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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전쟁을 읽고
사회교육학부 지리교육전공 83443 임하결
이 책을 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띠었던 것은 책의 첫 장에 나와 있던 세계 지도였다. 지하자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된 지역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매장지마다 분쟁지역임을 나타내는 기호들이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원이 있는 곳 = 분쟁지’ 임을 나타내는 이 지도를 보고 이 책의 제목인 ‘자원 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자원의 이동이 수요-공급에 따른 경제적 메커니즘에 의해 돌아간다면 ‘전쟁’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었을까? 자원의 이동이 경제적 논리를 벗어나 자원 자체가 정치적인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인간이 자연을 자원으로 보게 된 본격적인 출발은 중세 사회 질서의 몰락과 함께 일어난 ‘과학혁명’에서부터라고 생각된다. 자연과학자들은 자연은 ‘신의 영역’이라 보았던 중세의 신학적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자연을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 관찰 방법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지식’을 가져다주는 ‘과학적인 방법’에서 찾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자연이 관찰 대상으로 치부되었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완전한 중립이 가능하게 되어 그 둘을 분리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리는 신의 영역이었던 자연을 조작할 수 있고 그로인해 물질적인 부를 증진시킬 수 있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객관적 지식을 습득하면 인간은 비로소 사물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류에게 ‘자연을 정복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이 자연관은 주위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도구’로 해석하기 시작하도록 했다. 자연 이용의 당위성과 그 방법이 제시되면서 ‘스스로 그러한 것 -자연(自然)’은 ‘재물을 얻기 위한 근원-자원(資源)’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인간이 자연을 이용해 살아갔던 것은 그 훨씬 이전부터 아닌가?’하는 물음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그것을 이용해 목숨을 연명해온 생존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과학시대 이후와 차별을 두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연을 ‘왜 이용했나?’에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연을 자원으로 이용한 이유는 살기위해서 보다는 욕망의 축적을 위해, 즉 부의 축적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자연을 이용해 생활을 향상 시켜야겠다’는 생각과 과학기술의 결합은 자원의 범위를 확대시켜 이용가능한 자원의 증가를 불러일으켰고, 자신의 땅 뿐만 아니라 타인의 땅까지 재물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역마다 편재되어 있는 자원들의 교류를 위해 ‘무역’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무역은 국가 간 평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제국주의’로 치닫게 된다. 초기의 제국주의는 식민지에서 희귀한 자원과 노예의 확보를 위한 것이었지만 산업혁명 후에 본격적으로 발생한 후기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원료 공급지뿐만 아니라 제품 판매의 시장으로 만드는 것 까지 확대된다. 후기 제국주의는 유럽에 불어 닥친 ‘자본주의’라는 바람과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자본주의를 팽창시켜 나갔다. 무한한 팽창성을 가진 자본주의는 에너지 소비를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이 필요로 했고 이로 인해 전 세계는 자원 확보를 둘러싼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보여 지는 세계화 양상이나 미국의 세계 군림(미국적 제국주의)은 과거와 같이 공식적인 식민지 관계는 없지만 제국주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교수님 블로그 중 토막강의-포스트식민주의의 지리 참고.) 자원의 거대 소비 문명이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에너지 소비의 최고 정점에 있고, 마치 무한할 것 같은 자원은 바닥을 들어내고 있다. 지구는 작은 행성 일뿐이고 탈출구는 없다. 언제 동이 날지 모를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 소리 없는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원 확보가 전쟁으로까지 커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자원의 수요에 대한 문제로, 연 경제 성장률 9%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중국이 ‘자원의 블랙홀’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자원을 소비하고 있어 모든 자원의 가격의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자원의 공급에 관한 문제인데, 자원공급처 나라들이 자원에서 발생된 수입을 새로운 기계, 신기술 창조 등에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에 챙기기 바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엄청나게 불어난 수요에 대한 공급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철광석, 석유등의 원료 값은 치솟다가 꺼지기 반복하며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자원의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각국은 자원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생산 수단을 많이 가진 자가 승리하게 되는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들은 외교적으로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모순되는 상황이 보였다. 자원부국인 나라들이 경제 빈국인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것인가? 자원이 이렇게 중요한 수단이라면 우리보다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나 앙골라, 남미의 베네수엘라, 동유럽의 카자흐스탄 등의 국가들은 우리 보다 훨씬 더 부유한 입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줄곧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를 ‘자원의 저주’라 부르고 있다.