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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담론(discourse)”이라는 개념은 비판이론, 문학이론, 사회학, 지리학, 심리학, 언어학, 철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이들 여러 분과학문들간의 대화를 이끌기도 하는 중요한 매개가 되고 있습니다. 담론이란 무엇일까요? 담론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담론이 지리학, 특히 사회지리학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 질문들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볼까합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담론은 원래 ‘대화(conversation)’, ‘언술(speech)’, ‘말과 글의 형태로 표현된 생각의 재현’ 등 사전적인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일방적인 진술이라기보다는 화자와 청자의 일종의 상호작용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면 담론은 ‘의견의 교환’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따라서 담론은 인간과 동떨어진 언어학적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특정 사회의 지리와 역사에 조건되어 있는 사회적인 산물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오늘날 담론이 사회비판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한 것은 프랑스 태생의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미쉘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영향에 의한 것입니다. 푸코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소위 서구 맑시즘이라고 불리우던 유럽 좌파의 운동이 의문시되고 새로운 사회 운동에 대한 열망이 증폭하던 시기였습니다. 푸코는 노동운동을 넘어 죄수, 호모섹슈얼 등과 같이 사회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사람들의 인권 운동에 앞장을 서기도 하였고 알제리의 독립운동에도 관여하였지만, 그의 사상은 그 스스로 밝히듯 맑시즘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담론”이라는 개념은 “이데올로기”라는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 정치적 의미가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1796년 드 트레이시(Destutt de Tracy)라는 프랑스의 한 계몽사상가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종교적, 형이상학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새롭고 엄격한 과학적 사상”으로 정의하면서 새로운 근대로의 이행기에 있어서 대중을 계몽하기위한 확고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긍정적 개념으로써의 이데올로기는 19세기 들어와 맑스에 의하여 진정한 과학과 대비되는 “허위의식”으로 비판받았습니다. 즉, 이데올로기는 한 시대의 집단적인 의식을 규정하고 형성하는 관념 체계인데, 이는 인간 존재의 실제 물질적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는 까닭에 허위의식을 형성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보장하는 체계이다”라고 했을 때, 이는 국민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실제로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크게 자본가와 노동자의 필연적인 대립관계에 의해 계급화되어 있다는 점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국가라는 것은 이러한 계급관계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는 자본주의 체계를 보장하는 체계로 볼 수 있고, 이러한 까닭에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위와 같은 진술은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데올로기를 맑시즘에서 분리하여 구조주의와 접합함으로써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사회비판 전반으로 확장한 것은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 1918-1990)의 공헌입니다. 먼저 잠깐 구조주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구조주의 흐름은 흔히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1908-1991)라는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내륙의 원주민 부족 사회에 대한 문화 연구를 통해 1955년 자서전적 형태의 <슬픈 열대>라는 저술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유럽의 선교사, 식민주의자, 플랜테이션 지주로 대표되는 서구 권력이 “나름대로의 문화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브라질의 열대 원주민 사회를 파괴하고 상업화했던 과정을 비판합니다. 그래서 “슬픈” 열대이지요. 자, 레비스트로스가, 환경결정론적 사고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우월한 서구, 백인들이 미개한 사회를 문명화해야 한다는 식민주의적 사고를 반박하기 위해 택했던 전략은 무엇일까요? 레비스트로스는 “미개한” 원주민 사회도 서구와 못지 않은, 혹은 서구와 공통된 문화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열대 지역의 미개함하면 우리는 식인 풍습을 쉽게 떠올립니다. 사실 많은 식인 풍습은 헐리웃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다가 꼬챙이에 매달고 장작불위에 구워먹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이미 죽은 자의 몸의 일부를 부족의 의식적 형태의 하나로 뜯어먹는 행위입니다. 얼핏보면 잔인하고 반문명적이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식인 풍습에서 사실 죽은 조상의 몸의 일부를 먹음으로써 그들의 덕 혹은 힘을 자신들에게 내재화하고자 하거나 죽은 적의 시체의 살점을 먹음으로써 그들의 힘들을 중화시키고자 하는 주술적 의미를 발견합니다. 근대 유럽 세계에서는 정신병자, 범죄자, 혹은 죽은 시체를 두렵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여 격리, 고립시키지만, 원주민 사회에서는 오히려 이들을 자신들의 신체에 내재화하는 상반된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죠. 자, 이렇게 접근한다면, 서양이든, 동양이든, 브라질 내륙의 원주민 사회든 모든 문화에 공통된 사회적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겠죠?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사회적 질서를 “심층구조”라고 하면서 이는 모든 인간 사회에 공통적인 질서로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무의식이란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결정짓는 잣대가 되고, 인류에게 공통된 사회적 무의식의 공통된 기초는 “근친상간 금지”에 있다고 보았죠. 그러나, 그의 근친상간 금지는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이었다기 보다는, 근친상간 금지가 하나의 사회적 규칙으로 작동하면서 어떻게 친족관계와 그에 따른 사회의식이 형성되는가에 주목하였습니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데카르트와 같은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객관적, 이성적 “주체”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었습니다.
