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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이 되어 버린 아들!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가 돋보이는 아들이 방학과 함께 서울로 공부를 하러 갔구나.
포태단계에서, 임신인 줄 모르고 감기약을 먹었던 엄마로 인해 자칫 빛도 못볼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고(다행히 상담을 하러간 산부인과 의사가 엄마를 어린 나이에 임신한 철부지로 보았는지 다리를 꼬아 책상에 올리고 담배를 꼬나문 채 아빠를 데리고 오라고 하는 바람에 분연히 낳기로 결심하는 행운이 있기도 했었단다),
출생 직후 어깨뼈가 부러졌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게 출산과정에서의 의사들 잘못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저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달고 태어난 것으로도 기쁨에 겨워 뭐 치료하면 되겠지요 라고 했던 무심한 대목도 있었고,
돌도 되지 않은 너를, 엄마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같은 아파트 놀이방에 맡기게 되었고, 그로 인해 걸핏하면 감기 같은 질병을 달고 살기도 하다, 끝내 엄마, 아빠를 떨어지지 않으려는 네 모습이 눈에 밟혀 엄마의 일을 접게도 했었고(놀이방이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너보다 두달 먼저 태어난 여자아이가 돌이 되어 걷기 시작하자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네가 열달만에 소리를 지르며 걸음마를 시작하기도 하였으니 어려서부터 경쟁에 익숙해지고 지기싫어하는 자세를 본능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단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귀신같이 차종을 알아맞추는 신기에, 달력을 통째로 외우는 비상함을 보이기도 했던 너였구나.
맏이답게 눈치빠른 대처는 하지 못해도 늘 묵묵하게 네 자리를 지키던 네가 조금 더 큰 발전을 해보겠다고 서울행을 자처하니 서운하기도 하지만, 내심 우리 아들이 이만큼이나 컸나 싶어 대견하기만 하구나.
앙징맞게만 느껴지던 딸!
너도 엄마, 아빠와 여름방학에 즐겁게 놀러가자는 제안을 단호히 뿌리치고, 이제는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며 재미없고 힘든 캠프행을 자처해 떠나니 너 역시 대견하구나.
번뜩이는 재치와 비상한 눈치감각으로 언제나 노력보다 많은 것을 얻으면서도 그런 행운을 지속하려면 이제는 실력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을 네가 깨닫고 그러한 결정을 내렸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사실 너희 둘이 이 번 여름에 집을 떠나 너희만의 수양을 좀 더 하기를 바랬던 이유는, 너희를 보내놓고 엄마, 아빠가 둘만의 오붓한 여행을 계획하였던 것이 첫번째 이유였는데,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엄마, 아빠는 그냥 주질러 앉게되었고 너희는 계획대로 떠나게 되었구나.
우선 계획을 세우고도 흐지부지 주저앉은 부모 보다는 세운 계획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너희들 인생이 더 발전성이 있어 좋을 것 같고, 그런 과감한 결정을 편안하게 내리는 너희를 보고 아빠 때와는 다른 대견함을 너희들, 아니 그 세대들이 지니고 있구나 싶기도 해서 부러운 생각도 들더구나.
다만, 떠남을 망설이는 아빠세대는, 떨어진다는 공포와 함께 부모에 대한 육친의 정이 붙잡아 매는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너희는 그런 육친의 정이 우리 때보다는 좀 덜한 게 아닌가 싶어 그게 조금 서운하기는 했구나.
한동안 밤잠을 못 이루게 덥던 날씨가 태풍의 영향으로 내린 비로 한풀 꺾인 틈에 너희가 떠나, 너희만의 뜨거운 여름을 시작하고 있으니, 이제 아빠도 아빠의 뜨거운 여름을 만들어야겠지!
그냥 놀러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일상으로부터 시달리느라고 느끼지 못한 것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게 여행이라면, 아빠는 너희가 떠난 집에서 아빠를 돌아보고 어떻게 이 중년의 파고를 넘어야 할 지,
노년의 폭풍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궁구해보마.
아들과 딸이 한 달 후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날 무렵 이 아빠도 좀 더 완숙한 지혜를 가진 그런 아빠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보여주마.
아들과 딸!
건강하고 늘 행운과 함께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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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다 보내놓고,,,, 여름내 심심하시겠소...
