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609)
학부 강의자료방
학부 과제제출방
대학원 세미나룸
명예의 전당1: 서평
명예의 전당2: 영화평
토막강의
스크랩북
지리사진방
기타 지리관련 자료
약력
최근 댓글 전체보기
1941년-45아프리카..
1619년최초의흑인노예..
아시안 1550만흑인 ..
한국48.3 북한 23..
중국 1345.8 인..
2009 12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오늘 전체
방문자 5 113312
구독자 0 40
댓글 0 226
참조글 0 98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kyoju62
- lkwvn
- sytelgate
- 발가락
- 김승종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개설일 : 2007/11/04
 

닥쳐라 세계화: 08년 2학기 사회교육학부 송수영

2008.11.19 23:38 | 명예의 전당1: 서평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157 주소복사

 

 

닥칠 수 없는 세계화

< ‘닥쳐라, 세계화!’를 읽고 >

송수영

 

서평의 첫 문장을 쓰려고 하는 순간, 내 안의 심각한 괴리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세계화되어 전 지구가 하나 되는 것은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의 민중을 위하여 좋지 아니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책과 나의 생각을 같이 하여 ‘세계화에 비판하고 작은 실천적 대안부터 실천하자.’라는 내용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글을 써 가려는 순간 ‘진정으로 세계화를 반대하고 앞장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라 하면 ‘아니오!’라는 대답이 먼저 나오겠다는 생각에서였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고, 세계경제가 하나가 되면서 글로벌화와 세계화라는 단어가 학교 현장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반공산주의에 이어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학생들이 알아야 하는 필수 단어 1순위였던 것이다. 이렇게 10여 년을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는 역설의 교과서를 거의 모든 교과에서 배워 온 나로서는 세계화의 장점이 더 부각되어 의식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계화 시대의 발맞춘 인재가 되고 싶은 것이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한 꿈이 되었듯이 그 사람들과 함께 글로벌화에 동참하려는 욕구가 컸다. 세계 어느 곳이든지 기회만 되면 나가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국제사회에서의 필수 언어인 영어를 배우고 잘하려고 아등바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 한 것이다 보니 세계화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깊숙한 내면에 좋은 의식을 갖고 있을망정 마음이 아닌 머릿속에는 책에 나온 그들, 소위 ‘나보다 못 사는 이들’을 위한 연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을 서평에 드러내 보이면서 ‘세계화 시대의 그나마 착한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글의 갈피를 못 잡고 있다가 솔직한 심정을 먼저 고백한 후 서평의 방향을 내가 본 시각에서의 세계화로 잡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보았던 세계화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난여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에 참가 했었다. ‘세계 청년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지만, 이 대회에 참가한 국가는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는 국가이거나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였다. 그러한 나라들 중에서도 아프리카나 남아프리카 지역의 청년들은 경비의 문제로 많이 참여하지 못하였다.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대회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내가 본 세계화는 그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다 같이 모인 청년들 사이에서의 세계화였다.

대회의 10일을 각자의 홈스테이에서 머물다가 마지막 폐막미사를 드리러 시드니 시내에서 9km정도 떨어진 경마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식전이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경마장에서 모든 청년들이 하룻밤 노숙을 하고 아침에 있을 미사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각자의 짐들이 꽤 많았다. 그 짐들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한 겨울인 시드니의 밤을 이겨내기 위한 준비였다. 우리는 교구에서 준비해준 요가 매트 하나와 베게 하나 크기로 접혀진 오리털 침낭을 양손에 나누어 들고 본대회장으로 향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노랫소리와 기도, 교황을 외치는 함성과 응원 소리는 점점 사라졌다. 한참을 걷는데, 어디선가 합류한 이들의 노래와 악기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리는데 국기를 보니 파푸아 뉴기니 사람들이었다. 본대회로 향하기 전 브리즈번에서 그들을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눌 때 그들은 호주에서 열렸기에 그 대회를 참가할 수 있다고 했었다. 주로 유럽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 가기란 경비 문제로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나이를 제한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참가를 했단다. 스페인에서 열리는 다음 대회에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오는데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이불이었다. 둘둘 말아진 이불을 혼자 안고 또는 둘, 셋이 함께 짊어지고 왔다. 여성들은 우리나라 6,70년대에 쓰이던 군대용 초록색의 담요를 깔개로 쓰기 위해 들고 왔다.

