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아름답게 커가기를 바라는 아이들을 위주로 한 개인적인 블로그입니다.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ky101301 (ky101301)
프로필      쪽지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690)
해프닝 새 답글이 있습니다.
기본폴더
주워들은 얘기
사건 뒤의 이야기
당나라 군대 이야기-80년대
내가 겪은 하얀거탑
먹고 논 이야기
잡생각
설문
백만가지 주제
오늘 전체
방문자 98 78173
구독자 0 9
답글 0 125
참조글 0 1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2008 07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 답글 전체보기
ㅋㅋㅋㅋ 참 친절하네...
몸 보신을 해도 나이 ..
애들 다 보내놓고,,,..
bb
저는 홍콩 처음봐요 ..
최근 참조글 전체보기
집착의 뒷끝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바보
- 영감
- 우리글방
- 세리뷰티살롱
- shinture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개설일 : 2005/10/24
 

사건 뒤의 이야기
검색 
실제의 법은 이렇다
2008/05/24 오전 11:02 | 사건 뒤의 이야기

8일 늦은 잔금…세금 3억원으로 '부메랑'
[조세일보] 2008년 05월 23일(금) 오후 03:17   가| 이메일| 프린트
잔금 지연지급‥8일 동안 3주택자, "중과세 억울"국세청, 조세심판원-"이유 불분명, 과세타당"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달랑 8일 동안 형식적인 3주택자로 등재되어 있던 한 납세자가 이를 감안하지 않고 거액의 세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됐다며 제기한 불복청구에 대해 조세심판원이 기각결정을 내렸다.

23일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주택 2채를 소유하고 있던 납세자 A씨는 지난 2004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주택 1채를 한 기업체에 팔고 잔금지급일을 2004년 12월22일로 정한 뒤 대체주택을 곧바로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주택을 구입한 뒤 잔금을 12월22일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던 기업체가 이런 저런 사정을 핑계삼아 8일 뒤인 12월30일에 지급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엉겁결에 8일동안은 3주택자가 됐던 것.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A씨는 주택양도일을 잔금지급일인 2004년 12월22일로 정해 양도소득세를 신고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가만있지 않았다.

국세청은 A씨가 12월30일 잔금을 지급받은 사실을 확인한 뒤 주택 양도일은 12월30일이므로 주택 양도시 1세대3주택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3주택자 중과세율(60%)를 적용, 양도세 3억여원을 부과했다.

A씨는 이에 "주택을 사들인 기업체의 사정으로 잔금이 늦게 지급되어 8일간 형식적 3주택자가 됐다"며 "이는 납세자가 예측할 수 없는 사정에 의해 야기된 것인데 3주택자로 판단, 중과세한 것은 부당하다"고 조세심판원에 과세불복 심판을 청구했다.

조세심판원은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A씨의 주장(매수인의 잔금 지연지급)은 열거주의를 택한 소득세법상 '예외조항'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A씨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8일' 때문에 3억원이 넘는 세금을 납부하게 된 운 없는 납세자로 남게 됐다.

조세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현행 법상 쟁점주택의 매매대금을 청산한 날인 2004년 12월30일이 양도시기이고 양도일 당시 A씨의 보유주택수는 3채인 것이 명백하다"며 "A씨의 주장은 부동산 취득 및 양도시기나 1세대3주택 예외사유로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과세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조세일보 / 김진영 기자

일반인이 당하는 문제 중 이런 것이 나오면 굉장히 억울한 생각이 들겠다는 것이 법 관련 일을 하는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사안 자체를 온 시내가 다 아는 것인데, 재판부가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증인이라도 대라고 하는데, 그런 사안의 경우 보통 민감한 감정문제가 당사자 사이에 있기 마련이라 괜히 증인으로 나와 한쪽과 척을 지는 일을 하기를 원치 않으므로 증인을 구하기가 대단히 힘이 듭니다.

온동네가 다 아는 일인데 재판에서는 질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또 재수없게 걸리면 법의 규제로 인생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제 의뢰인의 한 분은 치악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원주 신림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초에 그 마을이 국립공원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그래도 농사를 짓는 그 분 인생이 달라질 것은 없으므로 그러려니 하고 지냈습니다.

그 분 땅은 작은 하천 너머에 있는 것인데 1999년까지는 아래 마을쪽 다리를 건너 집으로 오는 길이 있어 그 길로 다녔습니다.

