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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ke, P., I. Cook, P. Crang, M. Goodwin, J. Painter, and C. Philo, eds., 2004, “Doing ethnographies”, in Practising Human Geography, Sage, New York, 169-205. 에서 주요 내용을 요약하였음.
1. 도입: 민족지학(민족지)이 어째서 지리적 방법론이 될 수 있나? 지리학이 문자 그대로 earth(geo)-writing(graphy)이라면 민족지는 people(ethno)-writing(graphy)로서 인류학과 관련되어 있다. 서구의 (인류학) 연구자들은 멀리 떨어진 비서구세계에서 작고 고립적인 사회를 택해 1년 이상 머무르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대화하고 그들의 일상에 참여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묘사하고,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는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집약적이고 미세한 연구 방법을 통해 ‘내부자’의 관점에서 그들의 세계관, 생활양식 즉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민족지는 이처럼 유럽 제국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러한 방법에 기반한 인류학과 지리학은 제국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족지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1)민족지는 사람을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고 지식을 가진 에이전트(agent)로 파악한다. (2)민족지는 세밀하고, 장기적이고, 귀납적이고, ‘몰두적인’ 방법론으로서 사회질서와 생활양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뿌리내리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3)민족지는 여러 연구방법을 절충해서 사용하지만, ‘필수적으로’ 참여관찰과 같은 장기적인 기간이 요구되는 조사가 동반된다. (4)참여관찰은 (외부의) 사람들이 연구대상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동시에 연구대상자는 그러한 (외부의) 시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동시에 관찰하고자 한다. (5)민족지는 연구 지역 내외에서 연구자의 말과 행동 간의 불일치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6)따라서, 민족지의 핵심적인 연구 기기는 바로 연구자 자신으로서 낯선 연구대상 지역에서 배우게 되는 행동과 그에 대비하여 자신의 익숙한 기존 행동을 동시에 인식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과정에서 당연적(taken-for-granted) 세계관, 자아성찰, 생활양식, 지식, 관계, 윤리, 기술, 정치 등이 상호 조우하게 된다. 따라서 민족지는 연구지역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간주간적(intersubjective)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특히 민족지 방법론을 구사하는 초보자들은 기존의 자신의 태도, 습관, 감정, 감수성, 감각, 세계관, 선호도 등을 “탈학습하는(unlearn)” 것이 중요하다. 훌륭한 민족지학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매우 성찰적이고 사교적이다. 오늘날 민족지는 현대 인문지리학의 핵심적인 연구방법이 되었지만 실제로 이러한 방법론을 구사한 문헌은 소수다. 논문의 경우를 보면 미국지리학회지(Annals of the Association of American Geographers)의 3.8%, 그리고 Society and Space의 5%만이 여기에 해당되며, 지난 30년간 출간된 민족지적 단행본은 대부분 박사학위 논문연구를 수정, 출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지리학계의 민족지에 대한 회의론, 학술재단이 연구비 프로포절에 요구하는 ‘뚜렷한’ 연구결과, 그리고 연구 수행의 실제적 어려움 등이 포함된다. 많은 경우 인문지리학의 질적 방법은 몇 차례의 면담 혹은 기껏해야 “단기적(short-term) 민족지”를 수행할 따름이다. 대개 지리학계에서는 민족지가 1960년대의 계량혁명과 실증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1970년대 이후의 인간주의(humanistic) 지리학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지리학에서 민족지 연구는 역사적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는데, 예를 들어 Titus Coan은 1899년 ‘Hawaiian 민족지’ 연구를 수행하면서 유럽 문명이 휩쓸기 이전 하와이 폴리네이시아인의 자연, 습속, 언어, 종교, 예술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1900년대 초반 The Geographical Journal에 실린 논문의 60%가 ‘탐험과 지도화’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지리학에서 사실 민족지가 핵심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통은 남성지배적 학계에서 ‘적절한’ 지리학 혹은 인류학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많은 여성들의 여행기와 탐험에 관한 기록들도 포함한다. 우리는 본 장에서 민족지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관한 기초적 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대신, 민족지를 간학문적 논의에 기여하는 하나의 ‘장기적이고 뚜렷한 지리적 실천’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리학에서 민족지가 상당히 오랜 지적 전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리학계의 성격변화에 따라 상당히 변화해왔다고 본다. 오늘날 참여관찰은 새로운 유행을 타고 지리학계에 신선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첨단의’ 민족지는 과거의 오랜, 선구자적 연구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지적한다. 2. 지리학의 인간주의 민족지 인간주의(humanism)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19세기 후반 Peter Kropotkin, H.J. Fleure, Paul Vidal de la Blache의 인문지리학파, Carl Sauer의 버클리 문화지리학파, J.K. Wright의 ‘geosophy’, David Lowenthal의 지리적 인식론에 관한 저술 등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연구는 외부의 세계와 우리 머릿속의 그림 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 에이전시와 외부 구조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1970년대에 유행했던 실증주의 지리학, 즉 공간과학은 인간과 외부 공간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지만, 인간주의 지리학자는 인간과 외부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은 계량주의자와 공간분석가 집단이 인간과 인문 환경을 이해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지적하면서 인문지리학의 이론적 재무장을 요구했다. 인간주의 지리학자들은 훗설,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사르트르와 같은 현상학자와 실존주의자들의 저작에 주목하면서 주체-객체의 분리에 도전했다. 