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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감독 - 월터 셀러스 배우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 지리교육전공 김아리 영화를 보고나니, 진실이 묻어나오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여타의 영화와는 좀 다르다. 그냥 뭐랄까‘영화 같지 않은 영화’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어감이 좋지 않다. 좀 풀어 말하자면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인데, 그게 정말 잘 만들어져서 영화라는 굴레를 벗어나 영화 이상의 무언가를 던져준다고 해야 하나. 나는 영화에 대해 박학다식하게 아는 전문가도, 그들의 연기와 작품성을 평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해선 위와 같은 표현들을 쓰고 싶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 체 게바라가 누구인지도 사실 잘 몰랐다. 그냥 얕은 지식 속에서 훌륭한 인물이라고 나름 생각할 뿐이었다. 그 뭐랄까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름만 들으면 친근해지는 그런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체 게바라였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관해 추억을 떠올려 보자면, 고등학교 때 한창 신문을 볼 때 -그 때도 영화를 보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만- 신문의 한 귀퉁이에 체 게바라에 관한 이야기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가 개봉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두 청년이 찍힌 포스터도 맘에 들었었다. 물론 고등학생이라는 열악한 신분과 영화관과 원거리라는 여건상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지만, 이 모든 나의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보자면 이 영화에 필이 꽂혔다고나 할까. 그렇게 보고 싶었던 영화를 숙제라는 명분하에 보게 되었지만 어쨌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기 전 조금 알아보니, 남미를 여행하는 이야기라고 해서 남미 자연의 아름답고 웅장한 경관들만이 많이 담겨진 영화일거라고 기대했지만 에르네스토 게바라(일명 푸세)가 젊은 나이에 남미를 여행하면서, 그의 시야를 더욱 확장시키고 가치관을 정립하는 그런 영화임을 알았다. 푸세의 여행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이 로드무비는 그의 삶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의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와중에, 나도 그의 모습에 동화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그의 슬픔이 전해지는 듯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파다고니아를 지나 칠레해협을 타고 북쪽으로 안데스 산맥을 통해 6000km를 거슬러 올라가 마추픽추를 거쳐 그곳에서 페루의 아마존 강 유역으로 들어가 산 파블로의 나환자촌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목적지인 라틴아메리카의 북극에 해당하는 구아지라의 반도인 페니실라에 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여행은 왠지 즐거울 것 만 같았다. 물론 화면으로나마 그들의 여행을 따라가는 기분 좋은 동행을 나는 하게 된 것이다. 영화의 서두에 공통된 꿈과 열망으로 가득 찬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 말을 엔딩 크레딧이 나갈 때 되새기니 100퍼센트 공감이 되었다. 푸세와 그의 친구에게서 열정을 보았고, 무엇이든지 꼭 해내고자 하는 의지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장도 들리고, 여러 지역을 방문하면서 많은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그들은 만난다. 밝고 티 없는 그들을 만나면서, 남미의 문화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스페인의 침략에 의해 사라져버린 잉카제국을 보면서 푸세는 말한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이곳이 이렇게 그리울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이제는 추억만이 되어버린 곳에 대한 그리움. 이 말이 왜 그렇게 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혈안이 되어 이곳을 점령해 버린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공산당원이라는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서 쫓기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방랑하는 부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돈을 주고 떠난 푸세의 모습에서, 그가 정말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왜 그들이 정치적 이념 때문에 쫓겨 다녀야 하는지, 또 왜 그토록 고생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열악한 남미의 환경이 푸세와 함께 동행을 하던 나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주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인간적 대우도 받지 못한 채 광산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 그리고 배에서 잠자리를 같이 해 주는 여성을 보며, 무언가 침통함이 느껴졌다. 인간의 행복할 권리가 박탈당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당시의 남미에서는 인권조차 유린당했던 것일까. 또 의학도로서 나병환자들이 거주하는 곳에 가서 그들을 환자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미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 후, 왜 강 건너편의 나병환자들은 같은 것을 누리지 못하냐며 천식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강을 헤엄쳐 건너던 그의 굴하지 않는 의지에 깊이 박수를 보낸다. ‘이번 여행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실체 없는 분열과 불확실한 국가 정체성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단일한 민족으로서 편협한 지역주의를 탈피하는 한편, 아메리카 대륙과 페루의 연합을 위해 다 같이 건배합시다.’라고 외치는 푸세는 정말 모두를 위해 살며 또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남미의 현재의 삶이 왜 빈곤하고, 피폐할 수밖에 없느냐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제국주의의 수탈을 받는 남미. 우리도 일본의 압제 속에서 극심한 수탈을 겪었을 때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며, 남미의 이야기는 비단 남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1950년대 남미의 열악한 환경들. 물론 우리나라도 좋은 환경은 아니었을 테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나라의 과거들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나에게 남미는 유럽, 북미와 같은 화려함, 이색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었던 곳이고, 그 나라를 언젠간 한번쯤 꼭 방문해 보고 싶다는 동경심도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 진정성이 보였고, 푸세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한 여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막연하고, 머릿속으로 무언가 쉽사리 떠오르진 않지만 가슴으로 와 닿는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자연환경을 자연스럽게 스치듯이 만나는 것은 영화의 묘미였다. 그러나 감독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그리고 나병에 걸렸지만 괴로워하지 않고 웃음을 짓는 그들의 모습을 진정으로 카메라 렌즈 속에 담고 싶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은 잘 웃고 작은 것에도 행복해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을까. 푸세 자신도 그것들을 담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기억해 좀 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의 삶의 목적은 육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물론,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극중 수녀님의 말이 떠오른다. ‘어찌 정신을 살찌우지 않고, 육체만 살찌우려하는가’하는 것이다. 푸세의 남미로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자신에게로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이었으니 정신을 살찌우기 위한 여행이었던 것이다. 과거 그리고 현재, 남미를 살기 힘들게 했고 또 힘들게 하는 그들도 정신은 살찌우지 않고, 탐욕을 챙기며 육체를 살찌우려 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정신은 영양실조인데, 육체만 살찌우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해 본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남미에 대해서는 아는 지식이 거의 없다. 그래도 이 영화가 남미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내가 영화를 본 처음 목적도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남미의 궁핍하고 피폐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며 암울했고 그것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또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푸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으며, 영화에서 기대 이상의 것을 얻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왜 남미는 그 모습일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조사해야 함이 나의 과제임을 알았다. 훗날 미국 제국주의에 대해 싸우는 그의 모습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아봐야겠지만, 이 영화는 내게 체 게바라의 인간다운 면모와 체 게바라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게 만든 하나의 동기부여의 역할을 한 것 같다. 영화라는 하나의 아름다운 영상에서 나의 관심을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체 게바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보아야겠다. 그리고 제국주의라는 족쇄에 갇혀 궁핍하고 핍박받는 안타까운 남미의 삶의 모습도 살펴보아야겠다. 미국이라는 조금은 무서운 그늘 아래서, 현재도 이와 같은 일은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더더욱 푸세와 같이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관심이 그들에겐 절실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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