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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1/04
 

갱스 오브 뉴욕: 지리교육과 김명지 (08년 1학기)

2008.07.23 23:30 | 명예의 전당2: 영화평 | philgeog

http://kr.blog.yahoo.com/kyonghwanpark/128 주소복사

아군이든 적군이든 이제 다르지 않다?

-<갱스 오브 뉴욕>

 김명지

 

동부의 핵심도시라 불리는 뉴욕, 이 영화를 보기 전 난 뉴욕의 화려함만을 봐왔다. 그러나 이러한 뉴욕도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무슨 말이지? 하고 의아했던 것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고 나서야 아하, 하고 그제서야 끄덕거리게 되었다.

이 영화는 뉴욕 토박이들과 아일랜드 이민자들 사이의 대립과 정치 세력의 갈등, 그리고 상류층과 빈민층의 적대적 관계를 토대로 뉴욕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그 당시 뉴욕은 원주민과 이주민이 넘쳐나고 그로인해 인종간의 갈등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며 파이브 포인츠라는 곳에서 시작된다. 파이브 포인츠는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으로서, 사기, 도박, 살인, 매춘 등 범죄가 들끓는 거리, 그러나 아일랜드 이주민들에게는 매일 수 천명씩 모여드는 꿈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파이브 포인츠를 지배한다’라는 선포를 하고 아일랜드 이주민(일명 죽은토끼)의 우두머리인 프리스트 발론과 뉴욕토박이의 우두머리인 빌더 부처가 처음 대립을 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프리스트 발론은 죽게 되고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 발론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16년만에 파이브 포인츠에 돌아와 빌 더 부처의 밑으로 들어간다.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영화상에서 암스테르담이 자기이름을 '암스테르담'이라고 빌 더 부처에게 말하자 빌이 '나는 뉴욕' 이라고 응수한다. 나는 무슨 뜻이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뉴욕이 무슨 상관이지? 궁금했다. 영화가 끝나고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조사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역사에서 뉴욕에 처음 살기 시작한 이민자들은 17세기 네덜란드인이였다. 인디언들이 살던 땅인 그 곳에 마을을 건설하고는 '뉴암스테르담'이라 명했다. 18세기엔 영국인들이 점령하여 '뉴욕'으로 개명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을 암스테르담, 나는 뉴욕 이라고 한 것에서부터 정복과 폭력의 이미지를 풍긴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영화에서 1776년 독립선언과 독립전쟁을 거치며 미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잡은 이들이 '토박이'들이고, 19세기부터 영국의 식민지 정책과 아일랜드에 불어 닥쳤던 대기근을 피해 엄청나게 이주해온 아일랜드인들이 '이민자무리'의 중심에 서있게 된 것임도 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영화를 볼 때는 몰랐던 사실들, 왜 아일랜드인이 하필이면 뉴욕에 많이 몰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빌 더는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이 더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빌 더는 암스테르담에게 “그 신부와 내 원칙은 같았어. 우린 신념 때문에 적이 됐던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신념이란, 생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라 생각 된다. 뉴욕 토박이와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우두머리인 그들은 조직을 이끌고 그 안에서 생존을 해야하는 원칙은 같았을 것이다. 다만, 생존하기 위해 융합할 수 없던 각기 다른 신념이 그들을 적으로 돌려 놨다고 생각된다. 그들이 융합하기에는 그 당시 뉴욕에는 너무나 많은 원주민과 이주민이 넘쳐나고 정치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꼭 서로 싸울 수 밖에 없었나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주민을 적대시하고, 경계하는 모습들 말이다. 세계화 체제로 감에 따라 갈수록 이주민은 늘어날텐데 토착세력과 이주민의 갈등은 여전하다. 그리고 이주민과의 갈등에는 인종차별까지 개입되고 있다. 이들을 우리식으로 동화시키려는 것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암스테르담의 복수가 시작되던 날 그는 이렇게 외친다.

“과거는 우리의 길을 밝힌 횃불이다. 아버지들이 이끈 그길로 우리가 뒤따르리라.”