이들은 한 개인의 목표, 의지가 세계에 대한 경험 및 지식과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개인의 목표, 의지, 경험, 지식, 신체적 움직임 등을 통해 특정 장소에 어떻게 의미가 집약되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구체적인 민족지적한 연구로 발전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많은 인간주의 지리학이 성찰적인 ‘철학’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인간주의 지리학은 공간에 대한 인간 경험의 ‘본질’, 생활세계의 ‘본질’, 그리고 공간과학에 있어서 인간성의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직관적, 내향적, 이상주의적, 관념적 과정은 경험적 검증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는 인간주의 지리학이 이러한 본질주의적 접근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중시하는 사람의 일상 경험과 상당한 거리를 두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민족지 연구는 ‘원리적인’ 측면에서 인간주의 지리학과 관계하지만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간주의 지리학의 민족지적 연구 성과는 한 줌도 되지 않으며, 위에서 언급한 현상학적 방법이나 철학에 몰두된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세 가지의 문헌이 예외적으로 언급할만한데, (1) David Ley, 1974, The Black Inner City as Frontier Outpost, (2) Graham Rowles, 1978, Prisoners of Space?, 그리고 (3) John Western, 1981, Outcast Cape Town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도시사회지리학 분야에서 연구된 박사학위 논문연구로서, 지리학에서 민족지적 연구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다. (1) The Black Inner City as Frontier Outpost 이것은 1972년 Penn State University에서 David Ley가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으로서, Ley는 당시 ‘인종화된 불평등에 대한 급진적 관심’에 초점을 두었다. Ley는 필라델피아의 Monroe에 있는 흑인 게토 커뮤니티에서 6개월간 연구를 수행했고, 이후에 2년 6개월 동안 커뮤니티 단체를 위해 프로포절을 쓰는 일을 했다. 그는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는 한편, 116명의 거주자에 대한 질문지형 설문조사를 수행했고 많은 지역 신문기사와 비공식적 문헌들을 검토했다. 그는 프랑스의 인문지리학파를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독해하고, 시카고 도시생태학파를 민족지적 관점에서 해석했으며, 행태과학과 환경심리학을 현상학과 결부시키는 절충적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또한 James Cook의 여행기, 인공지능학, 시저의 갈리아전쟁(Gallic Wars)에 관한 자서전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러한 사실은 Ley가 최근 지적했던 것처럼 그 자신이 ‘관념적으로 매우 바쁜’ 상태였음을 의미하며, 이는 방법론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1970년대에 Palm은 Ley의 연구가 ‘실증주의 과학의 엄격성과 경험적 기술의 통찰성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극찬을 하기도 했다. Palm은 나중에 자신의 표현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였다고 기록한다. Ley의 연구 결과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외부인이 흑인의 게토 커뮤니티 지역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를 대중매체와 학술문헌에서 검토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내부인의 시각에 기반하여 커뮤니티를 조사한 부분인데, 커뮤니티가 ‘갱 영역화’에 의해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지, 그리고 이로 인한 주민생활의 복잡성, 불신, 단절, 의심, 불확실성 등을 민족지적 관점에서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그는 첫 번째 부분에서 백인 연구자와 매스미디어가 흑인 게토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흑인 게토는 ‘백인들의 이미지’, 즉 백인적 재현임을 비판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흑인 게토 커뮤니티가 흑인의 백인에 대한 적대적 통일체가 아님을 지적하면서, 게토 내부의 다양한 사회단체, 공동체, 그리고 갱 등이 내적 방어의 기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공동체 자체를 ‘개체화(individuation)’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Ley는 참여관찰을 통해 흑인 게토 커뮤니티의 ‘재현’과 ‘실재’가 분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Ley는 이 논문의 단행본 후기에서 자신이 이러한 분리를 ‘실천적인 차원에서도’ 실행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적었다. Ley는 과거에 ‘사회과학자의 임무는 혼돈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1998년 Ley는 자신의 연구를 상기하면서 참여관찰 초기에 자신이 연구 대상자들을 집단화(grouping)했던 과정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자신의 지식이 필라델피아 현지에서의 일상적 삶에서 매일매일 도전받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즉, 당시 Ley가 논문에서 결론 내렸던 연구 성과는 연구대상지역의 현실에서 도출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음의 3가지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 연구자의 관념적 분석틀에서 비롯된 (민족중심적인 혹은 제한적인) 가정들 -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신기할 수밖에 없는 (혹은 외부인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연구자의 현전 - 주로 커뮤니티에서 상당히 활동적인 정보제공자와의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Peter Jackson은 1998년 Ley의 책이 민족지와 급진적 반-인종주의를 구체적으로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하나의 고전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2) Outcast Cape Town Western은 195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결과 소위 인종간 혼인(miscegenation)의 결과로 형성된 ‘혼혈인(colored)’의 내부도시 커뮤니티를 연구했다. 케이프타운의 주민들은 실제 노르만계 백인에서 아프리카 흑인에 이르기까지 인종적으로 외형적 연속성(phenotypic continuum)을 형성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법률에 기초해서 백인-갈색인(Brown)-흑인(Black, Bantu)의 뚜렷한 계층적 범주로 이들을 구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의 공간적 격리는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왔었기 때문에, 이들 유색인종은 원래의 거주지에서 뿌리 뽑혀 흑인 거주지역과 백인 거주지역 사이의 소위 ‘완충지대’로 재이주하게 되었다. Western은 이것이 ‘소름끼치는 주제’라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과정의 역사, 정당화의 과정, 효과를 세밀하게 포착했다. 한편으로 그의 논문은 역사적 증거, 통계, 개별 면접조사에 기초하여 ‘객관적인 관찰자’의 위치성에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연구대상과 밀착된 상태에서 솔직하고, 독창적으로, 완곡적이면서도 강력한 민족지적 연구를 수행했다. 그의 연구에 대한 어떤 비평가는 ‘자신이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열정적인 진지함을 보여줌’으로써 지리학계의 지리학자와 대학원생 뿐만 아니라 다른 비지리학자들에게도 널리 읽히게 되었다고 본다. de Blij는 이 연구 성과에는 수고로움이 배여 있고, 핵심을 찌르는 분석이 스며있으며, 처절하고 탐험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진 인문지리학의 훌륭한 연구 성과물이라고 극찬한다. Western은 원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연구 지역으로 삼지 않았다. 그는 초기에 부룬디를 연구하고자 했는데, 1970년대에 30만 명이나 살해한 대량학살로 인해 자신의 연구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는 1974년 7월 남아프리카를 처음으로 방문했던 때를 상기하면서, ‘당시에 도시 내부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기초해서 혼혈인들이 살던 지역이 비워지고 재개발이 이루어지던 과정을 샅샅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사악한 것이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했었다’고 기억한다. 1999년 Western은 자신의 연구에 두 명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기록한다. 