그런데 수해로 그 길이 무너졌는데 복구를 해주지 않고 거기다가 덜렁 축대를 쌓았네요. 원주시에서 그랬지요.

의뢰인은 하는 수 없이 마을 안 길로 빙 둘러다녀야 했는데, 그나마 마을 안길 중간에는 남의 집 마당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게 생겼습니다.

그 마당 주인은 아무래도 지나다니면 눈치를 주고 의뢰인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과거에는 사람 힘으로 하고, 소에다 쟁기를 매서 농사를 지었지만, 요즘은 최소한 경운기나 트랙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데(의뢰인이 나이들어감도 고려되어야 겠지요)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도 싫어하니 그런 것을 함부로 이동할 수도 없습니다.

자식들이 찾아오려고 해도 차세우고 500미터 남짓을 걸어들어와야 하니 손주들이 할아버지 집에 가자면 입이 비쭉 나온답니다.

80이 다 되어가는 의뢰인부부는 마당주인의 눈치가 무서워 계곡에 철판(공사장에서 쓰는 구멍이 숭숭뚫린 것)을 걸어놓고 그리로 걸어서 통행을 합니다.

비라도 오면 다닐 수 없지요.

의뢰인의 땅과 하천을 너머 마주보는 땅은 이면도로 쪽이라 국립공원이라고 해도 눈에 띄지도 않는 곳이고,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시골동네이지 그 어디에도 국립공원이라는 티가 나지도 않습니다.

고민하던 의뢰인은 다리를 놓게 해달라고 원주시에 신청을 했는데 원주시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견조회를 하니 불가하답니다. 난개발의 우려가 있다는 게 제일 큰 이유지요.

그래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시키는 대로 다리를 설계해서 예쁘게, 경관을 해치지 않게 놓아보겠노라고도 탄원했지만 역시 안된답니다.

할 수 없이 소송을 했는데, 결과는 역시 패소!

의뢰인은 낳고 자란 고향동네가 국립공원이 되는 바람에 수십년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는데 이제 늙으막에 자식들도 접근을 못하게 되니, 의뢰인이 죽으면 그 땅은 그대로 방치되겠지요.

불편하여 다닐 수 없는 땅에 의뢰인의 자식들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살리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용도로 개발을 하자고 해도 통로가 없으니 개발도 안되겠지요.

동네 사람 모두가 의뢰인이 딱하다며 다리 놓게 해달라고 탄원서도 만들어 내 주었지만, 의뢰인의 개인적인 이익 보다는 국립공원으로서 지켜야 할 경관 내지 환경적 가치가 더 크고 난개발로 국립공원의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어 개발행위로 볼 수 있는 것은 할 수가 없다네요.

국립공원이라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고, 벼락 맞은 국민으로서는 그대로 참고 사는 수밖에 없지요.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법을 하다 보면 이런 억울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1대 3으로 싸움이 붙었는데 그 1이 과거에 조직폭력 전과가 있다고 하여 구속영장이 청구되고(세명에게 맞아서 앞니 두대가 빠지는 상해를 입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세명은 있지도 않았던 조직폭력배가 더 있었다고 시종일관 허위 진술을 하는데, 그 부분은 그렇다고 치고(허위임이 공범이라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이 CCTV등으로 다 밝혀졌습니다) 그래도 때리기는 때렸지 않냐는 것이지요.

법이라는 게 일반인의 생각과 다른 면이 많아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를 하고 신중하게 대응을 할 것이 필요합니다.

글을 올리고 보니 더 생생한 예를 들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런 뉴스가 올라오기에 붙입니다.


A씨는 어느 날 은행 현금지급기(ATM) 센터에서 지갑을 주웠다. 지갑을 발견하고는 주인을 찾아줄 의도로 가지고 나왔다. 지갑 안에는 1만원 남짓한 돈이 들어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주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A씨는 우체통을 찾아 지갑을 넣었다.

다음날 경찰이 A씨 집으로 찾아왔다. 경찰에 따르면 전날 우체통에 넣어둔 지갑의 주인을 찾았더니 금액의 상당 부분이 없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지갑 주인이 A씨를 찾아와 “길가에 떨어진 게 아니라 은행 현금지급기 센터 내에 있던 이런 유실물은 은행이 관리·점유하도록 되어 있다”며 “은행의 점유물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절도죄가 성립될 수 있다”며 따진다.

