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지음, 김혜연 옮김, 후마니타스) 지리교육과 김아리 이 책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책이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도 자주 언급하셨던 책이고, 교수님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고 아파트가 펴져있는 우리나라를 프랑스의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어떻게 보았을지 그의 시각도 궁금했다. 프랑스에서는 복잡한 도시문제 내지 도시폭력의 상징이 되고 있는 대단지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경제위기의 부정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왜일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혹자는 이 책을 상식과 편견에 맞선 연구라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아파트가 좁은 땅에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건설된 것이라는 한국인의 당연시되는 생각에 반기를 들며 그 생각을 하나하나 무너뜨리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트 현상을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 온 한국인들에게 그녀는 당연한 것을 이해 못 하는 순진한 외국인으로 취급되기 일쑤였고 자주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고 한다. 한국에 아파트가 왜 많을까라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들려오는 첫 번째 근거는 사람은 많고 공간은 부족한 고층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는 이해방식이었다. 한옥은 고리타분하고 불편한데 비해, 아파트는 현대성과 편리성이라는 미덕으로 미화되는 것이 그 두 번째 근거였다.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현재 52.7퍼센트로 상승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진행된 아파트단지의 개발은, 1970년대 말까지도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이 특징이던 서울의 도시경관을 충격적으로 변모시켰다. 1970년대 말부터 대대적으로 건설된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그 규모면에서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아파트 단지의 개발은 1970년대 초반부터 서울에서 시행된 도시 정책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1950년대의 서울은 나지막한 스카이라인, 상가와 주거지역의 구분, 대로와 그 뒤편의 보행자 골목으로 대별되는 도로 형태 등 세 가지 특징을 간직하고 있었다. 효율적인 도시개발을 위하여 1960년대 초, 도시계획에 관한 몇 가지 법안이 수립됐다. 그러나 사실상 실행되지 못하였고 대부분의 중․상류층은 여전히 개인주택을 선호했다. 소형아파트는 주택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때까지 정부가 지은 아파트는 서민을 대상으로 한 작은 평수의 주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1972년에 수립된 새로운 도시기본계획은 도심 업무 지구 개발, 교통 정체 해소를 위한 도로망의 개선 등 굵직한 정책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주거단지 개발 절차가 유연해졌고 이로 인해 평수의 선택폭이 넓어졌고, 기름보일러식 중앙난방이었으며, 모델하우스를 통한 판매 촉진 등 마케팅 전략이 동원됨으로써 부정적인 이미지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층화된 건물 건설에 대한 규제가 전반적으로 완화되었고, 서울의 주택난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이미 10년 전 시작된 대규모 주택 건설 정책은 더욱 확대되었고 국제 규모의 스포츠 제전을 앞두고 도시 미화를 위해 대형 건물과 대규모 주택의 건설이 장려되었다. 한국의 도시 경관의 불안정성은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불안정성은 우선 도시의 변화 속도에 있어서 과격함을 의미한다. 국토의 빠른 개발과 변모를 경험한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적 특징은 새 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로 나타났다. 최신형 아파트 단지와 최신형 건물들의 경함은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서울의 아파트가 도시로부터의 소외가 아니라 도시로의 동화를 상징하게 된 것은 우선 수도라고 하는 그 위치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서울이라고 하는 지역의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도심 지역의 주요 통신망과 도시 역동성으로부터 떨어진 아파트 단지들은 극히 드물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대규모의 이촌향도 현상에 힘입어 도시의 팽창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인구증가의 대가로 교통문제, 환경문제, 주택문제 등 일련의 도시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 중 주택문제는 모든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고 서울에서 특히 심각한 양상을 보였다. 이로 인해 정부는 민간부문이 택지 개발에 필요한 토지구획정리사업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조건에서 공공 부문 특히 대한 주택공사와 토지개발공사가 중재 역할을 맞아 개발을 주도하도록 했다. 또한 건축자재의 표준화, 연구개발의 장려 등을 통해 건축 관련 사업을 지원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파트 가격 통제와 분양제도이다. 한국에서 정부의 직접 투자가 빈약했던 주택 부문은 산업발전의 희생양이었다. 아파트의 대규모 건설 공약을 계속되었다. 분명 대규모 주택의 공급은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발전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뿐이었다. 공공 재정의 역할은 미미했지만, 한국인들은 정부 정책에 부응해 주택 구입의 재정적 부담을 받아들였다. 이 역시 조국 근대화를 위해 전 국민이 수락했던 수많은 물질적 희생의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북한과의 적대적 경쟁관계와 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환경 속에서, 북한을 능가해야 한다는 총량주의적 목표를 추구해왔다. 