첫 번째는 Robert Coles가 1973년 UCLA에서 했던 민족지에 관한 강연이었는데, 그 때 Western은 “도시지리학자로서 저도 그런 직접 경험에 기초한, 그리고 나 자신의 말로 표현하는 (내 목소리가 담긴) 연구 (please-tell-me-in-your-own-words research)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었음을 상기한다. 둘째는 그가 케이프타운에서 처음 만났던 남아프리카의 시민운동가인 Victor Wessel로서 “그는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고,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도록’ 자극했었다”고 기록한다. David Simon은 케이프타운에서 자란 지리학자로서 1999년 Western의 연구를 새롭게 조명하면서 당시 대학원생으로서 Western의 연구에 대한 자신의 존경심을 표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인문지리학을 처음으로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Ley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Western의 연구는 슈츠(Alfred Schutz)의 사회학적 현상학의 시범적 연구였다. 그는 케이프타운에 대한 외부인들의 ‘재현’과 케이프타운의 현실 사회지리를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또한, 그의 연구 방법론은 Ley와 마찬가지로 절충적이고 ‘바쁜’ 것이었다. 그의 연구방법론은 지리학자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술, 즉 지도학적, 계량적, 문학적, 시각적 방법과 다양한 자료의 동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의 연구로 인해 많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학생들은 ‘그 곳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중요한 정치적 교훈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비가시적인 구조적 권력 및 권력의 실행이 전적으로 결정론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은 사회적 분리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공간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15년이 지난 후의 비평가들은 이 연구가 ‘사회관계가 공간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공간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도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어떻게 시민들을 새롭게 만들어 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Western의 민족지는 구조화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통찰력을 시대적으로 앞서 보여주었고, 아직 인간주의 지리학이 성숙하기 이른 시점에 연구가 수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연적으로 인간주의적인 관점에 기여하게 되었다. 즉, 그의 연구는 인간주의와 관련된 문헌에 많이 의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정체성과 장소 사이에는 쉽게 풀리지 않는 복잡한 관계의 실타래로 얽혀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드러낼 수 있었다. (3) Prisoners of Space? Ley와 Western의 연구가 그야말로 인문지리학의 고전이라면, Rowles의 연구는 훌륭한 민족지적 연구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경우이다. Rowles의 연구는 귀납적, 경험적인 방법에 기초한 까닭에 많은 수고로움이 배여 있는데, 그는 주어진 자연환경 내에서의 개인이 어떠한 전체론적 인식을 갖게 되는지를 분석했다. 그의 연구는 설명과 일반화를 넘어선 소설적인 글쓰기를 시도했고, 한 개인이 지닌 사소하고 단순한 환경 인지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Rowles의 글쓰기가 시도했던 세밀한 민족지적 기술방식은 이후에 보다 현실적인 이론을 태동하는 전환점이 되었고, 사람들의 생활 경험을 고려한 공간 계획의 출현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Rowles의 연구는 Ley나 Western에 비해 지리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데, 이는 아마 그가 인간의 노령화과정을 연구하는 학제간 분야로서 노인학(gerontology) 전공자로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Rowles는 인간주의 지리학의 온상이었던 Clark 대학에서 인간주의 지리학자인 Anne Buttimer를 지도교수로 학위논문을 썼다. 그는 인간주의 지리학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주의 지리학의 내향성, 추상성을 뛰어넘고자 시도했다. 그는 Ley나 Western과 마찬가지로 특정 집단에 대한 외부의 단순한, 추상적인, 정형화된 재현에 도전하기 위해 내부자의 시각에서 민족지적 방법론을 선택했다. 그러나 Ley와 Western이 기존의 많은 지리학자들처럼 근린지구나 커뮤니티 스케일에서 연구를 수행했던 반면, Rowles는 보다 미시적인 스케일에서 연구를 수행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를 통해서 Rowles는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분리와 주관적 지식과 객관적 지식 사이의 구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경험적 연구를 전개할 수 있었다. Prisoners of Space는 데카르트적 세계와 생활세계 공간 사이의 차이를 탐험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노인의 지리적 삶이 위축되는 것은 노화의 (자연적) 과정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라는 기존의 행태주의적 가정을 민족지적 방법을 통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Rowles는 미국 동부 해안가의 익명의 도시에 있는 노동계급 근린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대기, 지리적 경험, 일상생활 세계를 연구했다. 처음에 그는 상당히 많은 연구대상자를 조사하려고 했지만, 연구의 과정에서 지속적인 관계를 가진 이들은 5명의 노인이었다. 그는 ‘초기에 많은 연구대상자를 섭외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근심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나의 연구에 행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기술한다. 그는 연구대상자와 3년에 걸쳐 장기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속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그의 논문 중 한 장인 ‘개인 간 지식’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가 이 부분을 다 쓰기 전에 2명의 연구대상자가 사망했지만 다른 두 사람과 초안을 함께 읽으면서 토론을 해 나갔다. Rowles는 Western과 마찬가지로 장소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을 조사했다. 그러나, Western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강제적 이주로 인해 장소에 대한 애착이 표면 위로 드러날 수 있었지만, Rowles의 경우 연구대상자들은 초기 단계의 경우 이러한 경향을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Rowles가 관심있는 노년에 관한 학술적 문제에 대해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Rowles는 연구 초기 단계에서 경험한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 자신의 연구 계획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 연구대상자들의 긴 여행 이야기나 자서전적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훨씬 덜 집중화된, 장기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연구대상자들과 함께 산책하고, 집에서 담소하고,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페이스에 그들을 맞추려고 하는 대신에 자신을 그들의 페이스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런 연구과정에서 Rowles는 메모하기, 사진 찍기, 스케치 지도 그리기, 녹취하기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기록을 정리하면서, 느린 속도로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복잡성을 학습해 나갔다. 