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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1/04
 

축제와 저항의 새질서: 촛불집회의 정치사회적 의미 토론회(08-06-07)

2008.11.24 21:37 | 스크랩북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167 주소복사

“축제와 저항의 새 질서"


민운연, ‘촛불집회의 정치·사회적 의미’ 토론회

정리=이재환 김현연

시민의 ‘욕망’ 민주주의 선진·급진화 진전으로

 

 

축제와 저항이 한데 어우러진 촛불문화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7일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주최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촛불문화제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촛불문화제에서 드러난 사회운동의 주체, 이슈, 소통양식 등의 변화와 이명박 정부 초기 발생한 대규모 촛불문화제가 갖는 정치적 의미에 대한 토론이 오고갔다. 아울러 촛불문화제를 계기로 향후 사회운동의 전망과 대안모색이 이뤄졌다. <시민사회신문>이 지상중계한다. /편집자

 

①촛불이 보여준 현상의 의미는?

 

연세대 교수

▲김호기=촛불문화제를 보면 탈현대적 정치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선 참여정치에 대해 말하자면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정당이 자신의 역할을 않을 경우, 광장이 형성되는 것은 어느 나라든 민주주의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미 우리는 1987년 민주화운동, 2000년 낙선운동, 2004년 탄핵반대 집회 등의 선행 경험을 갖고 있다.

 

촛불집회는 위험정치라는 새로운 정치의 징후를 보여준다. 오늘날 사회갈등의 영역은 전통적인 계급사회 쟁점에서 환경·생명·평화 등 위험사회(risk society) 쟁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은 잠복돼 있으나 정부가 대운하 정책을 강행한다면, 이 역시 ‘쇠고기 사태’에 버금가는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많은 시민이 촛불을 높이 든 것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인정(recognition) 정치를 체험한 바 있다. 우리 국민도 미국 국민과 동등하다는, 그러기에 두 여중생을 억울하게 죽어가게 한 미국 병사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2002년 11월 촛불집회가 바로 그것이다.

 

촛불집회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진행과정에서 처음에 10대들이 주도했으며, 이후에도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나는 이들을 ‘2.0세대’라고 말한 바 있다. ‘2.0 세대’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서열체제의 대학에 입학하거나 양극화된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 이들은 냉혹한 현실의 좌절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발랄한 저항은 우리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장기적으로는 성숙한 민주사회를 위한 새로운 시민적 주체형성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촛불정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진전이 최근 우리 사회, 우리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를 생생히 증거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기존의 정치적 대립구도와 쟁점을 재편시킨다면 정보화는 ‘온라인 공론장’의 등장이 보여주듯이 정치적 수단과 동원, 그리고 주체를 변화시킨다.

 

또한 촛불정치는 우리 사회에서 정당정치의 제도화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준다. 정당정치가 제 자리를 찾지 않은 한 ‘거리의 정치’는 계속 분출할 것이며, 정당정치가 제 자리를 찾는다 하더라도 ‘거리의 정치’는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레디앙 기획위원

▲이재영=촛불문화제의 주체가 조직된 사회운동집단이 아니라 자발적 대중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시위 양상이 운동권식 경건주의나 속박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즐기는 방식으로 변했다. 민주화 이후의 흐름에 대한 평가의 주된 내용이 급속히 진전된 ‘민주화’ 그 자체의 긍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측면에서 민주화 이후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흐름을 관통하는 것으로 역사에 남을 것은 민주화의 성과가 현실화되기 시작한 김영삼 정부 후반기부터 완고히 지속되고 있는 지니계수 및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 즉 사회 양극화이다.

 

‘민주화’에 의해 성장한 대중은 그 사회경제적 욕구 역시 자유롭게 성취하고자 하나 한국 민주화의 반면(反面)인 양극화에 의해 좌절하고, ‘촛불’과 같은 일탈로 체제에 간헐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국면에서 이명박 정권의 신뢰 상실이 정권의 향배 자체를 가늠할 정도로 나아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대안 정치세력 없다.

