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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군 생활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몇명이 있네요.
그저 무던하던 친구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유난히 독하거나 엉뚱한 일을 벌이던 사람들이 기억에 남네요.
뭐, 세상사가 다 그렇겠지만 그래서 중간으로 사는 게 어렵기도 한 것이겠지요. 중간으로 살면서도 사람들은 자기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니, 그런 평범함을 기억에 올리려면 그 게 힘든 것이 아닐까요.
훈련소에서는 이모라는 중사가 기억이 납니다. 체구도 작은데 어디서 그런 독기가 나는지, 저희 훈련병 말고 향방이라고 훈련소 마치고 동사무소 같은데 배치되는 병력이 따로 1주일인가 훈련을 받는 게 있는게 그 중사가 10명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통일봉이라는 이름의 길다란 목봉체조(말이 체조고 사실은 죽음과 같은 기합이지요. 왜 삼청교육대하면 나오는 그 통나무를 줄맞춰 선 사람들이 이쪽 어깨에서 저쪽 어깨로 넘기는 것이지요)를 시키면서 10명이 쓰러질 때까지 하라는 말이지요.
자기가 현역 군인이고, 그 정도 정신력이나 체력이 필요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보이고, 아마도 자기가 겪는 일이 아니라, 자기 동생이나 친구가 당하는 일이 아니라 그리 잔혹하게 쓰러질 때까지 시키라고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 20년전 군대니까 그런 인간도 있었겠지요.
자대에 전입되고는 첫날 근무를 같이 한 300밀리미터 발을 가진 고참이 기억납니다.
아침에 배달된 조간을 보다가 밖에서 떠는 제가 불쌍했던지 들어오라고 해서 어쩡정하게 옆에서서 신문을 흘깃거리니까 보고 싶으면 보라네요.
신문을 쓱쓱 넘겨 보는데, 한시간도 넘겨 본 신문을 가리키며 무슨 신문이냐네요.
조선일보라고 대답하고, 아 한자를 모르나 아니면 신문을 어떻게 보길래 무슨 신문인 줄도 모르고 신문을 한시간이나 보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호기심에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신문을 보시면 주로 뭘 보냐고.
그랬더니 먼저 만화를 보고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샅샅이 본다네요. 그리고는 광고를 본다네요.
수준을 알만하다 싶어, 밖에서 뭐를 하다 들어왔나를 물어보니 수락산인지 어느 산자락에서 개를 키운답니다.
저는 똥개를 식용으로 키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돈 벌이가 좋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눈에서 광채가 납니다.
개에는 무슨 무슨 종자가 있는데 얼마에 한 번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마리당 얼마라 돈벌이로 괜찮다며 저보고도 한 번 해보겠냐고 묻네요.
개를 보거나 하는 것은 괜찮은데 어려서 개한테 물려서 개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하니까, 그건 개한테 얕보여서 그런 것이고 개도 주인 알아보고 물거나 그러지 않는다고 거품을 물어가며 이야기를 해 주네요.
저보다 세 달 먼저 들어온 고참 민모군도 기억이 나네요.
기도 작달만하고 동작도 좀 느린데, 먹는 것을 어찌나 밝히는지 남들이 잘 먹지 않는 밀가루빵도 야상 주머니마다 넣어두고 먹고, 심지어 주간근무 때는 분초장 아침거리로 먹을 빵(고참 병장이라 안에 뭐를 듬뿍 발라 먹음직하게 생긴 것이었습니다)마저 먹어서 잠시 저희가 함께 뺑뺑이를 돌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분초장이 대학을 졸업하고 온 사람이라, 분초장 것을 손대는 위계질서를 문제삼아 몇 바퀴 돌리다가 먹는 것 가지고 너무 심하게 하지 않는 한국사람의 정서가 생각났는지 그만두었기에 다행이지 암튼 큰 일 당할 뻔 했습니다.
사람이 오가지 않는데서 제일 높은 놈이 하라면 하루 종일 뺑뺑이가 되는 수도 있고, 사사건건 문제를 삼아 퇴근을 늦출 수도 있거든요.
