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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송우람 영화가 끝나고 나니, 마야의 언니 ‘로사’의 울부짐이 계속 떠나지 않는다. 어렵게 영화 선정을 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나에게 이 영화의 메시지인 ‘생존과 인권’의 문제는 대단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미국 LA의 유명 빌딩에서 청소업을 하는 도시노동자, 특히 히스페닉계의 생존과 인권의 문제를 다루었다. 시대적 배경은 1999년으로 1970년대 이후 미국행 3차 국제 이민 시기의 연장으로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영화의 시작은 멕시코 사람들이 브로커를 통해 불법으로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이 장면을 통해서 히스페닉계의 미국으로의 국제 이민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었고 자연히 이들이 미국 내에서의 위치와 앞으로의 직업까지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분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연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3D업종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배운 것처럼, 영화의 배경이 되는 LA에는 다수의 히스페닉계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저임금을 받으면서 불안정 고용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백인 노동운동가의 등장으로 청소직원 사이에서 노조 문제가 대두되면서이다. 청소부들은 그 건물의 청소 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 용역업체와 직원에 의해 각종 부당한 대우와 해고, 임금강탈 등을 당하게 된다. 청소부들은 부당함을 알면서도 정당히 호소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주인공인 마야가 백인 노동운동가와 인연이 닿아 청소부들이 의료보험 무혜택은 물론,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노동운동가와 마야는 사내 동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게 되고 곧 청소부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청소부들은 이내 두 파로 갈라지는데, ‘고용불안 위험을 감수하면서 노조를 결성하여 권리를 찾느냐’, 아니면 ‘이대로 조금 참으면서 하루하루 살 것이냐’로 나뉘게 된다. 곧 청소부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 때 히스페닉계 사람들의 개개인의 인생이 조금씩 나오게 되고 그들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남미에서 미국으로 도미를 해서, 시간당 5-10불 정도의 돈을 받으며, 미국 내의 가족의 생계를 꾸리거나, 아니면 남미의 고향에 돈을 붙이면서 생활을 한다.(이 모습은 현재 우리나라에 와서 일을 하는 동남아 출신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히스페닉계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미숙한 영어 실력을 나타내고 낮은 교육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이 미국에서 3D업종에 종사하면서 힘겹게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교육수준이 낮은 부모들을 둔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로사의 집을 보면, 무조건 공부를 하라고만 하고, 그들의 생활환경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보면서 히스페닉계 사람들이 미 주류사회에 편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한편, 영화 속에서는 히스페닉계 사람들은 힘겹게 생활하지만 그들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히스페닉계를 위한 술집과 공연이 그것이다. 영화 속 무대에서 남미 특유의 열정적이고 흥겨운 노래와 춤을 통해 그들의 공동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노래 가사에서 그들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미국 사회를 조롱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문화공간이 ‘그들의 불만을 해소하면서 삶의 힘을 얻고 그들만의 문화를 지켜가는 소중한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든 점도 있었다. LA라는 도시가 히스페닉계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시아계도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아시아계는 나오지 않았다. LA에 사는 교민 같은 경우, 슈퍼마켓이나 세탁소, 한국음식점 경영 등을 한다고는 들었는데, 우리나라 교민들도 히스페닉계 같은 사람이 하는 일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업시간에,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라 미국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에 하나가 ‘다양성’과 ‘차이’라는 것을 배웠는데, 다양성과 차이라는 관점으로 영화를 보려고 시도해 보기도 하였다. 가장 눈에 띤 것이 ‘인종적 다양성’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인종적 차이가 특별한 갈등이나 사건이 나타나진 않았고 그 자체로 보여 질 뿐이었다. 한 가지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인 여자 마야를 사랑하는 멕시코계 남자가 마야에게 하는 말이었다. 마야가 사랑하는 사람은 백인이었는데, 멕시코 남자가 마야에게 ‘그 사람은 백인이야’ 라고 하면서 ‘인종이 다르니 그 사람과 너랑은 사랑하면 안된다’ 라는 사고방식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그 다음은 ‘문화적 다양성’이다. 앞서 서술한대로 영화 속에는 히스페닉계 사람들만의 문화공간이 나타난다. 이 부분에서 미국에는 다양한 나라가 사는 만큼 ‘그들 각각의 문화가 존재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차이’라는 키워드는 백인 노동운동가의 헌신적인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68혁명 이후 미국에서도 70년대부터 다양성을 인정하고 인종, 젠더, 소수민족, 장애인 등에 대한 인권운동이 활발해졌는데, 영화 속 모습은 그 연장으로 생각해보았다. 백인 노동운동가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설명하고 함께 행동을 한다. (이런 모습은 지금 광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시청 비정규직 청소부 노동자들의 투쟁을 떠올리게 했다.) 이 모습은 청소부원도 미국의 일원이고 정당히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에서 관점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 가지 영화 속에서 조금 불만이었던 것은, 백인 노동운동가의 헌신적인 모습,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일하는 모습, 그에 의한 히스페닉계 청소부원들의 의식화와 행동의 구조가 ‘백인에 의한’, ‘백인 주도’의 모습이었다. 조금 과장되게 해석하자면 이러한 구조는 백인 우월의식, 백인 주류의 미국 사회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양한 민족이 모인 미국, 그리고 백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소수민족이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이고 그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미국은 어떻게 변화하는 가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여준 ‘빵과 장미’. 그들을 통해 미국의 한 모습을 바라보게 됐고 그들의 녹록치 않은 삶 속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감상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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