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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1/04
 

존 말코비치되기를 보고(08년 2학기 지리교육과 범영우)

2008.10.07 19:41 | 명예의 전당2: 영화평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148 주소복사

무의식, 욕망, 사회, 타인되기

범영우

 

‘내가 지금 진정 하고 싶은 짓(?)은 무엇인가?’ ‘내 생각, 무엇이 내가 지금하고 있는 생각인가?’ 사회공간이라는 현실원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보여 지는 욕구를 지금은 부정하고 싶다. 짓과 행동, 몰상식과 상식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내가 부정하고자 하는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주었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외줄타기에서 어느 정도의 해답을 제시해준 듯하다.

내가 지금 무의식이라는 영역에 대한 존재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그 영역에 대한 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해결해야 할 듯하다. 무의식은 사회라는 거대한 현실원칙에 의해 조작된 즉,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경계로 분류될 필요성이 없는 영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의 과도한 집착과 서로에 대한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소위 가식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공간이 바로 무의식의 세계를 어둠의 영역, 볼 수 없는 그 어떤 곳, 기저부, hidden field와 같이 확실히 드러낼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경계로 치부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난 내 무의식의 그 알 수 없는 욕망의 근원의 뿌리는 바로 사회라는 공간과 그 공간속을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인간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저 어두운 곳에 내던져진 미지의 영역이 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실로 직설적이고 본능적이다. 세 사람, 크랙, 라티, 맥신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듯하였다.

‘존말코비치되기’에서 비춰지는 무의식과 관련된 인간의 욕망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내용과 연관을 짓고 싶다. 프로이트는 환자가 잊고 싶어서 고의로 밀어낸 기억을 자유연상을 통해 의식의 세계로 들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억압의 실체를 분명히 하여 그것을 해소해 주어야만 치유가 가능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료법을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라고 명명했다. 자유연상 내지 꿈의 해석을 통해 영상 혹은 대화를 환자로 하여금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던 가소, 감정, 추억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 영화에서도 인형극,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통로, 다른 사람과의 대화라는 수단을 통해 무의식속에 자리 잡은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들춰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의 모든 귀결점은
욕망의 해소의지에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의식과 시선 속에 들어가 보고 그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도 어찌 보면 자신의 욕망해소와 직접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는 ‘타인되기’를 매우 거칠고 극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무의식속에 가려진 욕망의 진정성을 확실히 보여주려 한 듯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러한 욕망의 진정성을 중도적인 입장에서 다뤘다.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의 한 단편내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의 따끔한 지적일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라티의 진정한 성 정체성의 발견과 동성애라는 욕망을 인간의 무의식에 갇힌 억압된 실체라고 인정하고 있음과 동시에 영화 말미에는 이러한 동성애의 자연스러움을 인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한 크랙의 타인되기를 통한 자신의 욕망의 진정한 해소를 대리만족으로 그림으로써 사회라는 공간으로 인해 진정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인간, 영화에서 찾아보면 의도된 표현으로 보여 지는 ‘갇힌돼지’라는 술집 상호가 적절하겠다.

한편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억압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성적인 문제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크랙과 라티는 자신의 무의식속의 점철되어있던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끌어내려했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당연하고, 있을 법하며 남의 시선 속에 사로잡혀 절대부정으로 두둔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점에서 무의식이라는 영역의 노출이 현대사회의 일괄적인 비판이 되기보다는 현실원칙에 갇혀 살아가는 인간의 억압된 욕망, 그리고 금기시되는 억압의 노출로 인해 진정한 자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우매하게 살아가는 인간 모습의 확인과 동시에 이런 욕망의 자연스러운 인정과 더불어 현대사회공간에서 만들어진 거대하고 획일적인 구조에 휘말리지 않는 자신의 진정한 무의식의 잣대가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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