다음은 요새 문제되는 학력을 위조하여 선배인 척 하다가 선정성 높은 잡지를 내 놓으라고 눈을 부라리던 하사관이 생각나네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초급지휘관인데, 그런 걸 보면 뺐어 없애야지 그걸 새벽 2시에 저도 못들어가는 현역병 막사에 가서 찾아오라니 억지도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뭐 여러 사람이 기억나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육사 졸업식을 앞 두고 벌어진 일들입니다.
가을에 부대에 가득 모아둔 낙엽을 들고 연병장으로 오라더니 그걸 일정한 폭으로 깔라네요. 깔았지요. 그랬더니 졸업식 예행연습 시 말이 다닐 길인데, 말이 눈으로 질척거리는 연병장을 밟으면 잔듸가 죽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네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척 보기에 일정하도록 손으로 일일이 각을 잡으라네요. 군대는 각이라고. 그래서 말 다닐 길을 쭈그리고 앉아서 각 잡으며 참 짐승만도 못한 놈이 되었구나 라는 자괴감이 들더군요.
연병장에 스펀지와 양동이 들고 나가 눈 녹은 물도 짜 넣어 봤습니다. 물이 질척이면 졸업식 연습도 잘 안되고, 잔듸에도 안 좋다며 그 얼음이 둥둥뜨는 찬 물을 맨손으로 스펀지에 묻혀 제거하리니 인간이하의 대접이지요.
하일라이트는 본관 앞 도로를 하이타이 푼 물로 닦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행차하시는 행사인데 도로가 지저분해 보이면 안된다고 하이타이 푼 물을 스펀지에 묻혀 도로를 새로 포장한 티가 나게 닦은 겁니다. 그럼 거품이 가득한 도로위로 소방차가 와서 물을 뿌리고, 그러고 나면 물이 얼기 전에 다시 스펀지를 짜서 물기가 없도록 해야 하니, 눈코뜰새 없이 바쁩니다.
막상 졸업식 당일에는 대통령도 오지 않았는데 몇시부터 몇시까지 이동병력이 허용이 안된다고 해서 졸업식이 끝나가까지 내무반에서 점호받는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밤새고 스팀도 나오는데 눈 부릅뜨고 앉아 있기가 쉽지 않은데, 철없는 소위가 한 명 들어오더니 저희를 장난감 가지고 놀 듯 가지고 놀기도 하네요. 인사계인 상사가 와서 밤새 힘들게 근무한 애들한테 그만하고 쉬게 두자고 하니 두말 못하고 나가긴 했는데,
이래저래 사람취급을 못받은 억울함은 쉽게 가시지 않더군요.
또하나!
육사 근처에 S여대가 있는데, 저 대학 다닐 때 별로라고 보고 그 학교 학생들하고는 미팅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깍은 방위병이 되니, 출퇴근 길에 부딪히는 그 여학생들이 저를 벌레보듯 합니다. 저도 최대한 무관심하게 보이려고 하고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지만 20년 전 버스는 흔들림도 많고 사람도 많아 조금도 닿지 않게 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는데,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마치 몹쓸 것에라도 닿은 듯 질색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인간이 아니다, 빨리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대학교 다니며 지성을 가진 사람, 나를 이해해주고 염려해주는 사람만 보다, 아니 대학 이전에도 그런 사람만이 제 옆에 있었는데, 짧은 군 생활을 통해 아무런 이유없이도 자기만족이나 과시 같은 하찮은 이유로도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게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하지 않으면 이리저리 치면서 당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다시 공부를 한다면, 기회가 한 번만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실수없이 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소위 말하는 그 군기로 제대하고 3년만에 사법시험의 벽을 넘을 수 있었으니, 당나라 군대에 저는 빚이 많은 셈이지요.
지금은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지만,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고 거기에 계급이라는 깡패가 개입하면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곳이 군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오늘의 저를 만들어 준 자양분의 하나였던 당나라 군대!