A씨는 어이가 없었지만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난 나머지 주인에게 400만원을 주고 합의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같지만 한 네티즌이 최근 겪은 일이라며 온라인 카페에 올려놓은 이른바 ‘신종 사기수법’이다. 합의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일부러 지갑을 두고 가 버린 후 주인을 찾아주겠다고 갖고 나온 선의의 피해자를 위협하는 수법이다. 전화를 통해 상대에게 미끼를 던져 돈을 갈취하는 ‘보이스 피싱’의 오프라인판인 셈이다.


이런 경우를 피하려면 우체국이나 지구대로 가 바로 신고를 하라고 하지만, 가는 도중에 습득자가 돈을 빼 썼다고 주장하면, 습득자로서는 "빼 쓰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일 하려다가 큰 일을 당하는 것인데, 이런 사기수법까지 생겨나고 있군요.

  추천수 (0)  답글 (0)  참조글 (0)  스크랩 (0) http://kr.blog.yahoo.com/ky101301/1766 주소복사 
| 인쇄 | 추천 | 스크랩
참조글 보임/숨김 답글 (0)
이름   비밀번호   블로그
등록
참조글 쓰기
참조한 글
참조한 글이 없습니다.
소귀에 경읽기?
2008/05/22 오후 5:27 | 사건 뒤의 이야기

이 일을 하다보면 여러 유형의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 제일 답답한 것이 도대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는 분들입니다.

중국 화교분이 민사재판을 하나 의뢰해 오셨습니다.

사안은, 옆집 살던 나이 많은 화교가 1960년대부터 자기 땅을 차지해 쓰며 자기 거라고 우겼답니다. 그러다가 1978년경 우연히 측량을 해보게 되었는데 그러고나서 그 쓰던 땅이 의뢰인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화교들 친목단체인 화교협회에 중재를 부탁해서 10년을 무상으로 사용한 대가를 지불하고 앞으로도 잘 빌려쓰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문제는 합의하며 작성한 계약서가 '임대차'계약서가 아니라 '매매계약서'라는 것이지요. 땅 몇 평을 평당 얼마씩해서 합계 얼마에 판다. 대금을 일시에 다 준다. 계약의 당사자는 의뢰인과 임차인의 아들로 하는, 이런 식으로 작성을 했네요.

아마도 의뢰인이 화교들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는 비사교적인 분이고 배움이 많지 않아 계약서 쓰는 분이 골탕을 먹인듯 싶습니다.

그 후에도 그 임차인이 살아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땅을 빌려쓰던 화교가 죽고 그 아들의 제수가 그 아들 이름으로  의뢰인을 상대로 내가 산 땅이니 등기를 넘겨달라고 재판을 걸어온 것이었습니다.

명의자인 아들은 서울에서 살고 그 문제된 땅을 포함한 부동산은 그 동생이 한의원을 하며 사용하다 그 동생이 죽고, 그 동생의 부인이 한국사람에게 부동산 일체를 매각하고 등기를 넘겨주기 위해 소송을 하였던 것이지요.

그 부동산을 산 한국사람이 찾아와 "땅을 2년만 빌려달라. 나중에 사겠다"는 말도 했다고 하고, 1987.경 증축시에는 토지사용승낙서도 받아간 일이 있습니다.

잘 아는 분의 소개로 선임을 하게 되었는데, 여러 자료를 통해 매매계약서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핵심임을 알려드리며 같이 온 의뢰인의 아들에게 명의자를 서울로 찾아가 그 사람이 소송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빌려서 쓰던 것이라는 점을 녹음하는 것이 가장 좋은 증거가 될 것 같다는 조언도 하였습니다.

그 아들이 자기는 말이 짧아서 그런 녹음을 끌어내기 어렵지 않겠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소개시켜 준 분이 간다고만 하면 같이가서 녹음을 할 수 있게 돕겠다는 말도 했는데, 그 뒤로 그 아들은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재판은 그렇게 흘러갔고 재판 중간에 명의자와 그 형이 의뢰인을 찾아와 '본의아니게 소송을 하게 되어 미안하다. 제수씨가 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하여 그 찾아왔다는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하여 보기도 했지만, 증인으로 나와서는 중국사람끼리 재판해서 좋은 것이 없으니 중간에 좋게 화해하자는 말을 하러 갔었고, 매수한 것은 맞다고 말을 바꿉니다.

