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609)
학부 강의자료방
학부 과제제출방
대학원 세미나룸
명예의 전당1: 서평
명예의 전당2: 영화평
토막강의
스크랩북
지리사진방
기타 지리관련 자료
약력
최근 댓글 전체보기
1941년-45아프리카..
1619년최초의흑인노예..
아시안 1550만흑인 ..
한국48.3 북한 23..
중국 1345.8 인..
2009 12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오늘 전체
방문자 264 113247
구독자 0 40
댓글 0 226
참조글 0 98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kyoju62
- lkwvn
- sytelgate
- 발가락
- 김승종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개설일 : 2007/11/04
 

마지막 황제, 간장선생, 비정성시, 그린 파파야의 향기 등: 역사교육과 박현희

2007.12.18 21:40 | 명예의 전당2: 영화평 | 박경환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35 주소복사

아시아와 관련된 비디오를 나름 즐겁게 보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본 영화들은 마지막 황제, 간장선생, 비정성시, 그린 파파야의 향기 등이었다.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는 현재 반만 본 상태이기 때문에 레포트를 써나가는 과정에서 보게 되면 언급을 하겠다. 먼저 나는 마지막황제, 비정성시를 묶어서 말하고 싶다. 이전에 ‘영상으로 보는 중국’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밖에도 중국과 관련된 영화를 많이 봤었다. ‘인생’ ‘패왕별희’ 등등 영화를 통해서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었다. 나 역시 전공이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부분과 연결시켜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과 관련된 영화들은 줄거리를 가볍게 다루고 역사적인 부분과 연결시켜 생각해보고, 그 밖의 간장선생과 그린 파파야의 향기는 줄거리와 함께 나의 느낌을 써가는 형식으로 써보겠다.

중국이라는 거대하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어떤 특정 사건에 대해 그 개괄적인 전개나 의의를 찾아보는 것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은 당시 중국인들이 그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건이 중국의 문화와 어떻게 결부되어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은 실제로 책에 나온 몇 줄 설명을 읽어서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데, 이때 좋은 학습의 도구가 되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작가나 감독의 주관적인 사상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엿보고, 그들의 역사인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알아보는 데에 영화가 유용한 도구인 것만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인기를 몰았던 ‘화려한 휴가’ ‘왕의 남자’ 등은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 뿐만 아니라 그 시대상황을 엿보고 상상하게끔 해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그 뿐 아니라 ‘색계’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중국이 일본의 침략을 받던 그 시기의 갈등을 엿볼 수 있고, 그 당시의 역사를 상상하게 해주는 좋은 요소가 된다. 내가 이번에 본 영화 아편전쟁, 마지막 황제, 비정성시 등도 모두 중국 근대 또는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 중 몇몇 영화들은 당시의 특정사건을 소재로 다룬 것도 있어서 중국 근대 또는 현대사회를 들여다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중국이 봉건사회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시기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격변했던 시기이다. 실제로 중국영화에서 이 시대의 사회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 시기를 주제로 한 대표적인 영화들은 위에서 언급했던 영화들이며 영화에서는 당시의 시대상황과 중국인들의 역사인식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영화 속에서 당시 중국의 문화와 생활, 전통 등도 엿볼 수 있어 영화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18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꾸준히 이어져 오던 봉건적 왕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의 왕조는 청(淸)이었고, 비록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 그 주류였다 하더라도 유구하게 이어져 오던 중국의 왕조체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러한 봉건왕조 체제의 붕괴를 알린 서막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서구 열강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발전 시켰고, 국내 시장이 포화됨에 따라 해외에 앞 다투어 진출하여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제국주의화 되고 있었다. 서구 열강들은 아시아에도 그 영역을 넓히기 시작하였는데, 중국도 그에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은 중국을 통해 차와 비단 등을 수입하였고, 그 수요가 증가하면서 자연히 영국의 은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영국은 무역역조를 개선하기 위해 아편을 중국에 밀매하였다. 아편수입으로 인해 중국의 은이 영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아편중독자의 증가가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자 중국은 임칙서를 시켜 금연정책을 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국과의 마찰이 일어났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영국과 청 사이에 아편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영국군은 남경까지 진출하게 되고, 이를 두려워한 청(淸)정부는 서구와 맺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다른 서구 열강들도 중국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면서 중국은 서구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아편전쟁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지만 (역사관련)영화를 볼 때 그냥 보는 것 보다 역사적인 전개과정이나 그것의 의미 등을 알고 보면 더욱 많은 것을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영화에서 나타나는 중국의 근대사는 혼란과 격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본 영화들 중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마지막 황제와 아편전쟁, 송가황조, 비정성시, 붉은 수수밭 등이다. 