 

성공회대 대학원생

▲김연수=한 달 넘게 이루어지고 있는 촛불 문화제 및 촛불대행진은 이전의 투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투쟁에 익숙한 활동가들도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다. 이 새로움으로 인하여 촛불시위는 한 시대를 규정짓는 중요한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의 저항이 그 어느 때보다 자발성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저항은 시민단체나 운동단체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생을 선두로 하여 인터넷을 중심으로 특별한 조직적 움직임이 없이 이루어졌다. 이는 이 투쟁이 자발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저항에서는 범대위 등의 지도세력이 저항을 이끈 측면이 강했다면 현재의 투쟁은 그렇지 않다. ‘대책회의’는 단지 주최만 할 뿐, 시민들이 자유발언을 하고 저항의 방법을 정하고 행진의 방향을 정했다. 대책회의에서 해산을 제의했을 때 시위대에게 거부당했던 일, 지휘차량과 운용하려다가 비난 받은 일, 확성기를 들고 지도하려는 사람을 프락치로 오해했던 일 등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의 보호를 자청한 예비군, 경찰들의 폭력을 감시하는 인권침해 감시단,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료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시민기자단 등의 자발적 구성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횡단보도 시위 등의 창조적인 시위 형태의 개발과 웹 공간에서의 개별적 저항 역시 자발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별적으로 준비한 피켓, 자발적인 시민자유발언, 산발적으로 외쳐지는 구호, 민중가요가 아닌 애국가 등의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 등의 현상 역시 자발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저항의 근본적인 원인이 정치경제적인 측면에 있다기보다는 ‘욕망’에 기초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저항의 기저에는 정치경제적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쇠고기 협상 반대에 나서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신이 손해를 봐서라기보다는 죽고 싶지 않다는 욕망,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측면에서, 정치경제적인 범주보다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미국반대’나 ‘노동해방’이라는 이념적, 거대담론적 주제보다 생활세계적 주제가 저항의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향미 기자

이명박 정부 100일을 맞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최병모 변호사, 임종대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사회원로 100인들이 지난 2일 광우병 쇠고기, 한반도 대운하, 공공부문 사유화 등과 관련 국정운영파탄을 지적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자기구성능력’과 ‘자기조정능력’도 있다. 자기구성능력이란 저항의 주체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성을 바탕으로 암묵적 혹은 공식적으로 합의된 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자기조정능력은 그렇게 구성된 것을 자체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항의 놀이화, 축제화’ 현상도 주목된다. 이전의 저항은 보통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전경들과의 대치도 준전시 상황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시위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긴장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해학적인 구호들과 즐거운 노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도로를 점거하고 장기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인도 한 구석에서 즐거운 자리를 가지는 사람도 있다. 연인끼리 나와 데이트를 즐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경찰이 경고방송을 하면 ‘노래해’, ‘퇴근해’ 구호를 외치고 물대포를 쏘면 ‘물세 아깝다’ 구호를 외치는 이들은 웃으면서 저항하고 있다. 심지어는 전경버스에 갇혀서도 서로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진중권의 표현대로 이들은 시위를 ‘놀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 도로를 ‘해방구’로 볼 수 있을까. 이 모습을 ‘코뮨’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통적인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이는 10년간의 중도 리버럴 정부의 집권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경험이 중요한 배경일 것이다. 이 저항은 ‘참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구성투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②10대·주부가 거리 나온 배경은?

 

전교조 조합원

▲윤희찬=이명박 정부에 대한 첫번째 충격은 영어몰입교육이다. 국어수업도 제대로 못하는데 웬 영어몰입교육이냐는 반응이 나왔다. 두번째 충격은 4·15학교자율화조치다. 이미 입시지옥화된 학교를 완전한 사지로 만들었다. '일하다 죽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공부하다 죽었다는 소리는 못들었다'고 했지만 학교자율화조치를 발표했던 그날 밤 9시 전교 1등을 하던 대일외고 학생이 14층 자신의 방에서 떨어져 세상의 끈을 놓았다.