그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녹음을 해 두었어야 하는데 못한 것이지요.

증인을 찾다가 찾다가 매매계약서 작성할 때 화교협회 회장의 부인이라는 분을 찾아 "화해한다고 모인 자리에서 서로 땅을 빌려주는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문제된 가필이 무엇이냐를 두고 의뢰인의 사위가 찾아와 언성을 높이며 주장을 해,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보완해주십사고 요청드렸는데 몇 번을 찾아오면서도 자료보완은 못하면서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달라면 자장면을 주고 짬뽕을 달라면 짬뽕을 주는데 변호사 사무실은 왜 의뢰인이 달라는 것을 주지 않느냐"는 말도 안되는 항의를 하기도 합니다.

의뢰인도 찾아와 30분 정도씩을 빼앗으며 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변호사가 힘을 좀 써달랍니다. 그래서 힘을 쓰려고 하는데 자료가 부족해서 힘쓰기가 그러니 자료를 좀 더 마련해봐 주십사고 하였는데, 그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고 계속 하소연만 합니다. 그러기를 한 달에 두어번씩 10개월을 하였습니다.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예상대로 매매계약서라는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코빼기도 안보이던 그 아들이 x팔x팔 하면서 사무실로 들어섭니다.

껌을 짝짝 씹어가며 기록을 달랍니다. 해준 게 뭐 있냐는 말도 덧붙이고 심지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랍니다. 양심이 있으면...


기가차고 말이 안나옵니다.

50이 넘도록 평생을 빈둥거리며 먹고놀기만 하던 사람이, 자료를 만들어 오라니까 겁을 내 꽁무니를 빼더니 이럴 때는 나타나 아주 기분나쁜 태도로 비난을 퍼붓습니다.

소시적에 좀 놀았다는 사람을 시쳇말로 "침 좀 뱉었다", "껌 좀 씹었다", "다리 좀 떨었다"고 하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굳이 그렇게 껌을 짝짝 씹어가며 찾아올 이유는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살펴보기 위해 모은 자료까지 다 가져가겠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무슨 음해를 할 수도 있으므로 제가 성의를 다 한 그런 자료들까지 내 줄 수는 없지요. 그런 것이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 경우에 저를 지켜주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뢰인도 있습니다.

어떤 공사를 해주었고 끝나며 1,500여만원을 더 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나중에 재판을 한다고 하여 맞춰보니 받을 돈이 2,600만원 정도가 됩니다.

그러다 상대방이 먼저 소송을 내고 그 반소에서는 1억원이 넘는 돈을 청구하기도 합니다.

무언가 받을 게 있기는 한데, 의뢰인이 전혀 그 액수를 확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 말한 1,500여만원에 대한 자료만 맞춰다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한참이 지나도 말이 없습니다.

자료가 어떻게 되었냐고 하니까 난데없이 1,000만원 쯤 된다는 것을 그냥 종이에 자기가 써가지고 나타났습니다.

말한 돈 액수가 틀리지 않냐고 하니까(그것도 이틀에 걸쳐 두 번 설명하였고 두번째는 종이에 적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맞춰온다고 하고 갔습니다.

의뢰인 둘이 있는 사건에서 의뢰인들에게 이러저러한 취지의 서면을 하나씩 작성해다 달라고 말했는데 한 의뢰인이 이해를 못하자 옆에 있던 다른 의뢰인이 "이러저러한 취지로 이렇게 쓰면 되지 않냐"고 저보다 더 훌륭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그런데 그 설명해주던 의뢰인이 다음날 아침 일찍 저를 찾아왔습니다.

무슨 서류를 어떻게 쓰냐고.

어이없고 맥이 풀리지요. 그래도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물어오면 기본적인 서류틀을 잡아서 보내주기도 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저희 같은 직업이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런 분들 만나서 일하다보면 너무 답답해서 참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추천수 (0)  답글 (0)  참조글 (0)  스크랩 (0) http://kr.blog.yahoo.com/ky101301/1765 주소복사 
| 인쇄 | 추천 | 스크랩
참조글 보임/숨김 답글 (0)
이름   비밀번호   블로그
등록
참조글 쓰기
참조한 글
참조한 글이 없습니다.
아! 뽕!
2008/04/29 오후 6:13 | 사건 뒤의 이야기

예전부터 마약류 전과자의 변론이 힘든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또 당하고나니 어이가 없습니다.

