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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고양이를 부탁해’를 통해서본 인천의 사회 지리학적 모습 이복련 영화‘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이라는 공간속의 스무살 태희와 그 친구들 지영, 혜주의 이야기이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했던 건 아마 내가 열다섯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20대는 물론 10대의 끝도 보이지 않았던 때라, 이 영화가 절실히 와 닿거나 특별히 공감되는 그 어떤 것도 없었지만, 그저 2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영화에서 줄곧 전달하려는 무언의 메시지와 분위기에 취해 20살이 되면 꼭 다시 한 번 봐야지 했던 영화였다. 그리고 스물 한 살, 11월 초순 찬바람이 제법 거세질 무렵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이제는 동생이 되어버린 태희와 지영과 혜주,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살고 있는 영화 속의 인천을 말이다.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인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절은 겨울. 특히나 카메라 렌즈가 지영의 집을 향할 때면 삭막한 겨울의 느낌을 온연히 담아낸다. 영화 속에서 태희는 그 큰 눈을 껌뻑거리면서 인물들 간의 관계에 있어서 그 한 중간에 서있다. 영화 초반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태희의 연락을 주도로 이들은 만나게 된다. 태희의 연락 없이는 이들은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낼 런지도 모른다. 혜주와 지영은 미묘한 갈등관계에 놓여있고 그것이 영화 중반 표면으로 드러나 버리기도 하지만, 그 때에도 지영은 어느 한편에 서 있기보다는 이쪽저쪽을 저울질 해가며, 갈등을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 이렇듯 혜주와 지영 그리고 비류와 온조와 모두 가장 원만히 연결되어있는 인물이다. 즉, 태희라는 인물의 시선과 움직임을 통해 영화가 전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천이라는 공간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영화를 들여다보자면, 우리는‘지영’이라는 인물에 주목해야 한다. 영화 초반, 지영은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 틈새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이름은‘티티’.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잔뜩 움츠려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고양이 티티에게서 왠지 모를 연민과 공감대를 느끼며, 티티 에게 많은 애정을 쏟게 된다. 그리고 영화 후반, 할머니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며, 티티를 조문 온 태희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태희는 다시 티티를 비류와 온조에게 맡기고, 지영과 함께 인천을 벗어나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떠난다. 지영과 태희의 재회, 그들이 후에 인천으로 다시 되돌아 왔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의 인천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인천. 그들에게 있어서 - 특히 지영- 인천은 주인에서 주인을, 손에서 손을 오가는 고양이들처럼 안정되어 정착하지 못한 채 불안감이 스며있는 그런 공간 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바쁘게 우리의 주인공들을 지나쳐 간다. 신 국제공항 건설 또한 한창이다. 하지만 단편적인 스틸컷이 아닌 지영의 삶의 터전으로서의 인천은 바싹 말라버린 낙엽과도 같이 삭막하기 그지 없다. 금방이라도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부서져 내릴 것만 같다. 지영 뿐만 아니라 이 영화 속에는 도시적 화려함과는 별개로 절대적으로 외롭고, 절대적으로 배고픈 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영과 태희 사이를 가로 질러가던 한 노파가 그러하였고, 태희에게 말을 걸며 다가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러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인천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인천과 서울의 거리는 지하철로 29개역이 소요되고, 시간은 약 1시간 남짓 걸린다. 그만큼 인천과 서울은 가깝다는 얘기다. 인천과 서울의 지리적 근접성. 이것은 인천이라는 도시를 이만큼 발전시켜 놓은 이유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정체시켜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만 앉아있으면 서울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그 생활에 누구보다 만족하고 있는 지영이 아무렇지 않게‘너네가 서울로 와!’했던 것처럼, 서울과 인천을 잇는 지하철이 생기면서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일은 이미 도시에서 다른 도시를 향해간다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렇듯 서울로 통하는 교통이 편리해짐과 동시에 인천은 성장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인구의 절반이 밀집되어 있고, 기업의 본사와 문화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서울로의 연결성은 인천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하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인천이라는 공간속에서‘in 서울’이 차지하는 의미는 커져만 갔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모두 누구라 할 거 없이 하나같이 서울로의 진출을 꿈꾼다. 