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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장소상실: 08년 2학기 지리교육과 3학년 김아리

2008.12.21 18:23 | 명예의 전당1: 서평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172 주소복사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

(에드워드 렐프 지음, 김덕현․김현주․심승희 옮김, 논형)

 

 지리교육과 김아리

 

우리는 평소에 장소 그대로의 본질을 간과한 채 장소의 외연적인 모습만을 ‘인증’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혹은 장소의 본질을 잊고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책에서의 중요도의 순으로 우리는 장소를 평가하고 관망한다. 장소는 그의 실존적 내부성을 무시당한 채, 그 가치를 평가절하 당하기 일쑤이다. 장소의 피상적인 의미 만에 중점을 두는 세태가 일반적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장소 안에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장소감은 어쩌다 얻은 멋있는 기술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할 어떤 것이라고 말한 이안 나이른처럼 장소감이 우리와 지대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모습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장소와 장소상실」의 초점은 우리가 살고 있고 날마다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알게 되고 경험하는 일상의 환경과 상황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즉 장소의 현상에 대한 탐구이며 장소경험의 다양성과 강도를 밝혀보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장소와 장소상실의 모습을 확인하며 무장소에 대한 태도와 이러한 태도가 경관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탐구한다.

장소는 지리학의 현상학적 기초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래서 투안은 지리학 최초의 로맨스는 장소와의 어떤 생생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지리학은 장소를 알게 하고 장소를 만들도록 하는 모든 분야의 경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이해하는 공간은 다양하다. 공간은 형태가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고 또 직접 묘사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공간을 느끼고, 알고 또 설명하더라도 거기에는 항상 장소감이나 장소 개념이 관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공간이 장소에 맥락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그 의미를 특정한 장소들로부터 얻는다. 공간과의 관련에서 볼 때, 장소 역시 상호 연관된 의미 복합체이다. 장소는 단순히 어떤 상황에서나 한결 같은 무차별적인 경험현상이 아니다. 장소는 인간의 경험이나 의도 폭만큼이나 광범위한 미묘함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장소로 구별해내는 공간의 특성은 우리의 의도를 유혹하고 집중시키기 때문에 다양하게 분화된다. 모든 장소는 서로 겹치고 서로 섞이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건물이든 자연물이든 확실히 외관이 가장 뚜렷한 장소의 속성 중의 하나이다. 외관은 실체적이며, 묘사할 수도 있다. 장소가 경관으로 이해되고 경험되는 이유가 시각적 특징이 인간 활동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 준다는 직접적이고 분명한 의미에서이든 아니면, 인간의 가치와 의도를 반영한다는 다소 미묘한 의미에서이든 간에, 외관은 모든 장소들의 중요한 특성이다.

공동체와 장소 사이의 관계는 사실 매우 밀접해서 공동체가 장소의 정체성을, 장소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며, 이 관계 속에서 경관은 공통된 믿음과 가치의 표출이자, 개인 상호간의 관계맺음의 표현이다. 모든 장소와 경관은 개인적으로도 경험된다. 우리의 태도, 경험, 의도라는 렌즈를 통해서 우리만의 고유한 환경으로부터 장소와 경관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경관이란 개별적인 동시에 공동의 맥락을 통해 경험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장소들은 우리들에게 구체적이고 특별한 의미로 정의되고, 구체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기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소들이 불러 일으키는 것은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그 당시 나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에 나는 장소의 정확한 특징보다 그 장소들의 분위기를 더 잘 기억하고 있다.”는 말은 이를 잘 나타내준다.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세상을 내다보는 안전지대를 가지는 것이며, 사물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그리고 특정한 어딘가에 의미 있는 정신적이고 심리학적인 애착을 가지는 것이다. 장소는 자체의 특성과 그것이 당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 때문에 장소에 대한 진정한 책임과 존경이 존재한다. 결국 모든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또는 특히 감동적인 경험을 가졌던 장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 장소를 의식하고 있다. 개인은 장소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은 도시나 경관의 물리적 외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경험, 눈, 마음, 의도 속에도 존재한다. 모든 개인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특정 장소에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정체성은 상호 주관적으로 결합되어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장소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한 개인이나 집단에 가지는 그 장소에 대한 정체성이다. 특히 장소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내부인으로서 경험하는가, 외부인으로서 경험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장소를 그 세부적 내용으로만 생각한다면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양성 속에서 공통 요소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의 장소 경험은 직접적이고, 완전하며 대게 무의식적이다. 장소 경험이 여러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하더라도, 장소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요소들의 결합 속에서 경험된다.