그는 결론적으로 그들의 노년기 삶이 Winchester가에 개인의 신체적 기억, 자서전적 기억,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애착을 갖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Rowles는 노년층이 육체적, 인지적 기능의 쇠퇴로 인해 삶의 공간이 자신들 가까이로 좁혀진다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이며, 오히려 생물적, 경제적,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노년층은 정신적 역동성과 창조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주체-구조의 관계는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가지는데, Rowles가 이후에 주장하는 것처럼 노인들도 요양원이나 양로원이 아닌 ‘자기가 그 동안 살아 온 장소에서 늙어가고픈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에 기여했다. 3. 지리학의 신민족지 위에서는 1990년대 초반 영미계 지리학계에 불어 닥친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 이전에 수행된 민족지적 연구 사례를 살펴보았다. ‘문화적 전환’은 1990년대 초반 인문지리학 분야에서 문화연구 및 문화 관련 분야의 많은 개념을 활용했던 다양한 흐름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용어이다. 이는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퀴어이론, 반인종주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 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 문화연구, 과학연구, 사회인류학 등의 다양한 관점을 포괄하는데, 몇 가지 주요 개념들만 나열하면 차이, 정체성, 체현, 언어, 지식, 텍스트, 담론, 이미지, 의사소통, 가치, 관점, 행위자/구조, 권력관계, 저항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1) 다양한 사람들이 세계와 자신의 장소를 이해하는 방식, (2) 시공간에 있어서 일상적 생활의 루틴화 과정, (3) 체현, 기억, 감정, 느낌 등이 장소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 이러한 연구는 과학적 합리성을 거부하고 연구자의 성찰성(reflexivity)을 강조하며, 분석/감정이입, 내부자/외부자, 사상/기쁨, 육체/정신, 개인/맥락 등과 같이 사회의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한다. 물론 인간지리학은 인간을 강조하면서도 권력관계나 젠더관계 등을 무시했긴 했지만, 이러한 문화적 전환기의 인문지리학이 질적 연구 방법론을 채택하는 데에 인간주의 지리학이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지리학자들은 지역경제가 지역사회의 실천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연구했고, 정치지리학자들은 경계 형성과 배제의 과정에서 신민족주의와 정체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으며, 도시지리학자들은 도시 내부의 문화적 부흥과 생활양식을 열정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소비지리학자들은 유통체계를 연구하는 대신에 소비의 공간을 문화적 입장에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리학의 문화적 전환은 동시에 ‘민족지적 전환(ethnographic turn)’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시기 사회 및 문화 지리학자들은 인류학과 사회학으로부터 페미니스트 민족지와 같은 새로운 접근방법을 수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지리학의 ‘신민족지(new ethnographies)’라 지칭하면서, 이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1) 연구대상 커뮤니티의 범주화(Categorizing subject communities)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민족지를 ‘사람들 기술하기(people writing)’로 정의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원래 이러한 ‘사람들’은 도서관이든 연구실행 과정이든 애초에 만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민족지학자들은 사람들을 범주화함으로써 어떤 범주의 사람, 어떤 범주의 문화, 어떤 범주의 민족, 어떤 범주의 공동체 등으로 (단수화하여) 기술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간적, 시간적으로 고정되고 고립된 단일한 사회문화적 단위를 가정하는 것이 과거의 민족지적 연구의 특징이었다. 문화적 전환(cultual turn)의 영향을 받은 지리학자들은 이처럼 세계를 범주화된 사람과 문화로 구분하는 것에 비판적이며, 인간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인간주의 지리학자들의 가정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렇다면 집단적, 개인적 정체성과 일상적 공간/장소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분명 민족지적 연구는 이러한 종류의 연구에 가장 적합한 방법론이다. 그렇지만, 도대체 사람, 문화, 커뮤니티의 내적 동학을 민족지적 방법을 통해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연구 대상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누구에 의해서 설정되어야 할까? 이러한 접근방법이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어떤 연구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리학과 인류학에 있어서 민족지적 전통은 역사적으로 서로 얽혀있다. 그러나 지리학이 문화적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이러한 상호 얽힘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문화적 전환을 논의함에 있어서 미국 문화지리학의 초유기체론을 비판했던 James Duncan을 빼놓을 수는 없다. Duncan은, 소위 ‘원시적 농촌 지역에 대한 답사’를 기치로 1970년대까지 20세기 미국의 문화지리학을 주도했던 버클리 대학의 Carl Sauer 및 제자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Sauer는 40여 편의 박사학위논문을 지도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지역을 연구지역으로 정했으며, 그는 제자들로 하여금 ‘답사를 통한 직접적인 경험과 현지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도록’ 가르쳤다. 그렇다면 Duncan이 이러한 종류의 문화지리학에서 문제시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Duncan은 1980년의 논문을 통해 왜 지리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문화지리학에 눈을 뜨라고 주장했던 것일까? Duncan의 문화지리학이 기존의 문화지리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폄하하는 일부 지리학자의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문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980년 초유기체론에 대한 Duncan의 주요 비판은 ‘문화를 하나의 사물’로 인식하는 관점, 즉 문화물신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Duncan에 따르면 Sauer와 그 제자들은 문화가 인간의 일상적 행위와 분리된 독립적 실체라고 주장했다. 즉, 문화는 인간에 영향을 미치고, 문화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는 내적 논리와 법칙에 따라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 때 개인인 단순히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 세대에서 저 세대로 문화를 실어 나르는 매개자, 담지자, 혹은 메신저의 역할을 수행할 따름이다. 