이것이 내가 느낀 세계화의 충격이었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경마장 안까지 이어졌고 아침에 일어나 밤이슬에 모든 이불이 젖었음에도 춤을 췄다. 언제나 어떤 목적으로든 해외에 나갈 수 있는 함께 간 우리나라 20대 청년들은 그 따뜻함 속에서도 불평불만이 가득하였고, 끝까지 노래하지 못하였다. 쇼핑을 즐기고 관광지에 목말라 하던 우리의 청년들은 세계화를 교육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진정 세계화를 추구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단어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파푸아 누기니 청년들은 그 자체의 세계화를 즐겼던 것이다. 세계화의 괴리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세계화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은 오히려 파푸아 뉴기니 사람들이었다. 세계와 연결되어 끊임없이 접속하고 소통하고 교류하는 법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를 읽고, 가장 먼저 읽은 챕터는 ‘교육권-그들을 가르치고 싶다’였다. 관심 있는 분야였기에 세계화에 의해 교육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오히려 성노동 부분과 해방신학의 부분이 알지 못했던 부분을 새로이 알려주었고 관심이 갔다. 성산업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 모두를 ‘나쁘다’라고 치부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이런 어려운 실정을 알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하루빨리 노동자로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새로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 반대 대륙,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칠레, 거대한 잉카제국이 있었던 남아메리카 대륙은 동경 그 자체였다. 꿈의 대륙이었지만, 이 해방신학 부분을 읽으면서 그 꿈은 무너져 갔지만, 그 곳을 더욱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깊어져갔다. 유럽 대륙 못지않게 가톨릭 국가가 가장 많은 대륙이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모마리아와 파차마마의 엇갈린 숭배에 대하여 읽을 때 어떠한 것이 옳은 세계화이고, 힘없는 자의 문화는 보존되어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분명히 세계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힘을 가진 자들의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지만, 그 안에서 본 것은 ‘만약 세계화가 없었다면...’이었다. 세계화가 없었다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조차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한 나라의 내부 문제에 대하여 나라 밖에서 투쟁과 연대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세계화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였다지만, 세계화 때문에 해결할 수 있는 해결점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책의 에필로그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다만 싸움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이 언제 왜곡되어 도와주던 사람들에게 발을 돌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또한 이것의 대안 점을 말하라 한다면 싸움이라는 것보다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다. 즉, 싸움이든 타협이든 화해든 거시적인 방법보다는 미시적인 방법을 통해서 충분히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듯이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미시적 방법의 꾸준한 움직임이 세계화를 세계화답게 만드는 길이라 생각되었다.

물론 이 미시적 방법의 해결책을 꾸준히 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안다. 2년 전, ‘젊은이, 평화 순례 기행’에 참가하여 한반도의 아픔을 돌아보고 그 지역의 평화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다. 소록도를 시작으로 광주와 지리산, 새만금과 평택, 나눔의 집과 북한이 보이는 교동도까지 청년 8명이 뭉쳐 평화를 외쳐야 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거시적이고 하루 이틀 머무르며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우리들은 그곳 주민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었지만, 관심을 갖고 듣는다는 작은 행동이 우리로 하여금 돌아와서도 평화를 외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속적으로 세계화 되어 나가는 현 시점에서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닥쳐라!’라고 한다고 해서 닥칠 그들이 아니다. 그들의 입을 막고 세계화의 피해 안에 살아가는 이 책에서 다루어진 사람들의 입장에 서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일을 찾는 것이다.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