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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견문록: 08년 1학기 지리교육과 박초영 (지리사상사)

2008.11.21 14:55 | 명예의 전당1: 서평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166 주소복사

마르코 폴로의 세계의 중심

박초영

Ⅰ. 들어가는 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중고등 학교시절 사회 시간만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책이다. 이 책으로 인하여 유럽 사람들이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신항로 개척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은 우리나라의 보통 중등교육과정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과서에서 소개된 책들에 대해 그 저자와 이름, 간략한 내용만 알고 넘어갈 뿐 실제로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분야의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냥 그런 책이 있으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성경 다음으로 최고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고, 이 책의 발간이후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사고가 넓어지고, 지리상 발견시대를 만들어낸 촉진제의 역할을 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저서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저술할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의 사고에 미친 영향과 한시대의 지배적인 사고가 개인의 공간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Ⅱ. 몸말

 

1. 당시의 시대 배경

 

마르코 폴로는 1254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324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아버지인 니콜로와 숙부인 마페오를 따라 동방여행길에 오른 것은 그가 15살인 1271년의 일이다. 그리고 그는 1298년 지중해를 두고 벌어진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해상권 다툼 싸움인 쿠르졸라 해전에서 제노바에 포로로 잡혀 감옥살이를 하면서 피사의 작가 루스티켈로를 만나기 전까지 약 25년 동안 당시의 유럽인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였던 동방을 여행하게 된다.

5세기의 로마제국 멸망 이후 줄곧 ‘암흑시대’였던 유럽은, 12세기를 전후한 시점부터 어둠속에서부터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오늘날보다 온화했던 기후, 그리고 삼포제 농법, 물레방아, 새로운 쟁기와 멍에, 역축(役畜)으로서의 말(馬)의 사용 등 농업 기술의 진보는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켰고, 이로 인한 인구 증가는 다시 경작지 확장의 원동력으로서 작용하였다. 또한 11세기부터 서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영주 직영지가 축소·소멸되고 농민들의 부역의 부담이 줄어들면서 영주에게 부역 대신 생산물이나 화폐를 지대로 바치는 새로운 형태의 장원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경제적 성취 욕구를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수공업과 상업이 발전하면서 도시가 부활하였고, 동방과 서방, 그리고 남유럽과 북유럽을 잇는 육·해상 교역로를 따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더욱 활발해 지게 되는데, 그 전까지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힘이 막강하여서 철학, 과학, 건축 등 모든 것이 신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기독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었던 유럽은 11세기부터 13세기 까지 이루어진 십자군의 원정으로 인하여 서서히 변화하게 된다. 십자군 원정이 처음 시작될 때에는 이교도로부터 성지를 탈환하자는 종교적인 목적을 지니고 시작하였으나, 그 이면에는 전쟁을 통하여 교황권을 공고히 하고 교회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교황의 의도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넘어서 새로운 땅과 전리품을 획득하기 위해 참가하는 영주와 기사들,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고 그 사이에서 이권을 챙기려는 상인들, 그리고 신분해방과 부채 탕감을 목적으로 하는 농노들이 있었다. 모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것이다.

비록 이런 십자군 원정은 이교도인 이슬람의 수중에서 성지를 탈환하자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이후의 유럽과 중동의 역사 및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경제적·정치적으로 가장 혜택을 많이 보았다. 초기에는 아말피, 베네치아, 바리만이 동방과의 무역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피사, 제노바 같은 다른 도시들도 지중해 무역 활동에 함께 동참하게 되면서 이탈리아의 해양 도시들은 십자군에게 무기 및 식료품 등을 대여해주는 조건으로 안티오키아, 베이루트, 트리폴리, 예루살렘, 키프로스, 알레포, 콘스탄티노폴리스, 이집트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다른 여러 도시들에 위치한 주요 무역 거점들을 장악할 수 있었다. 특히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는 무역 확장을 위한 전위로서 동방과의 무역을 독점하기에 이르렀으며 유럽의 시장들에 철, 모피 등 동방의 진귀한 물품들을 공급하였다.

