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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1/04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하다: 08년 2학기 지리교육과 김현선

2008.11.21 14:02 | 명예의 전당1: 서평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165 주소복사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하다 (탁석산, 웅진닷컴, 2004)

 

김현선 

 

이 책은 한국에 팽배한 민족주의를 의심하는 책이다. 사실 민족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용어를 표방하지 않아도,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민족적인 단결을 주창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경우를 본 적은 별로 없으며, 나이 든 세대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요즘 세대들에게도 민족주의가 주입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 기사의 일부분을 읽어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다. 다음은 2007년 8월 19일 연합뉴스에 실린 “유엔, 한국 '단일 민족국가' 이미지 극복 권고” 라는 기사의 일부분이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위원장 레지 드 구테)는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한국이 실제와는 다른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 위원회는 "당사국(한국)이 민족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영토 내에 사는 서로 다른 민족 국가 그룹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의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 뒤, '순수혈통'과 '혼혈'과 같은 용어와 그에 담겨 있을 수 있는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는 데 유의한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민족을 핏줄, 언어,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한다. 순혈주의에 대한 위원회의 지적은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경고나 다름없다.

저자는 민족주의, 민족, 국가의 의미를 하나하나 따지며,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과잉되게 나타나는 경우를 지적한다.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부분에서도, 그는 민족주의가 깃들여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역사 서술 주체 문제가 그렇다. 역사를 기술할 때, 모든 위기는 ‘국가ㆍ민족 위기’이며, 그 극복주체도 항상 ‘우리나라’ 혹은 ‘우리 민족’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저자는 지수걸 교수의 답을 인용한다. “이런 질문에 답할 때 유의할 점은, 민족(nation) 위기와 국가(state), 정권(regime) 위기 혹은 사회(society) 위기의 차원적 구별이다. 하지만 『국사』는 양자를 전혀 구별하지 않은 채 근ㆍ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대부분의 위기를 민족의 사활을 좌지우지할 만한 민족 위기(민족의 시련, 민족의 수난)로 그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역사 서술의 주체를 민족으로 삼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또 있다. 민족이란 근대 이후의 개념이고 또한 우리 민족이든 우리나라든 역사적 실재가 아닌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역사 기술의 주체로 알맞지 않다는 것이다.

민족이 상상의 산물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저자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쓴 『상상의 공동체』라는 책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정의에 따르면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도 듣지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 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또한 민족이 핏줄, 언어, 역사를 공유한다는 주장에도 타당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 예로 한민족이라고 일컬어지는 남북한을 예로 든다. 우선 핏줄에 대해 말하자면, 핏줄을 가지고 민족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담과 하와처럼 한 쌍의 부부에서 한민족 전체가 파생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게다가 한국에 유입된 중국, 몽골인 등 다양한 민족들의 흔적도 우리의 핏줄에서 제외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사적 유산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민족을 정의하는 것은 또 어떠한가. 역사란 단순히 과거의 사실에 대한 중립적인 서술이 아니다. 언제나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되며 재구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한은 현재의 입장이 다르며, 역사 해석 또한 다르다. 언어도 민족을 규정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 영국과 호주, 싱가포르가 모두 영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같은 민족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이렇게 상상의 공동체임은 극명하지만, 민족이 현실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근대적인 조선 왕조를 대신할 근대 국가 건설에 실패하고 일제의 지배를 받을 당시, 민족주의는 국가가 없는 공백을 메워주었다. 하지만 또한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하면서, 구한말부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념이다. 저자는 일반적인 민족 개념을 따르는 대신, 민족을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문화공동체라고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민족주의가 현실적인 힘이 있으며, 문화공동체로 축소되긴 하지만 여전히 타당성 있는 개념이므로 계속 우려먹어야 하는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민족주의가 사다리라고 말한다. 개인의 행복과 인권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를 탐색하면서 책은 끝난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공동체에서 주입하는 가치나 이념은, 몸에 깊이 배어들어 의식하기 어렵다. 다른 공동체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가치관임을 전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를 낯설게 바라본 이 책의 시도 덕분에, 나 자신이 과잉된 민족주의에 젖어있을 지도 모른다고 의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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