다시 알튀세로 되돌아갑시다. 알튀세는 (특히 그의 후기 철학에 있어서) 맑시즘에 갖혀있던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구조주의라는 방법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합니다. 그의 철학적인 질문을 쉽게 바꾸면 다음과 같죠. 왜 자본주의 국가에서 모든 노동자들은 집합적인 노동계급의식을 가지지 않는가? 라는 것이죠. 즉, 왜 많은 노동자들은 맑시즘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무장되기 전까지는 유기적으로 혹은 자의적으로 과학적 노동계급의식을 가질 수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이제 이데올로기는 알튀세에 의하여 지배계급의 이념으로써 단순히 정치적인 수사나 진술을 통해 나타나는 허위의식으로 진짜 과학적 의식, 즉 맑시즘을 은폐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이념이 일반 대중들의 공통된 무의식을 형성하는 재현(representation) 체계라고 정의됩니다. 우리가 태어나지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스스로 정의하기 이전에 우리를 둘러싼 사회에 의하여 먼저 내가 누구인지 불려집니다. 이를 알튀세는 호명 혹은 소환 (interpellation)이라고 합니다. 내 개인의 이름 뿐만 아니라, ‘너는 나의 딸이다’, ‘너는 어린이이다’, ‘너는 한국인이다’, ‘너는 소비자이다’, ‘너는 학생이다’ 등으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이전에 이미 남들이 나를 호명해 주어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죠. 호명은 나의 주체적 의식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내가 그 호명된 주체로써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 실천까지도 이미 규정하는 것이지요. 이는, 반대로 볼 때 호명이라는 것이 단순히 ‘언어적인 표현’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도록 되어 있는 사회 규칙에 의하여 즉 ‘돈을 주고 물건을 소비하는 실천’, ‘교회에 나가고 성경을 읽는 실천’, ‘한국말을 사용하는 실천’,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는 실천’ 등에 의하여도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호명-실천-호명-실천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호명된 주체로써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이는 근대적인 주체, 즉 데카르트적 주체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테에서는 주체가 객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주체는 객체를 인식하는 이성적 주체이지만, 알튀세에 따르면 주체라는 것 자체가 사회구조라는 틀 내에서 이미 객체의 의해 특정한 주체로 규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말씀드리죠. 알튀세의 비판가들은 다음과 같은 난점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남들이 나를 ‘한국인’이라고 호명할 때 왜 나는 나를 한국인이라고 받아들이는가? 혹시, 이러한 질문은 내가 ‘너는 한국인이야’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이미 선험적으로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질문은 이데올로기에 따라 주체가 타자의 호명에 의해 구성되지만, 역설적으로 타자의 호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나와 동일시하게끔 하는 선험적인 주체로서의 내가 사회구조 밖에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지젝(Slavoj Zizek)은 오히려 이러한 모순 자체가 미완성된 알튀세 이데올로기론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그에 따르면, 누군가가 나를 한국인이라고 호명하면 나는 단순히 ‘음…나는 한국인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음… 내가 한국인이라면 도대체 나는 다른 한국인들과 무엇이 다르지?’라는 주체적 의식의 잔여분(residue or leftover), 즉 내가 한국인임을 알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국인들로부터 구분짓고자 하는 주체적 과정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적 ‘의지’(will) 혹은 ‘신념’ (faith)가 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호명이라는 과정에 의해서 주체가 구성이 될 때, 나는 그 호명 자체에 의해 주체로 구성된다기 보다는 그 호명 자체가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는 “잉여의 나 (혹은 나의 잉여분)”에 의하여 주체가 구성된다는 것이죠. 이는 상당히 재미있는 지적입니다. 수업시간에 우리는 흔히 자기 소개를 다음과 같이 하죠. ‘저는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4학년이구요, 지금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자기의 “정체성”을 밝힙니다. 그죠?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진짜” 나의 정체성은 이와 같이 타자에 의해 호명된 것에 있다기 보다는 그 뒤에 혹은 앞에 “덧붙인” 언술에 있습니다. 가령, ‘수업 듣게 되어서 좋아요’, ‘학교를 조금 쉬었어요’, ‘어학연수를 다녀왔어요’ 등 혹은 우스개소리를 한다던가 평범함을 짐짓 가장한 독특성과 같이 “특정한”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4학년생으로 말이죠. 즉, ‘나’와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4학년’ 사이에는 이데올로기가 메우지 못하는 인식의 거리가 있다는 것이고, 이 간극이 호명이 내재화되는 과정에서 메워지는 것이 주체화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지젝에 따르면 주체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호명에 따라 내가 수동적으로 “완전히”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호명을 따름과 동시에 그 호명에 의해 완전히 주체화 되지 않는 (혹은 되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반영이라는 것이죠.