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가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 볼리비아는 과거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볼리비아의 ‘체로 리코’의 역사는 자원 사업을 지배하는 것이 식민지 본국이건 국영기업이건 민영 협동조합이건 민중들은 여전히 고통 받는 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직도 중세시대 같은 노동환경에서 코카 잎에 의존하며 어두운 굴속에서 중노동을 하고 진폐증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자원부국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가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 국가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지하자원으로 확보된 정부의 수입은 국민에게 걷는 세금에 의존하지 않게 만들었고, 국민에게 요구할 것이 없는 정부는 아무런 의무감도 지니지 않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국가가 자원으로 인해 확보된 수입을 국민들 생활을 위한 산업 인프라 구축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무마저도 지지 않게 만든다. 자원 보유국의 정부가 법과 질서를 세우고 시행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아, 풍족한 지하자원이 정부를 나태하게만 만드는 저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국가의 실패를 전부 그들 정부 탓으로만 돌려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이 책의 주장과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자원 부국이지만 경제 빈국인 나라들을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떠오르는 게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라는 이미지다. 약 100년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도 그 나라들을 ‘식민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그 나라들이 식민지 시절의 상처 회복이 겉으로 보기에도 덜 치유됨에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과거 식민지 본국으로부터 해방 후에도 자원산업의 국영화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몇몇 자원 부유국의 상황을 보며 그들의 가난 탓이 과거 식민주의 때문이 아니라 국가에 있다고 보았지만, 나는 그들의 가난이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대물림 한대서 기인한다고 본다. 아프리카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아프리카가 저조한 국가로 남아있는 이유는 불량한 정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정부의 질이 떨어지는 국가들의 대부분은 과거 유럽의 식민지였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부채국가인 콩고, 차드 등은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말라위, 잠비아 등은 영국의 식민지였다. 과거 식민주의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정부의 질을 하락시켰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과거의 식민지 체계가 각 국가들안에 아직도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식민지였던 많은 국가들의 경우 경제와 사회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국민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했던 의도된 식민지시대의 시스템이 아직도 현 정부의 시스템 안에 녹아있는 부분이 많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하에 설립된 아프리카의 식민정부들은 잔인하다고 느낄 정도로 효율적으로 식민지 자원을 수탈했다. 이 시스템은 유럽인들이 떠나간 뒤에도 지역 세력가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활용해 과거의 악순환을 반복하도록 하였다. 두 번째로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제 멋대로 된 식민지 분할이 좋은 정부가 출현하기 어렵도록 인종구성을 복잡하게 해놨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체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전통 부족의 경계를 무시한 채로 국경선을 확정하였는데, 이는 후에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됨에 따라 특종 인종의 부 독점이나, 인종간의 권력투쟁으로 많은 내란을 불러오게 했다. 물론 산업의 발달 보다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였던 이 나라들의 문제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이렇듯 손에 쥐어진 ‘자원’이라는 보물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을 야기 시켰던 식민주의 시절의 문제에 있을 것이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자원의 확보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자원의 노다지를 찾아 한군데, 한군데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 나라는 이러한 세태에 맞설 겨를도 없이 자신들의 문제해결만으로도 끙끙 앓고 있다. 치열한 전쟁 속에서 피를 보게 되는 전쟁의 패배자들은 결국 이들이 될 것이 뻔하지 않을까? ‘자원이 있는 곳 = 분쟁지’ 라는 현주소를 통해 지금을 천연자원을 둘러싸고 대국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보는 시선도 있겠지만, 자원은 넘쳐 흐르나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몇 몇 국가들을 생각해본다면 자원 확보 경쟁속에서 발빠르게 대처하는 주류의 나라들은 더욱 잘살게 되고, 그 반대인 비주류 나라들은 더욱 몰락하게 되는 불균등 발전의 심화 양상으로 치닫는 하나의 과정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냉전의 희생양이든, 비주류로 쇠퇴하게되든 위태한 운명 앞에 놓인 이러한 약소국들의 현실을 개선 지켜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지원이 하루 빨리 필요할 것이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약소국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더욱더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세계정세를 발 빠르게 잘 파악해 노련한 ‘자원외교’를 계속적으로 시행해야할 것이며, 가장 근본적인 대처 방법인 대체 에너지 개발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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