첫 시련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중국산인지 필리핀산인지 외국에서 들어온 마약을 킬로그램 단위로 팔려던 사람 둘이 구속되어 모두 저를 선임하였습니다.

그 정도를 판매하려고 하였다면 마약류전과가 없어도 실형선고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뭐 죄질은 둘이 같다고 보이고요.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자기 거시기에 파라핀인가를 주입했었는데 그게 수감된 중에 썩기 시작하는 겁니다. 유치장에 있으면서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는 했는데 의사소견이 당장 입원하여 수술해서 긁어내지 않으면 자를 수밖에 없게 된다네요.

아무리 죄가 중해도, 젊은 남자를 영원히 수감하는 무기형을 선고할 것이 아닌 바에야 수감생활로 신체가 손상될 수 있다는데 그 사람을 계속 가둬둘 수는 없겠지요.

저도 그 점을 부각하며 공범이 그 사유로 석방되면 나머지도 형평 차원에서 석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네요.

그런데 선고결과는 그 아픈 사람만 석방되고 나머지는 실형 2년이 선고된 겁니다. 판사가 좀 융통성이 없었지요.

그 나머지도 항소심에 가서는 형평을 이유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부터입니다.

처음부터 석방은 힘들다고, 2년 정도의 형만 받게되면 성공이라고 하고 선임하여 일을 한 것이었는데 한 명은 석방되는데 자기는 석방이 못 되었으니 돈 내놓으라고 찾아온 것이지요.

뭐 그 돈 가지고 제가 떼부자가 될 것도 아니라 주고 말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자기 입으로 잘 되었다고 좋아하고 심지어 항소심에서는 어느 변호사를 선임할 것인지,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줄 수 있는지를 묻던 자가 있습니다.

제가 늘 친절하게 해 주었고 항소까지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기에 저에게 뭐라고 한 것은 아닌데 경찰관을 물고 늘어지네요.

그 경찰관이 저를 선임하게 연결시켜준 것도 아니고 조사를 하다가 그 자가 어느 변호사를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서 알아서 하라고 했음에도 끝내 사정하고 매달리기에 제가 어떠냐고 의견을 냈다네요.

물론 그렇다고 그 경찰관하고 저하고 밥 한 번, 차 한 잔 마신 적이 없지요.

그런데 저를 문제삼지 못하자 그 경찰관에게 당신이 변호사 소개한다고 편지를 보낸 모양입니다. 경찰관이야 떳떳하지만 그래도 감찰조사라도 받게되면 신경쓰이고 왜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나겠어 라는 의혹에 찬 시선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알기에 그 경찰관이 면회를 가 주었더니 처음에는 그 경찰관에게 돈 먹은 거 내놓으라고 떼를 쓰다가 그런 게 없다는 걸 알게되자

본심을 드러내, 가족과 특별면회를 1시간만 하게 해 달라고 했다네요.

경찰관이 답답한 마음에 저희 사무장(지역이 좁다보니 이 지역 출신끼리는 사석에서는 형님 동생 합니다)에게 하소연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저희 사무장은 다른 사건서류 내러 경찰서에 갔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은근히 우리 사무실에서 그 문제를 해결해주든지 아니면 특별면회라도 주선해주어 자기를 곤경에서 구해주었으면 하는 눈치라고 하는데 저는 단호하게 그런 사무장에게 그 어떤 일도 못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제가 돈을 돌려줄 수도 있고 또 재주를 피워 특별면회를 어떻게 시켜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 자가 그 정도에서 그칠까요?

아니지요. 이것들 뭔가 커넥션이 있구나 하고 더 큰 요구를 해 올 겁니다. 그저 떼써라 나는 모른다로 버티는 게 상책이지요.

그 개같은 경우를 오늘 또 당했습니다.

히로뽕에 대마전과가 수두룩한 사람을 1월에 선임하여 꼬박 4달 동안 정성을 기울여 변론을 했습니다. 중간에 재판부에 나중에 유죄라고 보여 실형을 선고할 때 하더라도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일단 석방해 놓고 재판을 하자고 설득하여 불구속으로 풀어 재판을 받게 하였고, 잘 하지 않는 모발감정까지 하고 감정인까지 불러 신문도 했습니다.

그 신문에 대비하여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관련 자료를 모아 증거로 제출하기도 하고, 정말 제 나름으로는 부끄럼 없이 변론을 했습니다.