그럼, 담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세 가지 차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데올로기가 “과학” 혹은 “진실”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쌍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이데올로기가 항상 “주체”를 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는 경제 혹은 물적 관계에 대하여 항상 이차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알튀세는 이미 주체가 타자에 의해 ‘허위적으로’ 호명된 어떤 ‘산물’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특정한 사회의 ‘허위적 구성물인 알튀세 그 자신’이 ‘주체는 타자에 의해 호명된 어떤 산물’이라는 ‘진실’을 알 수 있느냐는 것이죠. 푸코는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진술들 혹은 사상들은 동일한 지위와 유효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즉, 어떤 하나의 진술이 다른 진술이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절대적으로 판가름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절대적인 비판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진술을 포함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어떤 한계 내에 조건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메트릭스의 경우 초현실적인 가상세계(우리가 사는 일반 세계)와 비현실적인 현실세계(기계에 의해 인간이 사육되는 세계) 두 개의 세계가 있죠? 그렇지만, ‘비현실적인 현실세계’가 또 다른 가상세계인지는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네오를 포함한 그 누구도 기계에 의해 지배당하는 그 세계를 넘어서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푸코는 객체를 바라보는 ‘주체’ 그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대신에, 어떤 주체가 자신이 주체라는 것을 가능케 하는 어떤 것,즉 ‘주체성’(subjectivity)에 관심을 가집니다. 가령, 성성(sexuality)라는 것은 “성(sex)의 차이에 따른 특성 혹은 성적인 행위에 있어서의 관심사”로서 생물학적, 유전적, 해부학적, 생리적, 심리적 요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경험,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여 나타나는 독특한 차이들입니다. 18-19세기 유럽이 근대로 이행하던 시기에는 여러가지 성성들에 (페티쉬즘, 옷갈아입기, 이성 흉내내기 등) 대한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졌는데, 유독 ‘동성애’라는 것에 대해서 강한 사회적 거부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남자-여자의 이분법과 남녀간의 성역할에 따른 분업이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근대 담론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근대 이전에는 ‘동성애’라는 것은 개인들이 지니는 여러가지 성성 가운데에 하나였던 것이, 근대에 오면서 ‘상상된 정상적, 표준적 인간’과 분리된 ‘동성애자’라는 주체로, 그것도 비정상적이고 위험스럽고 더러운 주체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아… 재 호모래 (혹은 레즈비언이래)’라고 할 때 우리는 이미 근본적으로 남성의 시선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서구에서는 아주 예외적이지만, 한국의 경우 여고생 뿐만 아니라 여대생들도 여성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그래서 종종 한국에는 왜 그렇게 레즈비언이 많냐는 오해아닌 오해도 듣는데, 그들의 입장에서보면 여성들끼리 손잡거나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이 당연한 성성의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 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사회에서 “사내자식이…” “남자가…”등의 담론속에서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독립성’을 요구받습니다. 까닭에 동성간에 손잡고 다니는 행위 등은 자연스러운 성성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감시”받고 금지되고 억압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성적 억압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이 됩니다 (남아의 자위행위는 모순적이게도 호모섹슈얼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생산해낸 호모섹슈얼리티의 한 형태죠?). 이와 같이 푸코는 <성의 역사>라는 유명한 저술에서 주체란 ‘주체가 만들어지는 그 과정 자체’라는 입장에서 사회적 담론을 통해 주체성을 해부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죠.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푸코는 규율(discipli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에서 푸코는 유럽의 경우 18세기에 일어난 형벌제도의 변화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대성에 대한 비판의 관점에서 풀어내고자 합니다. 그에 따르면 18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절대 왕정의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육체에 대해 잔혹한 형벌을 공개적으로 가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1757년 파리 성당의 중앙문에서 공개 처형된 국왕 시해범 다미앙의 경우, 교수대 위에서 전신을 단근질 당한 후, 국왕을 살해했을 때 칼을 잡았던 오른쪽 손은 황산에 태워버리고, 그 다음 그의 사지는 세 필의 말에 의하여 산산이 찢겨 졌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잔인한 형벌은 18세기 말과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더 이상 육체적 고통 자체가 형벌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 범죄자에 대한 교화와 감시가 더욱 중요한 것으로 변화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근대성이 형성되면서 나타나는 형벌체제의 인도주의화로 설명되곤 했지만, 푸코는 이러한 인도주의 개혁이 사실은 보다 엄밀하고 정교하게 처벌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사회적 통제와 권력을 일상생활 깊은 곳까지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통제와 감시를 극대화하려는 목적하게 이루어졌음을 주장합니다. 