그래서 Sauer의 지리학은 인간 개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문화에 대해 수동적이며, 문화적 관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문화에 관한 초유기체적 이론이 지리학계에 들어온 것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Sauer가 같은 대학의 인류학자인 Alfred Kroeber와 Robert Lowie와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미 1940년대에서부터 인류학계에서는 어떻게 개인들이 제도를 유지, 창조함으로써 거꾸로 환경을 바꾸어 나가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처럼 문화의 초유기체론이 많은 인류학자들에 의해 이미 오래전부터 거부되고 공격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문화지리학자들은 문화에 관한 많은 대안적인 정의를 세대와 세대를 거쳐 무시하면서 초유기체적 관점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해왔다. 이러한 과정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대학의 세계지역지리 과목의 강의 교재 발간을 통해 세대를 거쳐 이어졌고, 결국 많은 지리책들이 지도 상에서 세계 인구를 몇 개의 등질적 문화지역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기술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기 시작해서 많은 지리학자들이 이러한 전통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문화유기체론은 학술적으로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대중들이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에 여전히 강력히 자리 잡고 있다. 많은 대중들은 여전히 영국 문화, 이슬람 문화, 게이 문화, 청소년 문화, 흑인 문화, 도시 문화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구분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문화 간의 이동 혹은 문화 간의 혼합에 매료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소위 ‘문화주의(culturalism)’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문화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문화적 특징은 ‘실재’하는 것으로 사람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분석 가능한 대상이며, 따라서 문화는 설명의 독립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을 특징으로 한다. 문화에 대한 이러한 당연적 주장이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러한 정의가 순진무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Peter Jackson(1989)에 따르면, Los Angeles Times는 1989년 5월 12일자에서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 도시 내부에서 번잡한 지역에 거주하는 것은 그들이 문화적으로 인구과밀지역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 신문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정치적 지위의 불확실성이나 히스패닉계 이주자의 빈곤을 통해 이들의 혼잡한 거주지를 설명하는 대신에, 이들이 확대가족과의 동거를 선호하기 때문에 가구당 구성원 수가 많아져서 인구 과밀의 거주지가 형성되었다고 강조했다. 즉, 이 신문 기사에서는 히스패닉의 ‘문화’가 히스패닉 거주공간의 ‘과밀(혼잡)’을 설명했던 것이다. 초유기체론이나 이와 관련된 문화에 대한 대중적 설명 방식은 바로 이처럼 불필요한 분리, 위험, 적대감을 강조함으로써 누구나 문화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은폐하고 지역주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러한 설명은 상이한 문화라고 간주되는 것들 사이의 상호연결성뿐만 아니라 문화가 정치, 경제 등과 맺고 있는 상호 관계도 은폐한다. 범주화는 세계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한 많은 이론들을 암묵적, 명시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러나 문화적 전화의 결과 많은 지리학자들은 모든 범주와 이론은 사회적 구성물로서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고, 정당화하고, 변형시킨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케이프타운에 관한 Western의 논문만큼 이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자, 그렇다면 지리학의 새로운 민족지 연구자는 범주화의 정치가 갖는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람, 문화, 커뮤니티 혹은 그 외의 다른 사회집단을 연구할 수 있을까? 우선, 1989년 신문기사를 분석한 Jackson의 연구로 되돌아가보자. 여러분 자신이 1984년 LA에 살고 있는 대학(원)생이라고 생각해 보아라. 여러분은 도시사회 지리학에 매료되어서 이 분야에서 논문 주제를 찾고 있다고 생각하자. 우연히 Los Angeles Times를 읽다가 바로 Jackson이 분석한 그 신문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토픽이다. 계단을 오르기 전의 현관 앞에 다다른 것이다. 그 신문기사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그동안 읽은 여러 가지의 문헌을 떠오르게 할 것이다. 여러분이 공부하면서 읽은 문헌 중에 Duncan의 1980년 논문이 포함되어 있다면, 신문기사를 보고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신문기사가 바로 문화에 관한 초유기체적 이야기임을 파악하고, 신문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 토픽을 확장시켜 Los Angeles의 주택 문제를 좀 더 조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근린지구에 들어가서 베이스캠프를 차려라. 히스패닉 근린지구가 낮설다면 문지기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데, 아마 커뮤니티 활동가가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자, 이제 여러분은 다른 공동체의 외부자로 전입할 준비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혹시 여러분이 고민하고 있던 초유기체적 관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히스패닉계 공동체와 그 외부를 분리하고, 히스패닉계 공동체를 등질적인 것으로 간주해서 ‘그들과 우리’라는 관념을 재생산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한 문화와 다른 문화의 사이는 항상 문지기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 않은가? 마치 David Ley가 필라델피아에서 연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점차 시간이 지나 더 많은 주민과 대화하고, 그들과 더 어울리고, 그들의 일과 더 관계할수록 이러한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커뮤니티 혹은 문화를 단일하고 등질적이라고 인식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Pamela Shurmer-Smith가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들 중에 우리의 삶의 “모든” 측면을 공유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여러분이 이야기하는 주민들은 사실 나이, 젠더, 재정상태, 직업, 종교적 믿음과 실천, 언어, 정치, 취미, 취향, 삶의 경험 등 다양한 소속의 형태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1세대, 2세대, 3세대 등 이주 세대에 따라서도 소속의 형태가 다르고, 같은 히스패닉이라고 할지라도 멕시코인인가, 과테말라인인가, 니카라과인인가에 따라서도 다르다. 또, Doreen Massey가 지적하는 것처럼 겉보기에는 단일한 장소감과 응집력있는 정체성을 가진 것 같지만,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따라 그리고 외부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여러분이 연구하려고 하는 ‘그들’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어렵게 한다. 존재론적 의미에서 대답하자면, 이러한 집단적 범주 그 자체는 무의미하지만, 이러한 범주가 실제 생활세계에서 정의되고, 전개되고, 이용되며, 경합되는 방식은 정말 심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즉, 이러한 범주가 문제적이지만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이러한 범주는 머리를 맞대 탐구되어야 한다. Don Mitchell(1995)이 지적하는 것처럼 문화는 사람들에 의해 소유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특수한 환경 하에서 경합되는 권력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연구계획과 연구실행과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연구자는 범주화된 집단의 삶을 정형화된, 대중적인, 문화주의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방식에 도전해야 한다. 