 

이어 벌어진 마지막 충격은 ‘미친소 수입’이었다. 자신들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정부의 처사는 학생들의 절신한 고민이자 명백한 현실이었다.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벌어진 중고생들의 첫번째 촛불집회는 축제의 장이었다. 학생들이 만들어왔던 다양한 피켓, 종이구호는 더 이상 중앙집중식의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의 다양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축제였다. 집회 참석자들이 주로 여학생들이었다는 것은 소통을 중심에 두는 여성문화의 한 단면이 현실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여성민우회 대표

▲권미혁=10대와 주부들의 참여 배경은 ‘광우병위험 소고기 수입’이 일상의 이해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이슈였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주부의 입장에서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 반대는 당연한 것이었다.

 

10대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그동안 급식과 관련되어 일정한 불만이 누적되어 있는 상태였고, 급식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는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급식자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연수=10대들이 가장 먼저 나서게 된 원인은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MBC 피디수첩의 방영 내용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를 알기 쉽게, 적나라하게 재구성하여 인터넷에 유포했다. 0교시 부활 등을 포함한 교육 정책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토론이 진행되었고 이에 관한 해학적인 이미지와 정부 비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전국적으로 인식되었고 다음 세대의 먹거리를 걱정하는 엄마들과 할머니들도 나섰다. 이에 다른 주체들도 속속들이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나선 배경에는 ‘욕망’이 있다.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욕망,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욕망이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재영=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한 불안이나 즉자적 반발은 오래 전부터 잠재해 있었으나 그것을 조직적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이 제대로 조직화거나 표출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시위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자율화’ 등 일련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고, 촛불시위는 정부가 그런 정책을 발표한 직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생활 속의 이해와 분노라는 측면과 정치적 각성으로까지는 나아가지는 않았다는 측면 두 가지를 그대로 인식해야 한다.

 

③분노가 하나로 묶여질 수 있을까?

 

▲하승창=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와 구체적 정책, 그를 실현하고자 하는 과정과 이를 이끄는 리더십 모든 지점에서 시민들에게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달려 나오게 만들고 있다. 인수위 시절의 영어몰입교육 논란은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교육의 지향과 가치가 극히 시장 중심적이며 그것도 미국시장 중심적이라는 점을 확인했고,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의 한 방 공약처럼 내세웠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경우에도 지식경제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발독재 시대의 성장방법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었다. 의료, 수돗물 같은 공공성이 강한 분야도 민영화한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공공성’조차 사적 시장에 맡기려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런 각각의 정책들이 0교시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학원 자율화 정책’에 이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타결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안으로 국민의 건강과 주권마저 시장논리로 처리해 간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불확실한 미래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함에 따라 폭발한 것이라고 보여 진다. 이는 한 가지 정책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일관된 이명박 정부의 기조라고 느껴진 것이다.

 

하나로 묶여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어떤 정치적 구심으로 이어질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렇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이 어떤 조직의 지도아래 나온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신들의 결정으로 나온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정책들에 대한 반대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정책기조 아래서 나오는 것인 만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라는 점에서는 제각각 다른 가치를 지녔으면서도 일정한 하나의 진영을 이미 형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대응정도에 따라 또 어떤 변화가 주어질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미 청계광장에는 쇠고기 문제 뿐 아니라 운하 반대 세력까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재영=현장에서 느낀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은 몰상식과 어거지인 듯하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자꾸 우기는 정치권력에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여자가 외친다. ‘이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제 영혼을 팔아 그들을 저주하고 싶습니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분노케 했는가.

서울 교보문고 쪽으로 귀가하는 대여섯 명 행렬을 경찰이 막아선다. 경찰은 청와대 쪽을 막아 충성을 과시하고 싶었겠지만 사람들은 거기 전철역이 있으니 당연히 그리로 가고 싶어했다. 촛불문화제는 몰상식에 대한 상식의 도전이다. 정부와 학교와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고개 주억거리지 않고 스스로 찾은 자신들의 진리를 외치는 대결이다.

 

하나로 모으기 어려울 것이고, 모을 필요 없다. 이전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사람들이 ‘비정치적 중립’의 강박에 빠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정치적 딜레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상황을 과장하여 보지 않는다면 장기적 진전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현 국면 또는 단기적 시간 안의 가시적 성과에 연연할 필요 없다.