대단지 아파트는 기적의 시대를 풍미했던 대량 생산체제의 직접적 산물이자 한국 사회가 양과 속도의 신조를 따르는 성장의 이데올로기에 완벽하게 통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급증은 권위주의 국가 주도의 성장 모델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재분배의 측면보다는 양적 성장 그 자체에 과도하게 집착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개인의 행복이 아닌 사회의 행복이라는 특별한 비전에 접목된 한국적 태도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의 경우 개인적인 부의 재분배를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프랑스와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서보다 훨씬 덜 느낀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서울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아파트단지들은 강력한 권위주의 정보가 재벌과 손을 잡고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면서 만들어 낸 한국형 발전모델의 압축적 표상인 셈이다. 실제의 아파트가 아니라 만들어진 이미지로서의 아파트가 현실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주택과 거주지는 이처럼 서울의 사회지리학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설명해주는 핵심 요인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경제 발전의 주역이자 가장 큰 수혜자인 중간계급에 일반화된 주거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의 형태는 다양하며 그것은 중간계급 내부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 아파트는 도시 주민의 의식 속에서만, 마치 그 안에서는 사회계층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과도하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향유하고 있는 듯 보인다. 외형적 관점에서 아파트는 여러 계층과 범주로 이루어진 중간계급 일반의 주거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상류사회적 형태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단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광은 이들이 전체적으로 도시 중산층의 가치에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은은 한국인들이 아파트에 열광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이 이윤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가구는 중간계급으로 편입되고 체제의 수혜자가 됐다.” 한국에서 아파트단지는 중간계급의 제조 공장처럼 보인다. 대규모 주택건설과 개인적 주택 소유를 핵심으로 한 한국 주택정책의 특성, 정부와 재벌기업간의 긴밀한 유착관계, 권위주의 정부가 주도한 급격한 경제성장, 정부가 통제한 주택 양산 과정의 특수한 구조, 경제 성장의 국가적 목표를 뒷받침한 서울의 도시계획 등은 한국에서 아파트단지 건설이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활발하게 전개됐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1964년 마포아파트단지의 완공식에서 발표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은 공동주택의 선택을 공식적으로 정당화하는 두 가지 큰 주제를 담고 있다. 우선은 성장, 그리고 그것의 수단적 가치로서 생산성과 효율성이다. 한국인들에게 경제적인 면으로나 시간적인 면으로 다대한 절감을 가져다주는 아파트는 새로운 기계처럼 산업발전의 도구이자 효율적인 수단이 된 것이다. 둘째로 아파트는 봉건적 농경사회를 벗어나게 해 주는 편리한 현대적 시설로 의미 지어졌다. 주택의 위생과 편의시설의 개선을 넘어 전통과 현대성, 서구성과 한국성은 만들어진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스스로 현대적이라고 간주하는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도 여전히 한옥을 트집 잡는 이유로 이야기했던 신을 신고 벗는 것, 상을 옮기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한다. 아파트가 시설이 잘 되어 있고 더 편하기 때문에 현대적이라고들 하나, 다른 형태의 주택들도 편하고 현대적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한국인들은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 요컨대 한국의 아파트가 갖는 주민생활의 서구화라는 것은 한편으로 부의 외형적 표식인 동시에,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한국에 서구적인 것이 변형되어 동화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한강의 기적을 낳은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자 한강의 기적이 만들어 낸 가장 분명한 결과이다. 아파트단지의 건설은 건설 산업 발전에 중요한 계기로 작동했으며 한국의 산업구조 안에서 그 중요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98년까지 분양제도에 따른 가격통제로 지불능력이 있는 계층에게 부의 축척을 가져다준 아파트는 한국의 중간계급을 형성시킨 진정한 공장이었다. 결국 아파트단지는 농촌공동체로부터 도시로의 이주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 정체성의 기준들이 무너지는 가운데에도 이들 신흥 중간계급에게 사회적 인정이라는 상징을 제공했다. 대단지 아파트는 도처에서 대규모 도시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초점들을 결집시키며, 여러 형태의 감시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대단지의 형태는 그 자체로 사회 공간적 차별화를 낳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차별화를 고착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또한 대단지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더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의 결과를 낳는다.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제는 단지 인구의 과밀로 인한 단순한 이유를 초월하여, 더 복잡한 일들이 얽혀서 나타난 하나의 외적인 산물인 것이다. 누구나 웬만큼 사는 중산층을 꿈꾸며 아파트를 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아파트 구매 전이라도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광고에서는 비싼 출연료를 받는 매력있고 아름다운 모델을 내세워 그들의 아파트는 다른 공간과 차별된다고 피력하고 있다. 초기의 아파트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현재는 모든 이들의 소망의 대상이 되는 아파트. 그런 아파트의 공화국이 된 한국. 저자는 책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지는 못하고 있지만, 결국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쓴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 참고자료 -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노 지음, 후마니타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