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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장소 상실: 2008년 2학기 지리교육과 3학년 김명지

2008.12.19 20:43 | 명예의 전당1: 서평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170 주소복사

장소와 장소상실

65529 김명지

 

이번 학기동안 유달리 장소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다. 지리교육론 시간에 들은 장소감의 개념부터 해서, 자본주의와 관련한 무장소성, 광주답사를 통한 광주의 진짜 장소는 무엇인가 등등,,, 그리고 어느 순간 관심을 가지게 된 장소마케팅이라는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이 모든 생각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특히나 장소마케팅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책에서는 장소마케팅 부분을 거짓장소라고 하여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나는 이런 주장이 너무 이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의 말에도 모순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마케팅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은 축제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축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함평 나비축제가 계기가 되었는데, 나비라는 것은 다른 곳에서 들여왔기에 꾸며진 공간일 수 있으나, 이제는 함평 주민들조차 그것에 만족하고 군민들의 자발적 협조로 꾸며지고 축제자체가 그들의 삶과 직접 관련성을 갖춘게 되었으니 이 곳은 이제 그들에게 의미 있고, 그들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또한 나비축제라는 것은 2008년 깡촌이었던 함평을 엑스포가 열리는 곳으로 바꿔 놓았을 정도로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탈바꿈 시켰다. 이렇게 블루오션을 개척해 장소마케팅을 해 놓은 함평의 사례를 볼때 이런 나비축제라는 공간이, 나비축제라는 장소마케팅이 주민들에게 단순한 공간이 아닌, 그들의 삶의 터전이며 그들에게 매우 의미있는 곳이 아닐까? 물론, 장소마케팅에서 함평축제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일수도 있겠지만,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간으로서의 장소마케팅도 있는 것인데, 단순 그러한 장소는 재현된 공간, 거짓된 공간이라고 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저자도 말했듯이 세상에 완벽히 참된 공간은 없다. 그러나 이렇듯 참된 공간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조차도 외면하진 말았으면 한다.

지리교육론 시간에 교수님께서 누군가에게 너의 장소감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그러나 지목당한 학생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역시 그 질문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나의 진짜 장소감이 무엇일까? 교수님께서는 장소감이란 마음속의 ‘코라’라고 하시면서 장소에서의 지리적 사상에 대한 지식과 장소 안에 거주하는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세계가 결합하여 생성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장소감에는 장소에 대한 지식, 장소와의 일체감, 입지감, 존재를 위한 생존 공간을 만들고 지키려는 영역감,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소속감과 애착까지 포함하는 장소소속감, 장소에 대한 호기심 등이 포함되며 크게는 장소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과 관심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 장소감으로는 향수, 소속감 등이 있고 지리교육에서는 향토애, 국토애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개인의 정체성은 장소에 대한 소속감을 통하여 획득된다. 따라서 진짜 나를 알기위해서는 내가 어떤 장소에 소속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 크게는 광주라는 곳, 그 중에서도 문흥지구, 7년간 살아온 광주집, 15년간 살아온 고향집인 무안, 내가 다니고 있는 전남대 사범대학 건물(지리교육과 강의실, 학회실 등), 사이버공간(싸이월드 미니홈피).... 내가 가장 장소감을 갖는 곳은 광주집, 또 미니홈피 공간이었던 것같다. 나를 씁쓸하게 했던 것은 학회실이었다. 학회실이라는 장소는 지리교육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갈수 있는 곳이지만, 1학년 때부터 자주 가지 않았던 곳이라 그런지 가면 나 스스로도 어색해하고, 벗어나고픈 공간이 되버린 것 같다. 이처럼 학회실은 나에게 공간일 뿐이지 장소는 아닌 것이다. 이제, 크게 봐서 나에게 광주의 장소감은 무엇일까? 지리는 경험의 학문이기에 광주의 장소감을 느끼려면 답사를 통해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학기 동안 광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경관을 보고 광주의 장소를 거주민의 삶과 관련하여 생각해보았다. 특히 재개발지구에 관해선 장소라는 측면에서 볼때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주거환경개선사업 학동 2지구(학동 8거리)가 생각난다. 이곳은 총 5개의 팔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중심의 팔거리에서 서서 보면 모든 지역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사통팔달된 형태를 띠고 있고 길 사이사이로 주거지가 들어서 있어 전체적인 주거지의 모습은 협소하게 밀집해 있다. 5개의 팔거리중 한 곳에는 정각이 세워져 있어 어르신들의 모임 장소로 활용되고, 중앙의 팔거리에서는 당산나무로 추정되는 제법 큰 나무가 드리워져 있었으며 마을 회관은 아니지만 주민들간의 왕래가 잘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광주라는 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주민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팔거리 주거지역은 일본에 의한 것인데 군국주의 시절의 일장기를 이곳에 형상화시켜 만든 것이라 했다. 처음에는 그런 의미의 팔거리라면 조금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팔거리라는 특이한 장소에 사람들이 느끼는 애착을 생각하니 형태 쯤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일제에 의해 계획된 주거지로서 팔거리라는 특이한 주거지, 피난민 촌의 형태까지 남아있는 이곳이 머지 않아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인해 사라진다고 한다. 직접 살고 있는 주민의 입장이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이지만 광주광역시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일제에 의해 개발된 팔거리라는 특이한 주거지 형태가 남아있는 곳이 과연 몇 곳이나 될까를 생각하면 아파트를 짓기 위해 이곳을 없앤다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답사 중에 만난 어르신들 역시 팔거리를 밀고 아파트를 짓는다는데 대해 그리 달갑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팔거리 정각에서 만난 어르신 중에서는 오래 사신 어르신들에 대해서 경로잔치도 없이 이주하게 한다고 하여 서운한 감정까지 내비치신 어르신까지 계신다고 하셨다. 이에 대해 우리 답사팀도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팔거리 주거지 형태를 없애는 것이 타당한가를 가지고 차량 안에서 약 30분 이상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까지 했다. 팔거리를 보존하는 것이 가치 있는 짓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인가,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이 무조건 밀어버리고 아파트만 짓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주거환경만 좋아진다면 살던 집,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길 같은 것들은 모두 버려도 상관없는 것인가? 팔거리를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행위는 이제 주민들에게 옛 추억을 지워버리고, 이제는 아무 의미 없는 진짜 거짓된 장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아파트가 들어오면 예전의 당산나무에서 서로 얘기하던 그런 장소는 옛 추억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파트가 들어오면 사람도 또한 바뀌게 될 것이다.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장소를 빼앗기고 장소에서 뿌리뽑힌 사람들의 항의는 장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경관 계획과 재개발이 이것을 명백하게 무시한 채 진행된다는 사실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특징적인 장소들을 부주의하게 없애버리는 장소훼손의 무장소화, 규격화된 경관 만들기는 지양되야 할 것이다.