미운 정도 정이라고 추억의 한 장으로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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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의 야간조 근무가 끝나고 그대로 있으면 다시 3월은 주간 근무인데, 한 번 해본 주간근무는 힘들기 그지없이 행정반에 있는 병장 후배에게 부탁하여 야간조로 옮겨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3월에 야간조가 되는 1소대로 바꿔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보내는 2소대 고참들은 배신하고 떠난다며 난리도 아니고 1소대로 가보니 거기 고참들은 군기가 더 엄한 소대로 왔으니 과거의 잘못된 버릇은 버리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라네요.
1소대에는 멍게라는 별명의 유명한 꼴통이 하나 있었는데, 이 친구 자기 고참한테는 지극정성으로 하는 대신, 후임병들은 슬리퍼짝으로 뺨을 때릴 정도로 가혹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겁이 났지요.
처음 가니까, 아닌게 아니라 저를 불러세우더니 좀 심하게 겁을 주더군요. 이런 친구들은 권위를 인정해주고 거기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되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 안됩니다.
제 나름의 매뉴얼 대로 하였더니 그 친구랑은 별 문제 없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충 근무를 하고 있는데, 하루는 보니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제 훈련소 동기가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합니다.
연유를 물으니 같이 근무나간 고참한테 모지게 당했다네요. 총구로 가슴을 찍혔는데 그게 며칠되니까 숨을 못쉬게 아프고 가슴이 결린답니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나이는 저보다 하나 아래인 놈인데 뭘 하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말도 많은 편이 아니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번 달부터 군기를 잡을 수 있는 기수가 되며 아마 실수를 한 듯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싸이코라고 소문이 나면 같이 근무 나가기들을 꺼리는데, 어느 날 결근자가 생기고, 그 싸이코랑 한 조로 근무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동기들 모두가 걱정을 해 줍니다. 걔 막 돼 먹은 애니까 조심하라고.
그런데 군대에서 후임병이 조심한다고 고참이 갈구기로 마음먹은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좀 알아보니 그 싸이코 뭐 먹는 걸 좋아하고 근무나가면 가급적 포근하게 자다가 오는 걸 좋아한다네요.
치사하지만 저녁을 먹고 피엑스로 가서 잽싸게 초콜릿 한 봉을 샀습니다.
원래 근무시간에 담배나 먹을 거 가지고 가면 안되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육사 내 산 속에서 규정대로 시간을 채울려면 심심해 죽습니다. 그러니 이리저리 갈구다 한 딱까리 하게 되는 겁니다.
근무를 나가서 바로 정자세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3월 초니까 상당히 추웠는데, 그래도 꼬투리를 잡히면 안되니까 일단을 그렇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먼저 좀 잔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러라고 하고 밖에서(원래 제가 가던 곳은 안에서 둘이 철모깔고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시간을 채우다 오는 곳이었습니다) 정자세로 근무를 섰습니다.
한 30분 지나니 싸이코가 추운 날씨에 미안한지 저보고도 들어오라네요. 한 번 의례적으로 사양하고 두번째 들어오랄 때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슬쩍 얼굴이 굉장히 피곤해 보인다고, 밖에서 힘든 일을 하는 모양이라고, 밤에 잠을 잘 자야 밖에서 일이 잘될텐데 고생되겠다고 말을 건네자, 가려운데를 긁어줘 고맙다는 표정으로 자기가 무슨 그림을 그리는데, 잠을 푹 자지 못하면 그림이 잘 안되서 고민이라고 하네요.
그리고는 이야기가 잘 풀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날뛰지 못하게 동네이야기며 나이이야기 등을 두루 걸쳐 선배들일 듯한 사람들 이름을 대며 내가 굉장히 친하다고 설레발을 좀 쳤습니다.
그러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그 초콜릿을 꺼내며 저녁 먹고 하나 얻은 건데 미쳐 못 먹었는데 먹겠냐니까 그러잡니다. 분위기 좋아집니다.
웰컴투동막골에 나오는 촌장님 말씀처럼 지도력의 요체는 "많이 먹이는 것"입니다.
싸이코로 소문난 친구와 별 무리 없이 잘 지내니 동료들이 신기해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다른 고참보다는 조심스러워 추위를 참으며 밖에 나가 근무를 자청해 서기도 하느라고 힘은 많이 들었습니다.