마르코폴로는 이렇게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상인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던 당시의 분위기가 마르코 폴로의 긴 동방으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 매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게 되면서 십자군 전쟁을 주도해온 교황권이 크게 손상을 입게 되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던 교황권이 약해졌다는 것은 곧 기독교적·중세적 통합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서유럽은 더욱 가속적으로 분권화되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 유럽의 동질성을 부여해왔던 종교적 통합의 중심마저 약화되자 각 나라들은 왕권이 강화되어 각자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길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약화된 교회의 힘은 사람들의 사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나 자유로운 분위기의 베네치아에서 상인의 아들로 나고 자란 마르코 폴로는 더더욱 이전까지의 교회중심적 사고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가 쉬웠을 것이다. 이런 내용들은 동방견문록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이기는 했지만 전처럼 기독교만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신봉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종교에 흥미를 보이고 심지어는 그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기독교보다 나을 수 있음을 인정하기도 한다.(대칸의 궁전에서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 마법사들의 이야기 등) 이것은 이전까지의 사고를 비추어 볼 때,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있다.

또한 서유럽은 십자군 전쟁 중 이슬람과 비잔티움에서 약탈한 물건들로 발전했다.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동방의 물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그리스 로마시대의 저서들이 아랍어에서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어 새로운 지식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시의 발달된 아라비아 과학기술들도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15세기의 르네상스와 발견시대가 이루어지는 기반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십자군은 기독교가 아닌 종교에 대한 증오를 불렀고 근 1000년동안의 유대인 대학살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근 사백여년 동안 우호적이던 기독교와 이슬람이 적대적으로 되는 시초이기도 했다. 이는 동방견문록의 여러 필사본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당시 동방견문록은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여러 필사본이 나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지식인 그리고 특히 필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 수도원의 수도사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필사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기독교적 상식이나 교리와 어긋나는 많은 부분들이 수정되고, 이교도가 언급되는 부분에서는 교회 중심의 입장에서 그들을 비하하는 표현들로 각색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2. 마르코 폴로가 바라본 세계

 

동방견문록의 원제는 ‘세계의 서술’이었다. 그러나 그가 실제 서술하고 있는 장소는 원나라, 서양의 입장에서 본 동방, 그리고 현재의 중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세계’가 바로 원나라, 동방이었던 것이다. 그는 어릴 때 고향인 베네치아를 떠나와서 인생의 절반 정도를 원나라에서 보낸다. 사람들은 그의 책에서 ‘수백의, 수십만의’ 라는 서술이 많이 등장한다고 하여 그를 ‘백만 선생’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활발한 항구도시이기는 하지만, 중국에 비하여 면적이나 인구수도 적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베네치아에서 성장한 그가, 광활한 원나라의 광활한 초원이나 대지, 많은 인구 수, 풍부한 물자를 보고 다르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의 교회 중심의 세계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중세의 기독교에서는 교회가 모든 생활의 중심이었고, 신을 전지전능한 유일한 존재로 보았다.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는 거론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방문했던 대부분의 지역들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자세히 관찰하며 그것을 후에 기록으로 남긴다. 특히 다른 종교에 관련하여서는 그것을 포용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자신과는 다른 하나의 문화로 여기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이 후에 이 책이 인기를 얻었을 때, 사람들이 지금까지 교회에서 진리라고 주장하였던 지구의 형태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항로 개척을 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유럽 중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랜 기간을 원나라에서 살아왔고 칸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대부분을 관찰자적 입장에서 서술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방문한 지역들의 문화를 유럽의 문화에 비추어 보아 어떤 곳은 바람직하고 어떤 곳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어떤 곳은 독특하고 유럽지역과 비교했을 때 어떠하다는 등의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책의 원제가 아닌 널리 알려진 이름인 ‘동방견문록’이라는 명칭 또한 유럽 중심적인 개념이다. ‘동방’이라는 말은 유럽의 기준에서 봤을 때 동쪽 이라는 의미로 자신들을 중심에 두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유럽 중심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3. 동방견문록이 미친 영향

 