팔거리 답사를 통해 장소감을 형성하는 것은 개인이 그 곳의 물리적 환경과 맺는 관계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상호 작용이라는점, 장소란 본질적으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고, 장소의 외관이나 경관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장소를 공동체의 한사람으로 경험하든 개인적으로 경험하든 거기에는 보통 긴밀한 애착, 친밀감이 생기고 이런 애착이 장소에 뿌리를 내리게 한다. 또한 장소에 애착을 갖게 되고 그 장소와 깊은 유대를 가진다는 것은 인간의 중요한 욕구이다. 이렇게 뿌리를 내리는 것은 하나의 안전지대를 가지는 것이기에 이런 장소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야 말로 장소에 대한 돌봄과 아낌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런 종류의 애착이 나에게는 강한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의 집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주택과 동일해졌다. 집은 어디에든 있을 수 있고, 단순 금전적 가치로 측정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따라서 현대인은 집 잃은 존재,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 애착을 상실한 면도 보인다. 집이라는 장소는 인간 존재의 토대이며 모든 인간활동에 대한 맥락뿐 아니라 개인과 집단에 대한 안전과 정체성을 제공한다.

 

책을 보다 보니 피해야 할 장소에 대한 정체성으로는 대중적 정체성이란 것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집단과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발전해왔다기보다는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에 의해 주어지며, 사람들에게 기성품으로 공급되고, 대중매체, 특히 광고를 통해 살포되는 것으로, 이런 정체성은 가장 피상적인 장소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을 내세워 마치 완벽한 생활공간인 양 광고하는 아파트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가짜 장소들로 이루어진 가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중적 정체성은 장소에 토착하지도 않고 소속감도 없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장소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는 집보다는 조건의 집과 바꾸고 있는 듯 하다.

