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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학기 ??사회공간이론세미나?? 4월 7일 화요일 전남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추주희
1장. Introduction Part 1 -장소의 정치학…
Keith and Steve Pile (1993), “ Introduction: The politics of place", in Keith and Steve Pile, Eds., Place and the Politics of Identity (Routledge, London) pp. 11-21
▣ '이 땅은 우리의 땅이다‘ : 런던 도클랜드의 영토화된 정치학 -1992년 5월 카나리 와프(Canary Wharf) 개발업자인 Olympia & York의 부도는 카나리 와프의 개발계획과 런던 도클랜들에 대한 국제적이고 국가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킴. -카나리 와프는 부의 섬임. 즉 적녹색의 대리석은 이탈리아와 과테말라에서 공수해온 것이고, 어린 나무들을 캐나다에서 가져온 것. 도클랜드의 상징인 타워는 가장 가난한 사유지 가운데에 서있으며, 런던 교외의 가장 가난한 지자체 가운데에 서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균형에 분개했음. -분개와 비판적 평가의 맥락 1) 런던의 독들(선창가)의 재개발에 대한 정치경제, 2) Olympia & York의 임박한 재정 붕괴, 3) 물리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타원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들. 특히 지역민의 감정과 행동이라는 측면은 독들에 대해 제안된 재개발과 런던도클랜드 개발공사의 강압이 장소와 정체성에 대한 특수한 정치적 동원화(mobilization)를 보여주기에 주목해야 함.
1) 개판(a dog's breakfast): 재생하는 독(docks)의 정치경제
*2차 대전 이후 런던 산업지역의 쇠퇴 - 2차 대전 이후 런던 독들의 재구축에도 불구하고, 1950-60년대에 이러한 독들은 당시 상황에서 몇 가지 비경제적 요소들이 되고 있었음. 즉 전쟁이후 무역 중심이었던 런던의 역할이 약화, 상류의 독들과 창고시설들의 설비과잉, 제조업의 쇠퇴와 제조업체들의 이동, 운송체계의 변화,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건물들의 잔존과 쓸모없게 된 채 남아있는 건물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 1) 대형콘테이너 배가 이용할 수 있는 독을 요구했던 해양 기술들의 변화 2) 런던항만공사의 독들 주변의 땅의 유용성에 대한 인식으로 인하여 독들과 East End지역 폐쇄 및 쇠퇴. 1962년 폐쇄를 시작으로 1982년 로이얼 독까지 폐쇄됨. -1970년대 초, 런던 독들과 그 주변의 땅은 유럽에서 재개발을 위한 가장 큰 기회의 지역으로 알려짐. 독의 폐쇄는 22평방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땅이 남아있게(redundant) 되었음을 의미함. 문제는 그 모든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가 였음. -불행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상이한 답을 지닌 광범위한 이익집단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독단적인 정치적 전통을 강하게 지닌 상당한 지역 주민들을 포함하고 있었음. 이는 혼란스러운 복잡한 상황을 만들었음. 1970년대 내내, 연구보고, 대안적 계획들은 행위자들들의 것으로, 이러한 문서들은 이들 의견의 날카로운 분할을 보여줌. 예) 두 가지 주요 이슈인 고용과 주거의 문제. 상이한 이해집단들은 상이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특수한 상황에서 변경되고, 지속되었음. 거칠게 정리하면, 의견 차이를 네 가지의 의제로 분류할 수 있으며, 상대 대립적인 관점들은 각각의 의제 내에서 뿐만 아니라 각 의제 안의 집단들 간에 발생함. 1) 상품적, 산업적 이해와 커뮤니티 이해들 간의 갈등들, 2) 대영 런던 시청, 다섯 개의 지자체 각각(Tower hamlets, Newham, Southwark, Lewisham and Greenwich), 그리고 런던항만공사 간의 갈등, 3) 지방정부와 중앙 정부, 4) 다양한 대의체(지역 의원들에서 지역 커뮤니티 집단들의 의장까지 , 다른 집단들의 구성원들까지)의 ‘커뮤니티’와 도클랜드 주변과 내부의 거주민들사이의 갈등.
