럽과 비-유럽 간의 접촉을 확장시킴. 해외를 여행했던 유럽인들은 그들을 그들이 만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이미지로 왜곡했음.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연속성(비-유럽인의 열등성에 대한 이전의 개념을 유지하는 연속성은 유럽인 정착자, 사업가, 종교인, 군인의 활동을 정당화시켜줌), 재구조화(특정한 식민적 실제에 대한 이미지에 적응시키기 위해)가 필요했음. ( ex) 식인(anthropophagy) = cannibal => Carib-동북부 인디언. 식인에 대한 관념은 야만적인 식민주의적 실제를 정당화하는데 직접적으로 적용됨)

-식민적 스테레오타입의 생산: 이러한 새로운 이미지들은 본국에서 소비용으로 유통됨. 유통되는 방식은 1)문화밖 사람들의 증거를 제공 2)유럽사회로의 동화의 가치를 제공. 이러한 차이는 식민적 스테레오타입의 생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함.(ex) Theodore de Bry 의 ??America??) 스테레오타입은 ‘실제’ 지식에 대한 무시나 결핍보다는 단순한 형태로 이미지와 사고를 환원하는 것이고, 정보화 과정의 방법임. 스테레오타입의 기능은 ‘자아’와 ‘타자’ 간의 차이에 대한 인공적인 의미를 지속시키는 것임. 15-16세기 여행기들은 비-유럽인들을 단일체(monoliths)로 재생산하지는 않았음. 인류학 초기의 방식으로 특정한 생활습관들을 언급하게 됨.

-오래된 텍스트에서 ‘사실’과 ‘허구’의 흐릿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워졌지만, 과학적 진보로 잘못된 재현이 감소한다고 자주 가정됨. 객관적, 이데올로기-중립을 주장하는 근대 서구 과학은 인간존재와 그들 간의 차이에 관한 사고를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구성해옴. by Mary Louise Pratt. 18세기 중엽에 과학은 ‘유럽의 제국주의적 선구자와 접촉하는 것을 기술하고, 그들에 의해 기술되었음.’ 프랫은 박물학(natural history, 재현의 일종)의 출현을 유럽에서 식민주의 팽창의 결과로서 출현한 ‘새로운 행성 의식’내에 지식 구조로 설정함(린네의 ??자연체계??-식물분류). 관찰과 과학의 ‘객관성’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의 유럽인 침투는 합법화됨.

-과학과 편견: ‘인종’ 담론은 18세기 서구과학의 산물임. 피부색에서 차이에 대한 특성과 이유는 유럽 내에서 수세기 동안 논쟁해왔음(기온, 환경, 신의 저주). 과학적 담론은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본성적인) 차이로 봄. 그래서 인종은 생물학적 위계구조의 표현임. 중요한 지점은 과학이 열등한 인종에 관한 초기의 가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인종은 단순히 사람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문명과 문화 속성으로 설명됨. 그래서 ‘자연’은 까만 피부, 작은 뇌, 야만성과 연결되고, ‘설명됨’(다윈의 진화론, 생물학적 결정론).

-인종과 젠더에 관한 지배적인 과학 이데올로기: 19세기 인체측정학은 백인종 여성은 백인남성보다 흑인에 더 가깝고, 여성의 기질은 ‘더 낮은 인종’특성으로 기술함. 과학적 언어는 가치-중립적이고, 보편적이기 때문에 권위와 권력을 나타냄. 그래서 젠더와 인종에 관한 과학의 편견은 객관적인 진실로 나타남.

실제로 근대 서구 지식체계의 성장과 대부분의 ‘학문분과’의 역사는 식민담론에 의해 구성되어지는 것으로 보임. by Bernal. 검은 이집트의 역사와 고대 그리스 문화의 중심성은 유럽의 백인 헬레니즘 문화유산을 구성하기 위해서 19세기 학문에 의해서 삭제되었다고 밝힘. 전문적인 학문과 ‘학문분과’의 분기점은 인종주의적 이론의 성장과 관련돼 있음. 그래서 단지 역사의 저술이 아니라 식민지 시기에 유럽에서 생산된 모든 지식의 객관성을 의문시함.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체계로 인한 개인의 ‘공모’는 전면적으로 개인의 의도의 문제가 아님.