이 때 민족지적 연구는 특정한 배경 하에서 벌어지는 범주화의 권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이러한 과정이 사람들의 자기-범주화의 일부분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더불어 ‘아래로부터의’ 추가적 혹은 대안적 범주들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민족지적 연구를 단순히 문화와 문화 사이를 이동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경계를 가로질러 형성되어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 통해 이동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셋째, 이러한 네트워킹을 상세하게 기록해 두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며 이는 연구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를 잘 기록해두면 한 장소 이상의 다중적 장소들에서 경계를 가로질러 민족지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민족지적 연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트워킹에 관한 것이며 연구실행의 처음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민족지학자는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 작업할지를 배워야 하고, 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고정관념을 발견할 때 그 흐름을 따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대안적인 해석을 보다 의미있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단계를 표준적인 단계로 나누는 방식 그리고 읽은 후에 쓰는 방식과 같은 연구계획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다. 가능한 한 빨리 네트워크 관계를 형성해서 자신의 사고에서 문화주의적 싹을 뽑아내는 것이 연구의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2)추상적 이론과 일상생활의 관계짓기(Relating abstract theory and everyday life) 1980년대의 문화적 전환은 이론의 중요성을 더욱 배가시켰다. 이는 Nigel Thrift(1983)와 같은 지리학자들이 1970년대에 평행선을 달려왔던 지리학계의 두 흐름, 인간주의 지리학(인간의 상호작용의 특징을 이해함으로써 장소의 일반적 특징을 포착하려는 지리학)과 맑스주의 지리학(자본주의의 일반 작동 법칙을 이해함으로서 장소를 이해하려는 지리학)을 통합하려는 움직임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전자는 인간 에이전시를 강조하는 자원론적 입장이며, 후자는 구조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결정론과 관련되어 있다. 1980년대에 등장한 구조화이론은 바로 이처럼 일상적 삶과 추상적 이론의 상호 얽힘을 이해하려는 시도였고, 이러한 연구에서 민족지적 연구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구조화이론의 주창자인 Anthony Giddens(1984)는 ‘구조는 순진하게도 유기체의 골격 내지 틀, 혹은 건물의 골조와 같은 이미지로 착상되어 인간 행위의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비판한다. 대신 그는 인간 에이전시의 원인과 결과를 일으키는 구조가 동시적으로 이원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하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행동방식과 존재양식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당연적인 것으로 루틴화되며, 다른 하나는 사회의 체계성(systemness)을 통해 확장된 인식과 조정을 통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조와 에이전시는 동일한 것을 의미하며, 이는 사람들의 일상적 활동에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민족지적 연구에게 있어서 이러한 구조화 이론은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구조화이론은 다음과 같은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동방식과 존재양식에 관한 메세지를 학습하는가? - 이러한 메시지는 어떻게 행위 경험을 루틴화하는 결과로 강화되는가? - 이러한 메시지에 담긴 지식이 당연적 ‘실천 의식’을 어느 정도까지 구성하는가? - 이러한 지식은 어느 정도로 지리적, 육체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가? - 참여관찰을 통한 장기적, 상황적, 체현된 접근은 어느 정도까지 실천 의식을 담론 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민족지적 연구는 ‘끝나지 않은 세계에서의 인간 에이전시의 잠재력’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생활에 있어서 결정성보다는 ‘행위에 미치는 효과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는 당연적 세계를 끄집어내서 의문시하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인문 지리를 구성하는 집합적인 과정에 사람들이 어떻게 참여하게 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구조화이론의 이러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 이는 지리적 관점에서 다소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구조화이론을 근거로 한 제도 분석이나 전략적 행위에 관한 분석은 에이전시와 구조 사이의 이원성을 이론적인 수준에서 방법론적 수준으로 전환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사례가 Paul Willis의 민족지적 연구물인 Learning to Labour(1983)라고 할 수 있겠다. Nigel Thrift는 Willis의 저작이 사회적 행위의 의도적 결과와 비의도적 결과에 관한 구조화이론의 주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비평한다. 이 저술은 일부 노동계급 학생들이 학교의 권위에 대한 저항의 차원에서 어떻게 정신노동에 대해 저항하는지를 보여준다. 육체노동은 정신노동과 반대되는 특질, 가령 공격성, 단결, 남성성, 날카로운 유머로 대변되며, (노동계급의) 자유에 대한 긍정적 확인이다. 이러한 저항으로 인해 노동계급 학생들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노동계급 직업을 받아들인다. 곧 그들은 자신들의 억압을 자발적으로 껴안는다. Thrift는 Willis의 저술이 지니는 기능주의적 측면을 비판하는 대신에, 한 무리의 젊은 남성들이 학교에서 일터로 이행하는 과정을 추척하여 (중산계급의 가치를 다 같이 함께 거부함으로써) 구조적 종속에 대한 상징적 반대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Willis는 민족지적 연구방법을 통해 전통적 맑스주의 이론에 입각하여 계급구조적 사회에 관한 추상적인 논의 속에서 학생들의 삶과 선택을 맥락화하고자 했다. Willis 책의 절반은 섬세한 민족지적 기술이며, 나머지 절반은 집약도 높은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이전시는 경험적인 것으로, 구조는 이론적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바로 그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Marcus는 Willlis의 저술에 대해 Thrift보다 더욱 비판적이었는데, ‘이 책은 단순히 기능주의적 질서라는 기존의 관념 속에 현실세계의 뒤엉킴을 삽입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Willis가 강조하는 ‘비의도적 결과’는 기껏해야 ‘에이전트는 자신들의 행위를 다양한 맥락에서 수행한다’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원성을 고려한 민족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Marcus and Fisher(1986)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연구가 구조적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 어떤 부류의 집단이 아니라 상이한 공간 상에 걸쳐 있는 ‘체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1986년 Marcus는 체계로서 다국지적(multi-locae) 민족지의 가장 