 

▲김연수=‘양질전화’ 개념을 생각하는 것이 촛불에 나타난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운하 건설, 의료보험 민영화, 수돗물 민영화, 0교시와 우열반의 부활 등의 사안들은 사람들의 불만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이명박 정부가 한 가지씩 헤게모니적으로 진행해나갔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거나, 좀 더 늦게 벌어졌거나, 작은 규모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 가지도 쉽지 않은 정책을 한 번에 진행하려 했다. 이로 인해 불만이 폭발하기 직전까지 쌓인 상태에서 쇠고기 협상을 진행하면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먹을거리에 대한 문제를 터뜨림으로 인해 폭발하게 된 것이다.

 

폭발한 이후에도 정권은 사람들의 저항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사람들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저항의 주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방법으로만 해결을 하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독재 타도’라는 구호와 ‘민주주의는 죽었다’라는 문구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가사를 가진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노래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로 묶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저항의 내부에서 끊임없는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적 요구를 어디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류승태 기자

광장에 모인 촛불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인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모습

④정부·언론의 태도를 진단한다면?

 

▲김연수=노무현 정부가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못 이겨 현실적인 타협으로서 FTA에 나선 측면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으로 나서서 친기업정책, 친미정책을 편다고 할 수 있다. 쇠고기 협상 역시 이 틀 안에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배제하더라도 그 과정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불도저’ 별명대로 비민주적으로 밀어붙였다. 여러 주체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결국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저항에 나섰다. 정부와 보수 언론은 미국 내에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생들은 전부 광우병 환자냐면서 믿을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만 했다.

 

촛불이 거리로 나서고 저항이 전국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변할 생각이 없었다. 대통령은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며 ‘기죽지 말라’는 반응을 보이기만 했을 뿐이다. 보수 언론은 ‘촛불 시위가 변질되고 있다’, ‘배후에 친북좌파가 있다’며 왜곡을 일삼았다. 이에 사람들은 결국 정부와 조중동 등의 보수 언론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촛불의 저항은 막을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었고, 보수 언론에 대한 불신은 구독거부운동, 광고주압박운동을 촉발시켰다. 지금에서야 정부가 ‘협상을 유보한다’,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했다’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보수언론 역시 굴복한 듯 논조의 변화를 보이지만 역시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이는 보수 세력의 오만함이 자신들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을, 혹은 앞당겼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⑤새 정부, 도대체 왜 이럴까?

 

▲하승창=대통령을 포함해 이명박 정부의 인식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자 언론 보도에 의하면 4일 열린 청와대 확대수석간부회의에서 ‘10년간 세상변화를 너무 몰랐다. 인터넷으로 여론이 유통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우리는 너무 올드패션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는 자성이 있었다고 한다. 막 집권한 정부의 핵심에서 세상변화를 몰랐다는 고백이 나오고 있으니 스스로 집권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의 CEO형 리더쉽을 문제 삼는 이도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명박 대통령 같은 개발시대 CEO면 그 기업 다 망한다는 이야기가 CEO들 사이에 있다고 한다.

 

출범 100일도 되기 전에 거리의 정치가 부활되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20년 전에나 들었음직한 태도를 보였다. 18대 국회에서 집시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 등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인식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이미 시민사회는 스스로 의견을 나누고 모으고 행동을 결정하는 과정이 위계적 방식이 아닌 네트워크 방식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데, 대통령과 정부는 여전히 위계적 방식에 익숙하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혐오로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수렴되는 통로 자체를 막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의사결정단위와 범주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이견에 대한 검토가 제한적이고, 집행과정에서의 논의를 통해 이해의 폭을 확대하는 과정 없이 ‘명령의 전달’과 ‘이행’이라는 단선적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며 사과를 하지만 소통의 ‘내용’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것은 소통을 위한 ‘내용’과 ‘진정성’보다 괴담과 선동에 휘말린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소통의 방식에 더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소통의 실패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필연적으로 홍보의 실패에 대한 정책대안, 홍보의 강화로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이같은 이명박 정부의 인식에 더해서 지난 총선으로 만들어진 보수적 정파 중심의 정치지형도 지난 20여 년간 다원화된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이해를 정부와 정치권으로 수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거리의 정치가 확대될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셈이다. 결국 대통령과 정부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4년간 유지될 극히 폭이 좁은 정치지형의 한계를 보완할 장치가 없다면 이런 모습은 작든 크든 5년 내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권미혁=이번 촛불집회 현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점이다. 근대 민주주의가 이룩한 가장 뛰어난 제도라고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적어도 촛불집회에 참석한 다수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의사를 대변하라고 보낸 시민의 대표가 그 대표성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분노이다.