즉, 전근대사회에서는 잔인성은 있었을 망정 개인들 하나 하나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들이 없었던 반면, 근대에 들어오면서 감옥을 위시하여 (정신)병원, 학교, 군대, 공장, 회사 등 다양한 사회 권력 기구들에서는 인간의 신체를 철저히 규율화함으로써 사회의 “보편적 질서”에 순응하게끔 하여 근대적 주체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근대화의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이었던 목표는 노동하는 인간, 과학과 제도와 국가의 권력에 순응하는 인간 등 근대적인 주체를 생산해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광기와 문명>이라는 저술에서도 푸코는 17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광기와 이성적 인간에 대한 대립이 없었으며, 오히려 광기는 특정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 등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이성적 인간이 보편적, 절대적, 정상적 인간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이성과 비이성의 분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유럽 전역에 걸쳐서 부랑인, 극빈자, 범죄자, 실업자와 정신 이상자를 함께 수용하는 정신병원이 대규모로 건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정신병원은 애초 의료기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행정기관으로써 근대적 사회 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자들을 격리하여 도덕적인 정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하게 노동을 통해 그들을 규율하고자 했었습니다. 이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병자는 부랑인, 범죄자들로부터 다른 곳으로 격리되어 수용되는데, 푸코에 따르면 이는 의학적 진보에 따라 치료를 하기 위한 것이었던 게 아니라 그들을 재교육하여 “정상인”의 가치를 내면화하는데에 주안점이 있었다는 점을 분석합니다. 결국, 광기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성의 시대로 대표되는 근대는 ‘보편적 진리의 세계로의 진보’라는 담론을 통하여 개인들의 일상세계 깊은 곳까지 권력을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사회통제, 질서유지, 규율을 형성하고자 했던 하나의 담론이었다는 것이죠. (법과 도덕, 담론, 상호감시 / 공공공간과 사적공간의 boundary 넘기)
살펴보았던 것처럼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공통점은 둘 다 권력에 의해 주체가 형성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는 그 뿌리를 맑시즘에 두고 있는 까닭에 정치경제적 관계를 일차적인 것으로 보고, 따라서 자본가 계급 그리고 국가의 ‘위로부터의’ 권력을 강조합니다. 반면, 푸코는 “Power is everywhere”라고 선언했던 것처럼 모든 사회관계에 모든 주체들간의 관계에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즉, 푸코에게서는 “권력”이라는 것은 ‘권력관계’ 자체를 의미하며, 이는 담론을 형성하여 주체를 생산해내는 과정의 “전제 조건”이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권력은 항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집단이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들간 혹은 집단들간에 서로 밀고 당기고 투쟁하고 타협하는 대상이 됩니다. 가령, 식민주의는 ‘미개한 흑인’들을 문명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상 혹은 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는 식민주의자와 식민지인이라는 불균등한 이분법적 주체를 만들었지 않았습니까? 이는 어떻게 보면 이데올로기라기 보다는 담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식민지배를 받던 사람들에게도 당연시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식민사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알제리의 경우 혹은 필리핀의 경우 많은 원주민들이 프랑스나 미국에서 서구의 교육을 받고 “문명화”되어 자국에 옵니다. 그런데, “문명화”된 자신 조차도 모국에서 백인들의 까페, 공원, 레스토랑 등에 출입하지 못하고 불평등하게 지배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죠, “왜 우리는 너희가 만든 그 교육, 문화에 의해서 문명화되었는데도 너희와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라고 말이죠. 이는 식민주의라는 담론이 식민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거꾸로 피식민지인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평등을 찾고 식민주의 자체를 해체할 수 있는 중요한 사상적 도구가 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결국, 푸코가 “Where there is power there is resistance”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담론이란 지배와 저항을 동시에 함의하고 있습니다. ‘성역할’이라는 담론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겠죠? 아이는 여성에게서 태어나고 따라서 여성은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는 담론을 통해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공공/사적 공간으로 이분화되었었지만, 요즘처럼 아이를 갖지 않는 가정 혹은 결혼관계를 맺지 않고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이 많아지는 경우 “아이도 없이 남성과 똑같은 노동강도와 시간으로 일하는데 왜 임금이 낮은가?”라고 반문하지 않습니까? 이는 여성이 남성중심으로 형성된 담론을 통하여 그 남성중심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종적인 예를 한가지만 더 들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백인, 흑인, 황인 뿐만 아니라 좀 더 세부적인 인종 집단의 구분은 근대 유럽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예전에 배웠지만, 라틴 아메리카 혼혈인의 경우 뮬래토는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 메스티조는 백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 그리고 잠보는 흑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의 자식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혹은 인디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명칭은 있었을까요? 대답은 “노”입니다. 이는 정신분석학과도 관련이 되어 있지만, 백인은 흑인을 덜 발달된 인간을 의미하는 “아들”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많은 흑인 노예들이 그 남자 주인의 성을 따랐다는 것이 그 한 예가 되겠죠? 따라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섹스를 한다는 것은 프로이드주의에서 보면 근친상간이요 아버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혼혈 인종에 대한 명칭 자체는 현실의 투명한 재현이라기 보다는 위와 같은 사회적 억압을 통해 형성된 담론적 구성물이 되는 것이죠. 오늘날 많은 헐리웃 영화들에서도 백인남성과 흑인 혹은 동양 여성의 정사신은 많지만, 흑인 혹은 동양 남성과 백인 여성의 정사신은 거의 없죠?