명백한 탐구 대상은 시장,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분배, 소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1995년과 1996년의 글을 통해 맑스주의만이 다국지적 민족지학의 연구에 유일한 이론체가 아니라 포스트구조주의적인 관점에서도 잘 수행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포스트구조주의의 핵심적 믿음 중 하나는 지배적인 범주화와 이분법적 분리는 불안정화되어야 하고 ‘비억압적 정치’의 창조를 위해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Donna Haraway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아/타자, 정신/신체, 문화/자연, 남성/여성, 문명/미개, 실재/표상, 전체/부분, 에이전트/자원, 창조자/피조물, 능동/수동, 옳음/그름, 진실/환상, 신/인간 등의 이분법은 모두 체계적으로 여성, 유색인, 자연, 노동자, 동물 등을 지배하는 논리였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범주화를 거부하는 방법은 ‘상호연결된 양식을 지닌 새로운 이론화’이며, 이것이 오늘날 많은 비재현적 이론들(non-representational theories)에 지리학자들이 매료되는 지점이라고 주장한다. Thrift에 따르면, 이러한 이론화는 다음과 관련되어 있다. - 구조화 이론의 장점은 새롭고 보다 향상된 형태로 부상하고 있다. - 새로운 형태의 연구가 요구되고 있는데, 이는 이론을 특정한 맥락에 적용하는 연구가 아니라 이론적이고 경험적인 것들이 텍스트와 맥락, 그리고 사실성과 허구성의 융합을 통해 수렴시키는 것이다. - 참여관찰은 이러한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수단으로 촉망받고 있다. 비재현적 이론은 주로 특정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일상적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 비재현적 이론의 옹호자들은 인문지리학에서의 질적 연구 방법이 사람들의 감각적 삶의 영역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간주해왔고 행위보다 지식을 우선시함으로써 (무의식이 아닌) 의식에 기반한 모델에 의존해왔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새로운 연구 수행은 단어(담론적 의식)로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비합리적인 일상적 삶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의식의 작동방식, 신체의 전인지적(pre-cognitive) 실천, 그리고 일상생활의 감각적 경험 등이 이러한 영역에 해당된다. 따라서 비재현적 이론은 비전문가도 충분히 상세한 방식으로 민족지적 방법론을 수행하여 글쓰기를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비재현적 이론은 민족지적 연구자로서 우리의 연구계획의 경계를 더 밀어 붙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행되는 참여관찰은 관찰자뿐만 아니라 관찰대상자 모두 에게 ‘놀랄만한’ 결과를 발견할 수 있다. 현재까지 비재현적 이론은 어느 정도의 진전을 보여 왔는데, 이의 사례가 Bruno Latour가 Aramis: The Love of Technology에서 수행한 ‘놀랄만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발전된 ANT(actor-network theory)라고 할 수 있다. ANT는 기든스가 포스트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부분에까지 도달했으며, 행위의 문제를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른 행위자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특정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 ANT에서 에이전시는 개별 인간 주체의 활동 그 이상으, 행위의 능력이 비인간적 행위자나 인간-기계의 결합체와 같은 ‘기능적 집합체’에 의한 것임을 지적한다. 즉, 행위의 능력은 ‘이질적 네트워크 상의 부분들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생성되는 일종의 관계적 효과’이다. 따라서, ANT에서 구조는 어떤 외부에 있는 혹은 위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놓인 사람, 인공물, 규칙, 생명체들의 복잡한 얽힘이며, 세계를 가로질러 형성된 관계의 그물조직이다. 이러한 설명이 살 점 하나 없는 아마 ANT의 골격일 것이다. ANT에 기반한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일상적 삶의 세속적, 상황적 복잡성을 분석함으로써 이분법적 틀을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특정한 사람들, 사물들, 메타포, 계획, 이야기들, 실생활과 자서전 등에 초점을 둠으로써, 연구자가 연구대상자에게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연구대상자들이 연구자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행위와 관계망의 상호작용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론은 선입관을 바탕으로 연구지역의 현장 데이터를 가두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보다 가벼운 기분으로 실제 연구지역을 설명할 수 있게끔 착상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 경제, 조직, 기술 등에 기반한 거시적 설명은 이미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생산적이지도 않으며, 사회는 그러한 설명에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 비효율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존의 급진적 연구 성과의 축적에 상당한 토대가 되었던 ‘저항과 순응’이라는 관점은 탈중심화될 필요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소위 ‘맥락’이라는 안전벨트를 두르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질서와 사회의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화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즉, ANT는 연구대상을 질서화하려고 하지 말고 연구대상이 어떻게 질서화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Aramis를 포함하는 많은 연구들이 실제로 장기간의 참여관찰과 같은 방법에 기반한 민족지적 연구를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 가령, Aramis만 하더라도 참여관찰의 연구 방식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 정책/계획문서, 보도자료, 자문보고서, 메모와 같은 문서화된 연구자료(archive)와 사진, 지도, 도표와 같은 도상학적 자료, 그리고 인간 행위자에 대한 심층면접기록 등을 기초로 하고 있다. 만약 민족지적 연구가 연구 대상이 다중적인 공간을 가로질러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설명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면, 위와 같은 연구방법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지리학계에서 과정-지향적인 질적연구 방법론을 구사하는 연구들에 의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3)성찰적일 것(Being reflexive) 지리학의 문화적 전환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학문의 구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즉,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가 수행하는 연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학문적 영역 내에서의 ‘지식과 담론의 사회적 구성’ 그리고 이에 뿌리 내리고 있는 권력관계는 열띠게 논의되고 있다. 지리학계 내부에서는 우리가 속한 환경, 우리의 위치, 우리의 가치, 그리고 우리의 연구주제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우리는 어떤 렌즈를 통해 지식에 접근해야 하는지, 지리학적 연구수행과 연구주제의 선택에 있어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는지,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인지, 그리고 이론과 정치, 사고와 행동 사이의 관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심층적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McDowell, 1992). 