먼저 마지막 황제를 살펴보면 청 왕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통해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근대사회가 전개되는 상황이 잘 나타난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자금성의 위용과 황제의 자리에 앉기에는 너무도 어린 황제이다. 당시 상황은 이미 봉건왕조는 붕괴되고 왕조라는 것은 허울만 남아있는 상태다. 당시 실제로 정권을 잡고 있었던 세력은 공화국 정부이며, 부의는 자금성 내에서만 황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이미 왕조는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구절 ‘자금성은 관중이 없는 극장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아직 무대 위에 있을까요, 그것은 장면을 망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라는 부의의 독백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후 공화국 정부가 축출되면서 부의도 축출되어 자금성을 떠나게 되고 해외를 전전하다가 일본의 도움으로 만주국을 세우고 황제로 즉위한다. 하지만 만주국은 일본의 식민지와 같은 국가이고, 부의는 실제적인 권력을 갖지 못한다. 만주국의 건립은 당시 시대흐름에 부합하지 않는 선택이었고 결국 일본의 패망과 함께 만주국도 사라지게 된다. 이후 공산당 정권에 의해 부의는 반동으로 몰리게 되지만 얼마 후 풀려나 보통사람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영화는 막바지에 홍위병들을 등장시키며 격동의 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마지막 황제는 부의의 생애인 60여 년을 보여주며 중국이 봉건왕조에서 근대,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물론 중간에 구체적인 사건들은 보여주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시대의 변혁과 흐름들을 보여준다. 특정한 사건을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영화는 아편전쟁인데 아편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과 당시 청왕실의 무능, 혼란한 시대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무능한 집권층과 달리 일반백성들의 저항의지는 높게 표현되어 있는 점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청왕실은 화친을 통해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고 이에 대한 울분이 간접적으로 보여진다. 각 영화들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담고 있고 어떤 영화는 사회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한편 어떤 영화는 단지 중국의 관습이나 전통을 드러내는 데에 그친다. 그러나 이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국 근대사회는 혼란과 변화의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어떠한 사회적 필요와 대내 또는 대외적 환경에 의해서 이루어 짐을 알 수 있다. 근대사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중국영화에서 혼란한 사회상황은 개인의 생활이나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가치판단을 흐려지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급격한 변화는 이에 동참하거나 이를 거부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피해자들이 발생함을 볼 수 있다. 한편 중국 근대사에서 나타나는 각각의 사건들과 의미는 중국인들의 문화와 전통,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상은 바로 중화사상이다. 그것은 중국인들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며, 실제로 사회의 변화에 대응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송가황조에 보면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하여 ‘중국이 움직이며 세계가 움직인다’ 는 글귀를 통해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자부심은 근대사의 전개과정에서 의화단운동을 비롯한 각종 개혁운동 들로 나타나며, 각 사건들은 변화의 토대를 제공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중국인들의 대부분이 한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족이 문화의 중심이라는 관점이다. 근대사에서 청의 봉건제도를 멸망시킨 혁명들은 봉건제도를 타파한다는 목적 뿐 아니라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 세운 국가를 부정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마지막 황제에서 부의가 반동으로 몰려서 심문을 받는 과정을 살펴보면, 중국인들이 청(淸)을 자신들의 전통국가와는 이질적인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이 또한 봉건사회를 타파하고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개혁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외세에 대한 배척이다. 당시의 외세의 영향은 혼란한 시대상황을 만들어 냈고, 각종 불평등 조약과 침략을 통해 중국인들은 굴욕을 맛보았다. 이것은 고스란히 영화에 녹아들어 영화의 곳곳에서 외세에 대한 저항과 반감이 나타나는데 특히나 일본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감은 ‘붉은 수수밭’ 등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편 혼란한 사회와 변화 속에서도 그들의 사상과 문화적 전통은 유지되고 있음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영화 ‘변검’과 ‘붉은수수밭’ 그리고 ‘현위의 인생’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변검’에서는 ‘변면술’의 전수를 통해 문화의 유지를 보여주고 있고, ‘현위의 인생’에서는 유교사상과 함께 중국사상의 근간이 되는 도가사상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붉은 수수밭’에서는 제목에서처럼 붉은 색깔이 술, 수수밭 등을 통해 상징적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강렬한 붉은 색의 부각은 중국문화의 색깔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반면에 ‘패왕별희’에서 사회적 변화와 강제에 의해 변질되는 예술혼을 그림으로서 혼란한 상황에서 문화적 전통이 유지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영화에서 나타난 중국인들의 사상은 국민당 정권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패왕별희가 영화 숙제 내에 들어있지 않아서 더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다. 개인적으로 나는 패왕별희를 참 인상깊게 봤었다. 패왕별희는 내가 상상만 해야 했던 문화대혁명시기를 잘 표현해 주었었다. 물론 문화대혁명 시기는 ‘인생’에서 더 자세히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특히 패왕별희는 그런 대혁명시기라는 역사적인 부분과 동성애라는 미묘한 주제까지 얽여있어서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였다. 