당시의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를 ‘백만 선생’이라고 불렀다.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던 프레스터 요한의 땅인 동방을 다녀왔다는 그는 온갖 신가한 풍습과 거대한 도시, 엄청난 인구, 진기한 보석에 대해 이야기 했다. 유럽 밖의 세상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13세기의 유럽인들에게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으며, 믿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에 반신반의 했을지라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동방견문록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다양한 언어로 필사되어 퍼졌으며, 유럽 사람들은 동방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마르코 폴로가 이야기하는 13세기의 중국은 몽골족이 세운 강력한 정복왕조로서 남쪽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 서쪽으로는 카스피 해를 넘어 남 러시아까지 거의 중앙아시아 전역을 지배한 광대한 제국이었다. 이슬람 상인들과의 교역도 활발하였으며 화폐가 널리 유통되었고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역참제도까지 정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유럽인들에게 문화적인 충격이었으며 동시에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연구의 폭을 넓히기도 하였다.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동방의 이색적인 모습들은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또한 그가 묘사한 동방의 풍부한 물산은 유럽인들의 욕심을 자극하여 강렬한 탐험의지를 심어주었다. 그래서 15세기를 전후로 하여 유럽의 많은 탐험가들이 아시아 대륙 혹은 인도를 찾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 이다.

콜럼버스는 라틴어로 번역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책 여백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가며 탐험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책속에 나오는 지역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탐험을 떠났다. 물론 그가 도착했던 곳은 동방견문록에는 나오지 않는 신대륙인 아메리카 였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그 땅이 인도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바스코 다가마는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의 후원을 받아 최초로 인도 항로를 개척하였다. 당시 아시아와 인도 등지에서 생산되는 향료는 아랍을 통해 유럽까지 먼 길을 통해 왔으므로 상당히 귀하고 값비싼 것이었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가 여행했던 아시아와 인도 지역에는 그런 향료가 풍부하게 있었다. 그런 인도의 풍부한 향료를 다른 지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가지고 올 수 있다면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탐험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본인의 저서의 직접적인 영향과 이러한 그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간접적인 영향을 통하여 마르코 폴로는 유럽사회의 전반적인 사고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요즘처럼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여 어디서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는 책 한권이 가지는 영향력이 그 때처럼 크지는 못하다.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이 책 한권이 가지고 있는 파급효과가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본 세계로 ‘원나라’를 기술하였다. 그러나 그의 세계의 중심은 여전히 유럽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기에 조금 뒤 떨어진다거나 자신이 보았던 것과는 다른 문화와 풍습에 대하여는 미개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 자신이 살아왔던 유럽의 세계보다 더 크거나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발달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그 중심에 유럽의 사회를 놓고 있기 때문에 이루어 질 수 있는 서술인 것이다.

그의 책의 파급 효과가 컸듯, 이러한 그의 유럽중심적인 생각 역시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르코 폴로가 서술한 동방은 유럽보다 정비가 잘 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들은 물자가 풍부하기는 하지만 유럽보다 미개한 문화를 가진 곳으로 묘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가서 그들보다 우월한 힘을 보여주기만 하면 쉽게 그곳을 정복하고 풍부한 물산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유럽인들에게는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성과를 거두게 되지만, 반대로 ‘개척’과 ‘발견’의 대상이 되는 아프리카와 인도, 아메리카의 거주민들에게는 ‘침략’과 ‘약탈’이라는 비극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Ⅲ. 나가는 말

사전에서 ‘역사’라는 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볼 수 있다. 역사 [歷史, history], 인간이 거쳐 온 모습이나 인간의 행위로 일어난 사실이나 그 사실에 대한 기록.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라는 단어를 인간과 관련된 일에 한정하여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여 인간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과거의 사실들은 역사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고 하여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 즉 ‘환경’에서의 영향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러한 ‘환경’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자연환경, 가정환경, 그리고 개인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 또한 이 중 하나이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은 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들의 사고이다.

아무리 현대의 사회가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있고, 정신적 가치가 해이해 졌다고 하여도, 모든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사람들의 무의식중의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를 특정한 시대에 기준을 두고, 시간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는 것으로 가정을 한다면 역사가 발전하는 특정한 시대에는 그 시대에 활약하는 뛰어난 영웅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이 등장하여 역사를 지금보다 나은 일정한 위치에 끌어놓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수준이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영웅을 지지하여 역사의 흐름을 지지해 주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해야 한다고 한다. 아무리 특정 시대에 영웅이 나타나 역사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고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구성원들의 사고인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이러한 역사의 발전 단계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를 바꾸어주는 데에 일조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사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유럽중심적인 사상 또한 당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유럽중심적인 팽창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어릴 때의 교육일 것이다. 특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해 이해하는 학문인 ‘지리’는 더더욱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지리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학생들에게 어떻게 바르게 주변을 이해하는 태도를 심어줄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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