*런던 도클랜드 도시개발과 도시개발공사 -1970년대 말까지, 런던 도클랜드의 개발은 고르디아의 매듭이 되었음. 1979년에 선출된 보수당은 그 매듭을 끊으려 함. 이에 일환으로 마이클 헤젤타인(당시 환경부장관)은 도시개발공사(UDCs)를 설립하려고 계획중이었음. UDCs의 기본방침은 국가계획이 아닌 민간투자를 끌어다 도클랜드를 살리는 것이었음. 따라서 UDCs의 목적은 그 지역으로 민간과 기관의 돈을 가능한 한 끌어들이는 것인 반면, 그 지역 재개발에 공적 개입을 최대한 막는 것이었음. 1980년 계획관리 유연화, 공유지의 강제적 매각 가능, 민간자본을 유도하는 Local Government Planning and Land ACT 에 의해 UDCs 설립 인가. 1981년 7월 런던도클랜드개발공사(LDDC)설립. -재원은 중앙정부의 펀딩과 토지와 부동산 판매로 확보. 민영업체 유도에 어느 정도 성공. 거대자본이 LDDC로 흘러들어왔음. 카나리와프 지역을 중심으로 재개발. LDDC 자체 평가상 200,00개의 일자리 창출, 30,000개의 주거지 건립, 1.9 Million 평방미터의 사무공간이 발생됨. - but, 지역민의 욕구, 의사결정에서 지역민의 참여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음. 따라서 도시개발 초기 이들은 자신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었음. 이러한 재생은 지역민을 돕는 것이 아니라고 쉽게 설명할 수 있음. 1981년 이후 주택문제(런던에 비해 엄청난 홈리스들의 증가)의 해결은 민간주택의 개발(17,000개의 주택 중 85%민간개발, 5%임대높은 주택)이었음. 고용문제 역시 그 지역의 실직자들로 인해 오로지 10,000명만 일자리. 게다가 독랜드는 외부에서의 고용인력 비율의 거의 절반이었음.
2) 도클랜드 지역민의 저항들: 상이한 공간들, 상이한 정치학
-도클랜드 계발에 관한 갈등은 초기부터 극심했음. 사람들은 특히 지역민주주의의 제거를 의미했던 LDDC의 강압에 특히 불만이었음. 지역민들은 의사결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재현할 방법이 없었으며, 의사결정자는 지역민과 의논하지 않았음. LDDC가 설립되기 이전에 이미 지역에 존재했던 커뮤니티 조직들은 어떻게 도클랜드에서 그 땅을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더 큰 커뮤니티 개입을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요구들을 지니고 있었음(Brownill, 1990). 이러한 저항들에서 특정한 지리학이 있었으며, 현존함. 사람들은 상이한 장소에서, 상이한 시선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조직되었음. 도클랜드에 대한 관념은 사람들이 동원화되는 것, 즉 거주민들은 자신들의 이웃을 확인했던 방식(행정적이고 경제적인 구역, 상상된 지리학과 공간화된 정치 경제학, 보는 방식과 삶의 방식)을 둘러싸고 하나의 상징이 되었음. -이러한 집단의 세가지 유형으로 범주화. 1) Docklands-wide(도클랜드 지역의 커뮤니티 기관), 2)Area specific(지역기관), 3)Interest based(이익집단) -이러한 조직들 간의 교차점은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저항의 지리학을 발생시킴. 집단들의 범위와 서로 다른 이해들의 결과로서, 또 일부분 LDDC에서 주어진 권력으로 인해, 그리고 다양한 도클랜드 커뮤니티들 사이의 지리학적 탈구(dislocation)로 인해서, 저항은 파편화되고 좌절되는 경향이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결합되었으며, 그들은 말하길 원했음. 상이한 저항 공간들이 열어졌으며, 일부 성공했음. -저항의 형태들, 1)도클랜드 커뮤니티 포스터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벽화 생산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접합하고자 한 시도함. 1984년 이후에 다양한 커뮤니티 집단들이 만들어짐. 2) 지역과 지역 환경에서 만들어진 형태들이 있음. 1983년 Newham Docklands Forum, 로이얼 독 지역 사람들의 형편없는 주거와 경제 쇠퇴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됨. 그리고 현재(1993년), LDDC의 해체와 경기 불황에 의해 발생한 계발 공백을 채우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 -1987년에 이르기까지 도클랜드의 발생한 주요 변화에서 LDDC는 우세했으며, LDDC에 반대하는 집단들을 의사결정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배제시켰음. 그러나 몇가지 문제. 1987년 10월 19일 “암흑의 월요일”에 주식 대폭락과 연관되어 있음. 도클랜드 경전철 공사에 대한 부적절한 투자 실패등과 연결되어 있음. 이러한 사건들과 지속적인 커뮤니티 집단들의 행동은 LDDC의 ‘10년 성과“의 또 다른 측면의 의제들을 조명함. -도클랜드는 (유명한)수치스러운 카나리 워프이며, 포스트모던적 건축, 고급주택들이지만, 또 다른 도클랜드는 지역민의 커뮤니티들에 속해있으며, 사랑으로도 돈으로도 팔 수 없는 공간임. 장소와 커뮤니티 정체성의 영토화된 의미를 동원함으로써, 그들은 그들 스스로 정치적 의제를 향하여 권한을 행사했으며, ‘자신들의 땅’에 대한 지속적인 코멘트로 인하여, 그들은 LDDC 보다 오래갈 것이며, 무책임한 개발자들에 대한 저항을 지속할 것임.