장소정체성의 주요 요소는 장소에만 적용되지 않고, 지리, 경관, 도시, 집 등 모든 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발견된다. 그러나 장소의 본질을 이런 것들보다는 외부와 구별되는 내부의 경험 속에 있다. 어떤 장소의 안에 있다는 것은 거기에 소속된다는 것이고 그 곳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더욱 깊이 내부에 있게 될수록 장소와의 동일시, 즉 장소에 대한 정체성은 더욱 강해진다. 내부에서 어떤 곳을 경험한다는 것은 당신이 장소에 둘러싸여 그 일부가 되는 것이다. 정체성 없는 장소는 없다.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일생동안 계속되는 인간의 장소에 대한 정체성과 장소 자체의 정체성은 점진적이고 섬세한 형태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 목적을 얼마나 성취할 것인가는 자신의 문화적, 개인적 가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관찰의 감수성에 달려 있다. 대중적 정체성만을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선입견이나 기성의 태도가 항상 직접 경험보다 더 중시된다. 따라서 이들은 대중 매체가 제공해온 기성의 정체성이나 선험적인 정신적 도식의 틀에 사로잡혀 장소를 관찰하며 이것과 실제 장소가 불일치할 경우는 아예 무시하거나 아무렇게나 설명해 버린다. 장소 정체성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나, 그것은 항상 다른 장소에 대립하여 바로 이 장소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의 기분 바로 그것이다. 진정한 장소감이란 무엇보다도 내부에 있다는 느낌이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장소에 속해있다는 느낌이다. 이 소속감은 고향, 혹은 지역이나 국가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현대의 도시 거주자들은 자기 장소에의 소속감을 갖기도 힘들며, 쉽게 자기 집을 더 좋은 조건의 집과 바꾸기도 한다.

진정성은 자기 존재에 대한 책임을 완전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양한 강도의 진정성으로 장소를 경험할 수 있듯이, 장소는 다양한 정도의 진정성을 가지고 창조될 수 있다. 한쪽 끝에는 무의식적인 설계 전통을 통해 한 문화를 전체적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의식적인 시도가 있다. 진정한 장소 만들기의 가능성은 감소했지만, 장소에 있어서 그런 순수한 자기표현의 가능성과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산업 시대 이전의 무의식적이고 수공업적인 문화의 특징이었던 지방색이나 다양한 장소와 경관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미 소멸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제 보편적이고 익숙한 것이 되었다. 밋밋한 경관은 의도적인 깊이가 결여되고 평범하고 평균적인 경험의 가능성만을 제공한다. 다양한 경관과 의미 있는 장소가 결핍된 일종의 무장소의 지리가 나타날 가능성을 나타낸다. 또한 우리가 현재 무장소성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으며 장소감을 상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획일화현상이 이전 시대와 다른 새로운 점은 광범위한 스케일로 획일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어느 곳에서나 장소 경험이 빈약해지게 된다.

다양성이 인류에게서 사라지고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모방하지 않아도 비슷해지고 있다. 약간의 무장소성은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존재해왔다. 그리고 장소에 대한 관심의 결여가 맥락을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한, 이러한 무장소성은 장소감에 필수적이다. 무장소성은 일종의 태도이며, 이러한 태도가 점점 지배적인 현상이 됨에 따라 깊이 있는 장소감을 가지거나 장소를 진정하게 창출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집의 의미는 이동성의 증가와 이동성과 연계된 기능의 분리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감상에 젖거나 상품화에 의해서도 약화되어왔다. 부동산업자들도 더 이상 주택이 아닌 집, 즉 비싼 집 ․ 상류층 취향의 집, 아파트를 팔기 시작했다. 장소에 대한 진정하지 못한 태도는 관광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관광을 할 때 장소에 대한 개인적이고 진정한 판단은 거의 항상 전문가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의견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관광이라는 행위나 수단이 방문하는 장소보다 더 중요해 지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안내책자에 표시된 별표가 몇 개인지만 확인하고는 서둘러 다음 장소로 향한다. 그들은 그 장소를 경험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비진정성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여행의 목적은 독특하고 다양한 장소를 경험하기 보다는 그 장소를 수집하기 위한 것 같다.