한 번은 왠지 마음이 울적하여 밖에서 근무를 서는데(당근 그 고참은 안에서 자지요) 초소내 전화가 울리고 황급히 뛰어들어가 받으니 온도보고를 하라네요.
고참은 짜증을 냅니다. 전화를 빨리 받지 않아 잠이 깬다고.
온도계를 보니 영하 20도 아래네요. 저도 당황스러웠지만 그대로 보고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휘영청 밝은 달아래 왜 그리 마음이 추운지 눈물이 그냥 나네요.
이게 나중에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닥에서 박박기는 인생을 살지 말자는 각오가 생기더군요. 그리고 이 각오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작은 순간의 일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작은 온정, 작은 도움, 작은 배려가 인생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바뀐 야간조의 활동이 무사히 마무리 되는가 싶었는데, 사건이 생겼네요.
근무자가 빠져 2시간 교대 근무가 1시간 반 교대근무로 비상편성 되던 날이 있었는데, 새벽 2-3시경 근무를 하고 들어와 군장을 벗어 정리하고 나니 3-40분도 채 자기가 어렵겠더라고요.
마침 육사는 밤에도 더운 물이 나와, 피로를 풀게 샤워나 하자 싶어 슬며시 샤워를 하는데, 웬 놈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소변을 보며 제 얼굴을 흘깃 보더니 나가는데 순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서둘러 옷가지를 챙겨 청소도구함을 넣어두는 칸으로 숨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 분 안 돼 집합하라고 수군거리고 난리가 난 듯 합니다. 몸에 비누칠을 지우지도 못했는데, 숨어있자니 들킬 것 같고 나가자니 맞아죽을 것 같고, 순간 굉장히 고민이 됐는데, 일단 숨었으니 버티는 게 정답이다 싶었습니다.
재래식처럼 앉아서 일보고 물내리는 구형 수세식 화장실의 위쪽에 달린 변기통에 손을 넣어 찬 물을 묻혀 비누를 닦고 잽싸게 건물뒤로 빠져나와서 어둠속에서 웅크리고 있자니 동기와 후임병들이 웅성거리며 나옵니다.
"어떤 놈이 샤워를 한다고 이 밤에 난리냐"며 담배들을 피워 무는데 미안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흙을 좀 묻혀 위장을 하고 그 안에 슬며시 끼어 담배를 한 대 피고 다시 근무를 나갔습니다.
이런 저런 해프닝 속에 길게만 느껴지던(이렇게 말하면 욕먹겠지요?) 군생활이 끝났습니다.
전역신고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꿈인지 생시인지 싶은데, 군대를 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고(그래서 요새 병역비리가 터져나오면 일응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길지 않은 기간이라면, 남자가 군대를 다녀오면 좀 요령도 생기고 어려운 일도 참을 수 있게 되는 등 긍정적인 면도 많아서 갔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짧은 기간의 군생활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술만 마시면 남들이 군대이야기 하는데, 들어보면 고생하거나 타이밍상 기가 막힌 이야기는 오히려 짧게 생활한 내가 더 많아서 이야기를 해도 내가 하는 게 맞을 듯 한데, 누가 SS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합니까?
그리고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이야기가 1번이고, 2번이 축구이야기고 3번이 군대에서 축구하던 이야기라는 우스개 소리처럼, 참 여자들이 질색하는 이야긴데 어쩌다 보면(아마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일 겁니다) 집에서 처와 애들에게 그 이야기를 조금씩 하다보니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 내 일기장 같은 이 곳에 실컷 써놓고 이제 좀 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만 하고 살자는 뜻에서 시작했던 것입니다.
뭐 이 곳이 누구에게 봐달라고 하는 곳도 아니고, 어쩌다 들르시는 분들도 뜨내기지 제 고정 팬도 없으시니 부담없이 지껄여대기는 했는데, 남들이 보고 애개 고작 이 거! 하면서 웃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빠진 게 있으면 추신으로 한 편을 더 쓰기로 하고 이 폴더는 이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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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보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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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제가 님의 팬입니다..
님의 글을 즐겨 읽습니다..