▣ 디아스포라의 정치학과 탈식민적 권위
*주류 사회과학에서의 정체성 형성에 관한 서사 -우리가 일상어에서 말하는 방식은 항상 공간적으로 표시됨. 그러나 종종, 타자를 말하기 위해서, 일반화하거나 공감하기 위해서, 이러한 표시(marking)는 완화되고(tone down), 억압되며, 심지어 제거됨. 구성적인 ‘존재’의 공간성은 보편성을 위한 명령 속에서 입을 다문 채 소토 보체(sotto voce: 낮은 소리로)로 특수하게 미끄러짐. 이러한 움직임에는 은유적인 뿌리가 있음. -담론들은 그것들의 공간성이 전통적으로 편협하고, 경계적(자기 고백적 특수성, 그들에게만 관련된 것)이라고 규정함. 지식의 상식적 이해 내에서 연구할 때, 공간성의 표식들은 파벌주의(parochialism)의 낙인. -이런 의미에서 주류 사회과학에서 정체성 형성의 서사들은 종종 공통성과 특수적인 것의 균질화를 통해 공간성을 제거하는 차이를 말해왔음. 이러한 차이는 과잉일반화를 통해 허위재현(misrepresentation)의 과정이 아니라, 종종 암묵적인 공간의 준거에 대한 틀 내에서 특수한 경험들을 자연화하는 것. -전형적으로 이러한 준거의 틀은 (national) 사회에 대한 침묵을 호소하거나 포스트 식민적 주체화 혹은 유럽중심적 지배 가운데 하나를 구체화된 주체의 위치로 하는 높은 수준의 일반화를 작동시킴. -이는 부분적으로, 드 세르토가 ‘당위적 구조들은 공간구문론(spatial syntax)의 지위를 가진다’라고 주장했을 때,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여행이야기(travel story), 즉 공간적 실천이다’라고 말했을 때 지적한 것임. 이러한 공간화된 구문론은 비록 그것이 변함없이 존재할 지라도, 종종 분명하지 않음. 마찬가지로 모든 서사들은 그것들이 평범함에서 벗어나서 모순적인 것으로 암묵적인 공간성들을 드러내려고 함.but, 역사성과 공간성은 이주 공동체의 의식, 실천, 인종화를 표시함(9장 참조). 아프리카인과 카리브해 사람들의 기원에서 이주 공동체들의 차이를 구분하는 경험은 지역적 수준에서 공간의 생산 속에서 기입 -but, 아직 국가로서 그러한 공동체는 전후 배경의 어휘 속에서 British Black으로 포획되어 그 자체만으로 절합하는 원리에 의해 일괄적으로 다뤄짐. 마찬가지로, 식민적 이데올로기라는 특수한 이해들은 제국이라는 특정한 지역적 이데올로기 속에 기입됨. 즉 이것들은 국가, 백인성, 권력, 주체화, 공화국을 이해하는, 공간적 다양성과 모순들의 핵심에 놓여지는, 그리고 제국적 메트로폴리스의 핵심에 설치되는 ‘자아’와 ‘타자’의 규정들을 강조함.