장소에 대한 진정하지 못한 태도는 여러 가지 프로세스를 통해 전파되는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매체가 무장소성을 직간접적으로 조장한다. 이 매체들은 장소들이 서로 비슷해 보이게 할 뿐 아니라, 비슷한 느낌을 주며 똑같이 무감동한 경험을 하도록 장소의 정체성을 약화시켜버린다. 이 프로세스들이 그 자체로 반드시 무장소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이런 것들이 경관을 변하시키는 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미 있고 다양한 장소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데는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길은 본질적으로 20세기의 창조물이며, 인간의 교통수단이 연장된 것이다. 이 길은 장소들을 연결시키지 않고 주변 경관과도 관련이 없다. 일반적으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것 같지만, 우선적인 요구 조건은 장소를 연결시키거나 장소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출발지로부터 막연하게 어딘가로 가는 것이다. 길, 철도, 공항은 경관과 함께 발전하기보다는 오히려 경관을 위압하고 가로질러서 경관을 토막 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무장소성의 표현이다. 이들 교통수단은 다양한 생활방식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넘어서 무장소성의 확산을 조장한다.

획일적인 상품과 장소는 획일적인 욕구와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며, 역으로 사람들이 획일적인 욕구와 취향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러한 획일적인 상품과 장소에 의한 것이다. 타자지향장소의 극치는 아마도 환상적인 디즈니랜드, 가공적인 역사 공원, 미래 지향적인 박람회 같은 엄청나게 거대한 오락공원일 것이다. 디즈니화로 인해 실제 지리 환경과 거의 관련이 없는 부조리하고 인공적인 장소가 역사, 신화, 현실과 환상의 초현실적 조합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디즈니 월드와 그와 유사한 것들은 세계 곳곳에서 모아온 역사와 모험을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조형적으로 만들어 내보이며, 이것들을 암시적이든 명시적이든 기술공학적인 유토피아전망과 결합시킨다. 이러한 환상적인 가짜 장소들은 단순히 가족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며,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몇 안되는 것으로 간략히 처리해 버리기 쉽다.

이런 환타지 랜드는 단조롭고 타락하고 무능력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기분 좋게 미소 짓는 영감의 장소이다. 이에 더하여 그런 곳들은 미리 보장된 흥분, 오락, 흥미를 제공하는 유토피아를 어느 정도까지는 진짜처럼 보여준다. 반면에 이런 곳은 우리가 직접 여행을 해보거나 상상해 볼 기회나 노력을 소용없게 만들어 버린다. 사실 디즈니화는 현대 서구 문화의 주류에서 볼 때 우연히 발생한 피상적이고 제한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 그것은 자연과 역사를 객관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대중적이고 키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화는 그런 지배를 가능하게 만든 기술적 성취에 숨겨진 어떤 태도를 독특한 모습으로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미래화는 주목할 만한 무장소의 형식이다. 새로운 스타일과 테크닉을 지속적으로 추구함으로써 계속해서 장소를 파괴하며, 마침내 시간과 전통이 장소에 부여한 진정성까지 부인해버리기 때문이다.