영화 ‘비정성시’와 ‘송가황조’에서는 국민당 정권이 초래한 유혈사태를 부각시키면서 중국인들의 국민당에 대한 불신이 고조됨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공산당 정권이 주 세력이 되어 중국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게 된 배경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몇몇 영화에서는 봉건제도 하에서의 남녀 불평등의 가부장적 사회를 꼬집고,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예술인에 대해서는 천시하는 구습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홍등’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묻혀지는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였고, ‘변검’에서는 천시 받는 예술가를 그리고 있으며, ‘완령옥’에서도 시대상황에 희생되는 예술인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중국인들의 생각의 기저에 자리잡은 유교사상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되며,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도 별 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근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살펴보고 느낀 것은 중국사회가 근대화되고 발전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건과 혼란, 개혁들이 있었고, 이러한 혼란속에서 희생되거나 동참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의 중국사회가 만들어 졌으며, 사회의 변화를 통해 중국 사회가 발달해 간 것이다. 비록 영화를 통해서지만 중국의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화라는 것을 그냥 가볍게 보면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지만 자기가 얼마나 공부를 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얻느냐는 개인의 노력에 의한 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일본영화 간장선생에 대해 살펴보자. 간장선생이라는 영화는 1945년, 원폭이 투하되기 두달 전으로 일본군의 패색이 한창 짙어갈 2차 대전 말엽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야수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의 표현이 전쟁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시작부터 뭔가 정상적이지 않음을 암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간염·간’이라는 소재에서도 그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전시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의사 아카기 선생은 환자를 돌보는 데 여념이 없다. 간장 선생은 동네 개업의인데 아픈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한달음에 뛰어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아마 간장 선생 그가 한 손에는 왕진 가방을 들고 한 손으로는 휘날리는 모자를 염려하며 엉거주춤 달리기를 하는 장면일 것이다. ‘간장 선생’이란 칭호는 검진하는 사람마다 간염이라고 진단하는 그를 돌팔이 의사로 오해한 동네 사람들이 붙여준 것으로, 조금은 불명예스러움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금석같은 간염 연구 의지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은 처음에는 억지스러운 것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영화가 점점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의 행동과 신념이 인간의 생명에 한 몫의 책임을 가지는 의사로서의 투철한 직업의식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의 시대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군인이나 군의관이 좋은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아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질병에 대한 그의 도전의식은 동시대 일반 사람들에게 무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대학 동창들의 의학회에서 그간의 노력과 연구에 대한 확실한 인정을 받자 조금은 우쭐해지면서, 간염에 대한 연구를 더욱 확고히 하고자 결심을 한다. 이러한 뜻밖의 인정은 그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동네 사람들의 현재 고통을 소홀히 대하게 한 것이다. 그가 간염에 매달려 연구를 하면서 제때에 돌보지 못한 동네 할머니가 죽음에 이르자 그는 갈등에 빠진다. 이는 크게 확대해 보면 간염 연구에 대한 위대한 성과를 밝혀내 국가와 전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과 조그만 동네 주민들의 건강만이라도 극진히 보살피는 일 사이의 갈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결국 그는 후자를 택하게 된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명예와 부의 기회와 소박하지만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할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편 영화에서 또 한 명의 주목해야 할 인물로 '소노코'라는 창녀 아이를 들 수 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창녀였던 어머니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의 죽음 후 간장 선생의 집에서 일을 하면서 점점 성숙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천한 창녀의 일로 생활을 이어 나갈 뿐, 전혀 천박하지 않은 심성을 가진 고운 아이로 나에게 비추어졌다. 물론 천박한 심성을 처음부터 가진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지만 그녀의 생각과 행동들을 보면 왠지 더욱 맑고 순수하다고 느꼈다. 기억에 남는 마지막 장면에서 왕진을 다녀오던 소노코와 아까기 선생은 고래를 보게 된다. 소노코의 의식 속에 항상 내재해 있던 아버지의 고래 이야기와 소노코 자신의 욕망은 고래를 실제로 보게 됨으로써 충족되는 것 같았다. 비록 소노코는 고래를 잡으려다 놓치긴 하나, 더 소중한 가치-정확히 표현되지 않았지만 창녀의 모습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여성의 사랑-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점은 원래 고래는 ‘불운한 이미지’이거나 속된 말로 ‘재수 없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여기서 고래의 의미는 전자의 의미인 것 같다. 이 영화는 군국주의에 찌든 일본 사회를 풍자하여 단지 ‘간염’의 의미가 진단에 의한 병명이 아니라 ‘파시즘’에 대한 비유인 듯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핵폭탄이 터지는 듯한 구름의 모습은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전쟁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였다. 