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례는 자세와 정신을 곧게 세우는 과정으로, 찻자리를 통해 인정의 통로를 만들며 예의를 배우고 깊이 생각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나아가 자연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인간의 본성을 가다듬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도록 심신 수양 및 반성을 이끌어내고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차생활.
깊은 역사성을 가지고 그 맥을 이어온 우리의 차문화는 신라시대 화랑과 승려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는데 특히 불교 계율상 술을 금하므로 손님 접대시에 필요함은 물론 차의 각성작용은 참선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려에 이르러서는 선비들이 다도를 통해 두뇌휴식과 몸의 피로를 풀어 왔다면 조선시대에는 心을 닦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유학과 일체성을 찾았다. 이렇듯 차는 불교 (다선일체) 예술(茶器, 茶詩) 실학(다산 등 경세가와의 만남)과 서로 접근하며 발전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다.
차나무는 씨앗에 의해서만 번식하는 식물로 뿌리가 곧게 뻗어내리므로 옮겨 심으면 살기가 어렵다. 이러한 直根性은 정절을 지킨다는 상징성과도 통해 남도에서는 처녀가 결혼할 때 차 씨앗을 혼수(봉채)에 넣어갔다고 한다.
차는 색과 향과 맛에서 그 고유의 멋을 느끼게 되는데 운치롭기로는 찻물 끓는 소리를 松風聲이라 하여 솔숲 속의 솔가지를 스쳐지나는 바람소리나 檜雨라 하여 전나무에 듣는 빗소리를 음미 반추하는 멋에서부터 다도는 출발한다.
다향으로 마음을 씻고 비운다는 표현이 선조들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듯 차는 일찍부터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들었다. 따라서 차는 신께 바치는 공양물의 하나이자 제례때의 봉납물이었다. 차례지낸다는 말이 나타내듯 차를 제물로 올렸으며 도교에서는 心齋라 하여 제사의식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비우는 행위의 일환으로 차를 들었다고 한다. 특히 차는 불교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어와 이름난 다인 중에 승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차는 물의 身이요, 물은 차의 體라 이를 만큼 물의 품질을 중히 여겨왔는데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물맛이 좋은데다 차 역시 중국산 차에 필적할만한 좋은 차가 생산되어 차문화가 더욱 아름답게 꽃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찻잔에 차를 따를때 한번에 채우지 않고 나누어 여러번 따름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차의 향과 맛을 고루 나누기 위함으로 좌중의 평등을 상징한다고 하였듯, 어쩌면 차생활은 수평적 관계와 평등이 요구되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화의 한 축이 아닐까 싶다.