간이시약검사는 음성, 소변검사는 양성, 모발검사는 음성이기에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것에 따라 무죄가 선고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실형 10월이 선고되었습니다.

저로서도 의외고 피고인도 많이 놀랐겠지요. 그런데 전혀 선임과정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처라는 사람과 뽕 전과가 있다는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걱정되겠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안 좋아 마음이 좋지않다고 하는데, 그 친구라는 자들의 말이 가관입니다.

자기가 뽕전과가 5개고 1달전에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변호사 선임 안해도 실형 10월은 그냥 나오는 것이니까 확실하게 항소심에 따라가 빼낼 자신이 없으면 돈을 내 놓으라네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러나 뽕쟁이 속성을 잠시나마 깜빡한 제 잘못도 큽니다. 그 자는 교도소 접견 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원망하지 않는다면서 그저 자기 억울한 심정만 자기편에서 변론해주시면 된다고 그렇게 떠들던 자인데....


아 뽕입니다.

  추천수 (0)  답글 (0)  참조글 (0)  스크랩 (0) http://kr.blog.yahoo.com/ky101301/1747 주소복사 
| 인쇄 | 추천 | 스크랩
참조글 보임/숨김 답글 (0)
이름   비밀번호   블로그
등록
참조글 쓰기
참조한 글
참조한 글이 없습니다.
세상이.....
2008/04/27 오후 8:12 | 사건 뒤의 이야기

작년에 이런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마당을 쓰는 사업체가 있는데, 그 옆 사무실의 직원이 옆 사무실 사장에게 조금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아침에.

그래서 그 사장이 화가 나서 옆 공장장에게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였고, 공장장이 그 직원에게 사과하라고 하였는데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루 종일 심기가 불편했던 그 사장은 저녁 무렵까지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자 화가 나서 지게차를 가지고 옆 사무실 직원의 차를 들어올려 놓았습니다.

그 직원은 그 사장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렸다는 식으로 신고를 하였고, 경찰이 출동하였을 무렵 그 사장은 술을 마신 상태였습니다.

언제 술을 마셨는지는 누구도 모르지요.

그런데 그 사장은 차를 들어올리고 나서 너무 화가 나 사무실로 돌아와 술을 컵에 따라 마셨노라고 주장하는데, 경찰이 조사한 결과는 그 마셨다는 술병이 너무 오래된 흔적이 있어 믿기 어렵다고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을 하였습니다.

그 사장이 억울하다고 찾아왔습니다.

바로 합의도 되고 해서 참고인 진술이 중요하니 그 진술이 잘 될 수 있도록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선임이 되었고, 조사과정에서 참고인들은 차를 들기 전에 이미 술을 마신 것 같다고 하였고, 그것을 부인하던 그 사장은 검찰에서 무거운 형이 구형된 채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유리한 진술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좋은 쪽으로 풀리지만 그렇지 않으면 증인으로 불러봐야 그 결과가 뻔합니다.

증인까지 부르고 나면 검찰에 형을 살살 구형해 달라고 사정할 수도 없지요.

그런 사정을 설명하고 시원하게 자백하는 것으로 하여 벌금형을 선고받고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그 사장은 사건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고 난 뒤 만난 자리에서 사건이 잘 종결되었노라고 고맙다는 인사도 하였고요.

그런데 엊그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동료 변호사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전화를 해 왔습니다.

점심먹고 외지에 갈 일이 있어 지금 당장 보기는 어렵다고 하였건만 그 동료는 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척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당장 자기 사무실에서 보잡니다.

뭔가 찝찝하기도 하여 즉시 가 보았습니다.

난데없이 위 사장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국선으로 한 것을 확인하였는데 선임하셨다면서요 이렇게 말을 합니다.

국선으로 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확인해보겠노라고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확인을 하니 정식으로 선임계 제출하고 변론을 다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변호사에게 전화로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는데, 두고두고 마음이 편하지를 않습니다.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 결과가 억울하다고, 뭔가 제게 문제를 삼고 싶다고 그 동료 사무실에 상담을 하였고, 그 동료는 확인을 제대로 못한 상태로 저를 오라고 한 것이지요.

그 사건에서 그 사장의 주장대로 재판이 진행되었으면 선고받은 형보다 훨씬 중한 구형이 있었을 것이고, 선고결과는 장담 못 하지만 선고 때까지 그 사장이 적어도 마음 고생은 심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