고시공부하고.... 법무관 생활도 좀 써주세요..
갑자기 다 끝난 줄 알았던 군대 이야기가 다시 나와서
깜짝 놀랬습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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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8/28
(화) 오전 8:23 [나그네] from 211.213.6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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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팬을 자청하는 분도 계시고. 그저 시골에서 살며 애들이야기 같은 신변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써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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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8/30
(목) 오후 5:34 [ky101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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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일병이라는 문제아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상병이 되어야 하는데 문제가 많아 아직도 일병 상태인 사람인데, 늘 말썽을 부려 영창도 갔다오고 그 다음은 교도소 갈 차례인데,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영내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볼 때 말입니다.
영내대기 사유가 걸작이지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데, 왜 리어카에 합판을 씌워 만든 포장마차말입니다.
거기 자기가 콱 넘어지면 그 합판이 부러질까 안 부러질까가 궁금해서 한 번 쓰러져봤답니다.
자기 얼굴도 사정없이 깨지고 포장마차 업주가 신고를 해서 경찰서를 거쳐 인사계가 신병을 받아왔다는데, 술도 취하고 해서 일단 영내에서 재운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깨서 말을 시켜보니 사연이 너무도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영내대기로 결정이 되어 10일간 부대내에 있게 되었답니다.
그 전에 영창을 갔다온 사유는 더 기가 막힙니다.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모든 게 개방되어 아무 나이트클럽이든 소위 홀딱쇼라는 것을 했습니다.
스트립걸이 나와서 춤을 추며 옷을 하나 하나 벗는 것이었는데, 외국에나 있는 줄 알던 그런 쇼가 눈앞에서 펼쳐지니 놀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K일병, 술마시고 어디서 들은 소리는 있어서 그걸 보러 간 모양입니다. 그런데 평소 약간의 끼(?)가 있던 K일병이 음악이 계속되면서 흥분을 했는지 무대에 올라가 같이 벗었답니다.
그런데 쇼걸이야 원래 벗기 좋은 복장이니 음악에 맞춰 돌면서 툭툭쳐내면 옷이 벗어지는데, K일병은 근무마치고 내복까지 입고 갔는데, 거기서 양말벗고 내복 벗고 했으니 참으로 볼만했다 싶습니다.
다음으로 다른 K상병.
무슨 사창가에서 기둥서방 노릇을 한다나 뭐나 하는데, 키는 작은데 키가 커서 방위병이 된 196센티미터의 제 동기가 걸어가는 것을 같은 방향 뒤에서 달려가며 어깨를 짚고 넘어버리는 괴력의 소유자.
그 K상병이 제게 하루는 오더니 끝내주는게 있다며 성냥갑을 보이는데 거기 무슨 하얀 덩어리같은게 들어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게 히로뽕이라는데, 저야 그런 것에 원래 관심도 없고 돈도 없어 거절했지만, 그 때 아 마약이 찾아보기만 하면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싶은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악랄하기로 소문난 정모 일병과 근무를 서던 어느 새벽,
달은 보름달로 휘엉청 밝게 떠 있는데, 정모 일병 심기가 좋지 않아보여 밖에 나가서 어슬렁대는데, 춥기는 왜 그리 추운지, 건딜 수가 없습니다.
꽤나 추웠는지, 새벽에 기온을 체크해서 보고하라는데, 수은주가 영하 30도가 됩니다.
그냥 하늘의 달을 보고 있는데, 너무 추우니까 눈물이 주루룩 주루룩 흐르고, 아 정말 따뜻한 방에서 공부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안 해서, 이 밑바닥 고생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 3달만 공부를 시켜주면 시험에 붙을 것 같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게 3년으로 길어지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군대에서 자유를 잃고 잠시나마 고생했던 것이 저를 강하게 버티고 살아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듯 합니다.