이러한 질문은 대답되기가 어렵고 당혹스럽지만, 이러한 질문으로 인하여 지리학계에서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주변화된 집단에 대한 질적연구가 점차 번성하고 있다. 이는 지리학계에 많은 ‘비주류적’ 구성원들이 가시화된 덕분이기도 하고, 자아와 타자의 분리에 대한 본질주의적이고 단순한 설명에 대한 비판이 차이의 정치와 문화에 관한 논의에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의는 정체성을 어떤 범주로 간주하기보다는, 부분적이고, 완결되지 않은 불완전성으로 파악하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내가 너임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관여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는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포스트식민주의와 같이 다양한 정치적 선택이 나타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많은 지리학자들이 주변화된 목소리와 이야기를 발견하고 중심화함으로써 현 상태를 불안정화하거나 기존의 지식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해 왔다. 이는 Philo(2000)가 일컫는 것처럼 지리학계에 새로운 양가성을 창조함으로써 기존의 편견과 보수성을 날려 없애버리고자 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 원동력의 핵심에는 바로 페미니스트 민족지가 있다. 이와 같은 민족지적 전통은 지리학에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논리적으로 극단적인 정치를 지향하는 연구나 주변적이라고 간주되기가 어려운 사람들에 관한 새로운 연구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명시적으로 간섭주의를 지향하는 연구는 (정치적) 참여 행위, 활동가적 연구, 그리고 해방적 연구를 지향한다. 이러한 연구자들은 연구대상자에 대한 공감의 수준을 넘어 전문적인 기술과 접촉을 통해 주변화 된 사람들의 투쟁에 관여하여 그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한다. 또한, 어떤 연구는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powerless) 사람들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써 인문지리학이 설명하려는 보다 넓은 과정을 그늘에 가리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많은 지리학자들의 이러한 문제의식과 실천을 통해 다른 사회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더욱 성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성찰성은 민족지 연구자의 미시적 수준의 행위를 거시적 과정과 연결시키는데, 다음의 세 가지에 관심을 둔다. (1)민족지가 뿌리내리고 있는 개인 간 관계를 구조화하는 권력관계가 조사되는데, 이는 연구자가 누구에 대해 그리고 무엇에 대해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그리고 무엇이 연구자에 대해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연구자와 연구대상자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등에 관한 성찰을 수반한다. (2) 지리적 제도, 전통, 관점, 그리고 이들이 다른 문화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에 관심을 둔다. 예를 들어, 지리학계의 제도와 전통은 상당히 제한적인 범위의 학생들을 유인하며, 이 학생들은 이들의 연구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특수한 사회적, 학계적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를 수행한다. (3) 보다 넓은 차원의 문제들로서 위와 같은 문제들이 사람의 이동이나 정보의 흐름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접촉을 비균질적으로 조직화하는 방식을 문제 삼는다. 어떤 사람들은 성찰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자기도취적 연구를 낳아 정말로 중요한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기-성찰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민족지적 연구계획과 연구수행을 새롭게 사고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첫째, 연구계획을 수립하기 전 단계에 대해 글을 써봄으로써 자신의 연구 방향이 자신의 일상적 경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열정, 동기, 관심, 정치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연구를 활력을 불어넣고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어떤 연구가 아무리 ‘저기 밖의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실제로는 연구가 연구자와 지도교수가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이용함으로써 이루어지므로 연구자와 지도교수가 연구의 외부가 아닌 연구의 일부분을 구성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구수행은 다음과 같은 장소들에서 이루어진다. - 대학 혹은 NGO와 같이 신뢰 관계에 기반한 접촉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곳 -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진입할 수 있는 공간 혹은 사회집단 - 직업 혹은 자원봉사자로서의 활동 - 대가의 지불이 필요하지 않은 이벤트나 캠페인 - 생소한 단체나 조직에 접촉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한 접근 - 가족, 친구관계, 동호회 네트워크에 관한 혹은 이를 통한 연구 이는 우리가 ‘현지(field)’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언제 그리고 어디서 연구자가 현지에 있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민족지적 연구에는 연구대상자뿐만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를 주고, 연구비를 지원하고, 연구를 지도하고,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도 연구의 성공적인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민족지 연구자에게 다음의 몇 가지 팁을 제공하고자 한다. 1. (연구수행 전에) 있는 그대로를 남김없이 기술하는 이야기 몇 가지를 읽어 보아라. 2. (연구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위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 방법론 텍스트와 병행하여 읽어라. 3. 지리학계의 민족지 방법론의 역사와 친숙해져라. 4. 참여관찰 연구 결과를 읽어라. 5. 독서, 연구수행, 그리고 글쓰기를 병행하라. 4. 결론 오늘날 지리학계의 경우 많은 학생연구자들에게 ‘이론을 잘 파악하고 문헌리뷰를 철저히 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철저한 현지조사의 수행’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구수행의 과정보다 연구수행의 산물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현지조사노트의 작성은 특정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연구가 어떻게 진행 중인지를 성찰하게 하며, 연구의 초점을 유지하게 하고, 다음 과정의 연구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꼭 필요하다. 현지조사노트는 민족지 연구뿐만 아니라 모든 연구에 필요한데, 왜냐하면 모든 연구는 참여와 관찰이 동반되고 연구수행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Kathy Bennet은 영국 농촌지역의 어떤 농장에 관한 현지조사노트를 작성하면서 무엇을 기록해야할지,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그의 지도교수는 단순하게 ‘그냥 계속 쓰라’고만 했다. 사실, 현지조사노트는 의미를 생산하는 현재진행형의 과정으로서 일차적 경험에 기초한 창조적인 글쓰기의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픽션과 같다. 그리고 연구과정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면서 연구과정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현지조사노트는 연구대상에 대한 기록과 해석이 서로 중첩, 교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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