 

⑥‘지도’하려 들지 말라는 입장엔?

 

▲김연수=투쟁의 과정에서 ‘다함께’라는 조직이 거리 행진을 하는 시위대를 선도했던 적이 있다. 조직의 구성원이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외쳤고 사람들은 따라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다함께는 해산했고 남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경찰에게 연행당하고 해산 당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함께’에 대해 비난했다. 나서는 것도 맘에 안 들었는데 배신하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다함께’가 중심으로 나서고자 했던 것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체가 다중적인 상황에서 그러한 시도는 당연히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다함께’는 겸허히 비판을 수용하고 이후부터는 확성기를 들지 않았고 지도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전의 투쟁들은 주로 조직성이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특정한 계급이나 조직, 집단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운동 역시 중심의 지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저항은 자발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를테면 신사회운동론적 관점에서 68혁명 당시 지배세력 뿐만 아니라 체제 내에 안주한 제도화 되어 경제적인 요구에 획일화되어 매몰된 구사회운동에까지 저항했던 현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촛불 시위에 나서고 있는 사람들 역시 기성 정치권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정당이나 여타의 정당 중 어느 것도 이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이 조직적 참여를 원했지만 거절당했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그리고 노동조합, 소위 진보세력들도 지도는커녕 개인자격으로 참여하거나 구석에서 깃발을 들고 조용히 참여했다. 이마저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중심은 운동의 내부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기존의 운동 조직은 운동의 한 주체로서 중심을 건설하는데 참여해야 할 것이다. 내부에서의 여러 주체 간의 소통이 중요할 것이다. 이 소통은 대표자 간의 소통이 되어서는 부족하다. 야외에서의 공개토론회 이후 중심을 구성해나가는 의사결정이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런 공개적인 구성 과정 자체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시도와 경험 그리고 실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영=그것이 ‘지도’라 불리든 말든 조직적 개입을 꺼려서는 안 되고, 조직적 개입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나 세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먼저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세판단력이나 정세추동력이 ‘고딩’만 못하다는 증거이다. 무능에 맞게 조심스럽게 개입해야 한다.

 

둘째, 이른바 일부 집단의 ‘지도’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무계한지를 보여준 사례가 있다. 현 상황은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정치사회운동 전반의 무능을 폭로한 것일 뿐더러 운동권 수준도 나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 정확한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가 따져봐야 한다. 정치적 목표만큼 개입하자.

 

⑦향후 상황을 전망 한다면?

 

▲김연수=내게는 이후의 상황을 전망할 실력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전망이 달라질 것이며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단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중심이 없는 저항의 촛불이 허망하게 꺼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시간이 지난 후에 현재의 저항을 대중의 선진화, 급진화와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재영=며칠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 무엇도 마모, 희석, 망각을 피하지 못하지만 오늘 무엇을 어떻게 외쳤는가는 우리가 다시 돌아오게 될 광장이 어디일지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병든 쇠고기를 먹지 않을 자유를 갈구하여 약속을 받아내고자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는 쇠고기든 무엇이든 누구도 우리 뜻과 달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평등, 그 평등을 지킬 힘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돌아올 광장이 다른 곳에서 출발할 것이다.

 

⑧사회운동에 던지는 교훈은?

 

▲김연수=‘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명제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대는 더욱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변화를 인식하지 못해서 위기를 맞았지만 변혁세력과 개혁세력 역시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구시대적 대응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경우가 많다. 촛불의 물결은 우리에게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걸 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는 진부한 교훈을 또 다시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이 변화의 양상에 걸맞게 운동을 발전시키고 새롭고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정리=이재환 김현연 기자 ljh@ingopress.com

[출처] [시민사회신문] "축제와 저항의 새 질서"|작성자 시민사회

기사 출처: http://blog.naver.com/ingopress?Redirect=Log&logNo=10031943168

토론회 원문: http://green.skhu.ac.kr/~cis/bbs/view.php?id=data&no=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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