마지막으로 실천의 문제를 봅시다. 이데올로기는 ‘현실’과 ‘재현’, 즉, ‘사실의 세계’와 ‘허위의 세계’에 대한 구분에 근거하고 있지만, 담론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현실-재현의 세계에 대한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흔이 우리들은 생물학적인 특성과 전혀 관계가 없으면서도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운전을 잘한다”고 듣고 또 그렇게 믿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남성의 공간지각력, 판단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과학적인 이야기로 이를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남성의 두뇌가 목표지향적으로 되어 있어서 현재 자체에 민감한 여성들보다 남성의 교통사고 확률이 높다고도 합니다. 즉,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진술들 자체도 담론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운전하다보면 진짜 여성들이 더 미숙한 것 같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운전을 잘한다”고 남성, 여성 모두 믿고 있기 때문에,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운전할 기회가 더욱 많고 경험이 많은 것이죠. 여성들은 이러한 믿음때문에 운전할때 남성들보다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이처럼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운전을 잘한다”라는 담론, 그리고 이 담론에 대한 믿음이 실질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운전을 잘 하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여성들과 남성들을 통계적으로 조사해서 어느 쪽이 운전을 잘 하는가를 조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담론화되어 있는 여성과 남성의 운전습관 및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실제로 참이 무엇인지 대답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따라서, 푸코는 “there is no prediscursive providence which disposes the world in our favour.”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현상을 이해할 때 담론은 이해의 “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다 넓은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근대 과학의 시작은 대개 “분류학”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분하는데, 사실과도 같은 이와 같은 사계절의 구분은 실제로 사계절이 뚜렷한 유럽의 입장에서 계절을 구분하여 지구 보편으로 확장시킨 담론이 되는 것이죠. 생물학에서, 특히 린네의 식물 분류학에서, 분류 체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종-속-과-목-강-문-계가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제로 식물-동물 종의 구분은 이미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원주민들에 의해서도 음식, 의학적 가치, 생태적 특성, 상징 특성 등에 의하여 이미 그 분류 체계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린네의 식물 분류학은 이와 같은 지역의 문화와 깊게 연관되어 있는 식물들의 이름을 근원적으로 바꾸었습니다. 특정 식물의 명칭이 바뀌고, 그 바뀐 이름이 보편화된다는 것은, 단순의 명칭의 문제를 떠나 원주민에 토착적인 지식 체계와 문화를 없에면서 유럽의 지식으로 그 사회를 재구성하고 뿌리내리게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식민지들은 ‘지식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죠.
요컨대, 담론을 분석한다는 것은 특정한 진술들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권력관계와 구조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작업입니다. 이는 지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샤인(Richard Schein)이라는 한 지리학자는 “경관이란 물질화된 담론”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경관이란 자연-인간의 상호관계의 결과”라는 담론은 경관 분석의 창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경관에 깃들여져 있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은폐하는 구실도 했었던 것이죠. 담론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특정한 장소, 기념비, 건축물, 마을, 지역, 국가 등에 깃들여져 있는 권력 관계를 분석할 수 있고, 또 그러한 권력 관계가 어떻게 독특한 경관을 형성했는지 또 특정한 공간 관계가 어떠한 사회 담론을 형성했는지는 오늘날 중요한 사회지리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2005. 9. 26. 박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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