올케 언니도 서울 올라와 있는거라며??? 서울 오면 이 동생 몸보신도 좀 시켜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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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7/21
(월) 오후 2:24 [ddubugg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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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보신을 해도 나이 든 내가 해야지, 이 나이 먹은 내가 서울까지 찾아가 너 몸보신 시켜주랴^^ 연락되면 맛난 것은 사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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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7/21
(월) 오후 6:48 [ky101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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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인 채 치과를 하는 친구가 있고, 사업을 하며 치과의사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하나 있습니다.
같은 모임을 하는 친구들인데, 사업하는 친구가 치과에 갔다가 간호사 중 한 명을 눈여겨 본 모양입니다.
친구네 치과에 있을 때는 마음이 있어도 엄두를 못내다가 치과를 옮기자 그 간호사에게 접근을 했습니다.
밥도 먹고, 통화도 하고 하는 등으로 지냈던 모양입니다.
그 간호사는 "카드빚이 있어 머리가 아프다"는 것을 주된 핑계로 자기의 본 마음이 어떤지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사업가 친구가 건네는 선물을 넙죽넙죽 받아 챙겼습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핑계로 돈을 빌려가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돈을 빌려가고 난 후부터 그 간호사가 고의적으로 연락을 피했습니다.
아차 싶은 그 사업가 친구가 우체국에 다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그 간호사 금융거래내역을 조회해 봤네요.
카드빚 갚는다거나 차 수리하는 비용 물어주기 위해 돈을 빌리지 않은 것은 그 내역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체크카드로 몇 만원씩 쓰다가 그 돈이 떨어지면 다시 돈을 받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연락이 끊기자 사업가 친구가 애가 닳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 모양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 드라이브를 하면서 안만날 거면 다 돌려달라는 말을 하자 물욕 때문인지 그 간호사가 이 친구를 감금, 협박 등의 어마어마한 죄명을 달아 고소를 하였네요.
경찰에서는 구속수사한다고까지 하는 것을, 당시 녹취록 등을 증거로 내 일부 혐의는 벗겨주고 금융거래내역 조회해 본 것과 무면허 운전으로만 처벌을 받고 끝났습니다.
문제는 그 간호사가 민사를 청구해 온 것이지요.
기록을 아무리 봐도 금융거래내역 조회 말고는 문제삼을 게 없는데, 감금이니 스토킹이니 하며 거품을 무네요.
제가 보기에는, 남의 금융거래내역을 떼어본 친구도 잘못이지만, 그 간호사도 나쁘게 말하면 꽃뱀 비슷하게, 노총각 가슴 설레게 하고 돈이며 물건 받아 챙긴 그런 사건으로 결단코 그 간호사도 "나는 잘했다"고 주장을 할 만한 계제가 아닌 그런 사건입니다.
그런데 본인신문을 신청하고 나와 일방적인 이야기만 뻔뻔하게 늘어놓습니다.
물론 나이차 많이나는 그 친구가 접근한 것이 싫었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마음이 없었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돈을 빌리지도 말고 선물도 거절하고 딱부러지게 태도표명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받아먹을 것 다 받아챙기고 나서 귀찮다고 전화도 안받고 그러다 이야기하자며 차타고 가면 한 이야기 끝에 다 돌려주고 관계를 끝내자고 하니 형사고소를 하고, 그러면서도 받은 돈이나 물건을 즉시 돌려주지 않고...
이런 정황을 다 모아보면 분명 눈에 보이는 사건인데, 이런 경우에도 금융거래내역 조회했다고 위자료를 좀 물어주라고 하면 참 억울할 수 있는데, 그래도 금융거래내역 조회를 해본 잘못이 있다니....
그저 자나깨나 여자 조심하는 것이 저 같은 얼띠기들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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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의 10번째 생일입니다.
1998. 6. 12.에 태어났으니 햇수로 꼭 10년이 됩니다.
참 힘든 하루였습니다.
당시 제가 제주도 근무할 때이고, 처는 제주대학교 병원을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은 특이하게 신생아실을 따로 두고 있지 않고 출산 후 신생아를 입원실에서 산모가 데리고 있으면서 몸조리하고 퇴원하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산후조리를 해 줄 아주머니를 구했는데, 예정일을 좀 남겨놓고 서울에 급하게 다녀올 일이 있어서 가도 되느냐고 묻는 전화가 와 처가 허락을 했나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산기가 온 것이지요.
