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 영화감독이 보여주려고 하는 인천이라는 도시의 사회 지리적 특성은 무엇인가 -
김아리
영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다섯 명의 친구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지극히 일상적이며 주류사회와는 다분히 차이가 있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주변화되어 주류사회로부터 소외 아닌 소외를 당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소외는 전혀 외롭지 않았다. 혜주, 태희, 지영, 온조와 비류, 미얀마 노동자들, 태희를 좋아하는 뇌성마비 장애인. 이 모두가 주류사회와 떨어져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인천이라는 배경을 설정하여, 이 둘의 대비 관계를 보다 더 세밀하게 연출하고자 한다. 허나 그들의 삶이 이런 이중적인 잣대 속에서 관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히려 차별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발전되지 않은 인천의 시민들은 이 영화를 보며, 서운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는 것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영화는 절묘한 백그라운드와의 호흡이 중요한 영화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인공들의 특징을 더욱 잘 묘사하는 것이 바로 서울과 대비되는 인천이다. 영화는 여타의 영화들이 ‘대개’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 달리, ‘특별히’ 인천을 배경으로 택하였다. 지금의 인천은 수도권이라는 이름하에 서울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크게 발전하였으나, 발달되기 전 인천은 서울으로 가지 못한 사람의 보루이기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지금도 교육에 있어서 인천에서 서울로의 향도는 있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한창 발전되고 있는 인천의 모습을 20대의 주인공들과 오버랩 시키며 영화는 극을 이끌어 간다. 영화에서는 인천이 부흥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무너져가는 지영의 집, 공사현장, 연기 나는 굴뚝을 보여주며 인천을 묘사하고 있다.
불과 한 시간 떨어져 있을 정도로 인접해 있지만 서울과 인천은 별개의 세계처럼 보인다. 증권사와 벤처 회사로 빌딩 숲을 이루는 테헤란로와 시커먼 연기가 피어나는 공장 굴뚝, 복잡하게 얽힌 철주가 떠오르는 인천이라는 공간은 ‘분리’의 인상을 준다. 중심부와 인접했지만 명확히 나뉘어진 주변부의 느낌은 다섯 아이들의 삶과 포개진다. 서울과 인천 이라는 지리적 좌표의 차이만큼이나 ‘고양이를 부탁해’는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이라는 짝을 적절히 활용한다. 허물어져 가는 집 꼭대기의 닫힌 창문에 갇힌 지영의 처지는 고층 빌딩의 거대한 유리 속에 갇힌 혜주, 답답한 맥반석 체험실에 틀어박힌 태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재은 감독은 서로 다른 두 공간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 ‘로케이션의 승리’라 할 만한 공간감을 얻어냈다고 한다.
정말이지 영화 속에서 인천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도시로 그려진다. 태희는 틀에 박힌 삶을 살며, 지영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현실의 벽에 부딪혀있다. 온조와 비류도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조금은 편안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혜주는 서울에서 증권사 사원으로 입사하여 이상적인 삶을 꿈꾸려하지만, 저부가가치를 갖고 있는 낮은 인간으로 평가되며 벽에 부딪혀 꿈은 좌절되고 만다. 혜주는 인천이 싫다며, 서울을 고집하고 서울특별시민이라는 칭호에도 강한 자신감을 가진다. 이는 인천이라는 혜주의 원래 고향을 버리고 서울의 시민을 추구하는 것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왜 고양이를 부탁해인지 이유를 찾아보니, 정재은 감독은 “개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고양이는 마이너리티고 소외된 동물”이라고 말했다. 야생동물과 애완동물의 ‘사이’에 놓인 고양이의 처지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중간자의 위치에서 제 꿈을 다 펼치지 못하는 다섯 친구들의 모습을 닮았다. 들어오고 나가는 이주민들이 많은 ‘인천’이라는 공간(그곳에는 바다와 하늘로 열린 항구와 공항이 있다)도, 밀입국자들의 부유하는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의 글을 읽어보니, 주인공들의 디테일한 감정을 묘사하기에 인천과 고양이가 큰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의 중간에 을씨년스러운 인천의 풍경을 보여주며 출현하는 미친 여자. 미친 여자도 어쩌면 인천이라는 도시. 즉 아직은 미발달된 이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불쌍한 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에 ‘영화 속의 도시’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영화는 이미지를 재현해내는 가장 탁월한 양식이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 도시의 총체적인 모습을 그래도 닮고 있지는 않다. 현실의 도시와 영화 속에 재현된 도시는 동일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도시를 경험하고 인식하는 방식과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 도시를 경험하고 인식하는 방식 또한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속의 도시. 즉 ‘고양이를 부탁해’의 ‘인천’.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인천의 모든 모습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인천을 이해하는 탁월한 양식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 같다.
영화 속에 묘사된 인천의 모습에서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천은 동북아의 허브로 해양으로 하늘로 뻗어있는 중심지가 되었다. 어른을 시작하는 주인공들의 마음은 미발달상태의 인천의 모습처럼 조금은 갑갑하고 은둔적, 폐쇄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적 도시로 도약하는 인천의 모습은 이제 그 주인공도 어둠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조금은 답답하고 어두웠던 인천을 탈피할 수 있는 탈출구가 서울이었다면, 이제 인천에도 스스로 내재적 발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내면적 의미를 살펴보기 보다는 외면적인 재미와 흥미에 치중했던 나인데, ‘고양이를 부탁해’는 현재 20대를 살아가며 동시에 지리를 전공하고 있는 나에게, 인천의 지리적인 면도 조금은 신중하게 고찰하게 할 수 있게도 해주었고, 내 삶을 좀 더 깊게 조명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조롭고 잔잔하기만 했던 이 영화는 클라이막스는 없지만, 은은함의 감동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파헤쳐 보려고 인천의 역사와 산업 등에 대해 검색했던 나의 수고에 작은 목소리로 칭찬해주고 싶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