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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사상사 강의노트 서평 박창민 4학년을 마치며 잠시 생각해 본다. 지리의 오늘날 사회에서 학문으로서 인정 받고 있을까?나는 지리가 정말 흥미 있나? 지리학이 많은 발전은 한것은 사실이다. 많은 학회, 도서관의 지리서적들...하지만 내가 지리를 전공하는 입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생각해보면 아니다. 취업난에 허덕이고 경영대와 의대 치대, 법대등의 그늘에 가려 지리는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진로가 아니면 취업하기 힘든 과목인 것이다. 지리를 전공하면서 16,7세기와 같이 지리학이 인정받은 시기로 돌아갔음 하는 맘이 든것도 사실이다. 사회에서는 역사만 부각되는 현실이 더욱 싫었다. 두 번째 질문, 나는 지리에 흥미있어냐 하면, 흥미있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부끄럽지만 책을 통해서가 아닌 게임을 통해서이다. 일본의 코에이사의 ‘대항해 시대’ 라는 게임은 지리가 정말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게임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포르투갈, 에스파냐의 국적을 갖고, 황금의 나라 지팡그, 세계 각지의 보물을 찾고, 무역을 하는 비록 어린시절 한 때 흠뻑 빠진 게임이지만, 이 게임,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3학년 무렵이 되어서야 느꼈다. 지리사상사 강의노트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지리학의 전성기인 신항로 개척이 아닌 그 후 국가주의, 근대 시기부터 현대의 패러다임을 알기 쉽게 나타낸 책이다.
근대 지리학의 시작을 독일에서 출발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독일은 지리학에 사회적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독일 정부가 그러한 지지를 아끼지 않은 이유는 바로 지리가 독일 민족주의의 이념적 토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리를 통한 국토의식이 독일 민족주의의 토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리라는 과목을 통해 독일이란 영토가 하나의 등질지역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인식시켜 줌으로써 인위적인 국경으로 분열돼 있던 상황을 극복하고 유럽 안에서의 내분도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지리학자도 없고 지식이 정리되지 않는 상황 즉, 지리학이란 분야에 대한 어떤 체계적인 연구가 없는 상황이여서 제대로 된 지리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리학과 교수를 임용할때에도 3가지 분야의 교수들이 임용되어 각자 주장하는 이념과 사상이 달랐다. 지질학과, 역사학과, 생물학과가 각각 그것이다. 지질학과와 역사학과는 서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평행선을 그었으나 그 사이에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것은 생물학과의 공이 컸다. 라첼같은 생물학과 출신들은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그것이 바로 독일 근대 지리학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하나의 생물로서 인간은 바라보는 것이 바로 근대 지리학의 시작이다. 그런 입장이 라첼로부터 시작해서 독일 지리학을 규정짓는 가장 독특한 특징이 되었다. 18세기 말까지 자연과학 만능주의와 이성을 강조하는 합리주의가 19세기 부터는 이성보다 감성을 강조하며 인문학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낭만주의 사조가 나타났다. 이 낭만주의에서 지리학의 대표적인 두 사람이 바로 훔볼트와 리터이다. 훔볼트는 여행이 아닌 답사의 형식을 처음으로 체계화 시켰다. 특히 남미지역을 답사하며 남긴 『남미답사기』는 후에 진화론을 제창한 다윈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훔볼트를 자연지리학의 아버지라 하지만 그의 주전공은 식생지리학이여서 그런지 정작 지리학에서는 그의 이론이 잘 다뤄지지 않는다. 훔볼트는 식물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나무 하나하나가 아니고 숲을 보듯이 그렇게 생태계를 중심으로 해서 지역을 인식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견해는 후대의 지리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리터는 훔볼트보다는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환경 때문에 해외지역으로 답사를 가본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가 저술한 지역지리서인 『에르트쿤데』는 상당히 잘 쓰여진 책으로 호평을 받는다. 지리학에 있어 리터부터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는 리터가 바로 지리학이 하나의 학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진 가장 최초의 학자이기 때문이다. 지리가 하나의 학문으로서 의미가 있을까 이런 문제를 직접 글로 쓰고 고민했던 사람도 리터이다. 리터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라고 하는 전제 위에서 총체성이 지역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목별로 나열하는 지역지리를 넘어서야만 지리학이 하나의 학문으로서 정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총체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지리학은 학문으로서 독자적인 논리를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1859년 훔볼트와 리터가 사망하고 그 해에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다. 쿡 선장의 북극항해로부터 과학적 탐사와 답사의 전통이 생겨나서 포르스터를 겨쳐서 훔볼트, 다음 다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진화론이 미친 학문적인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사물을 시간의 변화라는 틀에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유기체와의 비유나 유추를 통해서 사물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이제 인간과 사회현상도 생물에 비유하여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다시피 하였으며, 학문연구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생물 종과 환경이라는 다윈 진화론의 틀에서 생물 대신에 국가와 사회를 대입한 것이 바로 라첼의 환경결정론이다. 