남들은 3년씩 가던 군대를 저는 6개월로 때운 주제에, 그리고 뺀질거리며 도망다닌 게 주가 되는 이야기를 뭔 자랑이라고 글까지 써서 올리나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온실속의 화초처럼 늘 나약한 상태에서 그칠 수도 있던 제가, 그 야수와 같은 사람들 속에서 그래도 무사히 복무기간을 채우고, 나름대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강렬한 의지마저 얻어나와 끝내 결실을 보았으니 그만하면 성공적인 군생활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마치며, 군대에서 하루가 얼마나 긴데, 개월수로 계산되는 그 맹점 때문에, 88년이 윤년이라 2월이 29일까지 있어 하루나 더 근무를 하는 억울함이 있었다는,
그러나 병장이던 친구가 군대 잘 갔다오라고 말년휴가 나왔을 때 술자리를 했었는데, 제가 소집해제되어 나왔는데도 아직 병장으로 제대를 못하고 있어 별로 분한 티를 못 내봤다는 허튼 소리를 끝으로 가당치도 않은 당나라 군대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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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의 야간이 끝나고 드디어 3월에 다시 주간근무를 가야하는데, 가기가 싫어 행정반 후배에게 부탁하여 야간으로 들어가는 다른 소대로 바꾸어 탔습니다.
그 소대로 간 첫 날, 멍게라고 소문난, 악질 고참이 저를 부르더군요.
새 달이 되면 부대가 바뀌는 병사가 저처럼 몇 명 있는데, 그 멍게가 "자기네 소대가 부대최강의 정예소대니 그 명예가 깨지는 일 없게 주의하라"며 일장 훈시를 합니다.
전에 그 멍게가 자기네 소대 후임병을 슬리퍼로 머리통을 갈기는 것을 본 마당이라 저심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이래저래 못 보던 동기들도 많고 별로 힘들지는 않게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근무표가 바뀌며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동기 중에 대학원을 나오고 석사장교를 떨어지고 방위 온 동기가 있는데, 나이가 슴루 여덟이나 아홉이 된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런 친구를 고참이라는 놈이 근무지에서 개패듯 패서 이 동기가 숨도 제대로 못 쉽니다.
근무서는 것을 흠잡다가 처음에는 철모로 때리고 나중에는 세워놓고 총구로 가슴을 찍었다네요.
총구로 가슴을 찍는 것은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이지요.
총구전면으로 가슴을 툭 치면 타격부위가 적어서인지 고통도 상당하고 맞고 며칠이 지나면 총구자국 그대로 시커멓게 멍이 들고 숨쉴 때 상당히 불편합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해가면서 흙범벅이 되게 굴려서 들어왔더라구요.
아무리 고참이라도, 근무나간 초소가 사람도 안오는 그야말로 형식적으로 서있다 오면 되는 곳인데, 그런데서 특별하게 나이든 사람이 맞을 짓을 할리도 없을 텐데 심하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물어보니, 그 정모 고참도 지난 달부터인가 고참으로 후임병 군기를 잡을 수 있게 된 놈이라네요.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어린데, 제 딴에는 꽤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고요.
그런데 그 놈과 근무조가 된 겁니다.
궁리를 해야지요. 개하고 같이 물고 싸울 수도 없고, 고참이 X랄을 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정보를 모아보니 그 자가 먹는 걸 좋아한다네요.
저녁 먹으며, 피엑스에서 초코파이를 2개 샀습니다. 근무서다 보면 춥고 배고픈데 그럴 때 군바리는 초코파이가 최곱니다.
그 놈과 밤 10시경 첫 근무를 나갔는데, 이 놈도 뭔 소리를 들었는지 슬슬 눈치만 봅니다.
그래서 모르는 거 물어보는 척 몇마디 시켜보니, 약간 사이코 기질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리 무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살살 달래가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시켜보니, 무슨 그림을 그린다는데, 생계 때문에 낮에는 일을 해야 한다네요. 그러니 후임병이 알아서 잘 챙기고 근무시간에 좀 잘 수 있게 배려해주면 불만이 없겠다는 취지의 말을 합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초코파이를 꺼내 주니 분위기가 훨씬 좋아집니다.
그 다음 근무부터는 그냥 재웁니다. 그러니 말할 기회도 없고, 그 사이 저는 밖에서 숨겨나간 담배도 피고 혼자서 여유작작입니다.
그렇게 사이코도 피해서 한 숨을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