*디아스포라의 문화적 정치학 : 폴 길로이를 중심으로 -상이한 이주 역사들의 다양성은 지리학적으로 풍부한 디아스포라적 정치학의 관점을 기술. -대표학자는 폴 길로이로, 그는 흑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상상적 지리학을 이용함으로써 여기서 작업되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에 유용한 설명을 제공함. 길로이는 정체성의 정치학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긴장을 전략적인 double take로서 독해할 수 있는 것을 공식화함. 즉 그는 정체성 정치학에 대한 모든 형태의 인종적 본질주의를 피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인종화된 차이들이 중요한 것으로 남겨지며, 때때로 같은 표준으로 잴 수 없는 것임을 주장하고 있음. 이것은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더니티와 결합되어 있는 계몽에 대한 비평들이 인식될 필요가 있는 하나의 힘이라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분투하고 있는 인종화된 억압 속에서 특수한 합리성의 형태들이 제공하는 획득물들을 묵과하길 원하지 않음을 보여줌. -길로이는 때때로 이것이 흑인 모더니즘을 위한 잠재적인 것을 개요하는 것이라고 표현함. 느슨하게 정의해보면, 그의 기획은 서사적이고 개념적인 수준에서의 연구를 드러내며, 이는 그러한 긴장을 중재하기 위해 복무하는 디아스포라적 정치학의 상상적 공간성의 개념과 연관됨. -역사적 서사의 수준에서, 그 기획은 지난 수백년 간의 흑인 지식인들 사이의 세계적인 연결들을 강조함. 즉 흑인 디아스포라적인 지적 형태들은 서구의 사상들과 함께일 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적인 세계적 맥락 속에서도 뒤엉켜 있음. -그러나 우리의 주장은 디아스포라가 상상적 지리학, 대륙과 해양을 가로지는 연계들을 일으키는 공간성을 불러일으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된 영토내부에 흑인의 경험을 단일화함. 이러한 경험은 차이의 원천이 되지만,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본질에 ‘ 흑인의 경험’을 평가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음. -디아스포라의 공간은 흑인 의식의 공간화로, 본질적인 흑인 주체의 분리를 수행하는 흥청망청하는 기념식의 근간이 아님. 그것은 길로이의 주장처럼, 제 3의 공간 혹은 그러한 두 극단들 사이의 배제된 중간 영역임. -디아스포라는 서구의 내외부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코뮨적인 공간을 호소하는 것임. 그러한 위치짓기의 산출물은 문화적 융합(fusion)의 형태임. 즉 그러한 융합주의(syncretism)는 저항이라는 디아스포라적-특수적 자원들을 생산함. 즉 길로이에게 흑인 감수성은 적어도 호의적인 환경내부에서 전복적인 새로운 공적 장소의 창조를 통해 인종적, 심미적 문화와 정치학을 융합하는 힘을 가짐. 환언하면, 디아스포라적 공간성은 순간적이고 영원히 이동하는 선들이 내부와 외부사이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그리고 동일자와 타자 사이에서 그려짐. -이러한 선들은 구별만큼 상호 연계를 강조하지만, 그것들은 정체성이 순간적으로 인증되는 공간을, 즉 임의적 폐쇄를 발생시킨다고 불려질지도 모르는 것에서 공간을 생산함. 흑인 정체성에 대한 본질화되고 깊이 없는 재현들을 거부하는 것과 함께, 길로이의 디아스포라는 우연적으로 흑인 귄위를 중재하는 공간성임. 이는 상상적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공간이, 즉 맥락-특수적이라는 그러한 주장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한 문화 융합주의의 무수한 형태들을 통해서 소통을 만드는 전지구적 체계들 내부에 위치지어져 있다는 명시적 지식 속에 있음. 그것은 공간을 통한 연계들과 장소와 사람들을 사이에 상응하는 연결들을 강조함.