아무튼 전시라는 비극적이고 암담한 상황을 웃음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느낌마저 들게한 이 영화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전쟁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해준 영화로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이번에는 그린 파파야의 향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어린 소녀 무이가 베트남의 어느 집의 식모로 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이는 그 집에서 조용히 가족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크게 된다. 점점 한 사람의 몫을 해 나갈 정도로 커 나가는데, 주인집 아들의 친구를 연모하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식모가 필요하게 되자, 주인집 아들은 무이를 보내주게 된다. 그 아들의 친구는 무이에게 글을 가르쳐주게 되고, 그러면서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나중에 그런 사실을 남자의 약혼녀가 알고 그와 크게 싸우고 파혼한다. 결국 무이와 남자가 결혼하여(그 내용이 확실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무이가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책을 읽으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이런 간단한 영화이지만 사실 영화를 보면서 화면구성이나 음악등에 집중을 해보면 참 아름답고 평화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영화의 배경이나 음악이 무이의 마음을 그려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음악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베트남 전통음악?같은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마치 중국 경극을 할때 나오는 그런 음악종류) 화면은 하나하나 자연을 자세히 클로즈업하면서 무이의 마음을 그리는 듯 했다.(무이는 자연을 아끼는 아이였다. 개미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파파야 안의 씨들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짓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용은 없고 음악이나 화면이 참 예쁘다고 추천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또 한번 역사와 관련지어 보았다. 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보통 정치나 경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도 정치사 경제사를 더 중시하고 사회사나 문화사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여왔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것이 사회사나 문화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나 또한 일명 미시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는 한 개인의 역사도 역사라고 볼 수 있다. 한 개인이 살아온 일대사를 잘 살펴보면 그 속에서 충분히 한 나라의 역사, 세계의 역사를 찾을 수도 있다. 미시사로 대표적인 것이‘마르탱게르의 귀향’이 있다. 한 마을의 어느 한 집안의 엉뚱한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물론 영화로도 나와있다) 이 속에서도 충분히 프랑스의 역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록 그린파파야의 향기가 내용이 없는 것 처럼 보이고 대사도 별로 없지만 그 하나하나에서 여러 가지 그 당시 베트남의 문화나 역사적인 부분도 엿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트란 안 홍의 부인이 그린파파야의 향기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지만 보고나서 많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배경에 마음도 즐거워졌다. 트란 안 홍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 감독은 사실 베트남 사람이기는 하지만 어릴 적부터 프랑스에서 지내왔다. 또한 영화의 배경도 프랑스 스태프들도 프랑스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도 잠시 생각을 하기는 했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마치 서양 사람들이 동양에 환상이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입장에서 베트남을 생각하고 아름답게 그려놓은 것일까?(일종의 오리엔탈리즘처럼?) 부정적으로 봐야 하나 긍정적으로 봐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비록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그 아버지의 영향이나 본인도 어느 정도 베트남을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이 영화를 지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또 그렇게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프랑스의 촬영기법등을 동원해서 베트남을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고도 싶었다. 이 부분은 베트남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입장에서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영화 속의 베트남의 모습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인지 실제인 모습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름답게 표현된 면은 좋지만 또 반면 베트남의 실제적인 모습을 더 살펴보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기는 한다. 이 부분은 더 생각해볼 문제였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고 나의 느낌과 역사와 관련시켜 생각해보기도 하고, 자유스럽게 내 생각을 써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정말 맞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하고 노력하는 만큼 영화에서 얻는 것이 많았고, 생각하는 만큼 영화가 다르게 보였다. 할리우드 영화가 인기를 몰고 있는 요즘. 우리 나라의 영화 그리고 아시아의 영화도 그것 못지 않고 재미있고, 얻을 것도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는 이런 시대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우리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크린 쿼터제를 함으로써 우리영화를 지킨다는 생각을 나는 반대한다. 이런 제도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영화를 보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게 된 계기를 갖게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생각하고 아끼게 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