흔히 생각하는 환경결정론, 즉 기후와 지형 때문에 민족성이 어떻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몽테스키외가 집대성한 것이다. 라첼은 민족성이나 주민의 기질 차이 등은 지리적 현상으로서,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고 지리적 연구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화의 전파, 확산 과정과 이동 경로를 지리학의 주요 연구대상으로 정립한 것도 라첼의 큰 공헌이다. 라첼은 환경에 대한 적응과 문화가 확산되고 이동되는 것, 그 두가지를 통해서 생활공간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는 생활공간이 형성되는 과정을 한 사회집단이 지표상에서 운동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는데, 그 과정 가운데 하나는 적응이고 또 하나는 확산과 이동이다. 라첼은 국가도 생물에 비유하여 국가 유기체설을 주장하였다. 국가의 영토가 늘어나고 축소되고 하는 흥망성쇠의 과정 자체를 생물체가 출생에서부터 사멸에 이르는 과정으로 그렇게 비유해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20세기 지리학의 흐름은 사상적으로 보면 환경론에서 지역론으로, 리히트호펜에서 헤트너로 넘어간다. 헤트너는 지리학의 본질이란 지역지리라고 확신하였다. 헤트너는 계통지리학은 법칙정립적인 학문이고, 지역지리학은 개성기술적인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계통지리학의 법칙들이 지역지리학 연구에 활용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였고, 궁극적으로 지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지역지리학이라고 생각했다. 2차대전 이후 전쟁후 통계학의 발달과 더불어 지리학에서도 지역지리에서 계량지리로 현대화된다. 그 역할을 하는 학자는 쉐퍼로 그의 논문 지리학에서의 예외주의라는 논문은 지리학을 계량혁명, 일반화를 이끌게 된다. 이후 논리 실증주의를 비판하면서 인간주의 지리학과 맑스주의 지리학이 등장한다. 지리의 악용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지리가 꼭 필요했다. 민족애 조국애, 향토애 등등 어느 장소, 국가에 소속되 있고 소속감으로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근대의 지리는 통치자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했었다. 독일의 경우가 그러했고 이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의 경우 북부와 남부의 빈부의 차와 이질감은 오늘날도 상당하지만 통일전의 경우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통일 후 하나의 국가의 국민을 만들기 위해 악용된 점이 지리 였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 과거의 경우 하나가 되기 위해 교육을 통해 주입을 시켰다면 현대는 스포츠를 통해서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08올림픽에서 보여준 한국의 경기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데 기여했고, 역시 통치자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들과 대통령은 이를 이용해 선수들과 같이 국민들도 하나가 되어 열심히~~ 라며 격려했던 걸 본 것 같다. 또한 중국의 경우 올림픽 개최를 통해 과거와 같은 중화사상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여러 소수민족과 경제발전에 소외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데 가장 큰 수혜라 할 수 있겠다. 지도는 지리의 충분조건이다. 다시 말해 가장 지리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지도라 할 수 있는데, 지도를 통해 지리가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맥킨더의 심장지역이론이 그 예이고 또한 독일에 의한 체코의 침공,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그 예이다. 제국주의 국가는 정복, 침략의 구실을 찾기 위해 어떠한 명분이라도 동원을 하였고 그중 하나가 지도상의 영역의 경계, 형태였다는 것이다. 한국의 통일을 바라건 바라지 않건 하나의 나라가 분리된 것도 지정학적인 이유였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 속에서 힘의 균형에 의한 분리, 주한 미군의 한반도 주둔, 체첸, 그루지아 사태를 보면 아직도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힘에의한 지배와, 지리의 힘을 알 수 있다. 환경결정론과 진화론에서 보여주는 환경에 순응하는 인류, 이는 선진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연시 받아야하는 이론으로 악용되는 점이 근대의 지리학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이러한 고정관념이 아직도 지리를 가르쳐야하는 학부생들에게 뿌리깊게 박혀있고, 많은 학생들과 일반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2008올림픽이 열리게 전 태릉선수촌을 방문하여 선수들을 격려하는 대통령을 티비에서 봤다. 당시 수영선수들을 격려하는데, 경기장 시설에 대한 애로사항을 들으면서 말레이시아보다 시설이 낙후됐다는 건의보다는 그런 나라에서도 수영을 하냐는 말을 보면서 어쩌면 국가의 대통령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런 편견을 갖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미국과 일본의 원수를 만나면 굽신거리는데 말이다. 이는 그만큼 진화론적인 사고가 이미 고정관념 속에 뿌리 깊다는 점을 나타내는 한 예이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고정관념에서 탈피했다고 자신했지만 그것은 수업을 들을때 뿐인 걸 느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중국 유학생들이 굉장히 많은데, 왜 이런 애들이 여기에 오는 걸까, 그들이 중국어로 대화하며 지나가면 눈살찌푸리고, 임용을 보기 전 고시원에 나와서 살면서 옆방에 중국 유학생이 살자 왠지 문단속을 더욱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지리학의 현대적인 경향이 비판적 사회공간으로 흐르지만, 여전히 지리학이 악용되며 이를 고치는 것이 숙제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지리학이 폐과되며 지리학의 학문적인 권위가 많이 실추된 것은 부인 못한다. 지리학의 부흥을 위해서, 지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많은 지리학자와 지리교사들의 지리학의 바른길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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