 

장소감과 참된 장소만들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진정한 장소감이란 무엇보다도 내부에 있다는 느낌이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장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다. 이 소속감은 집이나 고향 등에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장소감은 개인의 정체성에 중요한 원천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에 대해서도 정체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향은 주위 환경과 경관을 고려하면서 다양한 의도와 가치의 상호 작용을 반영하는 진정하게 창조된 장소와는 유리된 채, 진정성이 없는 비장소적인 도시 영역·범세계적인 경관, 그리고 무장소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무장소성의 모습을 살펴보자. 우선 무장소성이란 쉽게 말해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각 지역과 장소의 고유한 특성들이 사라지고 개성을 잃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또한 장소에 대한 진정하지 못한 태도가 무장소성을 만들고 있다. 장소에 대한 진정하지 못한 태도는 본질적으로 장소감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진정하지 못한 장소에 대한 태도는 ‘키치’라는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키치는 장소가 물건으로 취급되는 진정하지 못한 태도이다. 이 경우 대개 인간은 장소로부터 소외되고, 하찮은 것이 중요하게 되고 중요한 것이 하찮게 되며, 환상적인 것이 현실이 되고 진정한 것이 평가 절하된다. 이런 사고에서 오늘날 주택이란 ‘거주를 위한 기계’로 취급되고, 사실상 시장성 있는 교환 가능한, 센티멘털한 ‘상품’이 되어버렸다. 또한 관광객을 위한 표준화한 장소경험도 문제이다. 다른 누군가가 구경할 가치가 있다고 정해준 예술 작품이나 건축물을 관람하는 가이드 여행은 진정성이 없다. 이런 점에서 답사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틀린 것이다. 실제 섭지코지라는 올인촬영장에서 관광객들은 주위환경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고, 그 장소를 경험하지 않는다. 단순히 올인촬영장에 방문했다는 것, 나중에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말하기 위한 것에만 관심이 있다. 여행의 목적이 독특하고 다양한 장소를 경험하기 보다는 그 장소를 수집하기 위한 것 같다고 한 점은 너무 공감됐다. 나 역시 여행을 통해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경험하기 보다는 사진 찍는데에 급급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답사때 울룽도 주민들과 인터뷰를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경험하고, 인간 삶, 삶의 터를 이해하고 오는 것이 여행의 진짜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테크닉과 기술로 무장소성이 되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을 위해 단독 주택을 고층의 사무실로 대체하고, 수력 발전소 건설을 위해 인디언의 땅을 수몰시키는 행위들. 이처럼 장소는 효율성에 침해되어 사실상 아주 부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생활과 가치보다 추상적, 경제적, 공공적 이익을 강조하는 접근의 편협성은 심각한 비진정성이다. 이것은 기술을 우선시하는 계획으로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알고 경험하는 장소와는 유리된 것이고, 장소를 아주 가볍게 보아 무시하고 말살하는 것이다.

무장소성을 직,간접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매체들은 장소들이 서로 비슷해 보이게 할 뿐 아니라, 비슷한 느낌을 주며 똑같이 무감동한 경험을 하도록 장소의 정체성을 약화시켜 버린다. 매스컴, 대중 문화, 대기업, 강력한 중앙 권력,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경제 체제가 바로 이런 매체들이나. 매스 커뮤니케이션부터 보자. 옛길은 분명히 하나의 장소로서, 여행자를 경관 속으로 직접 끌어들이고 사회적 접촉을 하게끔 만드는 기본적으로 장소가 연장된 것이었으나, 오늘날의 길, 철도, 공항은 경관을 위압하고 가로질러서 경관을 토막내므로 그 자체로 무장소성의 표현이다. 교통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은 대면접촉의 필요를 줄이고, 이로 인해 장소에 기반한 공동체의 중요성이 감소했다. 요약하자면 매스 커뮤티케이션은 경관의 획일성을 증가시키고, 일반적이고 표준화된 취향과 패션을 조장하고, 장소의 다양성을 감소시켰다.

대중문화는 말 그대로 하자면 대중의 문화이나 실상은 대중 자신이 개발 고안한 것이 아닌 위로부터 일반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따라서 획일적인 상품과 장소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서브토피아 경관, 디즈니화, 박물관화, 미래화가 가져온 타자 지향적 장소에서 나타난다.