*디아스포라에 대한 인식론적 논의 -지엽적 지식으로 묘사되었던 인종에 관한 지식들은 메타 서사의 확신의 가능성들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들의 외부에서 훌륭하게 기술됨. 그러나 인종적 본질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로 미끄러려질 가능성은 디아스포라의 관념들이 완전히 비켜가는 긴장들을 규정함. -이는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호미 바바에 의해 논의됨. 그는 전형적으로 ‘장소와 의미의 갈등적이고 부분적인(인종, 젠더, 계급, 세대에 대한 이중적 정체화) 절합’을 공표했음. 호미 바바는 계속해서 자신의 관심은 ‘문화의 계기는 난제적이고, 우연적인 위치에 붙잡혀있으며, 차이를 지녔지만, 선고(adjudication)와 절합이라는 동일한 공간을 차지해야만 하는 사이에 낀(in-between) 실천의 복수성에 있다'고 제시함. -이는 그가 문화적 동일시의 경계적(liminal) 형태로서 묘사하는 것이자, 상이한 공간들의 동시적 실현을 의미함. 탈식민적 현실들은 일상적으로 그러한 공존을 생산함. 왜냐하면 그것들은 ’흑인의 정신은 백인이 만든 인공물이라는‘ 파농의 패러독스를 영원히 절합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임. 그것은 그러한 모순들이 포함될 수도 심지어 자연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통해 매개를 제공하는 다양한 공간들의 동시적 현존임. 이것은 인식론적 문제들이 공간들을 드러냄으로써 부분적으로 풀어질 수 있는 상황적 지식과 연관되어있음을 제시함. -길로이의 정체성 공식이 디아스포라에 대한 상상적 지리학에 묶여져 있는 것처럼, 바바가 관심을 기울인 인식론적 비교불가역성은 그의 분석에서 기대고 있는 ‘경계적 공간’에 연결되어 있음. -정치적으로, 공간에 대한 특수한 관념 속에 기반한 장소의 정체성 정치학과 공간화된 정치성 정치학은 반동적인 용어임. 그것은 기원, 배제, 경계 만들기, 침투와 성공, 순수와 오염의 은유임. 즉, 인종청소의 용어집임. 그러나 또한 보다 공간적 은유들을 빼앗기지 않은 진보적인 공식화가 있음. 영토화된 그리고 디아스포라적 정치학과 정치적 권위를 둘러싼 논쟁들은 명시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묶여지지 않은 공간화가 있다면 가능할 것임. 그러한 공간들은 필수적으로 항상 윤리적 낙관론과 정치적 경계의 자원을 지님.
▣ 상상에서 현실에 정치학으로... 그리고 모든 방식은 되돌아간다. -여기의 사례들은 그것의 중심 동학으로 혼종성을 끌어들이고, 순수성과 불순함, 신성함과 불경함 사이에서 투쟁하는 장소들인 캐릭터들의 정체성들을 다루는 훌륭한 소설에 접근함. -그것은 이주 조건의 중심에 놓여진 분리와 변신, 근절된 경험들을 말하는 소설임. 그리고 이 소설들은 그자체로 휴머니티 전체의 경험을 위한 은유로서 세워져있음. 특히 여기의 캐릭터들은 예외적으로, 이 캐릭터들은 혼종성과 융합주의에 대한 그것들의 인격화 속에서가 아니라, 결코 순수하게 만들어질 수 없는, 그리고 전체로 만들어질 수 없는 그들을 인식하도록 하는 환경들을 통해서 예외적임. -어떻게 부재가 구성적인 현실과 자원, 즉 호미바바가 비교불가능한 정체성들이라는 그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용했던 자원과, 스튜어트 홀이 20세기 후반 영국에서 새로운 민족성들의 출현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했던 자원인가라는 것에 대한 소설임. -예)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임. 이 작업은 자유로운 말하기와 상호적 관용이 상호적으로 모순되는 장소에서 자유주의의 위기 가속화함. 진부하면서고 난해한 의미 속에서, 루시디의 작업은 인종차별적 사회에서 동양적 상징으로 변형되었던 산문의 모순적이고, 복잡하고, 다음가적인 조각들을 활용함. ?악마의 시?는 소설을 공간적으로 독해할 수 있게 하는 이론적 가치를 지니며 이 논문의 핵심에 놓여진 이론적인 문제제기를 지적하는데 유용함. 루시디는 ‘현실로서의 도시와 은유로서 도시가 나의 모든 작업의 핵심에 있다’라고 말함. 이 소설을 통해서, 공간은 차이 사이를 판단하기 위해서 혹은 판단하도록 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만들고, 보다 많은 힘들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갈망을 만드는 탈구의 힘들이 되었음. ??악마의 시??를 둘러싼 부차적인 사건들과 중심적인 문제는 차이에 대한 상이한 종류들 사이를 판단한다는 성가신 문제로 다시 되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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