광고나 포장이든 아니면 상품 자체이던, 대량 생산과 관련된 기업들은 결코 기회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러한 활동은 획일적인 취향과 유행을 강요함으로써 그러한 대중문화를 유지 창조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사실 국가는 공공 주택이나 자원 관리 같은 부문에서 대기업과 같은 많은 기능을 한다. 이런 국가적 표준화가 법률상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법률 역시 직간접적으로 토지 이용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개발과 입법을 통제하고 있다. 국가나 지방 정부는 경제 발전과 공간 계획에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장소 만들기나 장소파괴에 엄청난 영향을 행사한다. 국가는 근대 사회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기술과 산업, 경제 체제에 보조적 존재로서 기술과 산업경제체제 역시 무장소성에 대한 적잖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진정한 경험과 관련된 장소의 의미와 다양성의 깊이가 대부분의 현대 문화에서는 크게 약화되었다. 점차 의미 있는 장소들이 사라지고, 무장소의 지리를 향하고 있으며, 밋밋한 경관, 의미 없는 건물 패턴들이 늘어가고 있다. 무장소의 지리에서는 개개의 장소들이 피상적이고 판에 박힌 이미지로 경험되며, 사회 및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불명료하고 불안정한 배경으로만 경험된다. 장소와 무장소간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관계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지리적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장소의 전반적인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장소성을 현재적 경관이라는 동시대적 맥락위에 올려놓고 경관 경험의 주요 측면들을 밝혀야 한다. 무장소성은 이러한 현대경관의 맥락 속에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경관의 본질적 부분이며, 그 산물이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서 현대 경관은 일반적인 편리성과 고도의 효율성의 지리를 갖추고 있다. 비록 그 깊이와 다양성이 부족하고, 과거의 지리를 모두 말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경관이 최근의 현상이기 때문에, 그 특징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든가 편리성과 효율성이 반드시 부조리와 무장소를 야기한다거나, 혹은 현대 경관에서는 매우 의미 깊은 장소들이 생겨날 전망이 없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일상생활은 더 이상 일정한 범위를 가지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전통적 의미의 장소에 대해 어떤 애착이나 정체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소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장소는 우리의 생활양식에 큰 영향력과 파급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장소든 무장소든 일상생활에서 삶에 시나브로 스며들어, 우리는 장소가 바뀌는 행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무장소의 지리가 그냥 필연적이고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경관의 한 특징에 불과하다고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전통적 장소성이 뿌리 뽑히고 그 뿌리 뽑힌 장소를 우리는 흡사 진짜라는 신념을 가지고 현시대를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봐야한다. 저자가 말한 장소의 진정성도 우리는 어쩜 잃어버린 채 살지는 않는가 말이다. 자본주의는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장소의 창출을 시도하고 있다. 흔히 자본과 권력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를 가지는 이러한 새로운 장소들의 창출과 홍보는 때로 은밀하게 이루이지지만, 때로 매우 노골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이른바 장소마케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소들은 가시적인 정체성을 자극한다고 할지라도 장소의 뿌리내림, 즉 존재론적 안전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다른 한 사항은 복원되어야 할 미래의 장소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미래 장소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유토피아적 상상력에 기초한 미래의 장소를 실현하기 위하여 실천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서, 진정한 장소성은 장소의 외형적 환경의 본원과 이에 대한 의도적 의미부여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한 실천과정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것이다.

장소의 의미는 그 물리적 형태와 마찬가지로 덧없는 것이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관 경험의 근본적 토대는 점점 더 무장소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다. 무한한 수요의 결과가 될 끊임없는 장소 박탈에 대항할 가장 좋은 무기는 사람들의 장소에 대한 감성을 재생시키는 것과 무장소성을 초월하는 데에서 찾아야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고, 그런 장소들을 개조하고 그 안에 거주함으로써 장소에 진정성과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장소가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뿌리와 배려를 허용하게 될 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아마도 가능 할 것이다. 장소가 우리에게 중요하다면, 뿌리 뽑히고 점점 높아지는 지리적 이동성과 무장소로 인한 정신적인 결과와 도덕적 문제를 우리 모두가 정말 걱정한다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진정으로 장소 만들기를 위한 접근 방법을 탐구해야 한다. 장소는 생활세계가 직접 경험되는 현상이고 개인과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원천이며, 때로는 사람들이 정서적, 심리적으로 깊은 유대를 느끼는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끄집어냄으로써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장소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믿어왔던 우리에게, 그것이 어떤 수단의 개입으로 어떤 연유로 말미암아 변화가 초래되었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물론 해결책은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그의 주장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역시 그 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던 일들이 공간을 통해, 우리가 믿는 장소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장소에는 완전히 무심했던 우리에게 반성적 성찰을 제공해주는 하나의 지침이 아닌가 싶다. ‘장소 그 자체가 나’라는 말처럼 장소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훌륭한 매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편협한 지적․사회적 관행이나 유행에 따르지 않고 장소를 음미하려는 노력을 동반해야할 것이다.

 

 

※참고자료

- 【장소와 장소상실】(에드워드 렐프 지음, 논형, 2008, 서울)

-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장소성의 상실과 복원】, 최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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