아주머니는 며칠 있어야 오는데 해산을 해 버리면 신생아를 돌보기가 어려워집니다.
한라의료원에는 신생아실이 있어 거기서 출산을 할 수밖에 없다고 알아봐달랍니다.
알고계시던 의사선생님이 한 분 계셔서 급하게 전화를 드렸고, 퇴근한 산부인과 여의사 선생님께 다시 부탁이 가 그 분이 나와서 출산을 맡아주기로 하였습니다.
한라의료원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저도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처가 분만실로 옮겨지고, 의사선생님이 잠시 후 남편이 출산하는데 들어와 봐도 된다고 하여 그 잠깐 사이에 아들애 음료수를 하나 사주고 왔는데 그 사이에 처는 애를 낳았다네요.
그리고 2시간 정도 회복실에서 지내다가 입원실로 올라오니 밤 10시가 되었는데, 산모 밥을 못준답니다. 다들 퇴원해서 누가 밥을 마련해줄 형편이 아니라며 야식집 같은데 부탁해보라고 하고 돌아서네요.
야식집에 전화를 해보니 밥과 같이 되는 메뉴는 닭도리탕 뿐이라는데, 막 출산한 산모에게 매운 음식을 먹일 수는 없는 것이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를 내려놓자 처가 "그냥 빵하고 우유나 하나 사다줘"라네요.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아내에게, 막 출산이라는 힘든 일을 마친 아내에게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아버지와 큰 애를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집 입구 정육점에서 고기를 좀 사고, 미역을 담그고 쌀을 씯어 밥을 앉힌 후, 급히 회사로 가 남은 일을 마무리(그 날 제가 당직이었습니다)하고 돌아와 미역국을 끓여 이러저러한 반찬과 함께 퍼담아가지고 처의 병실로 날아갔습니다.
빵과 우유면 된다는 처도 갓지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에, 뽀얗게 국물이 잘 우러난 미역국을 주는대로 다 먹습니다.
그렇게 처를 먹이고 나, 저는 안도의 한 숨을 쉬며 캔맥주를 하나 따서 마시며 텔레비전을 트니, 멕시코인지와 월드컵 시합을 합니다.
그 때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할 때거든요.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낸 탓에 딴 맥주를 채 두모금도 못마시고 바로 골아떨어져 잠이 들었고, 그 해 가을 인사에 저는 이 곳 제천으로 오게 되었지요.
제가 살 관사가 비지 않아 약 한 달 남짓을 독신으로 지내다가 가족이 뒤따라 이사를 왔는데, 이 녀석은 채 백일도 안 돼 비행기라는 것을 타 본 셈이지요.
아주 작은 녀석이었는데, 어찌나 민감하고 까탈스러운지 한참을 다독이며 자나 하고 처다보면 방긋 웃으며 "내가 자는 줄 알았지" 요런 표정을 짓습니다.
제가 춥지 않게 가슴에 안고 오버코트로 둘러씌운 채 동네를 1시간 이상 걸어다녀야 잠이 든 적도 여러 번입니다.
어려서 물놀이를 데리고 가면 꼭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하여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던 그런 녀석이기도 합니다.
캐나다에 간 첫 달동안 아빠를 그리워하며 혼자 방에서 울기도 하였다는, 그러나 좀 적응이 되자 아빠 전화도 받지 않고 노는데 열중하던 그런 녀석입니다.
욕심은 많아서 뭐 한다고만 하면 손들고 하겠다고 나가고, 나가면 용케 상 하나씩을 챙겨오는 그런 녀석입니다.
고런 녀석이 생일을 맞아 아빠가 케익을 하나 사다주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촛불켜고, 축하노래부르고, 케익을 나누어먹습니다.

저 촛불처럼 이 녀석도 사회에서 밝게 빛나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마음을 가져보는데, 그 녀석은 뭐라고 소원을 빌었을까요?

퉁퉁한 아들과 날씬한 딸을 보면서, 두 놈이 바뀌었으면 고민이 더 컸겠구나 하고 위안을 하기도 합니다.

손주를 보시는 할아버지 모습도 흐뭇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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