책에서는 타자 지향 장소들로 관광을 들었다. 틀에 박힌 관광 건출물과 인공 경관, 가짜 장소라는 측면에서 장소를 파괴한다고 보았다. 원주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관광코스에서도 출퇴근하는 원주민만 있을뿐 더 이상 그들의 진짜 삶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보면 공감이 되기도 했다. 또한 관광의 경관을 타자 지향 건축물이라고 불렀다. 이런 건물들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가짜 장소는 어디에나 만들 수 있는 자본의 논리에 씁쓸하면서도 휴식처를 갈망하는 현대인들. 내가 가장 가고싶어하는 곳은 하와인데, 그 이유는 하와이 해변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학생인 나로서는 돈 부담이 되어 하와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는 중국 하이난에 가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나 역시 타자 지향적인 장소를 가보고자 했으며, 관광을 할때 유흥만을 즐길뿐 주민들의 생활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나같은 사람이 많으니깐 거의 모든 관광이 키치적이고 타자 지향적인 장소가 되어가는 듯하다. 이런 타자 지향 장소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이 디즈니랜드였다. 인공적인 장소이며 환상적인 가짜 공간이었다. 역사의 보존, 재구성, 이상화로서 '박물관화'라는 문제점도 있었다. 몇 년 전 안동하회마을을 엘리자베스여왕이 방문했고, 류시원의 집에서 영국 여왕을 위한 잔치를 열었는데, 사실 그집은 원래 하회 마을에 있던 집이 아니라 서울에서 철거되는 일제 시대 한옥을 안동으로 가져 온 것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마을로 유명한 안동마저도 박물관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짓 정체성보다는 정체성이 없는 편이 나은 것인지는 차차 생각해보아야 겠다. 미래화는 의식적인 미래적 경관, 장소만들기로 대규모 국제 박람회가 대표적이다. 이것 또한 '국제적'이면서 무장소적인 것이 된다고 하였다.

오늘날 ‘장소의 소멸’ 또는 ‘장소성의 상실’에 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성의 상실을 초래한 자본주의 발달과정은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장소의 창출을 시도하고 있다. ‘장소마케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장소들은 가시적인 정체성을 자극한다고 할지라도 장소의 뿌리내림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지만, 함평 나비 축제의 사례나 볼리비아의 소금호텔관광만 보더라도(자연환경인 소금호수를 이용한 주민들의 삶과 연관된 장소마케팅) 어느정도 희망은 있는 듯하다.

 

내가 꿈꾸는 진정한 장소만들기는 공동체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대의 몰개성적 지역과 장소가 만들어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무장소성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들의 의도적, 창조적 지역 및 장소만들기가 의욕적으로 진행된다면 희망은 있다. 이는 거주민들의 정체성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자본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장소마케팅이라고 하는 것은 지역과 장소의 차별화 전략은 세계화 시대의 치열해진 지역간 경쟁에서 낙후되지 않기 위한 지역주체들의 경쟁력 강화 전략이므로, 장소를 파괴하지 않고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을 키우도록 머리를 한번 굴려봐야겠다. 의식적으로 진정으로 장소 만들기를 위한 접근 방법을 탐구해 볼 것이다.

 

장소의 획일화, 상품화된 가짜 장소인 무장소성이 아닌 거주민에게 의미있고, 경험으로 가득찬 참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로 남게 되었다. 앞으로는 장소에 정체성을 느끼고, 경관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지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장소를 알게 하고 장소를 만들도록 하는 모든 분야의 경험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 그래서 나도 관광에 관심이 있는 만큼 피상적인 경관이 아닌 인간의 삶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모색해 봐야겠다. 또한 앞으로 어떤 장소를 경험하든 감정이입적 내부성을 키우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장소를 의미가 풍부한 곳으로 이해하며, 그곳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니깐 말이다. 우리는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공간 속에 우리의 인성을 투영하며, 공간에 감성의 끈으로 묶여 있다. 즉, 공간은 단순히 지각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앞으로 재개발 등 도시계획을 한다면 도시공간의 경험을 위한 계획을 해야 할 것이다.

 

공간은 객관적 차원이고, 장소는 주관적 차원으로 개인이 의미를 부여한 공간으로, 같은 공간이나 개인에 따라 의미, 무의미한 곳이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장소를 볼때 너무 겉핥기식으로 보고 있진 않을까? 우리는 파리의 에펠탑을 보면서 아름다운에 넋을 빼앗기고 환성을 지르지만, 그 이면에는 아픔이 있다. 에펠탑을 지을 당시엔 공사기술이 발전되지 않아, 광대들이 고공에서 철탑을 하나하나 쌓았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이 있었고, 겨울철에는 너무 추워 만지면 붙어서 손가죽이 찢기는 고통을 당했다고 한다. 다음번에 관광차 파리에 간다면 에펠탑에 여전히 남아있는 살점들을 보아라. 우리에게 단순 아름다운 곳이, 그들에겐 고통의 장소일 수 있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봤음 싶다.

 

*참고자료

[세계화 시대의 세계지리 읽기], 옥한석, 한울, 2005

[지리교육학의 이해], 서태열, 한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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