그들에게 있어서 서울은 손을 내밀면 금방이라도 손끝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다. 경제적인 문제에서 같은 조건에 놓여있다고 하였을 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광주에서 서울로 대학을 진학을 희망하는 것과 인천의 수험생이 서울로의 대학을 희망하는 것은 심적으로든 표면적으로든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인천의 고등학생들에게 서울의 대학들은 이미 자신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비해 광주에서 서울로의 대학을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좀 더 큰 포부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지리적은 근접성은 차이가 일차적인 이유겠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러한 근접성을 전제로 갖게 되는 두 도시간의 지리적인 연결성이 이러한 차이의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미 인천이라는 공간속에서 서울은 저 멀리 피어있는 아지랑이 같은 공간이 아니라 그 어떤 것보다 실제하며,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공간이다. 그리고 때론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혜주가 그랬던 것처럼 서울로 향하고, 그 안에서 적응해서 새로운 (혹은 그렇다고 믿는)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어버리 기도 한다. 서울에서 직장을 잡아 그 곳 생활에 적응해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 지금 그들이 인천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으로 저것을 되뇌이고 있으리라. 혹은 저것이 지금 그들이 바삐 인천의 거리를 걷고 있게 하는 이유이자 원동력기도 할 것이다. 때문에, 인천은 어느 순간부터‘인천’이라는 도시의 자립성 보다는 서울과 원활히‘연결’된 공간으로서의 인천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부여되었다. 이는 너나 할 것 없이 서울로의 진출과 그 속에서의 동화를 꿈꾸게 되었고, 점차 인천이라는 도시의 내부적 안정성과 정착성은 조금씩 허물어지게 되었다. 조금만 더 가면 서울인데, 라는 생각에 인천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인천의 겨울을 더 춥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앞으로 계속 지내고 살아갈 터전이 아니라, 더 큰 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잠깐 머물러 있는 곳. 그것이 영화 속에서 보여 지는 인천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금 닥친 현실에 허덕여 더 큰 곳을 차마 볼 수조차 없는 지영과 같은 사람들을 조금 더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떠나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남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다 떠나고, 만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남는 상황인 것이다. 영화 마지막, 결국 지영과 태희 역시 그들이 20년 동안 살았던 인천을 떠나 인천하늘을 가로 지른다. 결국 그들도 인천을 떠났다. 오히려 혜주보다 더 멀리. 인천의 차디찬 겨울 속에 남은 건 티티를 부탁받은 비류와 온조 뿐이었다. 신국제공항이 건설되면서, 인천엔 서울이 아닌 좀 더 넓은 곳을 향하는 좀 더 큰 창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영과 태희도 그 문을 통해 인천을 떠났다. 이 문이 종전의 것과 다른 것은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지 않고, 손을 뻗고 발뒤꿈치를 들어도 닿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그들이 어떤 목적 때문에 공항에 내려 게이트를 통과해 인천 땅에 발을 내릴지라도 그들에게는 그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게이트를 통과해 인천 땅을 떠나게 된다. 하루면 수많은 사람들이 인천이라는 공간을 오고 가지만, 인천은 그 속에서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정착지가 아닌 스쳐가는 곳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신공항이 건설됨에 따라 인천은 세계적인 허브공항으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세계로 통하는 문이 되어주고 있는 인천이라는 도시는 한편으론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는 외로운 사람들을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태희, 혜주, 지영. 20살이 되고 나서 그들은 변했다. 그들의 삶은 불안정하고, 그 삶속을 방황한다.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는가? 인천이라는 도시 속에 그들에 주목해 영화를 감상해본 결과 그들은 항상 언제고 변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살이 그들이 변하게 만들었다기보다 20살이라는 나이가 그들을 변해 볼 수 있게 한건 아닐까? 어슴프레 자고 있다가 한 번의 쓰다듬는 손에 잠이 확 달아나는 것처럼. 인천이라는 공간 속을 그들은 언제고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티티는 인천에 남게 된다. 서울로 보냈던 티티는 다시 돌아왔지만, 인천의 비류와 온조는 티티를 안아들었다. 영화 속이 아닌 실제 인천을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인천은 그저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른 것이 없을 것이다. 군중속의 고독을 겪고 있는 인천이지만 아직은 고양이를 부탁한다며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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