경제적?사회적 과정과 지식의 재질서화 간의 관련성은 명확함과 동시에 모호함. 너무 추상적이어서 이데올로기적 변화를 갖지 않을 것 같은 지식체계(수학)의 발전이나 재생산은 제국주의적 기획과 관련될 수 있음. 이 정도 범위에서 모든 담론은 식민주의적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름. 이러한 결론은 모든 사상은 경제적, 사회적 현실과 상호 의존한다는 맑스주의적 개념을 명시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충분하게 맑스주의 역사관을 변화시키지 않는 사회적 실재의 측면, 즉, 문화적, 인종적 차이에 식민지적으로 불평하는 사고를 경계해야함. 어떻게 사상이 사회적 체계의 생성(반복에 그치지 않고)에 기여하는지가 강조되는 부분임. 지식체계가 인종적, 식민주의적 관점으로 얼마나 겹쳐있는지를 지적함으로써, 버낼, 사이드, 스피박은 (포스트-구조주의를 기반으로) 유럽 계몽의 프로젝트를 의심하는 데 기여?확장했음.

-지식의 식민주의적 생산: 식민주의적 지식의 생산은 단순한 과정이 아님을 기억해야함. 정복당한 사람들의 지식과 신념 체계의 주변화와 충돌을 반드시 수반함. 만약 정복의 과정이 야만성과 문화적 차이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자아’와 ‘타자’의 ‘순수한’ 위치에 대한 지속적인 오염을 표시함. 식민주의적인 지식은 토착적인 사고의 통합이나 협상을 경유해서 생산됨. 실천적인 수준에서 식민주의는 ‘새로운’ 땅과 비밀에 접근하기 위해서 토착민에 의지함. 식민적인 맥락에서 발견은 지역적 지식을 전유하는 것으로 구성됨. 식민적인 경관은 결국에 지역 거주자에게 침투되고, 지도화되고, 합병됨. 제국주의적 구조는 외국인 발판에 의존함. 다른 시점에서 식민주의자의 기획은 서구 사상을 피식민지 영토의 자연과 문화로 가져올 뿐만 아니라 지역 지식을 활용함. 심지어 식민적인 스테레오타입까지도 토착민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음.

-‘transculturation’(횡단문화)

by Pratt. ‘transculturation’(횡단문화): ‘접촉/접촉 지역’이나 이질적인 문화가 만나는 사회적 공간에서의 간-문화적 협상과 선택의 과정을 기술.

‘접촉 지역’이나 그 지역의 문화적 거래와 같은 개념은 식민적인 조우에 대한 이해를 복잡하게 함. 그러한 개념은 비록 식민주의가 차이의 이데올로기를 생성시킨다할지라도,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을 상호간에 친밀한 접촉을 하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함. 다른 식민적 통치는 문화적, 인종적인 분리를 유지하고자 함. 식민지배를 하는 사람과 지배를 받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은 인종과 문화 분리에 지속적으로 도전함. 그 결과는 식민담론이론 내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고, 나중에 되돌아오게 되는, 혼합, 혼종성이었음. 그러나 일부 비평가들은 현재 이러한 용어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적대적이고, 난처한 격투기장이 식민적 폭력과 경계를 경시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음.

‘식민주의가 실제로 접촉을 통해 문명화를 가져왔는가?’라고 묻는다면 ... 이에 대한 대답은 인간적인 접촉이 아니라 지배와 복종의 관계였다는 것. 피식민자들의 대규모의 구획은 외국인 억압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음. 물론 피식민자들의 삶은 후자에 의해서 물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재구성되었음. 식민주의는 유포와 접수를 위한 지식생산과 구조화된 조건을 굴절시킴. 식민적 권력과 그것의 복잡한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은 인식론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고, 보는 방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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