난 이런 생각을 비판하고 싶다. 과거 토박이와 그의 아버지가 이끈 이민자 집단이 생존을 위해서 싸워야 했지만 꼭 그들을 따라서 싸울 것이 아니고 서로 화합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했다고 본다. 물론 과거의 그런 모습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뉴욕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수도 있으나 나는 위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놀라웠던 점은 영화상에서 보면 1주일에 15000명의 이주민이 들어오는데, 즉 그들만 모아도 군대 규모인데 그동안 토박이 세력에게 대항한번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저 그들을 묶어줄 불씨를 기다려왔던 것이다. 놈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무기는 우리의 신념, 우리를 파괴하려는 자들로부터 우릴 일으켜 세운 버팀목 같은 신념, 우리의 이름 죽은 토끼는 그동안 고통받은 이민자들과 앞으로의 고통을 두려워 하는 자에게 비참한 결속력을 다져주는 이름이다. 더 많은 이민자는 더 큰 힘과 구원을 뜻하는 거니까 말이다.

여기서 우리의 신념은 어쩌면 민족에 대한 신념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며칠 전에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라는 책을 봤다. 거기서 민족이란 상상된 것이며, 따라서 민족주의라는 것 역시 그런 상상된 것에 씌여진 정신이기에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족주의가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주었고, 민족주의의 정신처럼 개인보다는 민족을 중시하기 때문에, 민족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시키는 것 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민족주의라기 보다는 국가주의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특히나 빌더를 통해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하는 미국인의 전형적인 예를 엿볼 수 있었다. 반면에 민족, 국가보다는 아버지의 복수를 우선시 했던 암스테르담의 경우 암스테르담이 흑인과 아일랜드계 빈민들을 끌어 모으며 ‘죽은 토끼’의 정신을 고취할 때는 같은민족, 같은국가의 사람이 아니여서 그런지 설득력이 떨어졌던 것 같다.

 

빌 더와 암스테르담의 싸움이 극에 달 할 무렵, 그와는 별개로 남북 전쟁을 계기로 불거진 흑인 문제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적대적 관계가 표면에 떠오르게 된다. 연방 징병법에 의해서 300불을 지불하면 징병에서 제외되고 그렇지 못한 청년들은 모두 전쟁에 끌려나갔다. 즉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 전쟁에 끌려나가게 된 것이다. 결국 합당하지 못한 연방법에 아일랜드 이주민과 가난한 노동자들은 분노했고, 폭동이 일어났다.

빌 더와 암스테르담과의 싸움, 남북전쟁과 징집제 반대 폭동 이 두사건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치열한 생존 투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 암스테르담은 외친다.

“아군이든 적이든 이제 다르지 않다. 인간은 뼈와 피와 시련을 안고 태어난다 하셨던 아버지 말처럼 당시의 뉴욕은 그렇게 탄생됐다.”

나는 이 부분이 토박이들과 이민자 사이의 화합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해설들을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유럽 혹은 아일랜드적 정체성 대신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리고 산업화와 제국의 근대가 그들앞에 우뚝섰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제 파이브 포인츠 거리의 이민자 공동체들은 해체되어 '미국인' 개인으로서 군대에 징집되어야 하고, 뉴욕시와 미국정부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하며 '아메리카제국'의 건설자로 서부개척과 공장 노동에 나서야 함을 의미하게 되는 거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민자들은 미국인, 혹은 뉴요커가 되는 대가로 자기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잃고, 미국인으로서 살아 가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엔딩이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니. 이 부분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동화주의의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이주민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서로를 감싸안으려는 모습보다는 미국인으로 동화시키겠다는 그런 발상,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도 정당하다는 논리가 숨겨져있을 줄이야. 토박이는 나라 위해 자기 목숨마저도 바치는 자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고통받는 이주민의 모습, 인종차별, 빈부격차에 대해 보여주긴 했지만, 제대로된 해결책 제시는 해주지 않고 있다. 세계화 체제 속에서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Melting Pot 이 아닌 Culture Mosaic 정신을 가지고 주류 문화의 동화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원주민과 이민자들의 문화적 속성을 보존, 보호 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아군이든 적이든 서로 다르지 않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http://cafe.daum.net/LoveAndMovie2002/QN0/23

엔키노-<갱스 오브 뉴욕>-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스콜세지의 시선<이주영 200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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